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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의 붉은 실3화

한성의 붉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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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살아 있는 이름

수현은 나무 조각을 두 번 뒤집었다. 뒷면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누이가 살아 있었다. 아홉 달 동안 기다린 대답은 그것이면 충분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만 데려가지 말라고 했다.

작업장 안의 북 소리가 멎었다.

무겸이 수현의 어깨를 눌렀다. 두 사람은 배수구 옆에 납작하게 몸을 붙였다. 담 너머에서 막대기가 바닥을 두드렸다. 누군가 창문을 닫았다. 연우가 실을 내보낸 걸 들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수현이 속삭였다.

“문 안의 사람이 몇인지도 모른다.”

“방금 여섯을 봤습니다.”

“일하는 사람 말고 지키는 사람.”

무겸은 담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수현은 그의 뒤에 붙었다. 담장 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짚신을 쓸며 지나갔다. 칼집 끝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수현은 무겸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문을 넘는 것과 사람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들은 담에서 떨어져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수현은 누이에게 등을 보이는 게 견딜 수 없어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무겸은 그를 서두르게 하지 않았다.

샛길 끝에서 소년 하나가 기다렸다. 전날 밤 꾸러미를 전한 아이였다. 지금은 짚신을 끈으로 발목에 묶어 놓았다.

“누가 여기 오랬니?”

무겸이 물었다.

“오라비가 오면 저기로는 보내지 말랬어요.”

아이는 큰길을 가리켰다. 거기서 등불 하나가 좌우로 흔들렸다. 문 앞을 지키는 사람처럼 보였다. 수현은 아이 앞에 무릎을 굽혔다.

“연우가 너에게 부탁했니?”

“이름을 말하지 말라던데.”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현은 더 묻지 않았다. 이름을 캐내면 누이가 잘못 말한 게 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쓰는 작은 가위를 꺼내 아이의 발목 끈을 조금 잘라 주었다. 꽉 조여 피가 안 통하고 있었다.

“이름을 안 말해도 된다. 걸을 수 있겠니?”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벽이 아니라 물 들어가는 문이에요. 비 많이 오면 밑에 열어요. 곽 영감이 막대기로 떠받쳐 놨어요.”

무겸과 수현이 동시에 아이를 보았다.

“곽대영?”

“대영인지는 몰라요. 목이 아파 말 안 하는 영감.”

소년은 그 말을 전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자기도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눈은 작업장 쪽을 떠나지 못했다. 수현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말할 것도 없이 아이에게도 그 안에 남은 사람이 있었다.

무겸은 그를 도연의 창고로 보냈다. 길을 묻자 아이는 안다고 했다. 전날 목욕하는 데의 아주머니라고 했던 사람도 도연이었다. 아이가 떠나자 무겸은 허리에서 밧줄을 꺼냈다. 한 사람을 묶으려고 갖고 다니는 줄로 여섯 사람을 데리고 나와야 했다.

“힘으로 뺏어 올 수는 없다. 길만 열고 빠져나와야 해.”

수현은 줄을 받아 매듭을 고쳤다. 무겸의 굵은 매듭은 급하면 당길수록 굳는 방식이었다. 그는 한쪽에 숨고리를 넣었다. 손등의 상처가 실에 쓸려 피가 묻었다.

“무거운 사람을 달면 버티겠나?”

“저 혼자 매달려 보겠습니다.”

수현은 줄을 나무에 걸어 체중을 실었다. 줄이 버텼다. 그는 작은 고리를 당겨 맨 끝을 풀었다. 몇 번 거듭하자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가게에서 늘 하던 일이었는데, 오늘은 풀릴 때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돌아오는 듯했다.

작업장의 물문은 담 아래에 있었다. 사람 하나가 옆으로 돌아 들어가야 하는 크기였다. 문 위에는 방금 온 비의 물이 졸졸 흘렀다. 소년이 말한 막대기는 안쪽에서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무겸이 먼저 몸을 밀었다. 오른쪽 무릎이 문턱에 닿자 이를 악무는 소리가 났다. 수현은 그 발을 받쳐 주었다. 잠시 뒤 안에서 줄 끝이 나왔다. 수현은 줄을 잡고 미끄러운 벽돌을 짚으며 올라갔다.

작업장 뒤에는 나무 궤짝과 염색통이 쌓여 있었다. 삶은 실의 냄새가 났다. 쇠장식을 준 사람이 말한 북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단서를 찾아 들어왔지만 지금 먼저 찾을 것은 사람이었다.

문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났다.

“물을 바꿔야 한다고 했잖아요. 손이 짓무른다고.”

연우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수현은 아홉 달 전 가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누이는 그때도 일을 그만하자고 했고, 그는 팔 물건이 남았다며 못 들은 척했다. 지금은 남의 손이 무너지고 있었는데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문을 조금 밀었다. 연우가 물동이를 들고 나왔다. 그녀는 그를 보자 물동이를 놓칠 뻔했다. 손을 뻗었지만 중간에서 멈추었다. 두 사람이 너무 가까워 안으면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왜 온 거야.”

그녀가 물었다.

“네가 실을 보냈잖아.”

“실만 보고 사람은 안 보고.”

수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연우는 그의 손등부터 보았다. 물집과 터진 상처, 급하게 고친 밧줄까지 차례로 눈을 옮겼다. 그러더니 물동이를 벽에 놓고 그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미안. 온 건 고마워.”

그 말 때문에 수현은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는 누이가 자신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홉 달 동안 준비한 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몇 명이야?”

“이 방에는 여섯. 다른 데도 있어.”

“얼마나?”

“몰라. 천 나갈 때 실을 감춰서 서로 이름만 알아냈어.”

연우는 무겸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무겸은 손을 내려 보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을 듣자 연우는 한 발 물러났다. 수현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방 안에서 기침이 들렸다.

연우가 문을 열었다. 불빛이 세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침상에는 노인이 누워 있었고, 작은 여자아이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나머지 셋은 안쪽 탁자 앞에 모였다. 수현은 창밖에서 모두 일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노인은 사람 모양으로 세워 둔 겉옷 뒤에 숨어 있었다.

“곽 영감이 걸을 수가 없어.”

연우는 말했다. 노인은 눈을 떴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목에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장부를 정리하던 서리는 이곳에서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업을 수 있겠습니까?”

수현이 무겸에게 물었다.

무겸은 노인의 몸을 살피고 줄을 받았다. 무릎 때문에 바로 일어나지 못해 탁자 끝을 짚었다. 수현은 노인의 다리를 함께 들어 등으로 올렸다. 줄로 몸을 받치되 목에 닿지 않도록 매듭을 아래로 내렸다.

여자아이가 신발을 찾았다. 소년과 같은 짚신 끈이었다. 수현은 바닥에서 신발 한 짝을 찾아 건넸다. 아이는 받자마자 굽을 눌러 확인했다. 숨겨 둔 작은 종이가 있었다.

연우는 안쪽에 남은 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나갈 거야.”

한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나가서 또 누가 살려 주는데? 관아에 가면 내가 죽었다고 한다고.”

수현은 자기에게 온 사망 예정 문서를 꺼냈다. 돌아온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모두를 숨길 집도, 이 사람의 말을 믿어 줄 관원도 아직 없었다. 그는 종이를 펴서 이름과 날짜를 보여 주었다.

“저도 죽었다고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살았다는 걸 보여 주러 갈 겁니다.”

남자는 종이를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도 그 옆에 남았다. 연우가 설득하려고 손을 잡았을 때 바깥에서 자물쇠를 흔드는 소리가 났다.

무겸이 불을 껐다. 노인이 그의 등에서 작게 신음했다.

“나간 사람이 있나?”

문 밖의 사내가 물었다.

연우는 물동이를 들었다. 손이 미끄러워 바닥에 조금 쏟았다.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젖은 바닥을 밟았다. 그는 곧바로 등불 없는 방을 둘러보았다. 수현은 궤짝 뒤에서 누이의 발만 보았다. 맨발이었다.

“등불은 왜 껐어?”

“물 뜨다가 넘어졌어요.”

사내가 연우의 팔을 잡았다. 그 힘에 그녀가 문틀에 부딪혔다. 수현은 생각할 틈 없이 궤짝을 밀었다. 나무가 사내의 무릎을 치자 그가 칼집을 놓쳤다. 연우는 팔을 빼고 물동이를 들어 얼굴 쪽으로 쏟았다.

사내는 비틀거리면서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수현은 가위를 뽑았다. 사내를 찌를 각도가 보이지 않았다. 누이의 목이 더 가까웠다. 그는 잡힌 머리카락을 잘랐다. 잘린 머리채를 쥔 사내가 욕을 내뱉는 사이 연우가 몸을 낮춰 빠져나왔다.

방 안의 남자가 갑자기 사내를 뒤에서 밀었다. 밖으로 나가지는 않겠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다른 두 사람이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세 사람이 온몸으로 문을 눌렀다.

“가!”

남자가 외쳤다.

연우는 그들을 보다가 수현의 손을 잡았다. 돌아오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수현도 그 말을 시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물문으로 달렸다. 뒤에서 다른 사내가 방 문을 흔들었다.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무겸은 노인을 먼저 밖으로 내렸다. 작은 아이가 뒤를 따랐다. 연우가 나가려 할 때 등 뒤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누군가 궤짝에 등불을 던졌다. 말린 견사가 빠르게 타올랐다.

연우가 돌아섰다.

“저 안에 이름이 있어.”

수현은 그녀를 붙잡았다. 견사 속에 감춘 줄패들이 불을 먹고 있었다. 그 실이 사라지면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누이를 놓으면 그 이름을 아는 사람도 사라졌다.

“네가 기억하는 것부터 말해.”

그는 누이를 문으로 밀었다.

“내가 적을게. 나중에 네가 고쳐.”

연우는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갔다. 수현은 마지막으로 남아 밧줄을 풀었다. 숨고리가 열리지 않았다. 젖은 줄이 뒤틀려 안쪽에 끼었다. 그는 손톱이 깨질 만큼 잡아당기다 가위로 잘랐다. 연습할 때는 늘 풀렸던 매듭이었다. 실패를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다.

물문 아래로 몸을 밀었을 때 뜨거운 공기가 등을 덮었다. 무겸이 그의 팔을 당겼다. 수현은 배수구에 어깨를 부딪히며 밖으로 굴러 나왔다. 피 묻은 손이 아니라 누이가 내민 손을 먼저 잡았다.

도연은 창고 문을 열어 두고 기다렸다. 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여자아이가 그를 보자 달려가 안겼다. 남매였다. 수현은 두 아이가 서로 발목 끈을 풀어 주는 것을 보다가 연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미안하다.”

연우는 말없이 젖은 머리를 짜냈다.

“네가 달아난 거라고 생각했어. 돈을 가져간 것도.”

“달아나려고는 했어. 가게에서는 나도 오빠의 손이었으니까.”

수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이는 다른 가게에서 자기 이름으로 일하려다가 여기에 끌려갔다. 그가 무엇을 더 말하려는데 연우가 손을 내밀었다.

“말은 나중에. 종이부터 줘.”

수현은 종이를 깔고 붓을 적셨다. 연우가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가 잠길 때 도연이 물을 건넸다. 무겸은 노인의 붕대를 바꿨다. 노인이 입을 열지 못하자 여자아이가 신발 굽의 종이를 꺼내 그 손에 쥐여 주었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수현 쪽으로 밀었다.

작업장에 사람을 넘겼을 때의 인수 명단이었다. 아래에 포교의 이름이 하나 적혀 있었다.

한무겸.

수현은 붓을 놓았다. 무겸은 종이를 보려다가 연우의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는 물을 마시지 않고 잔을 쥔 채 앉아 있었다.

“도망자를 돌려보낸다고 했지요.”

연우가 말했다.

“그날 그 문 앞에 있던 사람이, 당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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