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폐선으로 우주 함대를 만듦

4화: 소유권 주장
조종석 콘솔의 비상 경보등이 붉은빛을 흩뿌렸다.
패시브 센서에 찍힌 간섭 파형은 점점 굵어졌다. 소행성 암석 지대 바깥 공역을 가르는 탐색 펄스는 단순한 정찰 부표의 신호가 아니었다.
군용 규격의 암호화 신호였다.
[수신 신호 분석: 카르테스 성간개발국 제4회수팀]
[식별 선체: 중형 무장 경비함 '오르쿠스호']
[탑재 전력: 무인 추적기 3기, 강습 셔틀 1기]
도윤은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벌써 지휘선까지 끌고 왔단 말이지."
도망친 고철 도둑 하나를 잡으려고 중형 경비함을 보낼 리 없었다. 제7 폐기 구역 난파선의 가치, 차폐 상자 속 물건을 노리고 온 게 분명했다.
그는 추진 제어 패널을 응시했다.
되살려낸 보조 추진기 표시등은 녹색을 유지했다. 우회 배관의 냉각 압력도 4.2바에서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지울 수 없는 경고 문구가 박혀 있었다.
[주의: 17번 격벽 지지 구조 균열]
[운항 추력 제한: 정격의 30% 이하]
배를 돌릴 수는 있어도 전속력으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30퍼센트 출력으로 탁 트인 공역에 나갔다가는 경비함의 펄스 레이저 포탑에 요격당할 게 뻔했다.
도윤은 조종석 창밖을 내다보았다.
협곡 출구는 200미터 남짓한 병목 구간이었다. 그곳을 벗어나야 폐선들이 엉킨 잔해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움직이자."
그는 주 추진기 레버를 1단에 걸고 보조 추진기 제어 손잡이를 가볍게 비틀었다.
선미에서 낮고 부드러운 박동음이 울렸다.
모래갈매기호의 기수가 우측으로 미끄러지듯 돌았다. 가공해 맞춘 배관과 재생 카트리지가 선체의 회전을 안정적으로 제어했다.
배는 소행성 암벽의 깊은 그림자를 따라 기어가듯 나아갔다.
열원 방출을 줄이려 내부 난방도 껐다. 입김과 함께 유리창 모서리에 얇은 성에가 끼었다.
[알림: 대출 상환 잔여 시간 40시간 28분]
[미납 원리금: 72,400 C]
시계는 냉정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모래갈매기호가 협곡의 마지막 굽이를 돌아 출구 쪽으로 기수를 내민 순간이었다.
삐이이익-!
조종석 메인 스크린이 붉은 경고창으로 뒤덮였다.
[경고: 고출력 능동 레이더 록온 감지]
[발신원: 오르쿠스호 메인 사격 통제 레이더]
[광역 통신 강제 수신 링크 연결됨]
차폐 암벽을 벗어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적의 센서망이 덮쳐온 것이다.
치지직.
잡음 섞인 합성음이 조종석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식별 번호 TG-409, 변방형 소형 예인선 모래갈매기호. 선주 강도윤. 즉시 추진기를 정지하고 조종간에서 손을 떼라."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고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본함은 카르테스 성간개발국 제4회수팀 지휘함 오르쿠스다. 귀선은 현재 카르테스 자산 무단 점유 및 특수 유물 절도 혐의로 즉각 압류 대상에 지정되었다."
도윤은 침착하게 통신 감도를 조절했다.
"확인하고 말하죠. 모래갈매기호 선장 강도윤이다. 자산 무단 점유라니 무슨 소리요? 여긴 라그랑주 제7 폐기 구역 외곽 공역입니다."
"말장난할 생각 마라, 고철팔이."
통신 화면에 각진 턱의 중년 남성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옷깃의 카르테스 회수 감독관 휘장이 번쩍였다.
"제7 폐기 구역 내 침몰선들은 카르테스 금융국이 파산한 운송사들로부터 포괄 양수한 담보 자산이다. 너는 사전 '발견 신고'도 거치지 않았고 '인양권 등록'도 없이 격벽을 무단 절단하고 내부 화물을 빼돌렸다."
감독관 브란트의 눈매가 사납게 좁혀졌다.
"거기에 우리 무인 감시정 1기를 고의로 파손시켰지. 감시정 파손 배상금 50만 C와 형사 고발이 대기 중이다."
50만 C.
배를 팔아도 갚지 못할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상대를 파멸시켜 코어를 뱉어내게 하려는 덫이었다.
도윤은 콘솔 옆 청동 다면체를 곁눈질했다. 다면체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제7 폐기 구역은 연합 항행 안전국이 지정한 공용 폐기 공역이오. 어떤 기업도 공용 위험 구역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소. 포괄 양수 계약 역시 연합 법원의 비준을 받지 않은 무효 서류일 텐데요."
"법 조항을 제법 외우고 있군."
브란트가 조소 섞인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여긴 법보다 함포가 가까운 변방이다. 그리고 네가 가져간 물건이 뭔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다."
브란트의 시선이 도윤의 콘솔 쪽을 꿰뚫어 보듯 내리꽂혔다.
"선체 안에 숨겨둔 12면체 청동 코어를 즉시 넘겨라. 그렇다면 감시정 건은 오작동으로 처리하고 선박 압류도 유예해 주마. 만약 거부한다면?"
브란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전방 화면에 오르쿠스호의 거대한 회색 선체가 잡혔다. 전장 150미터급 장갑과 연장 펄스 포탑이 모래갈매기호를 겨누었다.
"저항하는 해적으로 간주해 선체 통째로 가루를 만들어 주마. 선택해라, 강도윤."
도윤은 조종간을 고정 래치에 물렸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허세가 아니었다. 변방에서 기업 사병이 민간 인양선을 날리고 해적 소탕으로 꾸미는 일은 흔했다.
더욱이 그들은 청동 코어의 정체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오르쿠스호의 하부 도크 해치가 열리더니 검은색 강습 셔틀 한 척이 사출되었다. 무장 사병들을 태운 셔틀이 모래갈매기호를 향해 빠른 속도로 좁혀왔다.
[접근 경보: 적 강습정 진입 중]
[예상 도킹 접안 시간: 3분 20초]
무장 사병이 발을 들이는 순간 끝이었다.
도윤은 손을 뻗어 아르카 단말의 정비 회선을 열었다.
"아르카, 그 배의 기록을 띄워."
장치는 감정 없는 시스템 안내창만 번쩍였다. 도윤은 처음 차폐 상자를 꺼내며 격벽을 잘라냈던 난파선의 선체 등록 번호를 기억해 냈다.
선미 잔해에 흐릿하게 음각되어 있던 낡은 번호.
'VAL-084'.
그가 단말기에 번호를 입력하자 아르카 표면의 미세한 홈들이 푸른빛으로 짧게 맥동했다.
치지직.
단말기 화면에 텍스트 로그가 쏟아져 내렸다.
[선체 데이터 조회: 발렌티아호]
[함종: 2등급 중형 성간 화물선]
[이력: 40년 전 라그랑주 항로 진입 중 추진기 폭발 조난]
[처리 기록: 운항사 '카르테스 물류' 선체 포기 선언]
[공식 폐선 승인: 미완료 (조난 감사 서류 미제출)]
도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릿속에서 어릴 적 외웠던 연합 인양법 조항들이 스쳤다.
"선체 포기 선언은 했지만 폐선 승인이 안 났다?"
그는 선내 메인 컴퓨터의 법률 라이브러리를 가동했다.
연합 인양법 제14조 제3항.
'선체 포기 선언 후 공식 폐선 승인 절차를 밟지 않고 유기된 조난선에 대하여, 최초 발견 및 물리적 진입을 달성한 인양자에게는 선체의 위험성 평가 및 잔류물 조사를 위한 72시간의 배타적 선점 조사권이 부여된다.'
선점 조사권.
인양권 등록 전이라도 위험 조난선에 처음 진입한 인양자가 현장 조사를 벌이는 동안에는 제3자의 강제 압류를 금하는 보호 조항이었다.
핵심은 뒤에 붙은 단서 조항이었다.
'소유권을 주장하는 원권리자라 할지라도, 선점 조사 기간 중 무력을 행사하거나 퇴거를 강요할 경우 선박과 잔류 화물에 대한 권리를 영구히 상실하며 이는 성간 해적 행위로 간주한다.'
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기업 놈들은 법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데 익숙하지만 그 법이 제 목을 죌 수 있다는 사실은 잊고 산다.
"통신 장거리 광역 모드로 전환."
도윤은 외부 통신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그리고 수신 대상 주파수를 오르쿠스호뿐만 아니라 라그랑주 공역을 관할하는 연합 인양감사국의 공용 자동 기록 부표망으로 지정했다.
"한번 부딪쳐 보자고."
그의 손가락이 송신 버튼을 내리눌렀다.
"연합 인양감사국 중계망 및 카르테스 오르쿠스호에 통고한다."
도윤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차갑게 울려 퍼졌다.
"본선은 선체 번호 VAL-084, 발렌티아호에 대해 연합 인양법 제14조 제3항에 의거하여 정당한 '긴급 선점 조사권'을 발효했다."
오르쿠스호의 브란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뭐라고? 선점 조사권? 미등록 밀렵꾼 주제에 헛소리 집어치워라!"
"헛소리가 아닙니다, 브란트 감독관."
도윤은 아르카에서 추출한 발렌티아호의 과거 항적과 선체 포기 미승인 기록 문서를 공용 중계 부표망에 패킷으로 쏘아 올렸다.
"발렌티아호는 40년 전 카르테스 물류가 선체 포기를 선언했으나 공식 폐선 감사를 종결하지 않고 무단 유기한 배요. 감사국 데이터베이스에 타임스탬프가 찍혔소. 지금 이 순간부터 72시간 동안 이 배와 내부 화물에 대한 조사 권한은 최초 진입자인 내게 있소."
도윤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만약 오르쿠스호가 무력으로 조사를 방해하거나 셔틀을 접안시킬 경우, 카르테스를 연합 인양법 위반 및 성간 해적 행위 혐의로 즉각 제소하겠소. 기록 부표가 모든 패킷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으니 마음대로 발포해 보시지."
"이…… 건방진 자식이!"
브란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변방에서 날뛰는 카르테스라도 공용 기록 부표에 명백한 해적질 증거를 남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에드릭 발렌 국장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통제 불가능한 법적 스캔들이었다.
오르쿠스호의 포탑이 멈칫했다. 강습 셔틀 역시 속도를 줄이며 허공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도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보조 추진기 최대 출력, 우현 역분사!"
쿠구구궁!
선체 내부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재생 냉각 카트리지가 맹렬한 속도로 돌며 압력을 뿜어냈다. 30퍼센트로 묶인 추력이었지만 급선회를 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모래갈매기호는 협곡을 벗어나자마자 사격 각도를 피해 우측으로 꺾였다. 수만 톤의 금속 잔해와 암초가 뒤엉킨 '발렌티아호 암초 지대'로 파고들었다.
슈우우우-
모래갈매기호의 40미터급 선체가 암석과 장갑판 틈새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전장 150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경비함 오르쿠스호로서는 결코 따라 들어올 수 없는 비좁은 미로였다.
치직, 치지직.
통신 화면 속 브란트가 이를 갈며 악을 썼다.
"잔머리를 굴리는구나, 강도윤! 좋다, 법대로 해보자 이거지? 선점 조사권의 현장 물리적 유효 반경은 난파선 반경 2킬로미터 이내다. 네놈이 그 암초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오는 순간 발포하겠다!"
브란트의 차가운 협박이 스피커를 때렸다.
"그리고 네놈의 그 알량한 조사권 서류가 감사국 중앙 서버에서 검증되기 전까지, 현장 집행관의 권한으로 1시간의 소명 유예 시한을 주마. 1시간 뒤에도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감사국이고 뭐고 네놈을 난파선과 함께 통째로 분쇄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뚝.
통신이 거칠게 끊겼다.
오르쿠스호는 암초 지대 외곽을 원형으로 포위하며 감시망을 펼치고 있었다.
도윤은 조종간을 놓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마의 땀방울이 눈가 흉터를 타고 흘렀다.
[대출 상환 잔여 시간: 39시간 40분]
[현장 유예 시한: 00시간 59분 42초]
당장의 강제 나포는 막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1시간 뒤면 브란트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쳐들어올 터였다.
모래갈매기호는 거대한 발렌티아호의 척추 프레임 바로 옆에 자력 앵커를 내리고 정박했다.
그때였다.
삐-익.
조종석 콘솔 한구석, 정비 회선에 연결되어 있던 아르카 단말기에서 비프음이 울렸다.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단말기 화면의 푸른 격자선 위로 미약한 주파수 그래프 하나가 물결치고 있었다. 모래갈매기호의 외벽을 타고 바로 옆에 맞닿은 발렌티아호 잔해 심층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전자기 파형이었다.
치직…… 치직……
규칙적으로 끊어지는 극미약 펄스.
단순한 잔해의 잡음이 아니었다. 전원이 끊긴 심층 격실 깊은 곳에서 비상 신호 발생기가 희미하게 맥동하는 소리였다.
도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신호?"
어둠에 잠긴 거대한 폐선의 심장부를 바라보는 도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