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의 붉은 실

1화: 죽은 사람의 손버릇
수현이 마지막 고리를 당기자 실이 손가락 마디를 파고들었다. 아프지 않은 매듭은 제대로 조인 매듭이 아니었다. 그는 손톱으로 안쪽을 밀어 조금 풀었다. 허리띠에 달릴 물건이라면 고운 것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먼저였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여자가 기침했다.
“내일 아침 잔치라니까. 언제까지 만질 셈이오?”
“지금 드립니다.”
여자는 완성된 매듭을 받아 들고도 한참 노려보았다. 속에 남긴 작은 고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수현은 잘라 달라는 말이 나올까 봐 가위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연우가 만든 매듭에는 늘 그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뻣뻣한 허리띠를 하루 종일 맨 사람도 손으로 풀 수 있게 해 둔 자리였다.
여자가 돈을 놓고 나갔다. 수현은 엽전 두 닢을 빈 서랍에 넣었다. 누이가 쓰던 서랍이었다. 안쪽에는 바늘 자국이 별처럼 남아 있었다. 수현은 그 자국을 만지다가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에 손을 거두었다.
이번에는 손님이 아니었다.
검은 갓 아래로 비에 젖은 얼굴이 들어왔다. 남자는 문턱을 넘다가 오른쪽 무릎을 잠시 짚었다. 수현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홉 달 전, 누이가 살림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말을 했던 포교였다.
“장수현인가.”
“더 찾을 데가 생겼습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작은 천 보자기를 작업대에 놓았다. 젖은 삼베 아래에서 붉은 실 한 가닥이 나왔다. 가늘었지만 빛깔이 진했다. 햇볕에 말린 고추의 살처럼, 안쪽에 어두운 갈색이 배어 있었다.
“이 실을 묶은 손을 알아볼 수 있겠나.”
수현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디서 났습니까?”
“사람 손목에서.”
보자기의 젖은 모서리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 포교가 손을 저었다. 수현은 그제야 냄새를 맡았다. 눅눅한 천의 냄새 아래, 생선을 오래 두었을 때의 냄새가 아주 조금 섞여 있었다.
그는 가게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아직 풀지는 마시오.”
“그래서 당신을 부르러 온 거다.”
포교의 이름은 한무겸이었다. 수현은 부러 그 이름을 묻지 않았다. 전에 묻고 외운 이름이었으나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실을 등잔 쪽으로 옮겼다. 겉에서 보면 흔한 생쪽매듭이었다. 문제는 뒤에 있었다. 두 번째 고리의 다리가 안이 아니라 밖으로 돌아갔다.
틀린 방향이었다.
그 뒤에 손톱 끝만 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
수현의 손이 멎었다. 허리띠를 풀기 쉽게 남기는 고리와 닮았지만 쓰임이 달랐다. 이 작은 틈은 매듭을 풀지 않고 안쪽 실을 빼낼 수 있게 만들었다. 누이가 팔찌를 고쳐 줄 때 쓰던 방식이었다. 손목이 부은 사람에게서도 끈을 칼로 자르지 않고 빼냈다.
“왜 그러지?”
무겸이 물었다.
수현은 등잔을 당기다가 손등에 뜨거운 기름을 흘렸다. 기름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실 끝을 바늘로 들어 올렸다. 여유 고리 아래에 한 번 더 감은 매듭이 숨어 있었다. 짧게 셋, 길게 하나, 다시 짧게 둘.
연우는 손이 작아서 끝을 너무 바짝 자르지 않았다. 매듭을 고칠 때 잡을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실에도 세 마디쯤의 꼬리가 남아 있었다.
“누가 죽었습니까?”
“아직 모른다.”
“보게 해 주십시오.”
무겸은 보자기를 다시 싸며 수현의 손을 보았다. 뜨거운 기름이 닿은 자리가 붉어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냐?”
“매듭을 묶은 손을 압니다. 죽은 사람은 봐야 압니다.”
말이 그렇게 나오자 수현은 숨을 삼켰다. 누이가 저 실의 다른 쪽에 누워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몸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에 혼자 있을 때 천 번도 넘게 상상한 일이었다. 정말 문이 열리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겸은 재촉하지 않았다. 빗장을 열고 밖에서 기다렸다.
시신은 개울가의 작은 창고에 있었다. 천을 빨던 여자 둘이 문 밖에서 화롯불을 쬐었다. 한 여자가 수현의 허리에서 흔들리는 가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끈 때문에 온 거요?”
“예.”
“손목을 씻지도 못했소. 나중에 때가 증거라고 혼나면 품삯만 떼이니까.”
그녀는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창고 문 앞의 물웅덩이에 널빤지를 놓아 주었다. 수현은 그 위를 밟았다. 창고 안에는 죽은 사람의 발끝이 먼저 보였다. 오른쪽 짚신이 없었다. 발뒤꿈치에 길게 쓸린 자국이 있었다.
무겸이 천을 걷었다.
수현은 주저앉을 뻔했다가 문설주를 잡았다.
누이가 아니었다.
기뻐하면 안 되는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의 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죽은 이는 마흔 안팎의 남자였다. 입가에 묽은 피가 말라 있었고 왼손에 검푸른 얼룩이 남았다. 수현은 그 손을 알아보았다.
“남문 염색집 사람입니다.”
“이름은?”
“백씨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제대로는 모릅니다.”
수현은 부끄러워 입을 다물었다. 염색값이 올랐다고 여러 번 따졌던 사람인데 정작 이름을 몰랐다. 연우는 그 집 어린 딸에게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색을 잘못 먹여 버린 실을 대신 받아 오기도 했다.
“저 사람, 여덟 달 전에 가게 접었소.”
밖에 있던 여자가 들어왔다.
“어떻게 압니까?”
무겸의 질문에 여자가 턱을 들었다.
“남은 천을 내가 빨았으니까. 도연이라 하면 되오. 지난번처럼 품팔이 아낙이라고 쓰면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지.”
무겸은 잠시 그녀를 보더니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수현은 붉은 실이 있었던 손목을 살폈다. 다른 곳보다 살이 덜 부풀어 있었다. 실이 묶인 밑에 푸른 실 한 올이 박혀 있었다. 염색집에서 끈을 엮을 때 들러붙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덟 달 전 문을 닫은 집의 새 염색 실은 어디서 났을까.
수현은 실을 뽑으려다가 멈추었다. 손끝이 미끄러워 상처를 건드릴 것 같았다. 도연이 젓가락만 한 대나무 집게를 내밀었다.
“손으로 다 하지 마시오. 살도 천처럼 찢어지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다정했다. 수현은 집게로 실을 들어 올렸다. 짙은 푸른색 실의 한쪽 끝이 하얬다. 마찰로 색이 벗겨진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묶어 두었다가 물을 들인 자리였다.
연우가 그런 실을 만들던 날이 떠올랐다. 그는 염색값이 낭비된다며 화를 냈다. 누이는 끝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돈이 어디서 오는지 안 보이느냐고 맞받았다. 둘은 그날 저녁밥을 따로 먹었다.
다음 날 누이가 없어졌다.
수현은 실을 종이에 싸며 무겸을 돌아보았다.
“연우가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무겸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
“그걸 단정할 수는 없지.”
“숨겨 둔 고리는 누이가 만들었습니다. 남에게 가르쳐 주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찾읍시다. 가르친 사람이라도.”
그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누르지 못했다. 창고 밖에서 다른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도연이 문을 닫아 주었다. 죽은 사람 옆에서 떠들던 수현은 고개를 숙였다.
무겸이 천을 도로 덮었다.
“내일 염색집 옛터부터 보자. 저 사람 이름도 찾고.”
“지금 가겠습니다.”
“지금은 문이 닫혔고 밤이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당신까지 죽으면 실을 읽을 손이 없어져.”
무겸은 그렇게 말하고 수현의 손에 붉은 실을 돌려주었다. 관아에 가져가겠다던 처음 태도와 달랐다. 수현은 의심스럽게 그를 보았다. 무겸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가지고 있으라는 뜻 아니다. 모양을 그려서 내게 주고, 절대로 풀지 마라.”
수현은 실을 종이 두 겹으로 감쌌다. 종이 위에서 손을 떼는데 도연이 그 손등을 붙잡았다. 가게에서 데인 자리에 물집이 부풀어 있었다. 그녀는 젖은 천을 대고 잠시 눌러 주었다.
“그런 손으로 밤길을 가면 뭐든 놓칩니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다시 내렸다. 수현은 품 안의 실부터 살폈다. 남의 죽음을 안고 가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못 찾았던 아홉 달 동안에도 이렇게 가까이 사람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쩌면 누이는 그들과 같은 데 있었다.
집 앞 골목에 어린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열 살은 넘어 보였고, 신발 끈을 끊어 짚신에 묶어 두었다. 수현이 가까이 가자 아이가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장수현 댁이오?”
“누가 보냈니?”
“목욕하는 데 있는 아주머니.”
아이는 답하고 바로 뒤로 물러났다. 수현이 손을 뻗었으나 아이는 이미 빗물 고인 골목을 달렸다. 깨진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 달리면서도 자꾸 벗겨졌다. 수현은 두 걸음 쫓아가다가 품 안의 실이 젖는 것을 느끼고 멈췄다.
그는 문을 열어 꾸러미를 작업대 위에 올렸다. 겉종이는 흔한 약재 포장이었다. 안에는 사망 신고를 접수했다는 종이 한 장과, 매듭에 달 법한 작은 나무 구슬이 들어 있었다.
구슬의 옆에는 바늘 자국이 세 개 있었다.
연우는 구슬에 구멍이 작으면 바늘을 밀어 넣어 넓혔다. 수현은 그렇게 하면 구슬이 깨진다고 말했다. 누이는 몇 번 깨뜨린 뒤에야 그 말을 들었다. 그들이 함께 고른 구슬이었다. 누이는 목에 걸고 다녔다.
그는 구슬을 쥐고 종이를 폈다.
죽은 이의 이름은 장수현이었다.
나이는 스물여덟, 거처는 지금 서 있는 이 가게. 누이가 아니라 자기였다. 맨 아래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틀 뒤였다.
수현은 종이를 등잔 가까이 댔다. 거짓 종이면 도장부터 어설퍼야 했다. 그런데 도장이 찍힌 자리의 먹 번짐은 무겸이 내밀었던 관아 문서와 같았다. 종이를 뜨겁게 말려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문 밖에서 누군가 가게 처마를 두 번 쳤다.
수현은 등잔을 끄려다 손을 멈췄다. 불을 끄면 상대는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켜 두어도 알았다. 그는 가위 대신 작업대 밑의 굵은 끈을 집었다. 손등의 물집이 터져 아팠다.
문틈 아래로 푸른 실 한 올이 들어왔다. 아이가 놓고 간 구슬의 구멍에 딱 들어갈 굵기였다.
그 실이 바깥에서 천천히 당겨졌다.
수현은 문을 열지 않았다. 실의 끝을 잡고 안에서 세 번, 짧게 당겼다. 누이와 재료를 주고받던 신호였다. 상대가 연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놓칠 수는 없었다.
문 밖의 발소리가 멎었다.
잠시 뒤, 낮은 목소리가 빗소리를 가르며 들어왔다.
“살고 싶으면, 오라비 이름부터 감추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