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없는 노조 회계사

2화: 이름 없는 영수증
기태는 공장 뒤편의 오래된 여인숙으로 세라를 데려갔다. 파업 당시 조합원들이 묵었던 곳이었다. 주인은 낡은 장부를 꺼내며 “박 위원장이 사람을 데려올 때마다 현금으로 방값을 냈다”고 했다. 방은 하루에 4만 원, 추가 매트는 5천 원이었다. 이름 대신 조합원 번호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영수증은 왜 안 줬습니까?” 세라가 물었다.
“받아 갔어요. 봉투에 몇 장씩 담아 줬죠. 기태 씨가 그걸 모으기 어렵다고 했고.”
기태가 고개를 숙였다. “숙소 주인이 현금 할인해 준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영수증도 일부만 받았어요.”
“현금 할인은 영수증을 안 받는 이유가 안 됩니다.”
“그때는 방부터 구해야 했어. 조합원들이 길에서 자고 있었어.”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숙박 날짜와 방 수를 장부에서 확인하고, 총액을 계산했다. 3백2십만 원. 수첩에 적힌 금액보다 2십만 원 적었다. 주인은 파업이 끝난 뒤 남은 돈을 돌려줬다고 기억했다. 반환 영수증은 없었다.
여인숙에서 나오자 기태는 담배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영수증 없는 돈을 내가 챙긴 것처럼 보이겠지.”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확인하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이런 일 없었겠지.”
“그건 총회에서 판단할 일이에요. 제가 장부에 사실과 추측을 나눠 쓰겠습니다.”
세라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주인은 지난번보다 더 오래된 주문 수첩을 찾아왔다. 파업 첫 주에 도시락을 63개 납품했고, 둘째 주에는 41개를 보냈다. 카드 결제는 2백10만 원, 현금은 1백80만 원으로 적혀 있었다. 수첩의 숫자는 기태가 적은 금액과 일부 맞았다. 그러나 주문 수량을 누가 받았는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조합원이 직접 와서 식판 들고 갔어요. 다들 회사 눈치 봐서 이름 안 쓰겠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말했다.
세라는 주문 날짜와 교대조를 대조했다. 주간조는 대부분 집에 돌아가 식사를 했고, 야간조는 숙소에 머물렀다. 야간조 지원액의 일부는 경자가 있던 포장라인과 겹쳤다. 세라는 자기 어머니가 받은 돈이 얼마인지 아직 모른다.
그녀는 노조 사무실로 돌아와 정문식과 대화를 잡았다. 문식은 파업 동안 숙소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동료들에게 식비를 빌려 줬다. “나는 기금에서 돈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경자 씨는 받았다는 거예요?”
“아직 확인 중이에요. 이름이 아니라 작업조 기록만 있어요.”
“회계 담당 어머니니까 먼저 챙긴 거 아니에요?”
세라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 의심도 총회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조사하지 않고, 어머니도 다른 조합원과 같은 양식으로 내역을 제출하게 하겠습니다.”
문식은 세라의 결정을 듣고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결과를 누가 믿어요?”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조합원이 확인해야죠.”
“그걸 믿을 사람이 없으면?”
세라는 답을 찾지 못했다. 회계는 신뢰를 대신 만들어 주지 않았다. 다만 의심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기태가 사무실에 들어와 영수증 봉투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는 총회에서 지출 내역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제가 결정한 겁니다. 혼란한 때였고, 사람들부터 먹여야 했습니다. 승인 없이 돈을 쓴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문식은 “그럼 지부장 자리도 내려놓으세요”라고 했다.
기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조합원들이 판단할 일입니다.”
세라는 봉투를 열어 영수증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숙소 영수증 중 5장은 주소와 금액이 맞았고, 나머지는 카드 결제 내역만 남았다. 식비는 주문 수첩과 은행 출금 기록을 대조해 3백90만 원이 확인됐다. 현금 8백만 원에서 나머지 2백90만 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자는 퇴근 뒤 노조 사무실에 왔다. 그녀는 급여명세서와 출근기록을 들고 있었다. “야간수당이 6개월 동안 안 들어왔어요. 그때는 내가 잘못 계산한 줄 알았어.”
세라는 어머니를 다른 상담자에게 연결했다. 어머니의 임금 청구를 직접 조사하면 회계 문제와 이해충돌이 생길 수 있었다. 경자는 동료 상담자에게 자신의 근무 기록을 설명했다. 그녀는 야간 근무일과 출퇴근 시간을 손으로 적어 왔다. 급여명세서의 수당 항목은 비어 있었다.
“기태 씨가 파업 때 숙소비를 냈다고 했습니다. 그 돈을 받으셨습니까?” 상담자가 물었다.
경자는 세라를 한 번 보고 답했다. “첫날 방값을 받았어요. 나머지는 제가 식당에서 일해서 갚았습니다. 식비는 받은 적 없어요.”
세라는 어머니가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동시에 기태 수첩에 적힌 ‘포장조 2명 46만 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경자는 지원금을 받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실제 사용한 일을 설명했다.
“혹시 서명한 종이가 있습니까?”
“없어요. 제가 받은 건 방 열쇠뿐이었어요.”
상담자는 그 말을 별도로 기록했다. 경자는 야간수당 청구와 숙소 지원을 구분해 달라고 했다. “기태 씨가 방을 준 건 고마워요. 그렇다고 내가 받아야 할 수당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세라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경자는 딸을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임금과 조합의 기금을 구분해 달라고 요구했다. 세라는 그 내용을 장부에 적지 않았다. 급여 상담 기록은 회계 장부에 포함될 정보가 아니었다.
오후 총회 준비 회의에서 기태는 조합원들에게 숙소와 식비를 지급한 경위를 설명했다. 문식은 승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현장 조합원 몇 명은 파업 때 실제로 밥과 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회의는 지부장 사퇴 요구로 번졌다.
“현금이 남았으면 돌려놔야 합니다.” 문식이 말했다.
“남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해.” 기태가 답했다.
“그럼 장부를 왜 교육비라고 적었습니까?”
기태는 고개를 숙였다. “긴급 지출을 설명하려면 상급단체 교육비 계정으로 처리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적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시킨 게 아니라 제가 쓴 겁니다.”
그 말에 몇몇 조합원이 웅성거렸다. 세라는 계정이 틀렸다는 사실과 돈을 개인적으로 챙겼다는 의심을 분리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건 숙소와 식비로 5백30만 원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받는 사람이나 반환 기록이 없습니다. 기태 위원장님이 임의로 사용한 건 확인되지만, 개인 유용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식은 “그럼 횡령이 아니라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제가 그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조합원 규정 위반과 법적 판단은 다른 절차입니다. 사용처를 확인할 자료가 더 필요합니다.”
기태는 회의가 끝난 뒤 세라에게 남은 돈이 2백만 원 정도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 봉투를 집에 가져가 분리해 두었다고 했다. “얼마인지는 모르겠어.”
“그럼 지금 확인해야 해요.”
기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집에 가서 봉투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문식은 그를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세라는 조합원 둘이 동행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기태는 모욕감을 느낀 듯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동의했다.
그날 밤 세라의 어머니는 야간수당 상담 접수를 마쳤다. 그녀는 딸에게 “내 수당은 내가 청구할 거야”라고 말했다. 세라는 “알아요”라고 답했다.
“너도 네 일은 네가 해야 해. 회계 보고서에 내 이름을 숨기지 말고.”
세라는 어머니가 파업기금으로 첫날 숙박비를 지원받은 사실을 조합원 확인 항목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그 지원은 현금 46만 원 전부가 아니었다. 나머지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기태가 집에서 가져온 봉투는 봉인되지 않은 채 책상 위에 놓였다. 안에는 현금 74만 원과 주차 영수증 두 장, 인출 메모가 들어 있었다. 메모에는 ‘경자 외 1명, 46’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자는 그 기록이 자신의 숙박비만 뜻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날 내 옆방은 혜숙 언니였어요. 이혼 소송 때문에 집에 못 간다고 했어요. 기태 씨가 방을 같이 잡아 줬는데, 그 언니한테는 현금으로 택시비도 줬어요.”
문식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분은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요?”
경자는 대답했다. “조합에 이름 올리면 남편이 알까 봐 그랬겠죠.”
현금은 개인에게 바로 지급된 생활비가 아니었다. 숙소와 이동을 위한 돈이었다. 그러나 74만 원이 실제로 남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태는 “총회에서 내가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변명 대신 장부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세라는 8백만 원 지출 중 확인된 5백30만 원, 추가 확인이 필요한 1백96만 원, 반환된 74만 원을 나눠 적었다. 총액은 맞았지만 승인 절차는 어긋나 있었다. 문식은 회의실 의자에 기대 말했다. “돈이 전부 사람한테 갔다고 해서, 지부장 혼자 결정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해.”
총회까지 하루가 남았다. 세라는 숫자를 정리했지만, 기태의 지부장직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장부뿐 아니라 대표를 믿을 수 있는지도 투표해야 했다. 세라는 회의실 불을 끄고, 숫자 옆에 물음표를 남겼다. 아직 모르는 돈을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에게도, 그녀의 몫도. 그 기준은 모두에게 같았다. 그녀는 엄마의 이름을 포함한 지출 목록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같은 기준으로 설명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