과부들의 산중 서당

2화: 어른도 틀리는 셈
영순은 다음 날 탁자 앞에 먼저 앉았다. 어제 쓴 자기 이름을 펼쳤다. 획 하나가 떡칼 자국처럼 굵었다. 아이들이 웃을까 봐 종이를 가리려다가 손을 내렸다.
길동이 옆에 앉았다.
“할머니 이름에는 발이 없네요.”
“너처럼 도망을 안 다녀서 그렇지.”
영순이 답했다. 아이가 자기 종이를 폈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 아래로 발을 두 개 더 붙여 놓았다. 목향은 종이를 돌려놓고 발은 쉬는 때 그리자고 했다. 오늘은 어른도 셈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날이었다.
탁자에는 해마다 받은 표가 놓였다. 여인 셋이 자기 것을 가져왔고 요진은 조금 늦게 왔다. 그녀는 표보다 아이들의 아침밥을 먼저 챙겼다. 단비는 옆에서 먹은 그릇을 씻고 있었다.
목향은 돈을 받은 날짜와 낸 사람의 이름을 따로 적었다. 숫자만 모으면 같은 돈을 두 번 세는지 알 수 없었다. 영순은 자기 표를 손끝으로 짚으며 어느 해인지 말했다. 폭우가 와 떡을 못 팔았던 해와 남편이 앓던 해는 잘 기억했다.
“그해에는 얼마나 냈나요?”
“봄에 한 꾸러미. 가을에도 조금.”
“표에는 같은 날에 두 번 낸 것으로 보입니다.”
영순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하나에는 남편 이름, 하나에는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남편이 병들어 영순이 대신 돈을 가져간 날이었다. 돈은 한 번 냈다. 표는 영순이 두 장 받아 돌아왔다. 하나는 남편 몫을 지웠다는 표시라고 들었다.
목향은 지웠다는 글자가 있는지 다시 봤다.
없었다.
길동이 표 둘을 겹쳤다. 같은 날을 가리키는 숫자가 겹쳤다. 그는 하나를 빼면 된다고 했다. 영순이 표를 도로 가져왔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낸 돈이야. 종이 하나 빼서 끝나면 얼마나 좋겠니.”
목향은 아이에게 먼저 설명하려다가 영순을 봤다. 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더 아파하고 있었다. 영순은 표를 꼭 쥐었다. 그 손으로 장터에서 남이 주는 돈을 늘 정확히 세었다.
“돈을 잘못 센 게 아니에요.”
목향이 말했다.
“받은 사람이 어떤 표를 줬는지 더 봐야 합니다.”
영순은 손을 조금 폈다.
요진이 가져온 표에도 같은 이름이 달리 쓰인 곳이 있었다. 죽은 남편에게 낸 돈과 요진에게 낸 돈이었다. 두 집의 터가 서로 다른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두 터의 물길과 나무가 같았다.
단비가 그 나무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집 앞 배나무를 저렇게 그렸어요.”
요진은 딸의 손을 밀지 않았다. 종이를 좀 더 가까이 놓았다. 단비는 자기가 아는 작은 그림을 찾아 표시했다. 배나무 가지 두 개와 그 밑의 큰 돌. 산의 크기를 잰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살던 곳을 기억한 방식이었다.
목향은 몰수 명령 옆에 표를 펼쳤다. 같은 물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옛 경계를 알아야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배운 글로 이름은 읽었지만 땅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길동이 말했다.
“나무한테 물으면 되잖아요. 이름 두 개 있는지.”
아이들이 웃었다. 목향도 잠깐 웃었다. 나무가 대답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오래 있던 사람이 대답할 수 있었다. 영순은 요진의 남편이 예전 물길을 잘 알았다고 했다.
요진이 종이를 거두었다.
“죽은 사람까지 부르지 맙시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목향은 이름을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요진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눈 때문에 더 날카로워졌다. 자루를 챙겨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영순이 먼저 불렀다.
“너 새 일감 있다더니, 어디로 가냐.”
요진의 발이 멎었다. 목향은 그녀에게 새 일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영순은 어제 저녁 장터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남쪽으로 가면 천 짜는 일을 맡아 줄 상인이 있었다.
“여기서 열흘 버티고 먹을 게 생겨요?”
요진이 물었다.
“애들 배고플 때 글자를 먹일 수는 없잖아요.”
목향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아이들의 수업을 위해 시간을 쓰지만 그 시간의 곡식을 모두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여인들이 돌아가서 짜고 팔고 씻은 뒤에야 서당의 하루가 이어졌다.
“갈 수 있다면 가셔도 됩니다.”
그녀가 말했다.
영순이 목향을 봤다. 공동체를 버리라는 말로 들은 것 같았다. 목향은 말을 고쳐 하지 않고 요진에게 이어 물었다.
“다만 누가, 어떤 일을 주겠다고 했는지 함께 보지요.”
요진은 천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일감을 맡기겠다는 약속이었다. 옷감을 내는 수량과 대금 일부가 적혀 있었다. 산 사용표와는 다른 종이였다. 목향은 먼저 금액을 읽었다.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주할 집이 있다면 시작할 수 있는 돈이었다.
목향이 집 이야기가 있는지 찾자 요진은 그 말은 입으로 들었다고 했다. 종이에는 없었다. 일감만 주고 사는 자리는 따로 마련해야 할 수도 있었다.
요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또 못 읽어서 그런 거지요.”
“없는 글자는 읽어도 안 보입니다.”
목향이 말했다. 단비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요진은 딸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단비가 읽어 주면 엄마가 알아야 할 것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얼굴이었다.
단비는 다 읽을 수 없다고 답했다.
“내가 안 배운 글자도 있어요.”
그 말에 요진은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어른의 일을 대신 맡게 하려다가, 아이에게도 처음 보는 글자가 있다는 것을 잊었다. 그녀는 종이를 도로 접었다.
“그럼 같이 더 배워야겠네.”
요진이 말했다.
탁자 앞의 공기가 조금 풀렸다. 영순은 자기 표를 다시 내놓았다. 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같은 종이를 볼 수 있었다. 꼭 같은 길을 택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어떤 말을 믿고 가는지는 알아야 했다.
목향은 약속 종이의 맨 아래를 보았다. 상인의 이름은 홍문필이었다. 어제 몰수 명령에 적힌 신청인과 같았다. 처음에는 마지막 획만 자기 손과 닮아 보여 마음이 멎었다. 오늘은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목향은 종이에서 손을 뗐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돈을 빌렸던 집이었다. 목향이 남편 대신 편지를 써 준 사람에게 지금 다시 이름이 붙었다. 그녀는 여인들에게 당장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영순이 물었다.
“아는 사람이냐?”
목향은 대답했다.
“이름을 압니다. 그때 빌린 돈도 있고요.”
영순의 얼굴이 굳었다. 요진은 딸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목향은 변명부터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기 서당이 걸린 일에서 다른 사람에게만 숨긴 것을 말하게 할 수는 없었다.
“다 갚은 줄 알았습니다. 어떤 종이가 남았는지는 찾아야 합니다.”
그녀는 말했다.
길동이 자기 이름을 탁자 가운데 놓았다. 어른들이 모두 종이를 놓으니 자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목향은 아이의 종이를 자기 앞으로 옮겼다.
“네 이름까지 빌린 일은 아니다.”
그녀가 말했다.
길동은 안심하고 떡을 먹었다. 목향은 그 단순한 안심을 오래 보고 싶었다. 어른의 과거가 어린아이의 자리를 빼앗을 때에는 먼저 무엇을 끊어야 할지 알아야 했다.
수업이 다시 시작되자 목향은 아이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그려 보게 했다. 글로 쓸 수 있는 곳에는 이름도 붙였다. 길동은 도토리 묻은 자리를 전부 그리다가 종이가 모자랐다. 단비는 자기 집의 물레방을 그렸지만 문은 그리지 않았다.
“들어가는 곳은?”
목향이 물었다.
단비는 문을 나중에 그리겠다고 했다. 목향은 다른 아이의 그림을 보러 갔다. 길동이 붓을 빌려 달라고 하자 단비는 붓을 넘겨주고 자기 그림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손 아래에 숨긴 문은 종이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목향은 아이가 말할 때를 기다리면서, 자기 문도 오래 닫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낮이 지나 아이들이 돌아갔다. 단비는 탁자를 닦고도 한참 남았다. 목향이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하자 단비는 바가지에 든 물을 보고 말했다.
“아버지가 숨긴 종이가 있어요.”
목향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단비는 아버지가 물레가 멈출 때마다 긴 대통을 꺼내 보았다고 했다. 지금은 물레방 밑에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울어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었다.
“내가 그걸 말하면 엄마가 또 울어요?”
목향은 울지 않을 거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엄마가 알아야 하는지 같이 생각해 보자.”
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요진의 집으로 갔다. 요진은 천을 자르고 있었다. 단비가 말을 시작하자 가위를 내려놓았다. 울지는 않았다. 눈이 붉어지는 동안 대통의 자리를 직접 찾았다.
물레방 밑의 흙을 걷어 내자 오래된 나무관이 나왔다. 대나무처럼 보이게 갈아 만든 것이었다. 안에 종이가 말려 있었다. 요진이 잡아당기려 하자 목향은 천천히 꺼내자고 했다. 가장자리가 이미 닳았다.
셋이 함께 종이를 폈다.
골말의 옛 경계도였다. 지금 서당 터는 그 경계 안에 없었다. 사용료를 받았다는 골짜기는 더 아래였다. 그림 한쪽에는 물길을 고치기 전에 잠시 머물러도 좋다는 글씨가 있었다.
목향은 그 줄을 읽지 못하고 멈췄다.
글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썼던 문장이었다.
요진이 목향의 얼굴을 봤다. 단비는 두 어른을 번갈아 보았다. 비가 지붕을 치기 시작했다. 종이를 다 펼친 뒤에야 세 사람은 가장자리의 작은 이름을 읽었다.
홍문필에게 맡긴 산의 대금을, 연목향의 집에서 갚는다는 문장이었다.
서당의 땅보다 먼저 훈장의 과거가 탁자 위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