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복원 엔지니어는 삭제 버튼을 늦춘다

2화: 복원률 82퍼센트의 빈칸
“이 계정은 누가 썼습니까?” 감사관 한성우가 물었다.
강지후는 화면 속 계정명을 보았다. KJH_FAMILY_ARCHIVE.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가족의 기억 파일을 공유하던 계정이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한 뒤 지후는 접근 권한을 끊고 저장 서버를 폐쇄했다. 그 안에는 병원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감각 기록이 있었다. 지후는 한 번도 다시 열지 않았다.
“비밀번호는 폐기했습니다.”
“기억 서버는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계정은 잠겼지만 접근 인증서가 살아 있어요.”
“그 인증서가 지금 부부의 기록에 접근할 수 있나요?”
“이미 접근했습니다.” 성우는 로그를 확대했다. “다만 파일을 내려받았는지, 장치에서 미리보기만 했는지는 아직 불명확합니다.”
지후는 사고 당사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기 전, 전문의 정하와 상의했다. “불확실한 접근 기록을 바로 말하면 두 사람의 불안을 키울 수 있어요.”
정하는 팔짱을 풀었다. “말하지 않으면 그들이 스스로 파일을 공유했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접근 흔적과 내용 유출 여부를 분리해서 설명해야 해요.”
성우는 단말을 닫았다. “법률팀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지후 씨가 직접 조사하면 안 돼요. 가족 계정이 관련됐으니까요.”
지후는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로그를 분석할 수 있었지만, 계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성우에게 원본 로그의 복사본을 넘기고, 자신은 사고 파일의 복원만 이어가기로 했다.
민석은 다음 세션에 혼자 왔다. 그는 눈가에 멍이 들었고, 손목 센서의 접착면은 붉게 부어 있었다. “지난번에 소희가 본 장면을 알려 주세요.”
“그 기록은 소희 씨 소유입니다.”
“부부인데도요?”
“네. 부부라고 해서 감각 기록을 함께 볼 권리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민석은 입술을 눌렀다. “그럼 저는 제 기록만 볼 수 있습니까?”
“본인의 기록을 다시 재생할 수 있습니다. 새로 확인된 시간 보정값도 함께 보여 드릴게요. 다만 지금은 복원률 82퍼센트 구간의 일부가 손상돼 있어요.”
“그 장면을 복원하면 누가 운전했는지 알 수 있나요?”
“가능성을 좁힐 수는 있어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민석은 세션 동의서에 서명했다. 지후는 장치의 시간 오차를 조정하고, 같은 기록을 다른 속도로 두 번 재생했다. 처음에는 와이퍼가 일정한 박자로 움직였다. 두 번째에는 충격 직전 소희의 손이 화면 가장자리를 스쳤다. 민석은 숨을 삼켰다.
“그 손을 잡았군요.” 지후가 말했다.
“제가 운전을 했으니 손을 잡았을 수도 있죠.”
“그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차가 흔들려 부딪힌 걸 수도 있어요.”
민석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는 운전을 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사고 다음 날부터 소희가 운전했다고 생각했어요. 보험 담당자가 계속 물었거든요. 누가 먼저 핸들을 잡았냐고.”
“그때부터 기억이 바뀐 것 같습니까?”
“기억이 바뀐 건지, 제가 말한 걸 믿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지후는 그 말을 기록하되 원인 판단은 하지 않았다. “복원 기술은 그 차이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기억은 질문과 반복에도 영향을 받아요.”
민석은 손목 패치를 떼려 했다. 지후가 손을 내밀었다. “지금 중단할까요?”
“아니요. 계속하죠.”
“중단해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알아요. 그래도 제가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아요.”
지후는 강요 없이 재생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소리가 먼저 나왔다. 라디오 음악 뒤로 소희의 목소리가 있었다. “지금은 가지 말자.” 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곧 방향 지시음이 울리고, 브레이크 페달이 밟히는 감각이 뒤따랐다. 충격은 그 다음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민석이 말했다.
“페달 신호는 확인되지만, 발의 주인은 판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뭐든 반씩만 말하는군요.”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는 게 더 위험합니다.”
민석은 화면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는 재생이 끝난 뒤에야 손을 내렸다. “이번엔 소희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본 것과 그녀가 본 건 다를 수 있어요.”
지후는 접근 권한을 다시 확인했다. 민석은 자신의 파일만 유지하고, 소희의 기록에 대한 요청은 철회했다. 그가 서명 창을 닫는 순간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는 화면에 남은 손의 프레임을 한참 바라봤다. “제가 그때 라디오 노래를 기억하는 건 맞아요. 소희가 싫어하던 노래였는데, 제가 운전할 때마다 틀었거든요.”
“그 기억이 파일에 있는 장면과 일치합니까?”
“노래는 같아요. 하지만 누가 틀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지후는 음원 파형을 불러왔다. 방송 신호에 섞인 교통 안내가 0.6초 늦게 저장돼 있었다. “라디오 수신기는 차 안에서 하나였고, 두 파일에 같은 잡음이 들어 있습니다. 두 기록이 같은 공간을 들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좌석 위치를 증명하진 않아요.”
“같은 노래를 들었다는 걸로는 아무것도 못 정하네요.”
“그렇지만 두 사람의 기록이 완전히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민석은 처음으로 어깨를 내려놓았다. 그는 침대 옆의 물컵을 잡으려다 손목이 아파 놓쳤다. 지후가 컵을 밀어 줬다. 민석은 고맙다는 말 대신 “소희도 물을 잘 못 마셔요. 사고 뒤로 목이 아프대요.”라고 했다.
민석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그는 병원에 온 뒤 소희가 물을 마실 때마다 컵을 건넸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런 행동도 간섭처럼 보일까 봐 손을 뻗지 못한다고 했다. 지후는 그 말을 복원 결과와 분리된 현재의 관찰로 적었다. 걱정을 하는 것과 실제로 묻는 건 다르지만, 오늘은 질문할 시간이 아니라고 민석은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직접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듣고 싶어 하지 않겠죠.”
“그건 소희 씨가 결정할 겁니다.”
민석은 잠시 입술을 깨물고 병상 호출기를 눌렀다. “정하 선생님께 상담 시간을 잡아 달라고 하겠습니다. 소희한테 사과하고 싶어도, 아직은 제 목소리를 듣기 싫을 수 있으니까요.”
지후는 그 요청을 복원 기록과 분리해 의료 상담 일정으로 전달했다. 민석은 자신이 기록을 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가 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지후는 그가 상담실 문 앞에서 돌아서기 전까지 다음 세션 예약을 묻지 않았다. 민석은 복도 끝에서 한 번 멈춰 병실 쪽을 돌아봤지만,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재활 상담 시간표를 받아 들고 손목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그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느라 걸음을 늦췄다.
“제가 뭔가 숨기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가 물었다.
“당신이 모르는 것을 숨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제 기억이 소희 씨를 다치게 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 가능성은 사고 조사와 대화로 확인해야 합니다. 복원 영상은 판결문이 아닙니다.”
세션 후 정하는 민석의 긴장을 점검했다. 그는 고통을 10점 만점에 7점이라고 답했다. 정하는 세션을 계속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했고, 민석은 다음 회차 예약을 미뤘다. 지후는 그 선택을 화면에 입력했다.
오후에는 소희가 와서 자신의 파일을 삭제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석 씨가 본 장면이 뭔지 몰라도, 이 기록이 남아 있는 한 누군가 열 수 있잖아요.”
“삭제 요청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이라 원본은 보존 명령에 묶여 있습니다. 치료용 복원 사본은 별도로 지울 수 있어요.”
“그럼 사본만 삭제해 주세요.”
지후는 삭제 확인 창을 열었다. 버튼 아래에 복원률 82퍼센트, 미확인 구간 18퍼센트가 표시됐다. 소희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제가 지우면 민석 씨의 기록도 달라지나요?”
“아니요. 서로 다른 파일입니다. 원본 보존 상태도 바뀌지 않습니다.”
“정말요?”
“확인 가능한 부분은 그렇습니다.”
소희는 눈을 감고 숨을 세었다. “삭제해 주세요.”
지후는 사본 삭제 절차를 실행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경고가 떴다. 파일의 18퍼센트가 삭제 대상이 아니라 동기화 오류 로그에 묶여 있었다. 두 사람의 기록이 서로 접촉한 시각을 계산하려면 그 조각이 필요했다.
“삭제가 끝났습니까?” 소희가 물었다.
“일부는 아직 처리되지 않았어요. 왜 멈췄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을 민석 씨가 볼 수 있나요?”
“아니요. 다만 사고 조사기관의 보존 요청 때문에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그 파일을 남기고 싶지 않아요.”
지후는 삭제 확인을 완료하지 않고 보류 상태로 저장했다. 지우기를 눌러도 보존 명령이 막는다면,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는 건 선택이 아니라 착각이었다.
성우가 복원실로 돌아와 새 로그를 보여 줬다. 계정이 두 파일을 연 시각과, 지후의 아버지 계정에 마지막으로 접속한 시각이 같았다. 전자는 사고 다음 날 새벽, 후자는 10년 전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이었다.
“가족 계정으로 접속한 장치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성우가 말했다. “지후 씨가 다니는 복원 센터 구형 서버예요.”
지후는 센터가 폐기한 장비 목록을 열었다. 그 서버는 작년 교체 때 분해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전원 기록은 어젯밤에도 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