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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의 벙어리 북소리3화

남봉의 벙어리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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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증언첩의 마지막 장

젊은이는 자신의 이름을 기범이라고 밝혔다. 전쟁 때 신호를 바꾼 장교의 손자였다. 그는 할아버지가 죽기 전 남긴 일기 한 권을 가져왔다. 일기에는 남봉의 퇴각 신호를 바꾼 일이 적혀 있었지만, 명령한 사람의 이름은 찢겨 나갔다.

묵단은 그 일기를 보자 손을 뻗었다. 기범이 한 걸음 물러섰다. “먼저 읽고 싶습니다. 가족의 글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요.”

연비는 일기를 빼앗지 않았다. 기범이 한 장씩 넘기는 동안 만석과 설화가 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은 각자 기억한 전쟁의 장면을 꺼냈다. 만석은 산길에서 북을 쳤고, 설화의 오빠는 후퇴 신호를 전달했다. 묵단은 공식 명령을 받았으나, 명령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기범은 일기의 마지막 장을 읽다가 멈췄다. 할아버지는 신호를 바꾼 대가로 민간인 구조를 지연시켰고, 그 사실을 평생 숨겼다고 썼다. 그러나 명령을 내린 사람은 기록하지 않았다. 기범은 일기를 공개하면 가족의 명예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자신이 일기를 들고 온 이유는 이름을 되찾으려는 죽은 자들이 계속 거짓말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공개를 원한다고 해서 생존자도 원해야 하는 건 아니죠.”

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증언 일부는 공개해도 되지만, 피난민 명단은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설화는 오빠의 이름과 명령 전달 경로를 공개하되, 살아 있는 친척 이름은 가려 달라고 했다. 묵단은 문파가 보관한 원본을 열람할 수 있게 했다. 그 원본에는 명령을 내린 자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당시 남봉을 후원한 장군이었다. 그는 전쟁 뒤 중앙의 고관이 되어 병으로 죽었다. 이름을 공개해도 처벌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운 기념비는 지금도 산문 입구에 서 있었다. 묵단은 그 비석을 지키느라 생존자들의 증언을 숨겼다.

“비석을 내리면 산문의 역사가 사라질 겁니다.”

“사람의 이름을 지우면 그들의 역사도 사라져요.” 연비가 말했다.

묵단은 즉시 답하지 못했다. 그날 밤 침입자들이 다시 산문에 왔다. 그들은 증언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원본을 훔치려 했다. 북을 치지 않았는데도 발밑에 네 번의 진동이 번졌다. 침입자들은 산문의 방어 신호를 베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연비는 북가죽을 울리지 않고, 나무판을 세 번 두드렸다. 제자들은 길을 비우고, 방어대는 마당의 모래 위에 밧줄을 놓았다. 침입자들이 달려들자 발이 밧줄에 걸렸다. 도헌은 그들을 칼로 제압하려다, 상대가 손에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멈췄다. 무기를 빼앗고 거리를 벌렸다.

설화는 침입자들의 신호를 알아듣고 그들에게 후퇴하라고 외쳤다. 그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명이 증언첩을 향해 달려갔고, 묵단이 길을 막았다. 과거에는 기록을 감추려던 그가 이번에는 원본 앞을 지켰다.

연비는 북채로 바닥을 쳐서 신호를 바꿨다. 첫째 울림은 창고를 비우고, 둘째는 마당으로 유인하고, 셋째는 문을 열었다. 침입자들은 문으로 향했지만, 그 앞에 서 있던 제자들이 길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양쪽으로 비켜섰다. 그들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연비는 도주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 다친 이가 더 생기지 않도록 길을 열었다. 설화는 침입자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만석이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네가 쫓아가면 다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하게 된다.”

설화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침입자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중 한 사람이 문밖에서 돌아서 증언첩을 훔치려 한 이유를 외쳤다. 전쟁 때 자신의 아버지가 남봉의 후퇴 신호를 듣지 못해 죽었다고 했다. 그는 기록을 얻으면 아버지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증언을 볼 기회는 주겠습니다.” 연비가 답했다. “하지만 원본을 가져가게 두진 않아요.”

그 남자는 결국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증언을 읽고 나면 공개할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묵단은 그에게 원본을 혼자 맡기지 않았고, 만석과 설화가 함께 읽는 자리에 초대했다. 그가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중에 정하기로 했다.

싸움이 끝난 뒤 연비는 한쪽 귀에서 웅웅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바닥의 진동을 너무 오래 읽고 있었다. 만석은 북수에게 청력이 약하다고 해서 신호를 못 읽는 건 아니지만, 몸이 보내는 경고도 놓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귀도 전쟁 뒤부터 한쪽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왜 저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네가 나와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네 방식은 네가 찾아야 하니까.”

연비는 처음으로 북수 일을 혼자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도헌은 새 신호를 배우겠다고 했고, 묵단은 북이 아닌 손의 압력과 밧줄로도 방어대를 움직이도록 훈련을 바꾸기로 했다.

증언첩을 공개할지 정하는 모임에는 생존자와 가족이 참석했다.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범위를 정했다. 이름을 공개하는 사람, 이름은 가리되 사건을 알리는 사람, 아직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기범은 할아버지 일기의 일부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만석은 자신의 이름과 도연의 마지막 퇴각 신호를 남기도록 허락했다. 설화는 오빠의 이름을 직접 읽었다.

묵단은 공식 승전 기록에 자신이 도연을 배신자로 적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문파의 기념비를 내리는 데 동의했고, 그 자리에 전쟁 피해자들의 이름을 새기기 전 당사자와 가족에게 동의를 받겠다고 했다. 연비는 아버지의 이름을 먼저 새기지 말라고 했다. 그의 선택과 죽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가족의 이름을 기념비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북을 한 번 쳤다. 이번에는 낮은 소리와 진동이 함께 울렸다. 연비는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했지만, 북가죽 아래에 손을 대고 동료들의 발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세 번의 신호가 지나고, 네 번째 울림은 오지 않았다.

산문은 방어 북을 다시 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침묵을 보호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연비는 새 훈련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첫 질문을 건넸다. 어떤 신호를 듣고 싶은지, 어떤 이름은 아직 기록하지 않길 원하는지. 그 대답을 듣기 전에는 북을 치지 않았다.

남봉 문루에서 기념비의 명판을 내리던 날, 주민들이 직접 공구를 들었다. 누군가는 망치로 돌을 깨려 했지만, 연비는 먼저 문구를 읽어 보자고 했다. 기념비를 부수면 지워진 기록까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들은 명판을 보존하고, 옆에 빈 돌판을 세워 생존자들이 직접 새길 내용을 기다렸다.

묵단은 빈 돌판 앞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는 책임자의 이름부터 기록해 달라고 했다. 자신이 어떤 침묵을 선택했는지 남기는 일이었다. 만석은 그의 이름 아래에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묵단은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설화는 산문을 떠나기 전에 연비에게 북채를 돌려줬다. 자신은 다시 공격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오빠의 증언을 공개하는 일에는 참여하겠다고 했다. 연비는 그녀에게 산문 안에 머물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설화는 자신의 길을 정했고, 연비는 그 선택을 기록했다.

그날 밤 북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산 아래의 마을에서 사람들이 늦게까지 이름을 읽는 소리가 들렸다. 연비는 소리를 모두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주는 숨의 간격을 손바닥으로 느꼈다. 문서함 안에서 마지막으로 네 번째 진동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위협이 아니라, 멀리서 답을 기다리는 신호였다.

연비는 그날 밤 문서함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산문 밖으로 나가 새로 세운 빈 돌판 앞에 앉았다. 주민들이 가져온 이름쪽지가 무릎 위에 쌓여 있었다. 같은 사람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쪽지도 있었다. 기록을 읽는 것만으로는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었다.

한 여인이 남편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접어 돌판 아래에 놓았다. 아직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연비는 그 종이를 꺼내지 않고, 여인이 직접 가져갈 때까지 자리를 비켰다. 다른 남자는 형의 이름을 큰소리로 읽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아직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묵단은 그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문루를 지키는 대신 물그릇과 붓을 나눠 줬다. 연비는 그가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모든 신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가 숨겨 둔 문서함을 열어 증언자들을 만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도헌은 새 방어 신호를 손의 압력과 밧줄로 연습했다. 한 사람의 어깨를 세 번 누르면 길을 비우고, 손바닥을 길게 붙이면 멈춘다. 신호를 잘못 전달하면 움직임이 엇갈렸다. 연비는 그 오류를 기록하고, 다시 연습할 때는 역할을 바꿨다. 도헌이 먼저 북수를 맡아 보고, 연비는 그가 놓친 움직임을 알려 줬다.

“내가 틀린 신호를 보내면 어떻게 해요?”

“멈추고 다시 물어.”

“싸움 중에도요?”

“틀린 걸 알아차린 순간엔 그래야 해.”

연비는 자신의 약한 청력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 신호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 누군가 신호를 못 듣거나 읽지 못하면, 다른 감각으로 다시 확인한다. 북은 한 번의 명령이 아니라 동료에게 질문하는 도구가 됐다.

설화는 산문을 떠나기 전 증언첩의 사본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에 관한 기록을 혼자 고치지 않았다. 그가 한 실수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명령, 남은 가족이 원하는 공개 범위를 따로 표시했다. 연비는 그 사본의 복사본을 만들지 않았다. 먼저 읽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한 이름을 차례로 읽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침묵했다. 그 침묵도 장부에 ‘보류’라고 적혔다. 연비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 선택이 지워짐과 같지 않게, 그 사람의 의사를 기록했다.

새벽이 되자 빈 돌판에는 이름 대신 ‘여기서 멈춤’이라는 문장이 남았다. 묵단은 손끝으로 그 글씨를 따라 읽었다. 연비는 처음으로 북을 울리지 않고도 모두가 다음 행동을 알 수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신호를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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