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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복원 엔지니어는 삭제 버튼을 늦춘다1화

기억 복원 엔지니어는 삭제 버튼을 늦춘다

기억 복원 엔지니어는 삭제 버튼을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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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서로 다른 사고 영상

“제가 운전하고 있었어요.” 정민석은 침대에 누운 채 말했다. “소희는 조수석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 파일에는 제가 조수석에 있는 걸로 나오죠?”

강지후는 회복 장치의 밝기를 낮췄다. 벽면 화면에는 두 사람의 사고 직전 감각 기록이 나란히 떠 있었다. 민석의 왼쪽 시야에는 깨진 앞유리와 회색 도로가 잡혔고, 백소희의 오른쪽 감각 파일에는 검은 핸들과 남자의 손등이 보였다. 두 기록은 같은 교차로에서 시작해 같은 충격음으로 끝났지만 운전자의 위치가 서로 달랐다.

지후는 화면을 가리키지 않았다. “복원 영상은 카메라 영상이 아닙니다. 입력된 감각 기록을 재생한 결과예요. 화면 안에서 보인 장면이 곧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민석은 고개를 돌렸다. 목에 붙은 센서 패치가 피부를 당겼다. “그럼 제가 뭘 믿어야 하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나눠야 합니다.”

옆 병상에서 소희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웃음은 짧았고, 곧 입술이 굳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깁스가 있었다. 사고 때 깨진 유리가 손등을 길게 긁었다. “민석 씨는 늘 그런 식이에요. 자기가 기억하는 걸 증거로 만들죠.”

“당신이 운전했다고 내가 말했어?”

“당신은 사고 직후에도 내가 운전했다고 했어요.”

“그건 당신이 운전석으로 넘어와 있었으니까.”

지후는 두 사람의 말이 서로를 밀어내는 속도를 지켜봤다. 류정하 전문의가 문 옆에서 손을 들었다. “오늘은 사고 당시의 책임을 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회복 과정에서 기록을 확인하는 단계예요. 목소리를 높이면 세션을 중단할게요.”

민석은 입을 다물었지만, 손가락 끝이 침대 시트를 긁었다. 소희는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렸다. 그때 지후의 단말에 감사관 한성우의 메시지가 떴다. 사고 기록은 법률 기관의 요청으로 보존 중이며 복원 결과를 외부로 내보내기 전에 소유자 동의를 다시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지후는 첫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기록의 출처부터 설명했다. 민석의 센서 패치는 충격 직후 자동으로 감각 신호를 저장했다. 소희의 패치는 재활용 웨어러블 안경과 연결돼 있었다. 두 기기의 시계는 사고 당일 0.8초 차이로 어긋났다. 장치가 서로 다른 시간을 기록했다면 한 사람의 손이 다른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이 뒤집힐 수 있었다.

“0.8초면 운전자가 바뀔 수 있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좌석이 바뀌는 데는 더 걸립니다. 다만 충격 직전 손과 시야의 순서는 달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면 어느 쪽이 맞는지 복원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게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지후는 민석의 기록을 먼저 재생했다. 화면은 차 안이 아니라 민석의 감각에 가까웠다. 앞유리에 빗방울이 부딪혔다. 와이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손이 핸들 위에 올라갔고, 라디오에서 오래된 팝송이 들렸다. 신호등이 초록에서 황색으로 바뀌었다. 그 뒤 충격음이 나고, 화면이 흰색으로 번졌다.

민석은 숨을 들이켰다. “보셨죠? 제가 잡고 있었어요.”

지후는 재생을 멈췄다. “손이 보인 건 확인했습니다.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는 파일만으로 알 수 없어요.”

민석은 영상이 멈춘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손목시계가 있잖아요. 제 거예요.”

지후는 확대 대신 원본 해상도를 유지한 채 밝기만 조정했다. 시계의 둥근 테두리가 나타났다가 빗물 반사와 겹쳐 사라졌다. “프레임 안에 시계 형태가 있는 건 맞습니다. 다만 소유자를 식별할 세부 무늬는 남아 있지 않아요.”

“그 시계는 제가 소희에게 선물한 겁니다.”

옆 병상에서 소희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결혼기념일에 내게 준 시계야. 내가 차고 있었어.”

민석은 말을 멈췄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 물건이 아내의 것이었다. 지후는 그의 표정에서 기억을 고쳐 붙이는 순간을 보았다. 민석은 손목을 뒤집어 오래된 흉터를 감췄다.

“그럼 제가 소희 손을 본 거군요.”

“그렇게 결론 내릴 수는 없어요.” 지후는 화면을 축소했다. “시계를 선물받은 사람이 누구인지와, 화면 속 손목이 누구의 것인지는 다른 질문입니다.”

민석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알아요. 그냥… 하나라도 확실하면 좋겠어요.”

정하가 그의 침대 옆에 앉았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것도 회복의 일부예요. 오늘은 여기서 멈춰도 됩니다.”

“제가 멈추면 소희가 운전했다고 남을 겁니다.”

“아무 기록에도 그렇게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제가 남긴 문장도 그 점을 분명히 할 거예요.”

민석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당신 기록을 믿어 보죠. 적어도 오늘은.” 지후는 그 문장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그는 파일의 빈 장면을 대신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당사자의 말까지 각자의 기억으로 기록하는 편을 택했다. 민석은 그 기록을 읽고 서명했다. 서명 뒤에는 짧은 쉼표가 남았다. 그녀는 그 표시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 지후는 펜을 내려놓았다. 지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민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등 흉터가 제 거예요.”

“그 부분은 확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확대 과정에서 픽셀 정보가 더 선명해지는 건 아니에요.”

그녀는 손의 윤곽을 확대했다. 화면에 짧은 흉터가 나타났지만, 빛이 번져 가장자리가 흐렸다. 민석의 손등에도 오래된 상처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지후에게 보여 주려 팔을 들었다. 손목 센서가 당겨지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하가 바로 다가왔다. “통증이 올라왔어요. 손을 내리세요.”

민석은 팔을 낮췄다. “제가 확실히 기억합니다.”

“기억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복원 파일 하나로 사실을 확정하진 않겠습니다.” 지후는 단말에 ‘주관적 기억과 일치하나 독립 검증 불가’라고 기록했다.

소희는 자기 세션을 시작하기 전 동의 창을 읽었다. “민석 씨가 내 기록을 볼 수 있나요?”

“당신의 허락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민석 씨 파일을 당신에게 보여 줄 수도 없어요.”

“사고 조사관은요?”

“법적 요청이 있더라도 두 파일을 전부 넘기는 건 별도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오늘 세션은 치료 목적의 비공개 복원입니다.”

소희는 서명 창을 닫았다. “그럼 저는 제 기억만 볼게요. 민석 씨가 제 파일을 볼 수 있다는 조건이라면 취소하겠습니다.”

지후는 조건을 확인하고 민석의 접근 권한을 분리했다. 화면에 민석의 이름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소희는 그걸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지후는 그녀의 파일을 재생했다.

빗물이 창을 두드렸다. 소희의 시야에는 조수석 문 손잡이가 가까웠다. 라디오는 남자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있었고, 왼손은 화면 바깥으로 뻗어 있었다. 그 손의 손등에는 작은 흉터가 보였다. 소희는 갑자기 숨을 멈췄다.

“민석 씨 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조수석이었습니다.”

“왜 손을 잡고 있었죠?” 정하가 물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말다툼을 했어요. 저는 그만하라고 손을 뻗었고, 민석 씨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민석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건 사고 후에 한 일이지.”

정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지후는 화면을 멈추고 소희에게 확인했다. “지금 그 구간을 더 보고 싶으십니까?”

소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젖었지만 눈물을 닦지 않았다. “아니요. 충격 직전은 여기까지면 됩니다.”

지후는 세션을 종료했다. 그녀의 기록은 82퍼센트까지 복원됐다. 숫자는 읽을 수 있는 감각 데이터의 비율일 뿐, 기억이 맞을 확률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민석은 숫자를 듣자마자 말했다.

“82퍼센트면 충분하네요. 남은 18퍼센트가 저를 구해 줄 수도 있으니까.”

“남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군요.”

정하가 민석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자 그는 말을 삼켰다. 지후는 기기 연결을 끊고 두 기록을 각각 봉인했다. 세션이 끝났는데도 소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손목의 붕대를 만졌다.

“제가 운전석에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확인 가능한 데이터가 더 필요합니다.”

“그럼 기다리면 나오나요?”

“기다린다고 없는 기록이 생기진 않습니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갔다. 민석은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정하는 문이 닫힌 뒤 지후에게 물었다.

“두 사람의 파일이 충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범인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알아요. 그런데 한 군데가 이상해요.”

지후는 두 기기의 시간축을 나란히 겹쳤다. 충격음은 같은 시각에 들어왔지만, 소희의 파일에만 충격 0.8초 전의 무음 구간이 있었다. 그 무음의 앞뒤에서 두 사람의 호흡이 겹쳤다. 화면에는 빈 칸이 남아 있었다.

감사관 성우가 복원실로 들어왔다. “그 구간을 더 파면 안 됩니다. 사고 기록 원본에 외부 접근 흔적이 있습니다.”

“누가 접근했습니까?”

“아직 모릅니다. 다만 복원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두 파일을 동시에 열어 본 계정이 있어요.”

성우는 단말을 내밀었다. 접근 시각은 사고 다음 날 오전 2시 17분. 기록 장치의 사용자명에는 소희도 민석도 아닌, 강지후의 오래된 가족 계정이 표시돼 있었다.

그녀는 그 계정을 10년 전에 삭제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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