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형사의 마지막 목격자

4화: 시계가 남긴 거짓말
검은 우산 손잡이가 컨테이너 문에 부딪혔다.
서진혁은 권총을 꺼내며 문 왼쪽에 붙었다. 문틈으로 눅눅한 종이 냄새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내밀려던 순간 비에 잠긴 계단 위에서 총구가 번쩍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한도윤은 무전으로 하치장 진입로에 지원 인력과 구급차를 요청했다. 그가 반대편에 붙어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같이 들어간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밀자 우산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손전등 빛이 안쪽 의자에 닿았다.
오명수가 앉아 있었다.
손목은 의자 등받이 뒤로 묶여 있었고 턱은 가슴에 붙어 있었다. 진혁이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도윤이 뒤편을 확인하는 동안 그는 오명수의 목에 손을 댔다.
피부가 차가웠다. 옷깃 위로 끈에 눌린 가느다란 자국이 보였다. 고개와 어깨는 기댄 자세로 굳어 있었다.
“오명수 씨.”
목소리를 높여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뒤따라 도착한 구급대원이 그를 비켜 세웠다. 상태를 확인한 대원이 고개를 저었다. 진혁은 의자 뒤에 묶인 손을 봤다. 손톱 밑에 회색 도료가 끼어 있었다. 손이 닿았을 등받이는 여러 군데 벗겨져 있었다.
도윤이 무전으로 사망자 발견을 알렸다. 지원 인력의 발소리가 컨테이너 밖으로 흩어졌다.
진혁은 자기 시계를 내려다봤다.
오후 두 시 이십이 분. 초침이 다음 눈금으로 넘어갔다.
밤까지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오명수를 찾아내기만 하면 남은 시간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몇 시간이나 남았다고 셈하는 동안 이 손은 의자 등받이를 긁고 있었다.
“진혁아. 밑에.”
의자 아래에 금속 시곗줄이 보였다. 진혁은 손을 뻗었다가 거뒀다. 감식 요원이 자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테두리를 가로지른 흰 흠집. 여섯 시 사십 분에서 멎은 바늘.
병원 침대 옆에서 봤던 시계가 떠올랐다. 사무실의 벽시계도 같은 시각을 가리켰다. 진혁은 날짜창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오늘은 십오 일이었다.
“시각하고 날짜창까지 나오게 찍어 주세요.”
도윤이 진혁의 얼굴을 봤다.
“뭘 본 건데?”
“사무실 벽시계도 여섯 시 사십 분이었어.”
도윤이 수거 봉투에 적히는 번호를 확인했다. 진혁은 거기에 자신이 기억하는 시계라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아직은 이곳에서 나온 물건 하나였다.
비가 컨테이너 지붕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도윤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실종 신고를 한 후원회 직원에게 추가 자료를 요청해 둔 참이었다. 전송 목록에는 오명수의 번호로 오늘 오전 일곱 시 삼 분 도착했다는 영상이 있었다.
영상 위에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어젯밤 아홉 시에도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약속을 어긴 건 내가 아닙니다.
“직원이 자료 인계하러 갔다가 허탕 쳤대. 연락이 다시 와서 신고 취소할까 하다가 목소리부터 듣자고 전화했는데 안 받았고.”
영상 속 오명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화면 구석의 표시는 10월 14일 오후 아홉 시 십 분이었다. 그가 팔을 움직일 때 손목에서 빛이 튀었다.
진혁은 재생을 멈췄다.
흰 흠집이 있는 금속 테두리. 날짜창에 박힌 16. 두 바늘이 벌어진 각도도 의자 밑 시계와 같았다.
“넘겨 봐.”
도윤이 재생 막대를 밀었다. 오명수가 책상 위 종이를 옮기는 동안에도 초침은 제자리에 있었다.
“어젯밤 영상이 아닐 수 있어.”
도윤이 화면을 껐다.
“시계는 어제부터 고장 났을 수도 있어. 날짜 틀렸다고 영상까지 가짜가 되냐?”
진혁은 봉투 안의 시계와 꺼진 휴대전화를 번갈아 봤다. 자신에게는 그 시각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도윤에게는 고장 난 물건 하나가 전부였다.
“맞아. 원본을 보자.”
사무실에 남아 있는 감식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송받은 영상과 시계 사진을 보내고 녹화기에서 그 장면의 앞뒤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화면에 찍힌 시각 말고 이어지는 부분을 봐 주세요. 누가 만졌는지도.”
기다리는 동안 진혁은 컨테이너 뒤를 살폈다. 물웅덩이 옆 흙바닥에 가느다란 타이어 자국이 이어졌다. 지원 경찰관이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했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시각을 바꾼 구간이 있습니다. 오늘 여섯 시 오십일 분에서 어젯밤 아홉 시 십 분으로요.”
곧 원본 일부가 도착했다. 화면의 숫자가 뛰는 동안 오명수는 같은 종이를 접고 있었다. 그의 손도 몸도 중간에 끊기지 않았다.
“그 뒤에 두 분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장면까지 이어집니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연속 녹화예요. 조작하는 사람은 카메라에 안 잡혔습니다.”
진혁은 화면을 도윤 쪽으로 돌렸다. 두 사람이 비어 있는 사무실 문을 여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오늘 자신이 한 행동이었다.
오명수의 수요일 밤은 목요일 아침에 만들어져 있었다.
“어젯밤에 어디 있었는지부터 다시 찾아야겠네.”
도윤이 직원에게 보낼 질문을 적다가 멈췄다.
“본인이 만든 걸까?”
영상 속 오명수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책상 끝에 놓았다. 그 뒤로는 카메라 바깥을 보고 있었다.
“모르지. 저 밖에 누가 있었는지도.”
진혁은 녹화기와 원본 보존을 당부했다. 날짜를 바꾼 사람과 오명수의 손목을 묶은 사람이 같은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해온대병원 기록 담당 창구 앞에서 윤서린은 서류를 고쳐 쥐었다.
의무기록 담당자가 신청서를 확인하고 접수증을 내밀었다.
“이송자 명단은 해당 자료부터 찾아야 해요. 보존 요청은 접수됐습니다.”
서린은 기다리는 의자로 돌아갔다. 보안 요원도 두 자리 건너에 앉았다. 그녀는 후원팀이 보내 준 지원 내역서 사본을 무릎에 펼쳤다. 오래된 종이 아래쪽에 운반 물품을 확인한 사람의 서명이 남아 있었다.
옆에는 원무과에서 받아 온 오늘의 봉투 수령대장 사본을 놓았다. 운송인 칸에 같은 이름이 있었다. 마지막 글자의 받침을 길게 끌어 쓰는 모양도 같았다.
임재문.
휴대전화가 울렸다. 진혁이었다. 약속한 삼십 분이 지나기 전이었다.
“오명수 씨를 찾았습니다.”
서린은 사본을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어느 병원으로 가세요?”
대답이 늦었다.
“살리지 못했습니다.”
서린은 접던 자리를 엄지로 눌렀다. 종이 모서리가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전화 너머에서 비가 금속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제가 기록을 조금만 일찍 찾았으면요?”
“그건 모릅니다.”
그녀는 접수증에 찍힌 시각을 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늦게 찍힌 숫자 같았는데 이제는 얼마나 늦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알리바이 영상도 조작돼 있었습니다. 본인이 한 건지 누가 시킨 건지는 아직 모릅니다.”
서린은 오명수가 기록을 지키려 했다고 말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가 남긴 음성메시지만으로 그렇게 믿었다. 직접 물어볼 기회는 사라져 있었다.
종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보안 요원이 일어나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서린은 고개를 젓고 구겨진 사본을 폈다.
“임재문이라는 이름을 확인했어요. 제가 기억하던 지원 내역서의 물품 인수 담당자입니다. 오늘 봉투를 가져온 사람도 수령대장에 그 이름으로 서명했어요.”
“같은 사람입니까?”
“서명이 닮았습니다. 얼굴은 헬멧 때문에 보지 못했어요. 연락처를 보내 드릴게요.”
“이송자 이름도 확인됐습니까?”
“아직요. 그쪽은 원본을 기다리고 있어요.”
진혁은 서류 사진을 도윤에게도 보내 달라고 했다. 서린은 통화를 끝낸 뒤 이름과 연락처가 잘리지 않게 두 장을 각각 촬영했다.
오명수의 이름 옆에는 생존 여부를 확인하면 표시하려던 빈칸이 있었다. 그녀는 볼펜 끝을 그 위에 댔다가 떼었다. 기록 담당 창구에서 서류함 여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토바이 찾았습니다.”
진혁이 무전을 들었다. 컨테이너 뒤로 이어진 타이어 자국은 낡은 계근실에서 끝났다. 녹슨 차량 저울 옆에 배달용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번호판이 병원 영상과 일치했다.
도윤은 서린이 보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지자 계근실 안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좁은 유리창에는 검은 비닐이 붙어 있었다.
“경찰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진동이 멎었다. 대답은 없었다.
진혁은 문 아래 틈을 비췄다. 뒤집힌 의자 다리와 검은 신발 끝이 보였다. 그는 문손잡이를 당겼다. 문은 잠겨 있었다.
“사람 있어. 문 열어.”
지원 경찰관이 가져온 도구로 문을 벌렸다. 도윤이 먼저 안을 비췄고 진혁이 뒤따랐다.
남자가 책상 아래 옆으로 누워 있었다.
배달 조끼와 장갑을 그대로 착용한 상태였다. 벗겨진 헬멧의 턱 부분에는 파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병원 영상 속 기사의 헬멧에도 같은 자리가 파랬다.
진혁이 무릎을 꿇었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목에는 오명수의 것과 닮은 가는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도윤이 구급대원을 급히 불렀다.
진혁은 자리를 내주고 문 쪽으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대원이 살피는 손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원이 얼굴을 들자 그는 그 입이 열리기 전에 고개를 돌렸다.
무전에서 두 번째 사망자 발견 보고가 흘러나왔다.
도윤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남자의 조끼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감식 요원이 위치를 촬영하고 꺼낸 전화 화면에 도윤의 번호가 떠 있었다.
“이 번호로 등록된 사람도 확인해 줘.”
도윤이 수첩에 임재문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옆에는 물음표를 남겼다.
진혁은 남자의 손을 봤다. 장갑 끝에 작은 봉투의 접착지가 붙어 있었다. 저 손이 원무과 접수대에 봉투를 놓았을까. 서린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까.
그는 오토바이 번호를 알아낸 순간부터 이 사람을 오명수에게 가는 길로만 생각했다. 찾아서 누구에게 봉투를 받았는지 물으면 된다고 여겼다.
“이 사람도 알고 있었어?”
도윤의 목소리에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죽을 거라는 거. 이것도 네가 아는 일이었냐고.”
진혁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비에 잠긴 지하에도 병원 관찰실에도 이 얼굴은 없었다. 입을 열기 전에 떠올릴 수 있는 대답을 모두 지웠다.
“아니.”
오후 두 시 사십구 분.
두 번째 시신 앞에서도 진혁의 초침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