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지도에 없는 산의 구조 요청1화

지도에 없는 산의 구조 요청

지도에 없는 산의 구조 요청

AD
스폰서 광고

1화: 22시 14분의 호출

서지훈은 무전기 잡음을 듣고 오른쪽 무릎을 눌렀다.

통신소의 시계는 22시 14분을 가리켰다. 기상 관측관 한별은 송수신기를 끄라고 했지만, 호출음은 이미 스피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북쪽 능선, 구조 요청. 세 명 중 한 명이 떨어졌다.” 목소리는 남자였다. 좌표는 현재 지도에 없는 숫자를 말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현재 위치를 설명해 주세요.” 지훈이 무전에 답했다.

“삼각 바위 아래. 오래된 철탑 옆.”

한별은 지도 위에 좌표를 표시했다. 그곳은 산의 북쪽 절벽 바깥이었다. 등산로도 없고, 철탑은 20년 전에 철거됐다. 무전 신호는 6초 뒤 끊겼다.

“동일한 호출이 또 왔어요.” 한별이 말했다.

“언제요?”

“어제도 22시 14분. 지난주에도요.”

지훈은 구조 기록을 확인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록된 호출은 있었지만, 출동 명령은 한 번도 내려지지 않았다. 좌표가 잘못됐고 발신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기록의 원본을 열어 봤다. 호출마다 목소리가 달랐다. 노인, 청년, 여자아이. 내용은 모두 구조 요청이었다.

“신호가 실제 산에서 오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지훈은 즉시 출동하지 않았다. 기상은 좋지 않았고, 위치는 낭떠러지 근처였다. 한별은 바람 방향을 확인하고, 구조대장에게 무전 사실을 보고했다. 대장은 야간 수색을 승인하지 않았다. 대신 통신소 외부의 방향 탐지기를 켜서 신호 출처를 좁히라고 했다.

지훈은 장비를 챙기며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현재 이름이 없는 능선이 연필로 표시돼 있었다. 그 능선은 3년 전 동료 강유민이 실종된 구역과 맞닿아 있었다. 공식 기록에서는 유민이 단독 수색 중 조난된 것으로 처리됐다.

한별은 지훈의 손에서 지도를 가져왔다. “오늘 나가면 안 돼요. 바람이 능선 안쪽으로 밀고 있어요.”

“신호가 실제 사람이라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구조대가 조난자를 만들면 안 돼요.”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전기에서 다시 호출이 들렸다. 이번에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저는 이도윤입니다. 11년 전 겨울에 길을 잃었습니다. 아직 해가 안 떴어요.”

그는 현재의 구조 요청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종 날짜를 11년 전이라고 했다. 지훈은 출동을 보류하고, 신호 강도가 가장 높았던 북쪽 관측 지점만 확인하기로 했다. 한별은 현장 접근 금지선을 넘지 않는 조건으로 동행했다.

그들은 헤드램프와 로프, 저체온 구조 담요를 챙겼다. 무전기는 예비 배터리까지 두 개를 가져갔다. 지훈은 구조 수첩에 출발 시각과 인원, 기상 상태를 적었다. 한별은 수첩의 앞장을 넘기다 유민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보았다.

“아직도 그날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버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북쪽 능선으로 가는 길은 젖은 낙엽으로 미끄러웠다. 지훈의 무릎이 내리막에서 흔들렸다. 그는 보폭을 줄이고 로프를 나무에 걸었다. 한별은 바람 소리와 나뭇잎 방향을 기록했다. 기압계는 정상인데 체감 온도는 갑자기 떨어졌다.

관측 지점에 도착하자 무전기의 수신등이 켜졌다. 신호는 바로 아래의 절벽에서 왔다. 지훈은 안전선을 묶고, 한별에게 대기 위치를 지정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구조 요청자에게 이름과 부상 상태를 물었다.

“대답해 주세요. 현재 몇 명입니까?”

“셋.”

“다친 사람은요?”

“한 명은 이미 못 일어나.”

“지금 날짜를 말해 주세요.”

무전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같은 남자가 답했다. “11월 4일. 눈이 내리기 전날.”

오늘은 10월 1일이었다. 지훈은 절벽으로 내려가지 않고, 먼저 구조대에 위치를 다시 보고했다. 한별은 줄의 매듭을 확인하고 바람이 바뀌는지 지켜봤다. 호출자는 바닥에 돌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려줬다. 소리는 지훈의 발밑에서 울렸다.

지훈은 먼저 구조대 본부에 현재 위치를 보고했다. 좌표를 두 번 읽고, 본부가 같은 값으로 받아 적었는지 되물었다. 보고가 끝나기 전에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본부는 야간 수색을 승인하지 않았지만, 통신소와 연결된 안전 구역 안에서 접근 여부를 확인하도록 허용했다.

한별은 관측 장비를 바위에 고정하고 바람의 방향을 측정했다. 신호가 강해질 때마다 온도계 수치가 1도씩 떨어졌다. 배터리 문제인지 확인하려고 예비 장비를 꺼냈지만 같은 변화가 반복됐다. 그녀는 수치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현상을 확정하지 않고, 시간과 장비 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신호가 다시 오면 녹음할게요. 지훈 씨는 답하지 말아요.”

“구조 요청에 답하지 않으면 위치 확인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나만 하세요. 움직이라고 지시하지 말고요.”

지훈은 무전 채널을 바꾸지 않고 호출자의 상태를 물었다. 응답자는 숨을 헐떡이며 세 사람이 바위 아래에 있다고 했다. 발목을 다친 사람이 한 명, 길을 잃은 사람이 한 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 호출자는 세 명 중 한 명이 떨어졌다고 했다. 구조 대상 숫자가 맞지 않았다.

지훈은 한 명씩 이름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응답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 각자 다른 날짜를 답했다. 첫 사람은 11월 4일, 두 번째는 2월 19일, 세 번째는 “오늘 밤”이라고 했다. 한별은 그 대화를 녹음하고, 무전 시간 표시와 별도 시계를 함께 기록했다.

“그 세 날짜는 모두 과거예요.”

“여기서는 아직 눈이 안 왔습니다.” 호출자가 말했다.

지훈은 날짜를 알려 주지 않았다. 구조 대상이 혼란을 겪고 있다면 현재 정보를 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신호가 어디서 온 건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전으로 알려 주는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악용될 수도 있었다.

그는 산장지기 박노인에게 연락해 북쪽 능선의 옛 철탑 위치를 물었다. 노인은 그곳이 낙석 구간이라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답했다. 지훈은 현장에 직접 가기보다 통신소에서 안전선을 걸어 접근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유민도 처음엔 신호가 진짜인지 확인하러 갔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지훈의 오른쪽 무릎이 저렸다. 3년 전 수색 때도 무릎을 다친 채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유민은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고, 지훈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공식 보고서는 판단이 적절했다고 했지만, 지훈은 그날의 무전이 끊긴 순간을 잊지 못했다.

한별은 지훈의 손이 로프를 꽉 쥔 것을 보고 손을 떼라고 했다. “지금은 유민을 찾는 게 아니라 구조 요청을 확인하는 겁니다.”

“알고 있어요.”

“그럼 절벽 아래로 내려가지 마세요.”

지훈은 구조선에 카라비너를 연결하고, 안전거리 표지를 설치했다.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본인 한 명뿐이었다. 한별은 본부와 통신을 유지하고, 노인은 산장으로 돌아가 비상 의료품을 준비하기로 했다.

호출자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은 이미 떨어졌어.”

지훈은 어느 사람이 다쳤는지 물었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절벽 아래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졌다. 소리는 지훈이 있는 곳보다 한참 아래에서 났는데, 무전에는 바로 옆에서 들린 듯 크게 울렸다.

한별이 그의 하네스를 잡았다. “지금 내려가면 안 됩니다.”

지훈은 로프를 고정한 상태로 손전등만 아래로 비췄다.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올라왔다. 그는 구조대에 상황을 알리고, 접근자에게 손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손은 그대로 멈췄다.

바위 틈 사이로 손전등 빛이 비쳤다. 손 하나가 바깥으로 뻗어 나왔다. 지훈은 손을 잡기 전에 부상 정도와 동의를 물었다. “끌어올려도 됩니까?”

“네. 그런데 한 사람만 올려 주세요.”

지훈은 아래를 확인했다. 한 사람의 어깨가 보였고, 그 뒤에 더 깊은 어둠이 있었다. 그는 로프를 내리며 구조 수첩에 구조 시작 시각을 썼다. 발신자는 구조자의 이름을 묻고, 지훈은 서지훈이라고 답했다.

“유민이가 보냈구나.”

그 사람은 지훈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별은 안전선을 다시 확인했다. 로프는 가장자리에 쓸리지 않도록 보호대를 씌웠고, 지훈의 하네스에는 보조 연결줄이 하나 더 걸렸다. 본부에 현재 위치와 접근 범위를 다시 보고하고, 승인된 지점에서만 아래를 확인하겠다고 알렸다.

호출자는 세 사람의 이름을 말해 달라는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 날짜를 차례로 말했다. 11월 4일, 2월 19일, 그리고 오늘 밤. 한별은 호출 시각과 장비 시각을 따로 기록했다. 지훈은 날짜가 모두 다른 이유를 묻지 않고, 지금 호흡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한 명은 다쳤다. 한 명은 길을 잃었다.”

“남은 한 명은요?”

“이미 떨어졌다.”

한별은 그 대답을 듣고 손전등을 들었다. 절벽 아래에서 바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지만, 눈에 보이는 낙석은 없었다. 지훈은 로프를 고정한 채 구조 고리를 먼저 내려보냈다. 아래의 손은 고리를 잡지 않았다. 손가락이 세 번 움직였다가 바위 틈으로 사라졌다.

그는 더 내려가지 않았다. 본부에 구조 보류 사유를 알리고, 현장을 표시했다. 구조 요청을 받은 뒤에도 들어가지 않는 선택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한별은 호출을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듣지 않았다. 원본은 따로 보존하고, 현장에서 적은 수첩을 방수 봉투에 넣었다.
추가 호출이 올 때까지 지훈은 그 자리에 남아 무전 응답을 기다렸다. 한별은 안전선의 장력을 계속 확인했다. 호출이 끊겨도 구조 기록은 남겨야 했다. 그는 수첩의 마지막 칸에 ‘접근하지 않음, 이유: 좌표 확인 불가와 낙석 위험’이라고 적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