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형사의 마지막 목격자

3화: 유일한 증인
골목을 울리던 바람이 멎었을 때 서진혁은 이미 달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한도윤이 문을 닫으며 소리쳤지만 발걸음은 늦춰지지 않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그어진 흰 원은 시야에서 멀어졌어도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검은 우산의 남자는 언제나 한 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야! 차 타!”
도윤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조수석 문을 밀어 열었다. 진혁은 몸을 던지듯 차에 올라탔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병원 보안팀에 긴급 호출 넣었어.” 도윤이 운전대를 꺾으며 말했다. “윤 간호사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너 진짜 감당 못 한다.”
“문자가 온 지 삼 분 지났어.”
진혁은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했다. ‘누가 제 이름을 부릅니다.’ 짧은 문장 끝에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신호음만 공허하게 이어졌다.
차량은 재개발 구역 진입로를 가로질러 해온대병원 앞 사거리에 멈춰 섰다.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진혁은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날카로운 소독약 냄새가 폐를 찔렀다. 대기실 의자에는 환자들이 웅크려 있었고 간호사실 앞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진혁은 처치실과 원무과 사이를 빠르게 훑었다.
그때 처치실 구석 칸막이 커튼이 젖혀졌다.
윤서린이 차트를 든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묶어 올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에 흐트러져 있었지만 표정은 서늘할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문가에 멈춰 선 진혁과 마주쳤다.
진혁은 숨을 몰아쉬며 다가갔다. “윤 간호사.”
“서 경위님.”
서린은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오른손 검지에 난 화상 흉터가 파란 장갑 너머로 살짝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괜찮습니까?”
“네. 큰일은 없었습니다.” 서린은 가운 주머니에서 접힌 노란색 서류봉투를 꺼내 들었다. “저를 부른 사람은 퀵 배달 기사였어요. 오명수 씨 후원회 직인이 찍힌 봉투를 제 이름 앞으로 전달하러 왔더군요.”
뒤이어 뛰어 들어온 도윤이 거친 숨을 내쉬며 봉투를 낚아채듯 확인했다. “기사는 어디 갔습니까?”
“원무과 접수대에 봉투만 던져 두고 바로 나갔습니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으니 이미 주차장을 빠져나갔을 거예요.”
도윤이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모서리가 불에 그을린 명함 한 장과 짧은 메모지였다. 명함에는 오명수의 직함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붉은색 펜으로 거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는 순서가 다릅니다.’
도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장난치는 건가?”
진혁은 말없이 명함을 응시했다. ‘두 번째’. 그것은 오명수가 병원에 오지 않고 사무실에서 납치된 상황을 가리키고 있었다. 범인은 단순히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개입해 흐름을 바꾸려 한다는 사실을 시험하듯 즐기고 있었다.
“도윤아.” 진혁이 낮게 말했다. “병원 방범 카메라 영상 확보해. 봉투를 전달한 오토바이 번호판부터 따야 해.”
도윤은 명함과 진혁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 보안실 다녀올 테니까 넌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도윤의 무거운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멀어졌다.
로비에 환자들의 웅성거림이 다시 차올랐다. 진혁은 서린의 팔꿈치를 가볍게 가리키며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철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음이 차단되었다. 서늘한 계단실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 울렸다.
서린이 먼저 벽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이제 설명해 주시죠.”
“기억이 어디까지 났습니까.”
진혁의 질문에 서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반대편 팔을 감싸 쥐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비가 몹시 내리던 밤이었어요.”
서린의 목소리가 낮게 계단실을 울렸다.
“폐쇄 상가 지하 일 층. 계단 바닥에는 흙탕물이 고여 있었고 곰팡이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오명수 씨가 바닥에 쓰러져 목을 부여잡고 있었어요.”
그녀는 눈을 감지 않은 채 진혁의 가슴팍을 응시했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습니다. 형사님이 벽으로 쓰러지며 왼쪽 옆구리를 감싸 쥐었어요. 셔츠 사이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상처를 누르자 형사님은 도망치라고 했어요.”
진혁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날 밤 자신이 느꼈던 타는 듯한 통증이 다시금 옆구리를 스치는 듯했다.
“제가 환자를 두고 못 간다고 하자 형사님은 피 묻은 손으로 제 손을 덮었습니다.” 서린의 시선이 진혁의 눈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시계 초침이 움직였습니다. 여섯 시 사십 분. 그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어요.”
서린은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공포와 경이 그리고 날 선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건 꿈이나 착각이 아니에요. 형사님은 실제로 거기서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멀쩡히 살아서 목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어요.”
“맞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나도 원인은 모릅니다.” 진혁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다만 내가 죽거나 마지막 피해자가 목숨을 잃으면 시간이 되돌아옵니다. 목요일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으로.”
계단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법정에 제출할 수도 없고 동료 경찰에게 털어놓았다가는 정신감정을 받게 될 고백이었다.
그러나 서린은 비웃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이미 그 죽음의 순간을 온몸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그 기억을 되찾은 이유는 뭡니까? 왜 형사님이 건넨 문장을 듣고서야 떠오른 거죠?”
“그것도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뿐입니다.” 진혁이 서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반복 속에서 나와 같은 기억을 품은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서린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유일한 목격자라는 말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 남자는… 검은 우산을 든 남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직접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수법을 바꿨어요.”
진혁은 주머니에서 오명수 사무실 서랍에서 가져온 메모 조각을 꺼냈다. 찢겨 나간 백야원 생존자 확인표의 상단부였다.
“원래대로라면 오명수는 오늘 새벽 병원에 실려 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납치됐습니다. 범인이 우리의 개입을 눈치채고 일정을 앞당긴 겁니다.”
서린은 찢긴 서류 사본을 넘겨받아 유심히 살폈다. 종이 위에는 검은 펜으로 그어진 줄들과 희미한 볼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명수 씨는 돈 때문에 움직인 게 아니에요.” 서린이 말했다. “화재 당시 시설에 남아 있던 생존자들의 기록을 지키려 한 겁니다.”
“백야원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진혁의 물음에 서린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오른손 검지의 화상 흉터를 엄지로 문질렀다.
“나중에요. 지금은 오명수 씨부터 찾아야 합니다. 두 번째 순서가 다르다는 건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도윤이 계단실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손에는 보안실에서 출력한 사진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오토바이 찾았다. 렌트한 번호판인데 방금 재개발 구역 북쪽 폐자재 하치장 진입로 CCTV에 찍혔어.”
진혁은 사진을 낚아채듯 확인했다. 헬멧을 깊게 눌러쓴 배달원의 체격은 보통이었으나 뒤편 적재함에 실린 검은 가방이 눈에 띄었다.
“북쪽 폐자재 하치장?”
“거기 십 년 전부터 방치된 창고 단지잖아.” 도윤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오명수 사무실 감식반한테서도 연락 왔는데 현장에서 나온 혈흔이 오명수 본인 게 맞대. 강제로 끌려간 정황이 확실해.”
도윤은 서린과 진혁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긴장감을 눈치챈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너희 둘 아까부터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냐? 서 경위 너 진짜 뭐 알고 있는 거 맞지?”
“가면서 설명할게.” 진혁이 계단을 내려가려 하자 도윤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장난치지 마. 백야원이 도대체 왜 나와? 칠 년 전에 끝난 사건이야. 상부에서도 건드리지 말라고 못 박았던 건데 네가 왜 갑자기 오명수랑 백야원에 목을 매냐고!”
도윤의 목소리가 계단실 벽을 타고 날카롭게 메아리쳤다.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의심을 넘어선 짙은 불안과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진혁은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았다. 도윤 역시 과거의 화재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재식 대장의 지시로 서류를 파기했던 그 기억이 도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도윤아.” 진혁이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우리가 놓친 게 있어. 그게 지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거야.”
도윤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이번 일 끝나면 전부 다 털어놔라.”
진혁은 돌아서서 서린을 보았다.
“윤 간호사는 병원에 남으십시오. 원내 보안 요원들에게 요청해서 동행하게 하겠습니다.”
“아니요.” 서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명수 씨가 남긴 서류에서 찢겨 나간 부분 제가 기억합니다.”
진혁과 도윤의 시선이 동시에 서린에게 쏠렸다.
“후원회에서 병원에 제출했던 과거 지원 내역서 원본을 제가 정리한 적이 있어요. 찢겨 나간 자리에 있던 생존자 분류 번호와 특정 관리자 서명이 일치합니다.”
서린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그 기록을 대조하려면 병원 의무기록 서버에서 백야원 출신 이송자 명단을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전산 조회를 마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서린은 차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정리하고 있었다. 위험에서 도망치는 대신 자신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도구를 쥐고 사건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태도였다.
진혁은 잠시 그녀의 눈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화는 삼십 분 간격으로 합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끊기면 즉시 자리를 피하십시오.”
“약속하죠.” 서린이 엷게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리고 서 경위님.”
“네.”
“이번에는 죽지 마세요.”
그 짧은 한마디가 진혁의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찔렀다. 그것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같은 지옥을 목격한 유일한 동반자가 건네는 절박한 명령이었다.
“알겠습니다.”
재개발 구역 북측으로 향하는 순찰차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유리창 밖으로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보다 이른 먹구름이었다. 첫 번째 시간대에서는 자정이 넘어서야 내리던 비가 이번에는 낮부터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시간의 톱니바퀴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오명수가 왜 폐자재 하치장으로 끌려갔을까.” 조수석의 도윤이 지도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거긴 사방이 막힌 막다른 길인데.”
“그곳이 약속 장소였을 겁니다.” 진혁이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오명수는 도망치려던 게 아니라 무언가를 넘겨주고 대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거래할 생각이 없었던 거죠.”
진혁은 계기판 옆에 놓아둔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두 시 십오 분.
초침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범인이 파놓은 함정보다 한 걸음 앞서야 했다.
차가 덜컹거리며 낡은 철제 펜스를 통과했다. 빗방울 하나가 앞 유리에 툭 떨어지며 둥근 자국을 남겼다.
폐자재 하치장 한가운데 녹슨 컨테이너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어둠이 웅크린 그 문틈 사이로 낯익은 검은 우산의 손잡이가 비스듬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