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의 붉은 실

2화: 장부 밖의 사람들
수현은 문에 귀를 댔다. 바깥사람도 문 바로 앞에 있는지, 젖은 옷이 나무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누가 보냈습니까?”
“실 주인이요.”
“이름을 말하시오.”
“그 이름을 밖에서 말하라고요?”
상대는 젊었다. 수현은 빗장을 반쯤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홉 달을 건너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수록 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죽는 날짜가 적힌 종이는 왜 주었소?”
“당신이 죽고 난 다음에 받으면 늦으니까.”
문틈으로 얇은 쇠 조각이 들어왔다. 빗장을 들려는 게 아니라 바닥에 밀어 놓는 것이었다. 구멍 두 개가 뚫린 견사 북의 끝 장식이었다. 수현은 그것을 집어 등잔에 댔다. 염색집 백씨 아저씨가 낡은 북을 가져와 고쳐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 그 북의 물건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어디서 이것을 썼는지 알아봐요. 붉은 실은 풀지 말고.”
발소리가 뒤로 물러났다. 수현이 문을 열었을 때 젖은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퉁이에서 짚신 한 짝이 넘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아까 꾸러미를 전한 아이를 다시 데려간 듯했다.
수현은 밤새 가게를 옮기지 못했다.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몰랐다. 실을 버리면 살아남을까. 문서의 이름을 찢으면 누가 자신을 찾지 못할까. 그는 엽전 몇 닢과 옷 한 벌을 보자기에 넣다가 멈췄다. 누이가 두고 간 바늘통이 없었다. 서랍 밑을 더듬자 빈 손가락에 먼지만 묻었다.
날이 밝자 그는 보자기를 작업대 아래에 밀어 넣고 관아로 갔다.
무겸은 마당에서 다른 포교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상대는 목소리를 낮추었고 무겸은 낮추지 않았다. 수현은 멀리서 듣다가 자신의 종이부터 품 안으로 숨겼다.
“시신을 묻으라고 했으면 묻어. 떠돌이의 본향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나?”
“떠돌이가 아니라 남문에서 염색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면 남문에 물어.”
“사람은 여기서 죽었습니다.”
상대가 몸을 돌리며 수현을 보았다. 수현은 모른 척 마당 바깥으로 돌아서려 했으나 무겸이 손짓했다. 잠시 뒤 둘은 쌀겨 냄새가 나는 작은 빈 방에 앉았다. 무겸은 수현의 종이를 읽고 다시 뒤집었다.
“이런 종이가 어디서 났지?”
수현은 전날 밤의 일을 말했다. 무겸은 들으면서 가끔 이마를 눌렀다. 날짜 앞에 작은 글자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수현은 그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접수 예정.’
“오늘 죽을 사람을 적는 게 아니다.”
무겸이 말했다.
“이틀 뒤에 당신이 죽었다고 장부에 옮길 준비를 하는 거다.”
예언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종이에 적고 일이 그렇게 되게 만들려 하고 있었다. 수현은 깨진 물집에 손을 대었다. 지금 살아 있는 자기 몸이 장부에서는 아주 쉽게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연우도 이렇게 되었습니까?”
무겸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마당에서 말 울음이 났다.
“확인하자.”
“그때도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안다.”
그 짧은 대답 때문에 수현은 더 다그치지 못했다. 무겸은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자기 품에 넣었다. 수현이 손을 내밀자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고 즉시 돌려주었다.
“내 이름으로 가지고 있으면 당신을 끌어들이기 쉽다. 숨겨라.”
두 사람은 장부를 모은 건물로 갔다. 무겸은 백씨의 이름을 찾는다고 말하고 들어갔다. 수현에게는 처마 아래서 기다리라고 했다. 방 안에서는 붓이 벼루를 긁는 소리가 났다. 한참 뒤 무겸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백용진. 나이 마흔셋. 사망 시점은 여덟 달 전.
수현은 종이를 두 번 읽었다.
“어제 본 사람이 맞습니까?”
“염색집의 거처까지 같다.”
“죽은 사람이 돌아다닌 겁니까?”
무겸은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적어 놓은 거지.”
수현은 방으로 뛰어들려 했다. 무겸이 팔을 잡았다. 종이 안에 누이의 행방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 팔이 길을 막았다. 수현은 팔을 빼려고 힘을 주었다.
“연우 이름도 보아야 합니다.”
“안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부터 당신의 누이를 찾겠다고 알릴 셈이냐?”
“그 사람도 한패라는 겁니까?”
“모른다. 그래서 먼저 떠들면 안 돼.”
수현은 무겸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방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누이가 살아 있어도, 자기가 뛰어드는 바람에 다시 없어질 수 있었다. 그 생각은 겁보다 단단하게 발을 잡았다.
무겸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수현은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빗물이 내려가는 홈에 푸른 실이 걸려 있었다. 흔한 실이었다. 어떤 파란 것이든 누이와 닮아 보이는 자신의 눈이 못 미더웠다.
장부를 읽고 나온 무겸은 문에서 한참 떨어진 다음에야 말했다.
“장연우. 여덟 달 전. 병으로 죽었다고 되어 있다.”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홉 달 전에 사라져 여덟 달 전에 죽었다. 누이가 사라지고 한 달 동안 자신은 시장과 나루를 찾아 헤맸다. 바로 옆의 장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사망을 알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곽대영이라는 서리가 정리한 묶음이다. 신고인은 같은 이름이 여러 번 적혀 있다. 지워져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곽대영을 만납시다.”
“지난달부터 안 나온다.”
수현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견사 북의 쇠 장식을 꺼냈다. 장부로 길이 막혔으니 손으로 아는 길을 찾아야 했다. 염색집에서 누가 북을 고쳤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남문 옛 염색집은 짚단을 쌓는 창고가 되어 있었다. 새 주인은 백용진이 밤중에 달아났다고 말했다. 남은 천값을 갚지 않아서 골치를 썩였다고도 했다. 그런데 수현이 딸의 팔찌 이야기를 꺼내자 말을 바꾸었다.
“딸은 없었는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마에 데인 흉터가 있는.”
“백씨 딸이 아니라 데리고 부리던 아이였겠지.”
수현은 창고에 걸린 낮은 선반을 보았다. 연우는 팔찌를 줄 때 그 아이에게 이름을 물었을까.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그 가게를 드나들었을까. 그는 북 장식을 보여 주었다. 주인은 서쪽 작업장에 가면 같은 것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거기는 문 닫았다는 곳 아닙니까?”
“문 닫은 집에서도 일은 할 수 있지. 빚 갚을 때까지 하는 거야.”
주인은 더 묻자 쫓아냈다. 무겸은 문 밖에서 기다리다 수현과 함께 걸었다. 수현이 들은 말을 전하자 그는 서쪽 작업장의 담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낮에는 들어갈 수 없다. 내 이름을 대면 위에서 먼저 알 거다.”
해가 기울 무렵 두 사람은 개울가 창고로 돌아갔다. 도연은 씻은 천을 널고 있었다. 백용진의 시신은 아직 거기 있었다. 무겸은 밤까지 옮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밤부터는 내 품삯을 두 배로 주시오. 이건 천보다 무겁소.”
수현이 엽전을 꺼내자 그녀는 손을 막았다.
“살아 있는 사람한테 따로 받은 돈으로 죽은 사람까지 치우지 않소. 이 양반이 줘야지.”
무겸은 자기 돈을 꺼냈다. 도연은 그제야 수현의 붉은 실을 들여다보았다. 풀지는 않았다. 그녀는 긴 고리 하나를 손끝으로 짚었다.
“이 안에서 실을 뽑아낼 수 있구려.”
“맞습니다.”
“똑같은 게 천 속에 있었소. 난 바느질 잘못한 줄 알았지.”
도연은 말린 천 꾸러미를 가져왔다. 작업장에서 내다 파는 천을 빨아 주면서 떼어 둔 실들이 있었다. 대부분 흰색이었다. 그중 붉은 실 세 가닥에 같은 숨고리가 보였다. 짧은 매듭의 수는 서로 달랐다.
수현은 탁자에 종이를 깔았다. 한 가닥은 짧게 셋, 길게 하나, 짧게 둘. 다른 것은 짧게 넷, 길게 하나, 짧게 하나. 그는 손을 멈추었다. 누이가 재료값을 외우지 못하는 아이에게 가르치던 방식이었다. 긴 매듭 앞은 쪽수, 뒤는 칸수. 거래책에 들어갈 자리부터 기억해 두는 셈이었다.
“책이 있어야 읽을 수 있습니다.”
“무슨 책?”
“숫자만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은 몰라요.”
무겸이 작은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오늘 본 사망 장부는 세 번째 묶음의 두 번째 칸부터 백용진과 같은 신고인의 이름이 이어졌다고 했다. 수현은 붉은 실의 꼬리를 만졌다. 죽은 사람 손목에 묶인 것이 자기 죽음의 증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연은 안색이 달라졌다.
“그 천을 가져온 놈이 오늘 밤에 또 오오.”
그들은 창고 불을 끄고 기다렸다. 도연은 젖은 천을 내려놓는 척하며 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무겸은 팔짱을 끼지 못했다. 손을 놓으면 아픈 무릎을 잡게 될 것 같았다. 수현도 손을 편 채 기다렸다. 물집이 터진 자리에서 실이 붙었다 떨어졌다.
밤이 충분히 깊어지자 지게를 멘 사내가 왔다. 그는 천을 받으면서 도연에게 밤늦게까지 있는 이유를 물었다. 도연은 염색값을 덜 준 사람이 많아 돈을 기다린다고 답했다. 거짓말인지 평소 말인지 알기 어려운 말투였다.
사내가 떠난 뒤 무겸과 수현이 뒤를 밟았다. 지게꾼은 큰길로 가지 않았다. 좁은 샛길을 두 번 꺾어 언덕을 올랐다. 담 너머에서 규칙적으로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북을 밀었다가 되돌리는 소리였다. 문을 닫았다는 작업장이 밤에도 돌고 있었다.
수현은 담장 구멍으로 눈을 댔다. 아래쪽에는 기름등 세 개가 켜져 있었다. 사람 여섯이 고개를 숙이고 견사를 감았다. 한 명이 기침을 하자 옆에 선 사내가 막대기로 탁자를 쳤다. 기침이 멎었다.
가장 먼 등잔 옆에 누이가 있었다.
수현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자기 손등을 물었다. 연우가 손을 움직이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왼손으로 실을 놓고 오른손으로 잡아당겼다. 몸은 훨씬 말랐고 머리카락은 짧게 잘려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누이가 담의 구멍을 보았다. 수현의 얼굴을 알아본 것 같았다. 아니면 바람에 흔들린 그림자를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북을 들어 올리며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수현은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무겸이 그를 담에서 떼어 내려는 순간, 연우가 손목에 감은 붉은 실을 끊었다. 실이 창밖으로 나왔다. 담 아래의 배수구를 따라 물 위에 떠내려갔다.
수현은 웅크려 실을 건져 냈다. 숨고리에 아주 작은 나무 조각이 들어 있었다. 누이가 바늘로 긁은 글씨였다.
‘나만 데려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