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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 폐선으로 우주 함대를 만듦3화

은하계 폐선으로 우주 함대를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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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되살아난 엔진

바이스에 물린 펌프 카트리지는 차가웠다.

도윤은 분해용 렌치를 전면 하우징의 육각 볼트에 물렸다. 억지로 비틀면 녹슨 나사산이 뭉개진다. 침투유를 나사산 틈새로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숨을 골랐다.

톡, 톡.

렌치 손잡이 끝을 고무망치로 가볍게 두드렸다. 충격이 파고들자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볼트가 차례로 풀려 나왔다.

하우징 덮개를 벗겨내자 갈색으로 산화된 잔여 냉각재 찌꺼기가 드러났다.

회전축과 날개 틈새마다 굳어버린 침전물이 마치 송진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전력변환기에서 떼어냈을 때 손끝으로 확인했던 굳은 저항의 정체였다.

"이러니 손으로 돌려도 꿈쩍을 안 하지."

도윤은 공구 선반에서 소형 온열 건과 세척용 유기용제를 꺼냈다.

베어링이나 날개에 무리한 힘을 가하면 축이 휠 수 있었다. 한번 휜 회전축은 고속 회전 시 편심 진동을 일으키고 결국 하우징을 갈아먹으며 터져 버린다.

그는 온열 건으로 하우징 외벽을 천천히 데웠다.

치이익.

열을 받은 금속이 미세하게 팽창하며 침투제를 빨아들였다. 굳어 있던 침전물 표면에서 점성이 풀리기 시작했다. 도윤은 얇은 황동 주걱으로 축 틈새의 찌꺼기를 긁어냈다. 부서진 가루들이 작업대 아래 수거통으로 떨어졌다.

축 끝에 렌치를 걸고 손목을 이용해 좌우로 잘게 흔들었다.

끼긱.

둔탁한 마찰음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저항감이 묽어지더니 어느 순간 툭 하는 감각과 함께 축이 돌아갔다.

"풀렸다."

세척 스프레이를 분사하자 고압 액체가 침전물을 씻어내며 쏟아져 나왔다.

축을 빼내 베어링 롤러와 임펠러 날개 표면을 살폈다. 날개 끝의 미세한 마찰 흔적을 제외하면 균열이나 휨은 없었다. 방열 실리콘 그리스를 롤러에 얇게 바르고 축을 다시 조립했다.

손가락 끝으로 축을 튕기자 임펠러가 쉭 소리를 내며 매끄럽게 서너 바퀴를 헛돌았다.

도윤은 휴대 단말의 측정 케이블을 펌프 검사 포트에 꽂았다. 회전 저항값과 유격 수치가 아르카의 정비 회선으로 넘어갔다.

콘솔 화면의 푸른 설계선이 깜빡이며 판정을 갱신했다.

[회전부 고착 해소 확인]
[동일 계열 대체품 승인: 유량 편차 -4.2% 이내 예상 (허용치 충족)]
[소요 시간: 1시간 15분]

시계 구석의 독촉 창이 붉게 반짝였다.

[대출 상환 잔여 시간: 44시간 31분]
[미납 원리금: 72,400 C]

펌프를 살려내는 데 1시간 넘게 썼지만 이제 진짜 조립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도윤은 작업대 위에 챙겨 둔 공구와 부품을 공구함에 담았다.

살려낸 냉각 카트리지, 수리함에서 꺼내 둔 규격 밀봉 고리 두 개, 알루미늄 합금 연결관 한 묶음.

그는 격리 표찰이 붙은 선미 통로 대신 거주구 격벽 측면의 보조 기관실 문으로 향했다. 기밀 레버를 내리고 문을 밀자 좁고 차가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름 냄새와 오래된 전선 피복 냄새가 훅 끼쳐왔다.

성인 한 명이 등을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만큼 협소했다. 머리 위로는 전력 케이블이 지나갔고 양옆은 비상 차폐벽이었다.

도윤은 작업등 밴드를 두르고 보조 추진기 뒤편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벽면을 따라 예비 배관 두 가닥이 보였다. 마개로 막혀 있던 배관 끝단과 보조 추진기 냉각수 유입구 사이의 거리는 대략 45센티미터.

단순한 직선 연결이 아니었다. 보조 배전 박스를 피하려면 파이프를 두 번 꺾어야 했다.

"각도가 65도쯤 나오겠군."

도윤은 알루미늄 배관에 파이프 벤더를 물렸다. 힘을 일정하게 주며 천천히 배관을 구부렸다. 일정한 곡률로 휜 배관을 대보며 길이를 측정했다. 자를 지점을 긋고 소형 파이프 커터를 물렸다. 날을 조여가며 커터를 회전시키자 맑은 금속음과 함께 파이프 끝단이 떨어져 나갔다.

절단면 안쪽에 생긴 거스러미는 손질용 리머를 돌려 깎아냈다.

배관 내부를 깨끗이 불어낸 뒤 그는 보조 추진기 하부 마운트에 재생 카트리지를 얹었다.

덜컥.

볼트 구멍이 맞물렸다. 도윤은 고정 볼트 네 개를 손으로 가체결한 뒤 래칫 렌치를 꺼냈다. 한쪽을 먼저 조이면 플랜지가 비틀려 밀봉면이 뜬다. 대각선 방향으로 번갈아 가며 볼트를 조여 나갔다.

이제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이었다.

수리함에서 챙겨온 규격 밀봉 고리 두 개. 이 부품은 여분이 없었다. 수리함의 해당 칸은 이미 비어 있었고 이번 작업에서 찢어지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도윤은 손끝으로 고무 링의 표면을 훑으며 먼지를 털어냈다.

링 홈에 고리를 밀어 넣고 구부려 둔 알루미늄 배관의 양 끝단을 연결구에 물렸다. 플랜지가 맞물리며 밀봉 고리가 홈 안쪽으로 균일하게 압착되는 감각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딸깍, 딸깍.

토크 렌치로 정정 토크까지 체결을 마쳤다.

기관실 벽에 거치해 둔 단말 화면에서 아르카가 투사하던 푸른 점선 도면이 굵은 실선으로 바뀌었다.

[우회 배관 연결 감지]
[물리적 장착 상태: 양호]
[권고: 냉각재 주입 및 4.2 bar 내압 유지 시험 수행]

허리를 펴자 좁은 격실 천장에 헬멧이 부딪혔다.

도윤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숨을 내쉬었다. 도면대로 길이 이어졌다. 이제 피를 채우고 심장이 뛰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냉각수 주입 작업은 신중해야 했다.

보조 기관실 구석의 보충 탱크에서 합성 냉각액 호스를 끌어왔다. 청록색을 띤 에틸렌글리콜 기반 냉각액은 진공과 저온에서도 얼지 않는 표준 규격품이었다.

도윤은 주입 밸브에 수동 레버식 가압 펌프를 연결했다.

철컥, 철컥.

레버를 누를 때마다 청록색 액체가 우회 배관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배관 상단의 공기 배출 밸브를 열어두자 잔류 공기가 빠져나왔다.

잠시 후 거품 섞인 청록색 액체가 배출구로 튀어나왔다. 도윤은 재빠르게 배출 밸브를 잠갔다.

공기 빼기 작업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압력을 걸어 새는 곳이 있는지 확인하는 내압 시험이었다.

그는 수동 펌프의 레버를 천천히 눌렀다.

압력계 바늘이 눈금을 하나씩 짚으며 올라갔다.

1.0바, 2.0바, 3.0바.

배관 내부 압력이 높아지자 알루미늄 파이프가 미세하게 팽창하며 응력음이 울렸다.

도윤은 숨을 죽이고 연결부를 노려보았다.

3.5바를 넘어서는 순간, 방금 자르고 구부렸던 연결관 엘보 부근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샜다.

"어디야."

그는 주머니에서 비누 거품 누설 검지 스프레이를 꺼내 접합부에 뿌렸다.

재생 펌프 입구 플랜지의 아래쪽 볼트 틈새에서 거품 방울이 보글보글 솟아올랐다. 밀봉 고리가 살짝 덜 눌린 모양이었다.

도윤은 침착하게 토크 렌치를 집어 들었다. 압력이 걸린 상태에서 무턱대고 세게 조이면 고무 링이 찢어진다. 그는 대각선 반대편 볼트 장력을 살짝 풀어 균형을 맞춘 뒤 누설이 일어난 볼트를 8분의 1 바퀴씩 미세하게 조였다.

뽀글거리던 거품이 잦아들었다.

스프레이 액을 닦아내고 다시 검지액을 도포했다. 더 이상 방울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다시 레버를 눌러 규정 작동 압력인 4.2바까지 압력을 올렸다.

바늘이 4.2바에 멈춰 섰다.

[내압 유지 계측 시작: 15분 대기]

도윤은 기관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가운 금속 바닥의 냉기가 작업복을 뚫고 전해졌다.

타이머 숫자가 줄어들었다. 압력계 바늘이 조금이라도 기울면 실패였다. 실패는 곧 시간 낭비였고 배의 압류를 의미했다.

10분이 지나고 14분이 흘렀다.

바늘은 4.2바 눈금 위에 곧게 서 있었다.

삐빅.

[내압 시험 통과: 4.2 bar 기밀 유지 확인]
[1차 누설: 없음]
[보조 냉각 계통 독립 제어 회선 활성화]

단말에서 울린 짤막한 확인음이 정적을 깼다.

도윤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에 쥐가 났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배관은 완벽했다. 이제 멎어 있던 엔진에 불을 붙일 시간이었다.


조종석 콘솔은 여전히 붉은 경고등 몇 개를 띄운 채였다.

도윤은 조종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전면 스크린에는 모래갈매기호가 숨어 있는 암석 협곡의 어두운 절벽면이 비치고 있었다.

콘솔 우측 상단, 오랫동안 꺼져 있던 '보조 추진기' 패널로 손을 뻗었다.

그는 먼저 분리해 두었던 보조 냉각 펌프의 제어 스위치를 올렸다.

위이잉.

선체 뒤편에서 낮고 날카로운 모터 구동음이 울렸다. 폐승강기에서 뜯어내 고착을 풀었던 그 작은 카트리지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콘솔의 냉각 압력 게이지가 안정적인 녹색 호를 그렸다. 유량계 수치가 정상 범위에 안착했다.

[보조 냉각 순환: 정상]
[추진실 온도: 안정화]
[점화 준비 완료]

"좋아."

도윤은 침을 삼켰다.

그는 오른손으로 보조 추진기 시동 레버를 쥐었다. 이 배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뒤로 단 한 번도 제 성능을 내본 적 없던 낡은 보조 엔진이었다.

철컥.

안전 커버를 젖히고 점화 버튼을 눌렀다.

쿠구구궁!

선체 바닥 전체가 묵직하게 요동쳤다.

잔류 연료와 플라스마 점화 플러그가 맞물리며 거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콘솔의 진동 경보가 주황색으로 번쩍였다.

"버텨라."

도윤은 어금니를 악물며 레버를 미세하게 쥐었다.

불완전 연소를 일으키던 엔진 소음이 점차 굵직하고 규칙적인 박동으로 바뀌었다.

쿠우우웅.

모래갈매기호의 뼈대를 타고 묵직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것은 배가 부서지는 떨림이 아니었다. 죽어 있던 근육에 다시 피가 돌며 살아 움직이는 심장박동이었다.

전면 외부 카메라 화면에 선미 보조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플라스마 제트의 잔광이 희미하게 비쳤다.

콘솔 중앙에 떠오른 아르카의 상태창이 녹색으로 갱신되었다.

[보조 추진기 재기동 성공]
[추력 반응 확인: 저속 운용 가능]
[주의: 17번 격벽 지지 구조 손상에 따른 정격 추력 제한 30% 유지]

30퍼센트.

정상적인 전속 항행이나 고속 회피 기동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좁은 협곡 안에서 암벽에 처박히지 않고 기수를 돌려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죽어 있던 배가 마침내 제 발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윤은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며 땀에 젖은 작업복의 축축함이 느껴졌다.

상환 시계를 확인했다.

[대출 상환 잔여 시간: 40시간 51분]
[미납 원리금: 72,400 C]

정비와 배관 조립, 시험에 총 4시간 55분이 걸렸다. 시간은 여전히 촉박했지만 더 이상 고철선에 갇혀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도윤이 보조 추진기 제어 레버를 살짝 당겨보았다.

선체가 부드럽게 우측으로 5도쯤 회전했다. 자세 제어 스러스터와 보조 엔진의 연동이 매끄러웠다.

그때였다.

삐이이-

조종석 상단의 장거리 패시브 센서 단말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즉시 콘솔 조명을 야간 모드로 낮추고 센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소행성 암석 지대 외곽, 약 4만 킬로미터 떨어진 공역에서 광역 지향성 스캔 펄스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펄스의 파형에는 뚜렷한 암호화 서명이 박혀 있었다.

[신호 식별: 카르테스 성간개발국 소속 회수함대 정찰 부표]
[스캔 유형: 중력 왜곡 및 고밀도 잔해 수색 펄스]

협곡 안쪽 깊숙이 숨어 있어 모래갈매기호의 직접적인 선체 윤곽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수색 반경을 좁혀오고 있었다. 카르테스의 회수팀은 제7 폐기 구역에서 감시정을 부수고 달아난 인양선이 멀리 가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포위망을 좁히는 중이었다.

도윤은 조종간을 단단히 쥐었다.

"벌써 냄새를 맡았군."

그의 시선이 콘솔 옆에 놓인 청동 다면체 아르카로 향했다.

엔진은 살려냈다. 이제 이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 빚과 압류, 그리고 다가오는 사냥꾼들의 손아귀를 피해 다음 수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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