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형사의 마지막 목격자

6화: 장소 선점
빗줄기가 앞 유리를 사납게 때렸다.
와이퍼가 거친 소리를 내며 시야를 쓸어냈지만 쏟아지는 폭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한도윤은 가파른 비탈길 어귀에서 운전대를 거칠게 꺾었다. 순찰차의 차체가 젖은 옹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저기다.”
조수석의 서진혁이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북아현동 34-12번지. 낡은 붉은 벽돌의 사층짜리 연립주택이 비탈길 중턱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외벽 곳곳에 붉은 페인트로 ‘철거’가 적혀 있었고 입구의 보안문은 경첩이 떨어진 채 덜컹거렸다.
도윤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가 젖은 노면을 긁으며 멈춰 섰다.
“오후 네 시 사십 분. 골목에 낯선 차는 없어. 놈보다 먼저 도착했어.”
도윤이 권총 홀스터 단추를 풀었다. 진혁이 문손잡이를 쥐며 차갑게 읊조렸다.
“방심하지 마. 범인은 이미 명단을 쥐었어. 임재문을 유인한 직후 곧장 움직였다면 우리보다 빨랐을 수도 있어.”
“지하실부터 확보한다.”
도윤이 문을 밀치며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진혁도 지체 없이 몸을 던졌다.
차가운 빗물이 순식간에 옷을 적셨다. 두 사람은 웅덩이를 밟으며 연립주택 반지하로 통하는 시멘트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계단 끝 녹슨 철문에 ‘지하 1호’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도윤이 주먹으로 철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서대문경찰서 강력팀입니다! 배서율 씨 계십니까!”
빗소리 외에는 침묵뿐이었다. 도윤이 손잡이를 비틀었으나 문은 잠겨 있었다.
“배서율 씨! 신변이 위험해서 출동했습니다! 문 여세요!”
그 순간이었다.
달칵, 챙강!
철문 안쪽에서 유리병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가구가 마룻바닥을 거칠게 긁으며 넘어지는 다급한 소리가 이어졌다. 사람이 안에 있었다.
“배서율 씨! 경찰입니다!”
도윤이 문을 들이받았다. 그러나 안쪽의 발소리는 방 안쪽 깊숙한 곳으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진혁의 뇌리에 오명수의 마지막 행적이 스쳤다. 수요일 밤 오명수는 공중전화로 배서율에게 경고했다. 누군가 생존자들을 사냥하고 있으니 아무도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찰마저도 한패일지 모르니 도망치라고 외쳤던 것이다.
배서율의 귀에는 형사들의 목소리가 자신을 죽이러 온 자들의 협박으로 들리고 있었다.
“도윤아, 비켜!”
진혁이 도윤을 밀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체중을 실어 도어록 옆 철문 이음매를 군화 뒤축으로 강하게 걷어찼다.
쾅!
낡은 문틀이 찢기며 먼지가 쏟아졌다. 진혁은 틈도 주지 않고 다시 한번 같은 자리를 짓밟았다.
쩌적, 쾅!
녹슨 걸쇠가 뜯겨 나가며 철문이 안쪽으로 거칠게 밀려 열렸다.
“경찰이다!”
진혁과 도윤이 총구를 겨누며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방 안의 공기는 얼음장 같았다.
눅눅한 곰팡내와 빗물 냄새가 폐를 찔렀다. 진혁은 전술 플래시를 켰다. 백색 광선이 좁은 단칸방을 훑었다.
바닥은 난장판이었다. 챙기다 만 배낭이 쓰러져 있었고 벽에 걸린 달력에는 수요일 날짜에 붉은 엑스표가 크게 쳐져 있었다. 그 옆 메모지에는 ‘아무도 믿지 말 것’이라는 글씨가 갈겨져 있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혁아, 여기!”
도윤의 손전등이 싱크대 옆 좁은 환기창을 비추었다. 미닫이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방범창 쇠창살이 쇠톱으로 잘려 바깥 골목으로 밀려나 있었다. 배서율은 처음부터 비상 탈출로를 파놓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틀 턱에 마르지 않은 흙 발자국이 선명했다.
“우리 목소리를 듣자마자 창문으로 튄 거야!”
도윤이 주먹으로 벽을 쳤다.
“뛴 지 일 분도 안 됐어. 발자국이 위쪽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내가 정문으로 나가서 아래쪽 도로를 차단할게!”
도윤이 현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혁은 망설이지 않고 창틀 위로 몸을 솟구친 뒤 뒤편 흙비탈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철퍽!
군화가 흙탕물을 튀겼다. 빗줄기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진혁은 비탈길 위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두운 골목 가로등 아래로 빗물을 튀기며 계단을 기어오르듯 달리는 인영이 보였다. 남색 윈드브레이커를 입은 사내, 배서율이었다.
“배서율 씨!”
진혁이 고함을 지르며 젖은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빗물이 계단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진혁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발자국을 쫓았다. 저만치 앞, 언덕 정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배서율이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청년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칠 년 전 백야원 화재 현장에 갇혔던 열일곱 살 소년의 눈빛 그대로였다.
배서율은 진혁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배서율 씨, 멈춰요! 서울청 강력계 서진혁 경위입니다! 잡으러 온 게 아닙니다!”
진혁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다가갔다.
“거짓말 마! 다 한패잖아!”
배서율이 울부짖었다.
“명수 삼촌도 그렇게 말했어! 경찰도 믿지 말라고 했어! 너희가 삼촌도 죽였지? 날 어디로 끌고 가려고!”
“오명수 씨는 이미 살해당했습니다! 그래서 지키려는 겁니다! 혼자 있으면 죽습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청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배서율은 들고 있던 우산대를 집어던진 뒤 뒤편의 찢어진 방수포 가림막 틈새로 제 몸을 사정없이 쑤셔 넣었다.
북아현 재개발 제3구역.
철거 공사가 중단된 유령 구역이었다.
“안 돼! 들어가지 마!”
진혁이 몸을 날렸으나 배서율은 이미 어둠 속으로 굴러떨어진 뒤였다.
치직.
무전기에서 도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혁아! 배서율 어디로 갔어?”
“철거 구역 안으로 뛰어들었어! 옛 상가 쪽이야! 서둘러!”
진혁은 찢긴 가림막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폐허 한가운데 삼층짜리 옛 대중목욕탕 건물이 거대한 무덤처럼 서 있었다. 붉은 벽돌 굴뚝은 부러져 있었고 깨진 창문마다 검은 허공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진창 위에 찍힌 발자국이 목욕탕 입구로 이어져 있었다. 진혁은 권총을 뽑아 들고 안으로 발을 디뎠다.
건물 내부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플래시를 비추자 벗겨진 페인트와 깨진 타일 벽면이 드러났다. 발을 디딜 때마다 타일 파편이 부서졌다. 퀴퀴한 곰팡내와 녹 냄새가 진동했다.
진혁은 숨을 죽였다.
이층 복도 쪽에서 헐떡이며 울음을 참는 미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배서율 씨.”
진혁이 벽에 몸을 붙인 채 낮게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바닥을 비추던 손전등 불빛에 붉은 액체가 번쩍였다.
신선한 피였다.
피는 계단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진혁은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보일러실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퍽!
“컥…… 끅……!”
진혁은 보일러실 철문을 발로 차 열었다.
쾅!
손전등 불빛이 콘크리트 바닥을 비추었다. 배서율이 쓰러져 있었다. 가슴과 복부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나와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앞에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벽에 기대어 놓인 검은 우산. 손잡이 끝의 흰 원형 표식. 남자는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배서율의 가슴에서 얇은 흉기를 천천히 뽑아내고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턱선과 메마른 입술. 서린이 증언했던 바로 그 차갑고 침착한 살인자의 형상이었다.
진혁의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장소를 선점한 것은 경찰이 아니었다. 범인은 경찰이 배서율의 거처로 들이닥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배서율이 도망칠 유일한 탈출로, 이 폐건물 안쪽에 미리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혁과 도윤의 추격이 결과적으로 배서율을 살인자의 칼날 앞으로 밀어 넣은 꼴이었다.
“이 개자식……!”
진혁이 권총을 들어 올렸다. 남자는 총구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혁을 응시하며 희미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남자의 발끝이 낡은 철제 소화기를 걷어찼다.
깡!
소화기가 벽에 부딪히며 부식된 노즐이 터졌다.
치이이익!
뿌연 분말이 좁은 보일러실을 하얗게 집어삼켰다. 진혁이 기침을 뱉으며 총구를 겨누었으나 창문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먼저 허공을 갈랐다. 남자는 외벽 비상 탈출구 창틀로 뛰어내렸다.
“거기 서!”
진혁이 창가로 달려들어 총구를 내밀었지만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남자의 그림자는 이미 증발해 있었다.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허억…… 쿨럭……!”
배서율이었다. 진혁은 총을 집어넣고 배서율에게 무릎을 꿇었다. 흉기는 늑골 사이를 뚫고 들어가 대동맥을 찢어 놓았다.
“배서율 씨! 정신 차려요!”
진혁은 셔츠를 찢어 상처 부위를 온 체중으로 억눌렀다. 젖은 천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눈 떠요! 도윤아! 구급차 불러!”
배서율의 떨리는 손이 진혁의 소매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입술 사이로 피거품이 흘러넘쳤다.
“……그놈이……”
배서율이 헐떡이며 쉰 목소리를 쥐어짰다.
“……미리…… 와 있었어…… 계단 뒤에……”
“말하지 마요. 숨 쉬어요!”
배서율의 손가락이 진혁의 옷깃을 부스러뜨릴 듯 쥐어뜯었다.
“……시계…… 시계가 멈춰 있었어…… 놈 손목에……”
“시계?”
“……명수 삼촌 말이 맞아…… 놈이…… 명단을…… 전부……”
배서율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청년의 손에서 무언가 툭 하고 핏물 웅덩이로 떨어졌다. 액정에 금이 간 스마트폰이었다. 깜빡거리던 화면에 백야원 시절의 낡은 단체사진 섬네일이 잠시 번쩍이다가 검게 꺼졌다.
“배서율 씨!”
진혁이 외쳤으나 청년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진혁의 소매를 쥐고 있던 손가락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호흡이 완전히 멎었다.
보일러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도윤이 총을 든 채 들이닥쳤다.
“진혁아! 놈은!”
도윤의 외침이 멎었다. 피투성이가 된 배서율과 피범벅이 된 진혁의 손을 본 도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배서율 씨?”
도윤이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상황실! 북아현 제3구역 폐건물이다! 코드 제로! 구급차 긴급 요청한다!”
진혁은 천천히 손을 떼었다.
손에 묻은 피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칠 년 전 백야원의 불길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던 그날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내가 죽였다.
범인보다 먼저 도착했다고 믿었던 오만이, 피해자를 지킬 수 있다고 자만했던 선택이 배서율을 살인자의 칼날 앞으로 내몰았다. 범인은 형사들의 발걸음 하나까지 장기판의 말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진혁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다섯 시 삼십오 분.
초침은 멈추지 않았다.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고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두 번째 루프는 끝나지 않았다. 배서율은 시간을 되돌리는 ‘마지막 피해자’가 아니었다. 범인의 시간표는 여전히 금요일 새벽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진혁은 바닥에 떨어진 배서율의 피 묻은 스마트폰을 주워 들었다. 주먹을 쥔 손가락 사이로 붉은 핏물이 빗물과 함께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