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화성 우편국의 마지막 지구행2화

화성 우편국의 마지막 지구행

화성 우편국의 마지막 지구행

AD
스폰서 광고

2화: 봉인 아래의 주소

도현은 봉투를 열지 않은 채 분류실을 통제했다.

소라는 보안위원회의 지시를 기다렸지만, 나리는 봉투가 오늘 날짜로 바뀌는 순간 이미 경로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발신자로 기록됐다고 해서 내용을 읽을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했다. 수신인도 발신인도 확인할 수 없었다. 봉투는 그대로 격리되었다.

에이든은 오래된 우편 릴레이의 정비 기록을 검색했다. 돔 제로가 폐쇄된 뒤에도 분류 코드는 지워지지 않았다. 첫 반란 당시 시민들이 지구로 편지를 보내려 했으나, 의회가 통신을 끊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편지는 반송 처리됐고, 이후 발송 목록에서 발신인 이름이 삭제됐다.

“반란은 폭동이 아니라 우편 검열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도현이 말했다.

“그건 기록이 아니라 소문입니다.” 소라가 답했다.

도현은 봉투의 압인 숫자를 해독해 구형 분류표와 대조했다. 숫자는 주소가 아니라 우편 선반의 칸 번호였다. 1세대 기록원 지하 보관소의 4번 선반. 폐쇄된 구역에 들어가지 않으면 편지의 원래 경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보안위원회는 우편국 직원의 출입을 승인하지 않았다. 소라는 명령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도현은 봉투를 마지막 지구행 컨테이너에 넣어 보내려면 발송인과 수신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봉투를 넘기지 않고, 우편국 소유 기록을 열람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나리는 자신이 돔 제로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가족 기록에 그 구역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할머니는 어린 시절 폐쇄 구역을 떠났고, 이름은 반송 목록에 남아 있었다. 나리는 그 사실을 우편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가족의 출신 때문에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다.

도현은 그 고백을 듣고도 봉투를 열자고 하지 않았다. “가족 기록을 확인하는 건 당신 선택이에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나리는 잠시 생각한 뒤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편지에 적힌 이유를 알고 싶었다. 소라는 우편국장으로서 봉투를 보존하는 책임을 지고 동행하기로 했다. 에이든은 옛 구역의 전력 지도를 가져왔다.

돔 제로로 이어지는 서비스 통로는 두 세대 동안 닫혀 있었다. 문 앞의 공기 압력은 다른 구역보다 낮았다. 에이든이 환기 장치를 켜자 먼지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 아래에는 발자국이 있었다. 한 사람의 발자국은 오래됐고, 다른 하나는 최근 것이었다.

“누군가 이미 들어갔어요.”

소라는 출입 기록을 확인했지만, 문은 지난 40년간 열린 적이 없었다. 에이든은 수동 손잡이에 새 기름이 묻은 걸 발견했다. 그들은 문을 열기 전에 산소 수치를 측정했다. 수치는 안전했지만, 통신은 약해졌다.

도현은 우편국 무전기를 켜 둔 채 먼저 들어갔다. 안쪽 통로에는 오래된 분류함이 쌓여 있었다. 일부 편지는 봉투째 벽에 못 박혀 있었다. 글씨는 읽을 수 없었지만, 수신인의 이름은 현재 살아 있는 시민의 가족과 연결돼 있었다.

4번 선반에는 봉투 하나가 반쯤 타 있었다. 종이에는 발신자 나리, 수신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분류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리는 놀라지 않고, 그 말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했다.

에이든은 바닥에서 오래된 릴레이 모듈을 발견했다. 모듈은 꺼져 있었지만, 안쪽에 새 데이터가 쌓여 있었다. 그는 전원을 연결하지 말라고 했다. 모듈을 켜면 자동으로 지구행 릴레이에 접속하고, 봉인된 편지들이 한꺼번에 발송될 수 있었다.

그때 통로 끝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보안위원회 직원이 그들을 따라 들어온 줄 알았지만, 출입문 로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 번 두드린 뒤 목소리가 들렸다.

“편지를 보내지 마.”

소라는 목소리를 알아봤다. 40년 전 반란을 주도한 초대 우편국장의 음성이었다.

소라는 음성이 기록된 장치를 보존하려고 통로 벽면의 구형 스피커를 분리했다. 그 과정에서 전원이 다시 들어오면 저장 데이터가 덮어써질 수 있었다. 에이든은 배터리를 먼저 분리하고, 스피커의 뒷면에 붙은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는 1세대 우편국장이 쓰던 개인 호출 부호와 같았다.

“이 장치가 정말 그 사람의 목소리라면, 누가 저장했죠?”

“기록에는 제작자와 저장자가 따로 남아 있어요.” 도현이 말했다.

그들은 스피커를 열지 않고 외부 연결선을 조사했다. 선은 돔 제로의 4번 분류 선반과 연결돼 있었고, 통신망이 끊긴 뒤에도 내부 전원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에이든은 선을 따라가며 어느 지점에서 외부 전력이 끊기는지 확인했다. 벽 속 배선은 폐쇄 구역 끝까지 이어졌다.

나리는 자신의 이름이 쓰인 편지를 다시 보았다. “발신 날짜보다 제가 늦게 태어났다면, 누군가 미래에 제 이름을 쓸 수는 있어요?”

“이름을 쓸 수는 있어도 발송 시각을 증명할 수는 없어요.” 소라가 말했다.

도현은 봉투의 우표 자국을 확대했다. 우표의 인쇄 도안은 1세대 당시의 것이었지만, 접착제 성분은 현대 화성 우편국에서 쓰는 것과 가까웠다. 누군가 오래된 봉투를 재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80년 전 발송 기록도 조작일 수 있었다.

“원본을 열어야 진짜 발신자를 알 수 있겠네요.” 나리가 말했다.

“열면 봉인을 훼손합니다. 수신인을 찾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해요.”

나리는 주소를 찾는 일을 계속 돕겠다고 했다. 도현은 그 선택을 기록하고, 봉투를 우편국장 금고에 보관했다. 소라는 금고의 이중 열쇠 중 하나를 나리에게 맡기지 않았다. 나리가 발신자로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접근 권한을 줄 수는 없었다.

문 앞의 보안 인력이 다시 출입을 요구했다. 소라는 서류에 서명하고 출입을 허용했지만, 봉투와 릴레이 모듈은 우편국의 관할이라고 통보했다. 보안위원회 직원은 우편국을 봉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라는 봉쇄 명령이 내려오더라도 수신인 확인과 우편 중립 원칙을 먼저 지키겠다고 했다.

그녀는 과거 반란 때도 같은 원칙을 지키려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당시 우편국은 지구행 편지를 멈췄고, 그 결정으로 누군가의 생존 소식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안은 그 편지를 받지 못한 가족과 연결돼 있었다.

초대 우편국장의 음성은 스피커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에이든은 저장 장치의 파일 목록을 확인했다. 음성 파일은 세 개로 나뉘어 있었고, 각 파일은 반란 전후의 다른 날짜에 작성됐다. 파일 자체의 생성 시각은 편집된 흔적이 있었지만, 전원 사용 패턴은 실제 저장 장치의 작동 시간과 맞았다.

“원본을 조작했을 수도 있지만, 메시지는 당시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소라는 그 말만으로 음성을 신뢰하지 않았다. 초대 우편국장은 반란 당시 검열을 명령했다는 기록도 있었고, 편지를 몰래 보냈다는 증언도 있었다. 한 사람의 음성은 역사를 확정하지 못했다.

문 너머에서 보안위원회 직원이 봉인 영장을 읽었다. 그들은 릴레이 모듈과 편지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소라는 우편국의 공식 인수 기록 없이 물건을 내줄 수 없다고 요구했다. 직원은 영장을 보여 줬지만, 편지의 수취인란은 비어 있었다. 도현은 수신인 확인 전까지 압수 대상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는 우편국의 기록물입니다. 내용은 열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검열 여부도 모른다는 겁니까?”

“우편 중립은 발신인의 내용을 검열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지금은 발신인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보안위원회 직원은 명령을 집행하려 했다. 소라는 봉인 테이프를 들고 문 앞에 섰다. 도현은 봉투를 금고에 넣지 않고, 수신인 확인 절차가 시작됐다는 임시 보존표를 붙였다.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편물의 상태를 바꾸지 않고 이의를 공식 기록에 남기는 일이었다.

나리는 발신인으로 적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해 반송 통지서를 열람하겠다고 했다. 소라는 그 요청이 본인 확인만으로 충분한지 검토했다. 나리는 자기 신분증과 우편국 근무 기록을 제출했지만, 발신일이 40년 전인 문서의 당사자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름만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가족 기록을 확인하는 것까지예요.”

보안위원회 직원은 편지를 가져가지 않기로 했지만, 우편국의 지구행 발송 권한을 정지했다. 수송선까지 시간이 줄었다. 에이든은 릴레이 모듈의 복사본을 꺼내 별도 보관하고, 원본 장치는 봉인했다.

통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폐쇄 구역의 조명이 꺼졌다. 도현은 앞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다. 불빛이 닿은 바닥에는 편지 봉투와 똑같은 우표 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군가 여기서 편지를 여러 번 보냈거나, 받아 본 흔적이었다.

나리는 그 자국 앞에서 멈췄다. “여기에 할머니가 왔을 수도 있어요.”

도현은 그녀에게 바닥을 촬영해도 되는지 물었다. 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든은 위치를 좌표로 저장했다. 사람의 기억은 기록을 보충할 수 있지만, 우편 경로를 대신 증명하지는 못했다.
도현은 집으로 연락해 어머니에게 주소 기록을 더 확인해도 되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외조부의 편지를 열지 않은 채 보관 중이라고 했다. 도현은 원본을 보내 달라고 하지 않고, 봉투 겉면의 날짜와 주소만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개인정보를 덜 드러내면서도 수취인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리는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더 있을 수 있고, 기록 조회만으로 발신인을 확정할 수 없었다. 도현은 그 요구를 수신인 확인서에 적었다. 이름은 단서였지만 권한은 아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