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산의 구조 요청

2화: 지도 밖의 구조자
지훈은 구조자를 끌어올린 뒤에도 다른 사람을 찾으러 내려가지 않았다.
우선 부상자의 호흡과 체온을 확인해야 했다. 그는 은박 담요를 두르고, 한별에게 위성 전화로 구조대 의료 지원을 요청하게 했다. 구조자는 스스로 걸을 수 있었지만 오른발목을 제대로 딛지 못했다. 이름은 이도윤, 나이는 스물둘이라고 했다.
“11년 전 길을 잃었다고 했죠?”
“그때는 열한 살이었어요. 여기서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지훈은 구조 수첩에 진술을 그대로 적었다. 현재 날짜를 말해 달라고 하자 도윤은 2015년 11월 4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알고 있었고, 가족 이름도 기억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도 신분증도 없었다.
한별은 무전 호출의 녹음과 도윤의 목소리를 비교했다. 음색은 같았지만, 발음과 호흡이 일치한다고 해서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두 녹음을 따로 저장하고, 구조대에 전달할 때 신원 미확인으로 표시했다.
“다른 두 명은 어디 있습니까?” 지훈이 물었다.
도윤은 절벽 아래에 더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세 명이라고 말한 건 무전 속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뒤에 자신도 세 명이라고 반복했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산장지기 박노인이 구조대가 오기 전에 능선에 도착했다. 그는 지훈이 가진 오래된 지도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 길은 막힌 지 오래야. 예전 지형도에만 남아 있어.”
“철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철탑은 20년 전에 철거했지만, 기초는 남았지. 11년 전 눈사태 때 그쪽이 무너졌어.”
도윤은 눈사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바람이 약했고, 어머니가 산 아래에서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노인은 어머니의 이름을 듣고 한참 말이 없었다. 그 여성은 11년 전 눈사태 때 사망한 등산객 중 한 명이었다.
“그럼 도윤 씨는 그때 같이 있었나요?”
노인은 대답을 확정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구조 기록에는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실종된 것으로 적혔다.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훈은 기록을 확인할 때까지 도윤을 구조 장소에 두고 이동하지 않기로 했다.
한별은 기상 상황을 살폈다. 바람은 정상 방향에서 불고 있었지만, 북쪽 골짜기에서는 바람개비가 반대로 돌았다. 그녀는 측정값을 다시 확인하고, 장비를 바꿔 두 번 측정했다. 바람의 방향은 계속 달랐다. 능선 아래에는 독립된 기류가 있었다.
지훈은 구조대에 도윤의 상태와 날짜 진술을 전달했다. 본부는 추가 수색을 금지하고, 구조자를 안전한 산장으로 이송하라고 했다. 도윤은 산장을 거부했다. “그곳에 가면 다시 사라져요.”
“지금은 부상자라서 의료 확인이 필요합니다.”
“내가 여기 있으면 다음 사람을 올릴 수 있어요.”
도윤은 무전기를 가리켰다. 수신등이 켜져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훈은 먼저 산장까지 이동해 진료를 받고, 날이 밝으면 수색 여부를 다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도윤은 동의했지만, 한별의 손목시계를 보고 멈춰 섰다.
“시계가 22시 14분이 아니에요.”
한별의 시계는 22시 19분이었다. 지훈의 시계는 22시 20분. 무전기 기록은 22시 14분이었다. 장비마다 시간이 어긋나 있었다. 한별은 시계의 오차를 적고, 도윤에게 현재 날짜를 다시 물었다. 그는 2015년이라고 답했다.
산장으로 가는 길에 도윤은 낡은 나무 표식을 찾아냈다. 표식에는 강유민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지훈은 그 표식을 직접 확인하고도 손을 대지 않았다. 유민은 3년 전 실종됐고, 그 이름이 이곳에 있다는 건 누군가 최근에 새겼거나, 옛 표식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노인은 표식을 보고 지훈에게 말했다. “네 동료가 마지막으로 여기서 무전을 보냈어. 구조 요청을 했지만, 본부 기록에는 없었지.”
지훈은 그 말을 듣고 노인을 붙잡지 않았다. 그는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노인은 당시 구조대가 능선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유민의 가족에게 거짓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장에 도착하자 도윤은 응급 처치에 동의했다. 그의 발목은 염좌였고, 동상은 없었다. 의료 담당자는 구조 날짜를 확인하려 했지만, 도윤은 기록에 적힌 날짜가 맞지 않다고 했다.
도윤은 산장 침상에 앉아 발목에 감은 압박 붕대를 풀려고 했다. 지훈이 말리자 그는 다친 발을 보여 줬다. 붓기는 줄었지만, 발목 바깥쪽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의료 담당자는 그 흉터가 최근 상처가 아니라고 했지만, 도윤은 자신이 언제 다쳤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한별은 구조 시각과 도윤이 말한 2015년 날짜를 따로 기록했다. 기록에는 그가 그해 11월에 실종됐다고 적혀 있었지만, 구조된 시간은 현재 밤이었다. 산악 구조대가 사용한 좌표는 과거 지도와 맞지 않았다. 두 지도 사이의 편차를 보정하자, 무전의 유령 좌표는 폐쇄된 능선의 옛 철탑 위치와 거의 일치했다.
“이 기록이 맞다면 도윤 씨는 11년 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죠?”
“그 답은 지도만으로 알 수 없어요.” 한별이 말했다.
박노인은 도윤에게 가족의 이름과 살던 동네를 물었다. 도윤은 집 앞에 있던 파란 대문과 어머니가 매일 끓이던 보리차를 기억했다. 노인은 그 기억이 실제 가족의 주소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도윤은 어머니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반복했다.
지훈은 가족에게 연락하기 전에 도윤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는 자신의 사망 기록이나 실종 기록이 가족에게 알려질까 봐 걱정했다. 도윤은 어머니에게 연락해도 좋다고 했지만, 현재 날짜를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훈은 그 요청을 구조 기록에 남겼다.
가족 연락처는 과거 신고서에 적혀 있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도윤의 누나였다. 그녀는 이름을 들은 뒤 한참 말이 없었다. “동생은 11년 전에 실종됐어요. 아직 찾는 걸 멈추지 못했어요.” 그녀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확인되지 않은 음성을 듣는 건 너무 큰 기대를 만들 수 있었다.
지훈은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음성이나 사진을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현재 이름과 나이, 구조 장소만 전달해도 되는지 물었다. 누나는 공식 기관의 확인이 먼저라고 답했다. 도윤은 통화를 듣지 못했지만, 지훈의 표정을 보고 결과를 알아챘다.
“누나가 살아 있나요?”
“예. 하지만 지금은 연락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대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상에 누웠다. 그는 가족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실종이 가족에게 어떤 시간을 남겼는지 알고 싶어 했다. 한별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산장 밖에서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한별은 기상 경보를 확인하고 모든 인원을 실내에 대기시켰다. 노인은 창문을 닫으며 오래된 지도 속 능선 이름을 가리켰다. 그 지명은 현재 지도에서 삭제됐지만,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검은 어깨’라고 불렀다.
“그 길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지훈이 물었다.
노인은 유민의 이름을 말하려다 멈췄다. “그날 기록에는 구조자 한 명이라고 적혔어. 내가 산장에 데려온 사람은 둘이었는데.”
노인은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도 왜 기록이 한 명인지 몰랐다. 그는 보관해 둔 구조 수첩을 찾아 테이블에 펼쳤다. 수첩에는 젖은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잉크는 번졌지만, 마지막 문장은 읽을 수 있었다. ‘한 명은 아직 능선에 남아 있음.’
그날 밤 산장 무전기에서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도윤의 목소리였다.
“서지훈, 혼자 내려와.”
도윤은 옆 침상에서 잠들어 있었다.
지훈은 무전기를 분리한 뒤에도 산장 안의 침묵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느꼈다. 도윤은 잠든 채로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작은 솔잎이 붙어 있었다. 산장 주변의 소나무와 다른 종이었다. 한별은 솔잎을 채취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표본으로 표시했다.
노인은 그 솔잎이 폐쇄 능선 안쪽에서만 자라는 나무의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종이 다른 곳에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지훈은 다음 수색을 승인받기 전까지 표본을 분석하지 않고, 식물 도감과 비교하기로 했다.
도윤은 눈을 뜨고 “엄마가 산 아래에서 기다린다”고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날짜를 묻지 않았다. 지훈은 그에게 물과 진통제를 권했지만, 도윤은 약을 먹기 전에 성분과 예상 부작용을 물었다. 한별이 포장지의 성분을 읽어 주자 그는 복용에 동의했다.
“제가 기억하는 시간이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그걸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훈이 말했다. “기억과 기록을 나란히 두고 확인하죠.”
도윤은 천천히 약을 삼켰다. 산장 밖의 바람이 잦아들었지만, 북쪽 계곡에서는 여전히 역방향으로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지훈은 본부에 도윤의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실종 신고와 나이만 맞고, 현재 신원 확인은 아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도윤은 자신의 누나 이름을 듣고도 연락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이 기다린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한별은 산장 밖의 풍향을 다시 측정했다. 문 앞에서는 바람이 서쪽으로 불었지만, 능선의 눈발은 동쪽으로 흘렀다. 서로 다른 기류가 겹쳐 있었다. 그녀는 수치와 관측 위치를 기록하고, 지도 위에 바람의 경계선을 그었다.
도윤은 잠들기 전 지훈에게 산 아래에 도착하면 먼저 누나에게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훈은 자신의 기억이 아닌 도윤의 요청으로 기록했다. 한별은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고, 날짜 칸은 비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