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야간 당직표

1화: 호출벨 세 번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박민지가 어머니의 젖은 신발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요양원에서 넘어졌대요. 머리를 부딪쳤는지는 모르겠다고 해요.”
야간 책임 간호사 한유라는 휠체어에 앉은 이영숙의 얼굴을 확인했다. 영숙은 66세였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손으로 담요를 밀어냈다. 간호사 서주희가 환자 팔찌를 붙이는 동안 유라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당직 의사는 다른 환자를 보고 있었다. 유라는 민지를 진료 대기 구역으로 안내하면서 어머니가 평소 어떤 상태인지 물었다.
“치매 진단은 없어요. 다만 낯선 데 오면 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넘어지기 전에는 혼자 걸으셨어요.”
“약이나 알레르기는요?”
민지는 약봉투를 꺼냈다. “혈압약이요. 요양원에서 먹였는지 모르겠어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민지는 유라의 명찰을 읽었다. “여기 오기까지 한 시간 반 걸렸어요. 요양원에서는 그냥 자고 있으라고 했대요.”
“그 말을 누가 했습니까?”
“전화 받은 사람이요. 엄마가 계속 호출벨을 눌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대요.”
유라는 요양원 이름과 통화 시각을 적었다. 민지는 응급실에서도 오래 기다리게 될 것 같아 불안해했다. 환자는 먼저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응급도에 따라 진료를 받았다. 유라는 그 기준을 설명하고, 상태가 바뀌면 바로 알려 달라고 했다. 민지는 “또 기다리기만 하라는 거네요”라고 말했다.
주희는 영숙의 담요를 정리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영숙은 “집에 가야지”라고 했다. 민지가 “엄마, 여기는 병원이야”라고 답하자 영숙은 딸의 손을 뿌리쳤다. “너는 왜 왔어? 나 데려다 놓고 다시 갈 거잖아.” 민지는 대꾸하지 못했다.
주희는 손을 거두고 유라를 불렀다. 영숙은 보호자에게 화를 내면서도 주희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유라는 당직 의사에게 상태를 전달하고, 기다리는 동안 환자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영숙은 이름을 묻자 “영숙”이라고 답했다. 유라는 “영숙 어머님, 제가 여기 있을게요”라고 말했다. 영숙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때 응급실 반대편에서 구급차 사이렌이 울렸다.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오고, 간호사 한 명이 처치 구역으로 불려갔다. 야간 당직표에는 간호사 7명이 있어야 했지만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수간호사 최동은은 병동에 지원을 요청하러 자리를 비웠다. 유라는 주희에게 환자 모니터를 확인하라고 하고, 자신은 새 환자 인계를 받으러 갔다.
민지는 어머니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주희는 컵을 가져오려다 다른 환자의 호출벨을 들었다. 먼저 온 환자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었고, 주희는 담당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3분 뒤 영숙의 침대 옆 호출벨이 울렸다. 한 번, 잠깐 멈추고 다시 두 번.
유라는 소리를 듣고 돌아왔지만, 그 사이 주희는 다른 환자의 혈압을 확인하고 있었다. 민지가 호출벨을 잡아당기며 “여기 아무도 없어요?”라고 외쳤다. 영숙은 침대 난간을 붙잡고 몸을 세우려 했다. 주희가 달려와 팔을 받쳤다. 유라는 그제야 물을 요청했던 사실을 알았다.
“왜 아무도 안 왔어요?” 민지가 말했다.
“다른 환자 상태가 급해서 확인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라는 사과했지만, 변명으로 덮지 않았다.
“엄마가 저기 혼자 있었잖아요.”
영숙은 딸을 보며 “집에 가자”고 했다. 민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네가 왜 여기 있어. 밤에 일해야 하잖아.”
민지는 대답을 못 했다. 마트 물류팀 야간 교대는 새벽 네 시에 시작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데려온 뒤 직장에 연락하지 않았다. 오늘 결근하면 하루 일당이 빠질 수 있었다. 유라는 민지가 보호자로 남을지, 다른 가족에게 연락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당직 의사가 영숙을 진찰한 뒤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유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환자의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지는 “어머니가 요양원에 다시 가기 싫다고 했어요”라고 했다.
유라는 영숙에게 직접 물었다. “어머님은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영숙은 잠시 눈을 감았다. “내 집.”
“따님 집이 아니라, 예전에 사시던 집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거기 가면 국 끓일 수 있어.”
민지는 어머니가 오래전 살던 집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려 했다. 그 집은 이미 월세가 끝나 비어 있었다. 현재 민지의 집에는 어머니가 지낼 방이 없었다. 그녀는 요양원에 계속 모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번 달부터 병원 방문 간호를 알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엄마한테 했어요?”
“아직 못 했어요. 오늘은 근무가 바뀌어서…”
영숙은 딸의 손을 다시 밀어냈다. “너는 늘 바쁘다고 해.”
민지는 눈을 감았다. “엄마, 나도 무서워. 내가 하루 종일 일해도 엄마 혼자 두는 시간이 길잖아.”
유라는 그 말을 들었지만 상담하려 들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숙의 상태와 귀가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민지의 사정은 퇴원 여부가 정해진 뒤 함께 다룰 수 있었다.
주희는 호출벨 기록을 확인하다가 유라에게 다가왔다. “제가 늦게 왔어요. 다른 환자 때문에 3분 넘게 지나고 확인했습니다.”
“그 시간은 기억나는 대로 말해. 네가 혼자 책임질 일인지도 같이 봐야 해.”
“제가 확인했어야 했는데요.”
“그 환자도 네 담당이었어. 둘 다 한 사람이 볼 수 있었는지부터 확인하자.”
주희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실수한 것을 감추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침상 호출이 겹쳤을 때 누가 먼저 가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당직표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간호사 한 명이 두 환자를 맡고 있었다.
유라는 수간호사 동에게 전화를 걸어 호출벨 확인 시각을 보고했다. 동은 “민원 들어오기 전에 경위서부터 작성해 달라”고 했다. 유라는 환자를 계속 관찰해야 해 지금은 직원 개인의 책임을 정리할 수 없다고 답했다. 먼저 호출과 대응 시간, 교대 배치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민지는 통화 내용을 듣고 말했다. “제가 녹음했어요. 나중에 다들 말을 바꿀까 봐요.”
유라는 녹음을 지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걱정하실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확인한 내용을 설명드리고, 요청하시면 민원 접수 방법도 안내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어머니가 불편한지 먼저 확인할게요.”
민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넘어졌다는 연락은 언제 왔어요?”
“요양원에 확인 요청을 넣었습니다. 답이 오는 대로 알려 드릴게요.”
새벽 세 시,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당직 의사는 골절은 보이지 않지만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숙은 잠깐 눈을 뜨고 민지를 불렀다. “너 집에 가서 자.”
민지는 어머니 곁에 남겠다고 했다. 유라는 그녀에게 휴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물류팀에 교대가 늦어질 수 있다고 연락할 시간을 줬다. 민지는 전화 화면을 누르다 말고 울음을 삼켰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면 제가 나쁜 딸 같고, 집으로 데려가면 제가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쪽을 골라도 혼자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라가 말했다.
“간호사님도 가족 돌봐요?”
유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떠올렸다. 어젯밤 남동생이 “엄마가 또 넘어졌어”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유라는 답하지 않았다. 당직이 끝나면 가겠다고 미룬 지 3주가 됐다.
“저도 아직 잘 나누지 못해요.”
새벽 네 시 반,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간호조무사는 영숙이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려다 바닥에 앉았다고 말했다. 몇 분 동안 바로 확인하지 못했고, 다친 곳이 없어 보여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민지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어머니가 넘어졌는데 왜 바로 연락하지 않았어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그때는 일단 괜찮아 보였습니다.”
“엄마가 괜찮다고 한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괜찮아 보인다고 한 거잖아요.”
유라는 민지에게 통화를 끊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묻고 싶다면 기다렸다. 민지는 사건 시각과 당시 근무자가 누구였는지 물었다. 답변은 분명하지 않았다. 통화가 끝난 뒤 민지는 어머니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 요양원에 다시 가기 싫어?”
영숙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거기서 나를 찾는 사람이 없어.”
아침 교대 직전, 유라는 호출벨 기록과 인계 내용을 확인했다. 주희가 적어 둔 시간에는 호출이 울린 뒤 3분 40초가 지나서 도착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 숫자를 보고 동은 유라에게 개인 경위서를 다시 요청했다. “병원 민원이 커질 수 있어. 담당한 사람이 책임져야 해.”
유라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환자에게 대기 이유를 설명하고, 인력 배치와 호출 대응을 같이 보고하겠습니다.”
동은 “그러다 네가 책임질 수도 있어”라고 경고했다. 유라는 모니터를 보며 대답했다. “환자가 혼자 기다린 시간은 누군가 책임져야 합니다. 주희 혼자 쓰게 두지 않겠습니다.”
주희는 그 말을 듣고 유라를 바라봤다. 민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영숙은 여전히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원에서 당장 퇴원시킬지, 요양원으로 돌아갈지 결정되지 않았다. 그날 밤 당직표의 빈 두 자리는 다음 교대에도 채워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주희는 동료에게 “제가 경위서 쓰면 끝날까요?”라고 물었다. 유라는 고개를 저었다. “끝나게 두지 않을 거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