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봉의 벙어리 북소리

2화: 발밑의 전쟁 신호
남봉의 문이 열렸을 때, 침입자는 두 명만 붙잡혀 있었다. 나머지는 산길 안개로 사라졌다. 연비는 그들이 북에 반응한 방향을 산문 지도 위에 옮겼다. 점들은 서로 다른 길을 향하는 대신, 서쪽 폐광에서 한곳으로 모였다.
노인은 자신의 이름이 만석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쟁 당시 신호 북을 쳤고, 연비의 아버지 도연은 퇴각 신호를 전하러 갔다. 공식 기록은 도연이 남봉의 위치를 적에게 넘긴 뒤 도주했다고 적혀 있었다. 만석은 그가 피난민을 산길로 보냈다고 증언했지만, 자신의 말을 공개하면 살아남은 주민들이 보복당할까 숨어 지냈다.
묵단은 그 증언을 문서함에 두기로 했다. “아직 증언자가 안전하지 않다.”
연비는 아버지의 이름을 기록에서 지운 채 보호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도 그가 살아 있다는 걸 모르니, 증언도 보호도 할 수 없어요.”
“너는 네 아버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그래요. 그래도 만석 어르신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기다리겠어요.”
만석은 노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옛 신호의 순서가 적혀 있었다. 세 번의 북은 산길을 비우라는 뜻이었고, 네 번째 진동은 적의 위치를 알리는 경고였다. 전쟁 때 신호를 바꾼 사람은 남봉 내부에 있었다. 그가 정식 신호를 거꾸로 전달해 피난민들이 포위된 길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 사람의 이름도 증언첩에 있어.” 만석은 말했다. “그 이름을 공개하면 지금 살아 있는 가족까지 공격받을 수 있어.”
묵단은 그 이름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연비는 그가 아버지를 배신자로 기록하게 둔 이유를 물었다. 묵단은 당시 남봉의 책임자였고, 전쟁에서 패배한 뒤 문파를 지키기 위해 도연의 실종을 배신으로 정리했다고 고백했다. 증언을 공개하면 문파가 해체될 수 있었다.
“그럼 당신은 산문을 지키느라 아버지를 버린 거군요.”
“그렇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연비는 분노를 쏟아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를 향한 기억은 희미했지만, 문서에 적힌 배신이라는 낱말은 오래도록 그녀의 삶을 눌렀다. 묵단은 그 말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고, 침묵을 택했다.
서쪽 폐광에 침입자가 모였다는 사실은 산문 안의 사람이 알려 줬을 수 있었다. 도헌은 자신이 전날 밤 낯선 표식을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창고의 돌벽에 작은 홈 세 개가 새겨져 있었고, 그 방향이 폐광을 가리켰다고 했다. 도헌은 장난인 줄 알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으면 오늘 밤 다치지 않았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 연비가 말했다. “하지만 다음엔 혼자 판단하지 말고 알려 줘.”
도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용감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위험한 신호를 숨겼다. 연비는 그 마음을 나무라기보다 자신도 북수로 인정받으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실을 감춰 온 이야기를 했다. 둘은 서로의 약점을 신호로 남기기로 했다.
묵단은 폐광으로 가는 길을 막자고 했다. 연비는 그곳에 남은 침입자와 전쟁의 흔적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위대를 만나면 증언자를 데려갈 수도 있었다. 만석은 동행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나타나면 침입자들이 더 격렬하게 공격할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연비는 그를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만석이 원하는 공개 범위를 적을 수 있도록 종이와 붓을 준비했다. 그는 이름 일부를 가려 기록을 남겼고, 누구에게 보여 줄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묵단은 증언첩을 공개하기 전에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폐광으로 향하는 길에는 자갈이 많았다. 연비는 발밑의 진동을 읽기 어려웠다. 진동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바위가 부딪혀 신호가 섞였다. 그녀는 청각이 약한 자신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도헌이 먼 곳의 발소리를 세며 묵단이 시야를 살피도록 역할을 나눴다.
폐광 입구에 도착하자 세 번의 진동이 산 아래에서 올라왔다. 연비는 길을 비우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묵단은 그 신호가 자신들의 방어 북과 같은 간격이라고 했다. 폐광 안쪽에서 침입자들이 북의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산문으로 유인하려 해요.” 연비가 말했다.
묵단은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폐광 안에서 누군가 금속을 긁는 소리가 났다. 도헌이 어깨를 움츠렸다. 연비는 소리보다 발밑의 반복된 진동이 끊기는 지점을 느꼈다. 그 아래에 빈 공간이 있었다.
그들은 폐광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의 나무판은 오래돼 밟으면 무너질 수 있었다. 도헌이 밧줄을 기둥에 묶고, 한 사람씩 손으로 이동했다. 갱도 벽에는 오래된 사람 이름이 칼끝으로 적혀 있었다. 몇 개는 지워져 있었고, 몇 개는 새로 새겨져 있었다.
끝에 닿자 침입자들이 북가죽을 여러 장 펼쳐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연비의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판을 태우려 했다. 연비가 달려들었지만 묵단이 그녀를 붙잡았다. 불은 아직 붙지 않았다. 그 여자는 연비를 알고 있는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도연의 딸이구나.”
여자는 설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의 오빠는 전쟁 중 남봉의 신호를 잘못 전달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그녀는 증언첩을 찾아 오빠의 이름을 바로잡으려 침입자들과 함께 왔다. 그러나 증언을 확보하려고 산문을 공격하면서 무고한 제자들이 다쳤다.
“왜 북에 반응하게 훈련했죠?” 연비가 물었다.
“소리를 들으면 경비가 먼저 대응해. 진동을 읽으면 뒤에서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럼 민간인도 신호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나요?”
설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연비가 들고 있는 북채에 머물렀다. “네가 신호를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
그녀는 북가죽 판을 내놓지 않았다. 산문에 증언첩이 있는지 확인하고, 자기 오빠 이름이 있는 부분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묵단은 전체를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비는 둘 사이에 서서, 증언첩의 원본을 누가 관리할지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다.
폐광 바깥에서 또 세 번의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설화의 동료들이 후퇴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설화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북채를 내려놓고 연비에게 말했다.
“증언첩이 진짜라면, 내가 먼저 내 이름을 공개하겠다. 내 오빠가 누구였는지 밝혀야 다른 사람이 말할 수 있어.”
묵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폐광의 어둠 속에서 연비는 북가죽에 손을 댔다. 진동이 한 번, 길게 올라왔다. 누군가 산문에서 바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은 무기를 들지 않은 노인이었다. 그는 묵단을 보자마자 이름을 불렀다. 묵단은 한 걸음 물러섰다. 노인은 전쟁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문서에 올리는 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증언첩을 숨긴 것에 대해 묵단에게 따져 묻고 싶어 했다.
“우리가 증언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은 계속 배신자로 남습니다.”
“공개하면 산 사람도 위험해집니다.”
“그 위험을 감당할지는 우리가 정합니다.”
노인의 말에 설화는 고개를 떨궜다. 자신은 오빠를 위해 나섰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생존자의 동의를 묻지 않았다. 증언을 확보하려는 순간에도 그들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녀가 가져온 북가죽 판에는 침입 경로와 산문 방어 신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피해자의 증언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격 계획이었다.
연비는 설화에게 판을 태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판을 무기로 쓰지 못하도록 묵단에게 넘기고, 사본을 증언자에게 맡기자고 했다. 설화는 잠시 망설이다 판을 바닥에 놓았다. 묵단은 곧바로 집어 들지 않았다. 노인에게 먼저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다.
노인은 판을 읽고, 오빠의 이름을 찾아 손가락을 멈췄다. 이름 옆에는 ‘배신자’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는 그 단어를 바로 지우지 않았다. “누가 썼는지부터 밝혀야 해요. 종이에 남긴 흔적도 증거입니다.”
묵단은 전쟁 당시 신호를 바꾼 장교의 서명이 증언첩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 이름을 공개하면 문파가 전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두려워했다. 그 장교는 전쟁 뒤 남봉의 후원자가 되었고, 문파의 문루를 다시 세우는 비용을 댔다. 묵단은 후원자를 잃으면 제자들과 피난민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 이름을 내줬습니까?” 연비가 물었다.
묵단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
연비는 아버지가 배신자로 불린 세월을 떠올렸다. 묵단의 사과를 듣고 바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선택은 증언자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막지 않는 일이었다. 연비는 자신이 아버지의 딸이어서 증언을 공개하겠다고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만석 어르신에게 물어보세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직접 물어보세요. 누가 공개할지 정하게 하세요.”
묵단은 증언첩 원본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설화는 그를 혼자 보내지 않겠다고 나섰다. 그는 그녀가 산문에 들어온 침입자였으니 함께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연비는 설화가 원본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동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설화는 자신의 칼을 바닥에 내려놓고 약속했다.
폐광 밖으로 나오는 길은 들어올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진동이 여러 방향에서 섞여 누구도 북을 읽을 수 없었다. 도헌이 밧줄을 잡고 먼저 걸으며 발판을 확인했다. 그는 한 번 미끄러졌지만, 묵단이 팔을 받쳐 줬다. 도헌은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고 먼저 신호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산문에 돌아왔을 때 만석은 문서함에서 바깥으로 옮겨 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증언을 듣고 싶은 생존자 명단을 적었다.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름을 가려 달라고 부탁했다. 연비는 그 문장을 받아 적고, 어떤 부분도 자기 판단으로 지우지 않았다.
설화는 자신이 오빠의 이름을 공개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그녀는 오빠가 전쟁 당시 신호를 잘못 전한 사람이 맞지만, 그 신호는 상관의 명령이었고 그는 민간인을 구하려고 후퇴 경로를 바꾸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오빠가 완벽한 영웅이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의 실수와 선택을 함께 기록했다.
묵단은 증언첩의 열쇠를 연비에게 건넸다. 그는 자신이 공개 책임을 독점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연비는 열쇠를 받지 않았다. 대신 만석과 설화가 각자 사본을 보관하도록 하고, 원본을 열람할 때 세 사람이 함께 있도록 제안했다.
그날 밤 방어 북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제자들은 나무판을 이어 서로의 움직임을 전했고, 침입자들에게 빼앗긴 신호 체계는 다시 산문 사람들의 손에 돌아왔다. 연비는 북가죽을 만지며 바닥의 진동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적의 움직임이 아니라, 누군가 다가오는 발걸음이었다.
문 앞에는 젊은 제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전쟁 때 신호를 바꾼 장교의 후손이었다. 증언첩을 공개하면 자기 집안이 무너질 수 있다며, 그가 할 수 있는 말을 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만석은 대답하기 전에 연비를 바라봤다.
연비는 북채를 내려놓았다. “말할지는 당신이 정해요. 기록할지는 듣고 난 뒤 증언자들과 함께 정하겠습니다.”
젊은이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떨렸지만, 누구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