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나무 골렘의 정원사

2화: 뿌리 감각의 경계
말방울 소리는 숲길을 따라 천천히 다가왔다. 모아는 등잔을 끄고 바닥에 귀를 댔다. 말은 둘, 사람은 셋. 걸음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앞선 말은 걸음을 끌었고, 뒤따르는 사람 하나는 오른발을 디딜 때마다 짧게 숨을 내뱉었다. 부상자일 가능성이 컸다. 모아는 피난민들이 샘으로 오고 있다는 노파의 말을 떠올렸다.
철잎의 동력핵이 낮게 울렸다. 손가락이 땅에서 떨어지며 팔꿈치가 들렸다. 뿌리 감각이 먼저 도착한 발굽을 읽은 것이다. 모아는 바짝 다가가 손바닥을 철판에 붙였다. 쇠는 밤공기처럼 차가웠다.
“아직 얼굴을 못 봤어. 기다려.”
대답은 없었다. 모아는 아침에 발라 둔 철나무 수액이 마르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관절 사이의 뿌리털이 물기를 머금고 흔들렸다. 철잎은 숲길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진동만으로 누가 무슨 뜻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난밤 사슴을 받쳐 든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다면, 사람을 무조건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 희망에 불과했다.
길 끝에 횃불이 나타났다. 낡은 수레 한 대와 말 두 필, 그리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보였다. 노파가 맨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모아는 그들에게 잠시 멈추라고 손짓했다. 수레에는 아이들과 짐이 실려 있었고, 손을 다친 사내가 옆에서 줄을 잡고 걸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뜻도 아니었다.
철잎의 고개가 들렸다. 가슴 안쪽에서 두 번 박동이 울린 뒤, 팔이 길을 가로막았다. 나무들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일었다. 피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말 한 필이 앞발을 들었고, 수레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모아는 곧장 수레 쪽으로 달려갔다.
“움직이지 마세요. 줄을 놓지 말고, 말 머리를 잡으세요!”
노파는 아이들을 수레에서 내리게 하지 않았다. 모아는 수레 바퀴 밑으로 어깨를 밀어 넣고 기울기를 버텼다. 나무 틀이 삐걱거렸다. 철잎의 손은 길을 막은 채 멈춰 있었다. 한 손가락만 움직여도 수레가 깔릴 수 있었다. 모아는 수레와 골렘 사이로 기어 나와, 가슴팍의 명령판을 향해 손을 들었다.
“철잎, 네가 막은 건 사람들의 길이야. 그들은 숲을 태우러 온 게 아니야.”
골렘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령판의 희미한 문자가 빛났다. ‘숲길 접근자 차단.’ 접근자의 수와 크기를 구분하지 않았다. 피난민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지만, 수레의 철테와 말굽은 골렘의 감각에 위협으로 잡힐 수 있었다. 모아는 피난민들에게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보이라고 말했다.
“불은 꺼 주세요. 천천히요. 아무도 뛰지 마세요.”
그들은 얼어붙은 채 모아를 바라봤다. 노파가 먼저 등잔을 흙에 묻어 껐다. 다른 사람들이 뒤따랐다. 어둠이 내리자 철잎의 손가락은 조금 내려갔다. 모아는 수레에 붙은 쇠테를 풀게 했다.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걸 빼면 짐이 흘러내립니다. 안에 약초와 물이 있어요.”
“수레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에요. 바퀴만 흙에 닿게 해 주세요.”
그녀는 네 사람에게 돌을 바퀴 앞뒤에 끼우게 했다. 손을 다친 사내는 힘을 줄 수 없어,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짐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철잎의 고개가 다시 움직였다. 가슴의 박동이 빨라졌다. 모아는 골렘의 발 아래에 손을 대고 흙의 진동을 확인했다. 뿌리들이 수레의 무게를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바퀴를 무기로 읽고 있어. 바퀴는 짐을 옮기고, 짐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물건이 있어.”
그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모아는 철잎이 이해할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수레 옆에 놓인 빈 물통을 들어 골렘의 손이 보이는 곳에 뒀다. 물통이 바닥에 닿자 둔한 소리가 퍼졌다. 철잎의 손가락은 움찔했지만 내리치지 않았다. 모아는 물통을 들어 다시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피난민이 물을 길어 담아 둔 단지 옆에 놓았다.
노파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모아는 즉시 팔을 뻗어 막았다.
“제가 이야기할게요. 다치셨잖아요.”
“내가 먼저 저 아이들을 데리고 숲에 들어왔어. 내 목소리를 들려줘야지.”
노파는 지팡이를 땅에 세 번 두드렸다. 같은 박자가 철잎의 가슴에서 돌아왔다. 그 순간 모아는 골렘이 지난밤 들은 소리와 지금의 소리를 구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두려움과 혼란이 섞인 사람들의 숨, 말이 놀라 내는 발굽 소리, 그리고 노파가 일부러 고른 리듬. 철잎은 그중 무엇을 기억하는 것일까.
“우리는 피난민입니다. 군대가 아니라, 길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노파가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막으면 아이들이 밤을 여기서 보내야 합니다. 숲은 춥고, 물도 모자랍니다.”
골렘의 손이 조금 더 내려갔다. 그러나 팔은 여전히 길을 가로막았다. 모아는 명령판의 녹슨 띠를 살폈다. 글자 아래로 가느다란 홈이 뻗어 있었다. 덧댄 금속은 원래 판의 일부가 아니었다. 띠를 잡아당겨 떼어 내면 ‘차단’은 멈출 수 있겠지만, 수호 명령 전체가 끊길 수도 있었다. 모아는 도구를 꺼내 홈에 대 보았다.
“띠를 빼면 길을 열 수 있어요?” 피난민 중 젊은 남자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녀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남자는 수레 바퀴 옆에서 돌을 계속 쌓았다. 노파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기다렸다. 모아는 공구를 내렸다. 위험을 없애려다 골렘의 동력핵을 끊으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었다. 명령이 바뀌어도 현장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녀는 먼저 누구든 지나갈 때 쓸 수 있는 표시를 만들기로 했다.
모아는 숲길 양쪽에 흰 천을 묶었다. 그 천은 바람을 받으면 흔들렸고, 바람이 없을 때는 늘어져 있었다. 골렘의 뿌리 감각이 천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녀는 철잎의 팔 아래에서 작은 종을 흔들었다. 종은 한 번 울렸다. 뿌리들은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바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질 때는 진동했다.
모아는 흙을 더 파서 통로를 만들었다. 물길이 골렘의 발가락 밑을 지나가도록 좁은 홈을 냈다. 물방울이 흐르는 자리를 따라가면 숲의 작은 생물들이 다니는 길과 사람의 길이 나뉠 수 있었다. 철잎은 뿌리를 통해 물의 움직임을 느낄 것이다. 그녀는 통로 끝에 깨진 기와 조각을 놓아 사람의 발소리와 물소리가 섞이지 않도록 했다.
“이 길로 천천히 지나가 주세요. 수레는 바퀴를 들어서 옮길게요. 무기나 쇠붙이는 따로 내려놓고.”
노파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난민들은 도끼와 칼을 땅에 놓고, 칼집째 천으로 감쌌다. 사내는 수레에 실린 쇠솥을 내렸다. 아이 하나가 물통을 들고 줄의 맨 앞에 섰다. 그 아이는 모아가 아침에 돌려보낸 아이였다.
“제가 먼저 가 볼게요.”
모아는 아이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한 걸 존중해야 했다. 대신 줄을 짧게 묶어 자신의 허리에 걸었다. 아이가 한 걸음 내딛자 천이 흔들렸다. 철잎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두 번째 걸음에도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세 번째 걸음을 내딛자,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작은 물방울이 골렘의 발목에 닿았다.
철잎의 팔이 내려갔다. 길을 막던 손바닥이 땅에 닿고, 손가락은 양쪽으로 벌어졌다. 한 사람씩 지나갈 폭이 생겼다. 아이는 멈추지 않고 모아와 함께 골렘의 다리 옆을 통과했다. 수레가 뒤따랐다. 손을 다친 사내는 수레를 밀지 않고 바퀴를 들어 옮겼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짐을 나누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노파가 길을 건넜다. 지팡이 끝이 물길에 닿자 철잎의 가슴에서 일정한 박동이 났다. 막았던 팔이 천천히 돌아왔다. 모아는 안도하지 않았다. 한 번 통과했다고 해서 명령이 수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돌아오거나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같은 오인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피난민들은 샘터에 자리를 잡았다. 모아는 다친 사내의 발목을 살피고, 아이들에게 물을 나누어 줬다. 노파는 자신의 이름을 연화라고 소개했다. 수레를 끌던 사내는 준서였고, 다친 아이는 연화의 손녀 보리였다. 보리는 철잎의 손을 그린 뒤, 손가락이 땅에 닿은 곳에 작은 나무를 그려 넣었다.
“골렘이 우리를 봤어요?” 보리가 물었다.
“아직은 잘 몰라. 하지만 우리 발걸음이 어떤지 배웠을 거야.”
모아는 그 말을 기록했다. 진동의 순서, 천의 흔들림, 물길의 위치, 사람들의 행동. 철잎이 사람을 해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골렘의 판단인지, 모아가 만든 길의 효과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적었다.
해가 뜨자 숲 밖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왕국군의 신호였다. 피난민들은 몸을 낮췄고, 준서는 수레를 돌리려 했다. 모아는 먼저 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했다. 두 번째 나팔은 더 짧고 가까웠다. 숲의 진동이 한꺼번에 거칠어졌다. 철잎은 팔을 들지 않았지만, 뿌리가 흙 속에서 긴장하며 뻗었다.
“군대가 온 걸까요?” 연화가 물었다.
“아직 몰라요.”
모아는 기록장을 덮었다. 이젠 알아야 했다. 누가 다가오는지 확인하기 전에 명령판을 고치는 건 위험했다. 그렇다고 숲길을 그대로 열어 둘 수도 없었다. 그녀는 철잎에게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세 번 두드렸다. 어젯밤 연화가 썼던 박자였다.
가슴에서 같은 간격의 울림이 돌아왔다. 모아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숨을 내쉬었다. 철잎은 아직 누가 친구인지 배우지 못했다. 다만 기다리는 방법을 처음 배웠다.
피난민들이 물을 나누어 마시는 동안 모아는 통로의 흙을 다시 밟아 보았다. 아이의 작은 발자국은 물길 가까이에 남았고, 수레 바퀴 자국은 바깥쪽에 깊게 파였다. 철잎의 손이 움직였던 지점에는 손가락 자국이 다섯 개 선명했다. 모아는 그 자국을 메우지 않고 경계 표시로 남겼다. 다음번에는 누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비교할 수 있었다.
연화는 자신들이 오기 전에도 군인들이 숲길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들은 피난민에게 길을 비키라 했고, 준서가 거절하자 수레의 쇠테를 떼어 가려 했다. 모아는 그 말을 듣고 나팔 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정찰대가 피난민을 뒤쫓는다면 수레의 쇳소리가 먼저 들릴 것이다. 그녀는 샘터 둘레에 흩어진 쇠붙이를 한곳에 모으게 했다. 혹시 골렘이 다시 반응해도, 사람들이 갑자기 달아나지 않도록 탈출 경로도 정했다.
보리는 흙길에 물방울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걸었다. 손에 쥔 작은 병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아이는 모아가 알려 준 길을 따라 갔다가 돌아왔다. 철잎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보리는 돌아와 병을 내밀었다. “이제 이 길은 기억하겠죠?” 모아는 병을 받아 뚜껑을 조였다. “기억하게 도와줄 수 있어. 대신 우리가 매번 같은 약속을 지켜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