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복원 엔지니어는 삭제 버튼을 늦춘다

3화: 삭제를 누르지 않은 손
구형 서버는 센터 지하 기록실에 있었다. 분해됐다는 보고와 달리 본체는 먼지 덮개 아래에서 낮은 열을 뿜었다. 강지후는 전원선을 뽑기 전에 성우와 함께 서버의 상태를 촬영했다. 정하는 환자 파일이 들어 있을 가능성을 걱정해 접근하지 말라고 했지만, 성우는 조사용 봉인 절차를 시작했다.
“안에 아버지 기록이 있으면 제가 볼 수 없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격리할 겁니다. 지후 씨는 환자 파일의 접속 흔적만 확인하세요.”
성우는 서버의 저장 장치를 분리해 증거 봉투에 넣었다. 잠금 화면에는 오래된 가족 계정이 떠 있었다. 누군가 사고 부부의 파일에 접속한 뒤에도 로그아웃하지 않은 채 남겨 둔 계정이었다.
지후는 서버를 직접 열지 않고 감사용 복제본에서 접속 로그만 읽었다. 로그에는 두 당사자의 파일을 한 번씩 미리보기한 흔적이 있었다. 다운로드 기록은 없었다. 접속 장치는 센터의 폐기 라벨이 붙은 단말이었다. 누가 이를 다시 연결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는 복제본에서 가족 계정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어린 시절 지후와 아버지가 함께 만든 계정이었다. 아버지가 장거리 병원 치료를 받을 때, 집에서 녹음한 음식 냄새와 거실 소리를 서로 보내려고 시작했다. 지후가 엔지니어가 된 뒤에는 그 계정을 기술 테스트에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감각 파일은 병실의 형광등 소리와 지후의 손을 잡았던 촉감만 담고 있었다.
“그 기억을 열지 않았다고 했죠?” 성우가 물었다.
“네. 계정 잠금만 확인하고 저장 장치에서 분리했습니다.”
“그런데 접근 인증서가 살아 있었어요.”
“제가 실수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실수 여부는 조사 결과로 남길 겁니다. 지금 당신이 기억하는 확신을 로그보다 앞세우지 않는 게 중요해요.”
지후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제 진술에도 ‘계정 폐기를 완료했다고 믿었다’고 쓰세요. ‘폐기했다’고 단정하지 말고요.”
그는 자신의 기억을 기록으로 확정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환자들에게 요구하던 주의가 자기 앞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계정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이 가족 파일을 직접 열 권리는 아니었다.
성우는 기기 봉인 절차를 진행했다. 지후는 손을 뒤로 모으고, 서버가 증거 봉투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봉투가 닫히는 순간 오래된 가족 계정의 로그인 표시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환자 파일의 임시 접속 제한 알림이 떴다.
“이제는 누가 다시 열 수 없겠죠?” 지후가 물었다.
“공동 승인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미 내려받은 게 있었는지는 조사해야 하고요.”
그 대답은 안심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남았는지 구분할 수 있었다.
성우가 물었다. “이 정도면 파일이 외부로 나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아니요. 다운로드 기록이 없다는 건 이 서버가 남긴 범위에서 없다는 뜻이에요.”
“그럼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말하죠?”
“확인된 사실만요. 두 파일이 열렸고, 외부 전송은 로그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
소희와 민석은 병원 상담실에서 함께 설명을 들었다. 두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 앉았지만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소희는 손목을 감싼 붕대를 만졌고, 민석은 무릎 위에서 손을 꼭 쥐었다.
“누가 열었는지는 모른다는 거죠?” 소희가 물었다.
성우가 답했다. “접속 계정은 확인했지만 실제 사용자는 아직 모릅니다.”
민석이 물었다. “그럼 누군가 제 기록을 봤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당신 기록뿐 아니라 두 분 기록이 모두 열렸습니다.”
소희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삭제 요청은요?”
지후는 두 사람의 파일을 섞어 말하지 않도록 문장을 골랐다. “치료용 복원 사본은 삭제를 진행했습니다. 다만 원본과 오류 로그는 사고 조사기관의 보존 요청이 있어 남아 있습니다. 오늘 확인한 접속 흔적 때문에, 사본 삭제가 외부 열람 가능성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소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제가 버튼을 눌러도 아무 소용이 없었네요.”
“소용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 사본을 더 이상 복원 세션에 쓰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다만 원본까지 지워지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싫다고 했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다시 설명드려야 합니다. 법률 상담을 통해 보존 범위를 다툴 수 있고, 그동안 원본의 접근은 감사관 승인으로 제한할 수 있어요.”
소희는 입술을 떨었다. “저는 기록을 지우고 싶은 게 아니라, 누가 제 기억을 자기 이야기로 가져갈까 봐 무서워요.”
민석은 처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당신 기록을 보려고 한 건 잘못이었어.”
“보려고 했다는 말은 지금도 사실이라고 생각해?”
“응. 내가 운전했다고 증명하고 싶었어. 그런데 내 기록도 내가 기억한 대로 보이지 않았어.”
소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민석은 그 침묵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정하는 두 사람이 지금 대화를 이어갈지 각자 선택하도록 했다. 민석은 상담을 더 받고 싶다고 했고, 소희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같은 복도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
지후는 삭제 확인 화면을 다시 열었다. 사본은 삭제 완료, 원본은 보존, 오류 로그는 별도 격리로 나뉘어 있었다. 그녀는 원본 파일의 소유자가 소희와 민석 각각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한쪽이 동의했다고 해서 다른 쪽 파일의 권한이 바뀌지 않았다.
그날 저녁 소희는 변호사와 통화한 뒤 복원실을 다시 찾아왔다. “원본을 지금 지우면 사고 조사에서 제가 불리해진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직접 보존 범위를 정할 수 있는 건 맞죠?”
“네. 원본의 모든 데이터와, 수사에 필요한 특정 구간만 남기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다만 어느 범위가 필요한지는 법률 대리인과 확인해야 해요.”
소희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사고 순간은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그 직전의 말다툼은…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 구간은 충격 직전이라 손상과 시간 오차가 가장 큽니다. 재생하면 기억이 더 선명해질 수도,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어요.”
“그럼 안 볼게요. 보존 범위만 정하고 싶어요.”
지후는 소희가 선택한 구간을 표시하되, 화면에서 내용을 미리 재생하지 않았다. 소희는 개인 기록으로는 그 구간을 보존하고, 사고 조사기관에는 현재 공유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녀는 마지막 확인에서 이름을 직접 입력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이번에는 삭제 버튼이 아니라 권한 범위를 고르는 버튼이었다.
“저도 제 파일을 보존하겠습니다.” 민석이 문가에서 말했다. 그는 혼자 들어와 소희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서로의 기록을 보지 않는 조건으로요.”
소희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의 선택을 따로 서명했다. 지후는 두 서명을 하나의 동의로 합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은 사고를 겪었어도, 기록을 남기는 이유와 두려움이 달랐다. 그 차이를 기록표에도 별도로 남겼다. 소희는 자기 파일을 지키기 위해 범위를 좁혔고, 민석은 더 이상의 열람을 멈추기 위해 접근권을 내려놓았다. 지후는 두 선택의 날짜도 각각 따로 기록했다. 한 줄로 묶지 않았다. 권한도 별개로 저장했다. 마지막 확인 시각을 남겼다. 지후는 화면을 닫았다.
성우가 경고했다. “지후 씨 가족 계정이 관련돼 있으니 삭제 결정에 관여하면 안 됩니다.”
“알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접근을 막고 이력을 남기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충분히 어렵습니다.”
그는 원본 접근을 두 사람과 감사관의 공동 승인으로 제한했다. 지후의 계정은 자동으로 제외했다. 변경 사항을 적용하려면 삭제 버튼 대신 보존 확인 버튼을 눌러야 했다. 소희가 원했던 것은 즉각적인 삭제였지만, 지금 누르는 삭제는 사고 조사 중인 원본을 없애려는 시도처럼 기록될 수 있었다.
지후는 손을 멈췄다. “이걸 누르면 제가 선택하는 건 보존이에요.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고 대신 결정하면 안 돼요.”
“오늘 이미 설명했잖아요.” 성우가 말했다.
“설명과 동의는 다릅니다. 법률 상담 뒤에 소희 씨가 결정하도록 기다리겠습니다.”
그녀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원본의 읽기 권한을 잠그고, 변경 이력을 서명해 봉인했다. 성우도 감사 서명을 추가했다. 파일은 남았지만 누구도 몰래 열 수 없게 됐다.
복원실을 나서려던 지후는 구형 서버가 있던 지하실로 돌아갔다. 서버 본체는 이미 증거 봉투 안에 있었지만, 벽면 전원 패널의 먼지에는 최근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자국은 키패드의 3과 7 위에 집중돼 있었다. 지후는 시설 관리 기록을 확인했다. 지하실 출입 권한을 가진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어젯밤 교대를 서지 않았다.
단말에 새로운 접속 알림이 떴다. 가족 계정의 인증서가 다시 사용됐다는 기록이었다. 위치는 지하실이 아니었다. 사고 부부가 입원한 병원, 소희의 병실에서 발생한 신호였다.
지후가 병실로 뛰어가자 침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소희의 태블릿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삭제되지 않은 오류 로그가 떠 있었고, 비가시 구간 아래에서 한 문장이 복원 중이었다.
‘차에 타기 전에 이미 운전자는 바뀌어 있었다.’
그 문장은 어느 쪽 파일에서 나온 것인지 아직 표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