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봉의 벙어리 북소리

1화: 소리 없는 네 번째 울림
연비는 북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확히는 모든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돌을 치는 소리나 빗방울은 들렸지만, 낮은 북소리는 한쪽 귀에서 금세 사라졌다. 대신 손바닥으로 북가죽을 누르면 진동이 뼈를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남봉 산문의 방어 북은 밤마다 세 번 울렸다. 첫 울림은 문을 닫고, 둘째는 등불을 가리고, 셋째는 산길을 비웠다. 연비는 북채의 각도와 가죽이 돌아오는 시간을 보고 신호를 배웠다. 그녀가 북수 견습으로 들어온 뒤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세 번의 신호가 끝난 다음 네 번째 울림이 왔다. 북은 움직이지 않았다. 북채도 고정되어 있었다. 연비는 발밑의 돌판을 통해 네 번째 진동을 느꼈다.
“누가 북을 쳤어?” 방어대장 묵단이 물었다.
연비는 고개를 저었다. “가죽은 울리지 않았어요. 바닥에서 왔어요.”
묵단은 순찰을 멈추고, 도헌에게 등불을 끄라고 지시했다. 도헌은 등불을 가리기 전에 산문 바깥을 내다보려 했다. 연비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둘째 신호는 어둠을 만들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먼저 보이면 안 돼요.”
도헌은 입술을 깨물고 등불을 덮었다. 그 순간 담장 너머에서 기와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문 위로 넘어오고 있었다. 묵단은 창을 든 제자들에게 북을 바라보라고 손짓했다. 아무도 연비의 바닥 신호를 확신하지 못했다.
“문을 막으면 안 돼요.” 연비가 말했다. “세 번째 신호는 길을 비우라는 뜻이에요. 침입자는 우리를 문으로 끌어내려 할 거예요.”
“그럼 어디를 막지?” 묵단이 물었다.
연비는 돌바닥에 귀를 대고 손바닥을 펼쳤다. 북맥은 산문의 중앙에서 갈라져 동쪽 회랑과 서쪽 창고로 이어졌다. 네 번째 진동은 동쪽으로 가다 끊겼다. 침입자는 발을 들지 않고 돌을 밟아 움직였다. 소리를 듣는 경비를 피하려는 걸까, 북의 진동을 읽는 훈련을 한 걸까.
그녀는 북채를 들고 북을 치지 않은 채, 나무 테를 손등으로 세 번 두드렸다. 가죽에는 진동이 닿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을 본 제자들은 문을 비웠다. 묵단은 그들에게 회랑 양쪽으로 흩어지라고 했다.
침입자는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창고의 뒤쪽 벽에서 기와가 하나씩 빠졌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천천히 몸을 내렸다. 그의 발에는 천을 감아 발소리를 죽이고, 허리에는 작은 납덩이를 매달아 돌에 진동을 전달했다.
연비는 그가 북의 진동을 따라오는 걸 알아차렸다. 북을 치지 않으면 움직임을 멈추고, 돌을 두드리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어대원들이 소리를 내며 유인하려 했지만, 침입자는 귀가 아니라 땅을 보고 있었다.
“돌을 밟지 마세요!” 연비가 외쳤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 번 쳤다. 북가죽의 진동과 같은 간격이었다. 침입자가 반응해 창고 쪽으로 달려왔다. 도헌은 그를 막으려다 넘어졌다. 연비는 도헌을 끌어당기고, 자신의 팔로 침입자의 칼을 받아냈다. 소매가 길게 찢겼다.
묵단은 창으로 침입자의 길을 막았다. 그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순간, 연비는 바닥의 떨림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침입자가 뒤쪽 회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북채를 거꾸로 들어 나무 테를 두드렸다. 묵단은 신호를 알아듣고 창을 거뒀다. 제자들이 회랑을 비우자 침입자는 비어 있는 길로 달려들었다.
그곳에는 밧줄 덫이 있었다. 도헌이 낮에 수리하다 남긴 밧줄을 묵단이 기둥에 묶어 둔 것이다. 침입자의 발이 걸리며 몸이 바닥에 부딪혔다. 칼은 멀리 튀었다. 첫 침입자는 동료를 구하려다 방향을 바꿨고, 그때 연비가 북채를 그의 손목에 내리쳤다. 칼이 떨어졌다.
두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한 명은 산문 안으로 들어오려 했고, 다른 한 명은 창고의 낡은 문서를 찾는 듯했다. 그는 묵단이 손을 뻗자 물러났다. 연비는 그가 문서함의 위치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무엇을 찾는 거죠?”
침입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서 작은 북가죽 조각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가죽에는 낡은 산문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 묵단이 그것을 보자 얼굴이 굳었다.
연비는 두 침입자를 묶어 놓고 북가죽 조각을 들어 보였다. “이건 우리 북의 가죽이 아니에요.”
“전쟁 때 쓰던 신호 북의 일부다.” 묵단이 말했다. “오래전에 폐기했다.”
“왜 그 표식을 숨기셨어요?”
“숨기지 않았다.” 묵단은 말끝을 흐렸다. “묻어 두었다.”
그가 문서함을 열어 보려 했을 때 침입자가 몸을 움직였다. 묶인 손목으로 칼을 찾으려 한 게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북가죽을 발로 밀어 문서함 아래로 넣으려 했다. 연비가 그를 막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열면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이 다시 죽는다.”
그 말에 묵단은 문서함 손잡이를 놓았다. 도헌은 침입자의 얼굴을 가린 천을 벗기려 했지만, 연비가 그의 손을 막았다. “이름을 밝히는 건 우리가 묻고 답을 듣는 다음이에요.”
침입자는 묵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노인의 것이었다. “묵단, 당신이 보관한 증언첩을 내놓으시오.”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왜 아직도 북을 세 번 울리나?”
침입자는 입을 다물었다. 연비는 북가죽 조각을 다시 살폈다. 뒷면에는 세 줄의 짧은 홈이 파여 있었다. 세 번의 울림과 같은 간격이었다. 그러나 네 번째 홈은 없었다. 오늘 밤의 네 번째 진동은 침입자가 보낸 신호였을 수도, 다른 누군가가 경고한 것일 수도 있었다.
묵단은 산문 사람들에게 침입자들을 방 안으로 옮기라고 했다. 연비는 그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도헌에게 문서함을 지키라고 했다. 침입자 한 명은 묵단과 같은 걸음으로 절뚝였다. 그는 산문 내부의 길을 알고 있었다.
새벽이 오기 전까지 연비는 북을 치지 않았다. 대신 북가죽에 손바닥을 얹고, 땅의 진동을 기록했다. 매번 침입자가 움직일 때마다 산문 서쪽 벽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왔다. 벽 안쪽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도헌은 그 공간을 확인하러 가겠다고 했다. 연비는 그에게 혼자 가지 말라고 했다. “용감한 건 먼저 뛰어가는 게 아니야. 돌아올 신호를 남기는 거야.”
그들은 밧줄을 서로의 허리에 묶고 벽을 조사했다. 돌 한 장이 헐겁게 움직였다. 그 안에는 오래된 이름 목록이 숨겨져 있었다. 첫 이름은 묵단의 이름이었고, 둘째는 연비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연비는 자신이 왜 그 북의 진동을 알아듣는지 처음으로 의심했다.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때 죽었다고 들었다. 목록의 끝에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 옆에는 ‘증언 보유자, 접촉 금지’라고 표시돼 있었다.
바닥에서 다시 네 번째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산문 밖이 아니라 문서함 안쪽에서 왔다.
연비는 문서함의 잠금쇠에 귀를 대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나무판을 눌렀다. 안에서 울린 네 번째 진동은 북의 낮은 울림과 달랐다. 빠르고 불규칙했다. 누군가 작은 돌을 문서함 벽에 대고 두드렸다.
“안에 사람 있어요.”
묵단은 반사적으로 문서함 앞을 가로막았다. 연비는 그의 팔을 잡지 않았지만,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누구죠?”
“아무도 아니다.”
“그럼 열어도 되겠네요.”
묵단은 열쇠를 꺼내려다 멈췄다. 그는 침입자에게 증언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서함 속에서 다시 세 번의 진동이 왔다. 이번에는 약했고, 마지막 떨림은 길게 이어졌다. 구조 요청일 수 있었다.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도헌이 말했다.
“네가 열면 안 된다.”
“그럼 누가 열어요? 당신이 못 여는 동안 안에서 두드리는 사람이 기다리잖아요.”
묵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비는 문서함의 자물쇠를 관찰했다. 오래된 잠금은 밖에서 열쇠로 여는 구조였지만, 아래쪽 나무판에 작은 틈이 있었다. 그녀는 북채를 틈에 끼워 조심스럽게 밀었다. 자물쇠가 움직이지 않았고, 문서함 안의 진동도 멈췄다.
진동이 사라지자 도헌은 성급하게 나무판을 뜯으려 했다. 연비는 그를 막았다. 안쪽 사람이 숨을 참고 있는 것일 수 있었다. 그녀는 북채를 세 번 가볍게 눌러 산문 신호를 보냈다. 문서함 안에서 한 번의 떨림이 돌아왔다.
“살아 있어요.”
묵단은 결국 열쇠를 건넸다. 문서함은 비어 있지 않았다. 안에는 종이 뭉치와 낡은 북가죽, 그리고 작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 끝에 마른 노인이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얇은 나무 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는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북채로 바닥을 두드려 글자를 만들었다.
그가 쓴 첫 글자는 연비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노인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에서 신호 북을 쳤다고 했다. 연비의 아버지는 산문을 지키다 죽은 게 아니라, 피난민에게 퇴각 신호를 알리고 사라졌다. 공식 기록에는 적에게 산문의 위치를 팔았다고 적혀 있었다. 노인은 그 기록이 거짓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증언하면 마을의 생존자들이 다시 보복당할까 두려워 숨었다.
묵단은 노인을 문서함 안에 숨겨 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전쟁 뒤 생존자들을 보호하려고 증언첩을 보관했지만, 공개하면 남은 가족들이 위험해질 거라 생각했다. 보호라는 말은 시간이 흐르며 침묵의 다른 이름이 됐다.
연비는 아버지의 이름을 목록에서 지우지 않았다. 대신 노인에게 그가 증언하고 싶은 내용과 공개하지 않을 내용을 묻기로 했다. 노인은 한 번에 대답하지 못했다. 먼저 물을 마시고, 숨을 골랐다. 도헌은 물그릇을 들고 다가갔지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낯선 손에서 물을 받기 어려웠다.
연비는 그릇을 바닥에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노인은 스스로 물을 마셨다. 그 작은 움직임을 기다리는 동안, 산문 바깥에서는 포위한 자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들이 말한 동료가 더 온 듯했다.
묵단은 문을 닫고 방어대를 불렀다. 연비는 북을 울리지 않기로 했다. 침입자들은 북신호에 반응하도록 훈련됐다. 대신 제자들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어 진동을 전달하고, 바닥을 밟지 않는 나무판 길을 만들었다. 소리와 흔적을 줄이는 방어였다.
도헌은 연비 옆에서 줄을 묶었다. 그는 아까 혼자 뛰어들려 한 것을 사과했다. 연비는 자신도 북의 진동을 잘 읽는다고 해서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네가 돌아올 신호를 남기지 않으면, 내가 어디서 널 찾을지 몰라.”
“그럼 돌아오는 길도 제가 표시할게요.”
연비는 노인이 건넨 나무 조각을 살펴봤다. 표면에는 북채가 움직인 방향과 호흡의 수가 새겨져 있었다. 암살자들이 반응한 것은 소리가 없는 북 자체가 아니라, 전쟁 때부터 쓰인 발밑 신호였다. 그들은 남봉의 방어 신호를 아는 사람에게 훈련받았다.
그날 새벽, 문밖에서 네 번째 진동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노인이 먼저 나무판을 두드렸다. 산문 제자들은 어깨의 압력으로 신호를 이어받아 모두 같은 순간에 자리를 비웠다. 침입자들은 비어 있는 길로 들어와 서로 부딪혔다. 연비는 북채로 그들의 손목을 쳐 칼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방어대의 숨과 발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북이 울리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