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들의 산중 서당

1화: 이름을 쓰는 자리
길동은 자기 이름을 새처럼 그렸다. 첫 글자는 부리가 너무 길었고 다음 글자는 날개가 셋이었다. 연목향은 그 그림을 한참 보다가 종이를 돌려놓았다.
“이건 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이름이 없어지면 어떡해요?”
“그러면 다시 쓰면 된다.”
길동은 그것을 핑계로 다시 그렸다. 이번에는 발이 넷이었다. 옆에 앉은 단비가 웃었다. 목향은 길동에게 잘못 썼다고 말하기 전에 왜 발을 넷 그렸는지 물었다.
“날다 지치면 걸어야죠.”
단비가 크게 웃었다. 창밖에서 떡을 썰던 오영순도 웃었다. 골말의 아침은 이렇게 조금 늦게 시작했다. 글자 하나를 쓰다가 새가 나오고 새가 지쳐 길을 걸었다. 목향은 길동의 종이 옆에 그의 이름을 작게 적었다.
“네 이름은 발이 둘이어도 잘 걷는다. 오늘은 이것을 따라 써 보자.”
길동은 입을 내밀었다. 하지만 붓은 놓지 않았다.
탁자는 두 개였다. 하나에는 아이 넷, 다른 하나에는 어른 셋이 앉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면 종이를 가렸다. 아이들은 어른이 볼 때 자기 이름을 더 크게 썼다. 영순은 떡을 썰며 목향이 대신 자기 이름을 써 주기를 기다렸다.
목향은 붓을 내밀었다.
“오늘은 직접 쓰세요.”
영순이 손을 털었다.
“내 이름은 내 얼굴에 적혀 있지 않나. 장터 사람은 다 알아.”
“종이는 얼굴을 못 알아봅니다.”
“그 종이, 눈이 없어서 손해네.”
그녀는 농담을 하고도 붓을 받았다. 붓 끝을 떡고물 묻은 손으로 쥐었다. 길동은 할머니의 이름이 자기 것보다 못 날겠다고 말했다. 영순이 그 아이의 이마를 가볍게 밀었다.
영순의 첫 획이 종이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얼른 손으로 가렸다. 목향은 새 종이를 주지 않고 그 옆에 다음 획을 적어 보게 했다. 영순은 종이를 버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처음 쓴 것도 이름입니다.”
영순은 손을 거두었다. 목향이 어린아이에게 하듯 말하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장터에서는 오래전부터 자기 값을 불렀는데 종이에서는 이제 시작이었다. 길동이 옆으로 와 획 끝에 작은 발 하나를 그렸다. 영순은 이번에는 그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문 앞에서 말이 울었다.
웃음이 멎었다. 골말에는 수레가 가끔 올라왔지만 말은 잘 오지 않았다. 목향은 붓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관아에서 온 서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뒤에는 장정 셋이 줄을 들고 있었다.
“연목향이오?”
“제가 훈장입니다.”
서리는 훈장이라는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여인들이 배움을 하는 자리라고만 말했다. 목향은 그 말부터 바로잡으려 했지만 서리가 종이를 내밀었다.
서당 터를 포함한 골말의 일부를 비우라는 명이었다.
아이들은 문 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길동이 목향 뒤로 나가려 하자 단비가 옷을 잡았다. 목향은 종이를 끝까지 읽었다. 열흘 뒤까지 비우면 사용한 재료는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비우지 않으면 건물은 치우고 비용을 주민에게 물릴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저희는 해마다 돈을 냈습니다.”
목향이 말했다.
영순이 떡칼을 놓고 나왔다.
“내가 냈소. 봄마다.”
서리는 그 돈이 산 사용료라고 말했다. 땅값과는 다르다고 했다. 영순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해마다 남편 이름으로 돈을 내고, 남편이 죽은 뒤에도 같은 곳에 냈다. 몇 해를 더 내면 자기 터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소?”
서리가 물었다.
영순은 바로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받으러 온 사람은 해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들은 같은 띠를 차고 같은 말을 했다. 영순은 사람이 아니라 돈을 가져가는 손만 기억했다.
목향은 언제까지 내면 되는지 적은 종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영순은 집에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서리는 지금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오늘은 명을 전하고 건물을 재는 날이었다.
그가 장정에게 손짓했다. 줄이 마당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던 자리에 막대기가 박혔다. 길동은 자기가 묻은 도토리가 그 밑에 있다고 했다. 장정이 줄을 당기자 흙이 올라왔다.
길동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기 새가 먹을 거예요!”
그는 막대기를 뽑으려 했다. 장정이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목향이 다가가 아이를 데려왔다. 그녀는 장정에게 아이 손에 흙이 묻어 미끄러졌다고 말하고, 길동에게는 지금 뽑으면 다시 박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언제 뽑아요?”
목향은 답하지 못했다.
서리는 서당 안으로 들어가 탁자와 선반을 보았다. 빚진 것이 있는지 물었다. 목향은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서당에 묻는 것인지 되물었다. 그는 건물을 정리할 때 남은 물건이 누구 것인지 봐야 한다고 했다.
서당을 비운 다음을 벌써 세고 있었다.
백요진이 뒤늦게 산길을 올라왔다. 옷감을 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종이를 보고 목향에게 왜 이제 말하느냐고 했다. 목향은 자기도 지금 받았다고 답했다.
요진은 문 밖에 선 아이들을 봤다. 딸 단비가 맨 뒤에 있었다.
“수업은 끝났니?”
단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른들 일하는 데 나오지 말고 들어가.”
아이들은 들어가려다가 멈췄다. 서리가 선반 앞에서 종이를 세고 있었다. 탁자 위의 자기 이름들도 그가 건물을 셀 때 함께 세는 것처럼 보였다.
목향은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하나를 잡았다. 밖에 있던 영순에게 다른 쪽을 들어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이 탁자를 마당으로 옮겼다. 아이들의 붓과 종이도 그 위에 올렸다.
서리가 그녀를 봤다.
“지금 무엇을 하는 거요?”
“수업을 합니다.”
“우리가 재는 데 방해되잖소.”
“마당까지 비우라는 날은 열흘 뒤입니다.”
목향은 아이들을 탁자 둘레에 앉혔다. 영순이 남은 떡을 내왔다. 누구도 처음처럼 웃지 않았다. 길동은 새의 발을 세 개 지우고 두 개를 다시 그렸다.
“이제 이름 써도 돼요?”
“써도 된다.”
목향은 대답했다. 아이는 자기 종이를 똑바로 폈다. 어른들 사이의 말이 무서웠지만 이름 쓰는 자리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서리와 장정들은 일을 마치고 내려갔다. 마당에는 막대기 여섯 개가 남았다. 영순은 집에서 작은 표들을 가져왔다. 굵은 실로 묶어 옷감 속에 감싼 것이었다. 표마다 날짜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게 돈 낸 표야.”
영순은 탁자에 펼쳤다. 숫자는 대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많이 낸 해도 적게 낸 해도 돈을 만들려고 한 일이 떠올랐다. 그러나 돈이 어떤 이름으로 적혀 있는지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목향은 가장 최근 표를 읽었다.
산 사용료.
그 아래에는 어느 골짜기를 쓰는지 적혀 있었다. 지금 서당이 있는 골짜기와 이름이 달랐다. 목향은 표를 옆에 놓고 다른 해의 것을 봤다. 어떤 표에는 같은 이름, 어떤 표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단비가 가까이 왔다. 목향은 어른의 일이라며 물러나게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글자를 배운 아이가 그 글자가 쓰이는 곳을 보고 싶어 했다.
“이 글자는 무엇이지?”
목향이 물었다.
단비는 산이라는 글자를 읽었다. 그다음 사용이라는 말에서 멈췄다. 목향은 쓰고 있는 동안 돈을 내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단비가 영순을 봤다.
“사서 갖는다는 말은 없어요.”
영순은 표를 받아 들었다. 떡을 썰던 손이 종이를 움켜쥐었다. 자기가 외운 숫자는 맞았는데 그 숫자가 가는 자리는 달랐다. 영순은 누구에게 화내야 하는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요진이 먼저 말했다.
“글을 안 읽었다고 우리가 바보인 건 아니잖아요.”
“누가 바보랬니.”
영순이 답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단비는 뒤로 물러났다. 자기가 읽지 않았으면 어른들이 싸우지 않았을 것 같았다.
목향은 단비에게 의자를 내주었다.
“네가 읽은 말은 맞다. 그 말을 어떻게 할지는 어른이 해야 한다.”
단비는 앉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읽지 말까요?”
그 질문에 목향이 가슴을 눌렀다. 아이를 지키려고 말한 것이 배운 것을 숨기라는 뜻으로 들렸다. 목향은 고개를 저었다.
“읽어도 된다. 혼자 책임지지 말라는 거다.”
영순이 표를 내려놓았다. 단비를 불러 미안하다고 말했다. 글자를 읽은 사람에게 화낼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단비는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요진은 막대기가 박힌 마당을 봤다. 자기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질 때에도 내일 팔 천을 짜야 했다. 그녀는 오늘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목향은 붙잡지 않았다.
단비는 어머니를 따라가다 문 앞에서 돌아봤다. 영순의 오래된 표 하나에 익숙한 작은 그림이 있었다. 아버지가 나무판에 새겨 놓았던 것과 같은 물길 모양이었다. 단비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목향은 탁자를 마당에 그대로 두었다. 안으로 옮기려면 장정 둘이 필요했다. 오늘은 여인들끼리 천천히 옮길 수 있어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수업이 있던 자리로 남겨 두고 싶었다.
길동이 막대기 옆의 도토리를 주워 탁자 밑에 묻었다.
“여기는 아직 안 뺏었죠?”
목향은 탁자 밑을 봤다. 아이가 앉을 수 있는 작은 땅이었다.
“오늘은 우리 자리다.”
그녀가 말했다.
해가 넘어갈 때 영순은 처음 쓴 자기 이름을 가져갔다. 산 사용표와 나란히 싸지 않고 따로 쌌다. 이름은 오늘 쓴 것이고, 돈은 오래전에 낸 것이었다. 내일은 둘을 같은 종이에 놓고 읽어 볼 생각이었다.
목향은 몰수 명령의 맨 아래를 다시 봤다. 산을 맡아 쓰겠다고 청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러 글자 가운데 마지막 글씨의 획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그녀는 젖은 붓을 내려놓았다.
그 획을 쓴 손은, 오래전 자기 손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