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왕의 시신이 증언하는 밤

3화: 새 왕에게 가는 띠
왕비는 계승띠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검은색처럼 보였던 것은 오래된 남색 비단이었다. 등불을 가까이 대자 금빛 실이 드러났다. 백린은 그 손끝을 보다가 눈을 내렸다. 얼룩인지 그림자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시신을 다시 보면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왕비가 물었다.
“손에 닿은 옷과 다른 곳의 옷이 같은지 보겠습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이 돌아오나?”
백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았다. 의녀가 잘해도 못하는 일이 있었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면 남은 사람이 더 오래 속았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왕비는 한참 탁자를 봤다. 그 침묵이 노여움인지 피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백린은 무릎이 아파 몸을 바꾸려다가 멈췄다. 왕비가 문밖의 도경을 불렀다.
“함께 보아라. 무엇을 놓쳤는지.”
도경은 왕비를 보았다. 함께 보라는 말은 백린에게 허락하면서 도경에게도 책임을 묻는 말이었다. 그는 반대하려다가 고개를 숙였다.
왕비가 먼저 장례 방으로 갔다. 계승띠는 다른 궁녀에게 맡겼다. 궁녀가 비단을 천 위에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백린은 그 천의 한쪽에 어두운 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궁녀가 멈췄다.
왕비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가 오기 전에는 보내지 말아라.”
백린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얼마나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계승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왕비의 침묵을 또 다르게 읽을 수도 있었다.
장례 방에는 어제보다 사람이 많았다. 모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왕비가 들어서자 길이 열렸다. 백린은 그 뒤에서 선왕의 손을 보았다. 여전히 같은 비단을 쥐고 있었다.
도경은 시신 곁에 앉았다. 백린에게 어디를 보겠느냐고 물었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낮았다. 백린은 손등의 검은 자리와 소매 끝을 가리켰다. 도경이 눈을 찌푸렸다.
“병이 오래되면 몸에 여러 흔적이 남는다.”
“그렇습니다. 옷에도 같은 것이 남는지는 보겠습니다.”
백린은 멀리서 먼저 접힌 부분을 살폈다. 손가락 사이에 낀 비단의 안쪽이 다른 곳보다 짙었다. 소매가 겉으로 말린 것이 아니라 안쪽 띠의 한 부분을 손이 잡고 있었다. 선하는 아버지가 가슴을 당겼다고 했다.
그 말과 보이는 것이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 놓였다.
백린이 작은 가위를 꺼내자 방 안의 사람이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몸을 자르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해명할수록 손이 더 떨렸다. 대신 가위 끝을 바느질 선에 댔다.
“옷의 실을 풀겠습니다.”
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은 지켜봤다.
백린은 손에 닿지 않도록 한 땀씩 잘랐다. 평소 여송이 자기 눈을 아끼라고 하던 일이었다. 왼쪽 눈이 흐려져 얼굴을 조금 돌렸다. 왕비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잘 보이지 않느냐.”
백린은 가위를 멈췄다.
“왼쪽은 작은 것을 오래 보면 흐려집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일을 말한 뒤 자리를 빼앗길까 봐 숨겨 왔다. 왕비는 다른 등불을 가져오게 했다. 불빛이 늘자 실의 그림자도 늘었다. 백린은 등불을 조금 옆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선이 보였다.
바느질이 풀리자 비단 한 조각이 손가락에서 떨어졌다. 왕의 손을 억지로 펴지 않아도 됐다. 백린은 떨어진 것을 깨끗한 천에 올렸다. 안쪽의 남색 비단에 검은 가루가 얇게 끼어 있었다. 땀이나 물에 젖은 듯 뭉친 자리도 있었다.
도경이 가까이 왔다.
“염료일 수 있다.”
“맞습니다.”
백린은 답했다. 그는 그 대답에 오히려 불편한 얼굴을 했다. 백린이 독이라고 외쳐 주면 바로 반박할 말이 있었던 듯했다.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서임의 손이 약해졌고 선하가 벽에 기대 앉았다. 선왕은 살아 있을 때 옷을 벗겨 달라고 했다. 옷감이 닿은 자리의 변화와 다른 가능성들을 더 살펴야 했다.
백린은 가슴 안쪽을 보겠다고 했다. 도경은 반대했다. 더 옷을 풀면 장례 때 몸을 덮는 모양이 무너진다고 했다. 왕비는 선왕의 얼굴을 가린 천을 봤다. 그 얇은 천도 끝내 손대지 못했다.
“전하께서는 마지막에 답답하다 하셨다고 합니다.”
백린이 말했다.
왕비의 입술이 잠깐 움직였다.
“평생 그 말씀을 하셨지.”
그녀는 웃지 않았다. 왕이 살아 있을 때 어떤 뜻으로 답답하다고 말했는지는 여러 가지일 것이었다. 궁이, 사람이, 자기 자리와 병이. 이제는 어느 뜻도 물어볼 수 없었다.
왕비가 직접 가슴 쪽의 옷을 걷었다. 백린은 왕비의 손을 막지 않고 아래에 천을 받쳤다. 띠가 닿던 자리에 피부가 붉어져 있었고 접힌 곳에는 검은 것이 남아 있었다. 손보다 넓은 자리였다.
도경이 얼굴을 굳혔다.
“처음에는 없었다.”
그가 말했다.
백린은 그 말을 듣고 그를 봤다.
“언제 보셨습니까?”
“어제 오후. 옷을 갈아입기 전이다.”
그는 자기 말이 선왕의 마지막 진료를 새로 설명해야 하는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았다. 입을 다물었다. 왕비가 도경을 불렀다.
“네가 본 몸과 우리가 보는 몸이 다른 이유를 알아보아라.”
도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병사로 적으려던 결론보다 앞에, 자기가 직접 보았던 시간이 생겼다. 백린은 그 말이 그의 잘못을 줄여 주는지 늘리는지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왕비가 선왕의 옷을 다시 덮었다. 손은 더 이상 비단을 잡지 않았다. 왕비는 그 손을 잠깐 쥐었다. 굳은 손을 자기 손처럼 펴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가 한 번 떨렸다.
방 안의 사람들은 못 본 척했다.
백린도 눈을 내렸지만 기억에서 지우지는 않았다. 조사해야 하는 몸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함께 산 사람이었다. 그것을 잊으면 자기가 본 것만 옳다고 말하기 쉬웠다.
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궁녀가 왕비에게 계승 준비가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대신들이 해가 지기 전에 새 왕을 모시겠다고 청했다. 선왕의 장례가 늦어지면 반대편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백린은 탁자에 두고 왔던 계승띠를 떠올렸다.
왕비가 궁녀에게 물었다.
“띠는?”
궁녀의 얼굴이 하얘졌다. 기다리라고 한 말을 다른 사람이 전하지 못했다. 왕비가 돌아오면 보내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고 했다. 방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띠는 이미 새 왕의 준비 방으로 갔다.
왕비는 궁녀를 꾸짖지 않았다. 바로 몸을 돌렸다. 백린은 천에 올린 비단 조각을 싸서 들고 뒤를 따랐다. 도경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독인지 모른다고 했지.”
“그래서 아직 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백린은 팔을 뺐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는 일과, 확실해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은 달랐다. 이미 두 사람이 그 옷에 닿은 뒤 아파졌다. 같은 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두를 이유는 없었다.
도경은 한 걸음 늦게 따라왔다.
복도 끝에서 선하가 나타났다. 여송이 뒤에서 그를 받쳤다. 그는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백린은 그 얼굴을 보고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 방으로 돌려보내다가 더 늦어질 수 있었다.
“형님의 방으로 가는 길을 압니까?”
백린이 물었다.
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막으면 내 이름을 쓰십시오.”
“옆에 걸을 힘은 남았습니까?”
“지금은요.”
그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목소리의 끝이 숨으로 끊겼다. 백린은 선하의 팔 대신 소매를 잡았다. 검은 자리에 닿지 않는 쪽이었다. 여송이 다른 팔을 받쳤다. 세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
새 왕의 준비 방 앞에는 무장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왕비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지만 백린은 막혔다. 선하가 말했다.
“내 아버지의 손을 살핀 사람입니다.”
무장이 대답했다.
“지금은 새 임금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선하가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멎었다. 눈앞이 흐려지는 모양이었다. 백린은 그를 벽에 기대게 했다. 도경이 도착해 무장에게 길을 열라고 말했다. 무장은 그제야 비켰다.
같은 말이 다른 입에서 나오니 문이 열렸다.
백린은 그 불편함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윤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즉위할 임금의 옷을 이미 입었다. 왕비는 그 앞에서 계승띠를 풀라고 말했다. 궁녀가 막 오른팔에 비단을 둘러 놓았다.
이윤은 모친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지금 벗기면 의식이 무너집니다.”
백린은 탁자 위에 선왕의 옷 조각을 펼쳤다. 검은 가루와 얼룩이 등불 아래에 드러났다. 이윤이 그것을 보자 얼굴이 달라졌다. 아버지의 죽음을 모독하는 것으로 들은 듯했다.
“누가 허락했느냐.”
그가 물었다.
왕비가 답하려 했지만 백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살폈습니다.”
허락을 뒤에 숨으면 지금 보이는 것보다 허락한 사람의 진영이 먼저 말이 될 것이었다. 백린은 손을 내리고 새 왕의 오른팔을 봤다. 띠 아래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팔이 따갑지 않으십니까?”
이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선하가 알아들었다. 그는 벽에서 몸을 떼며 형을 불렀다. 자기 팔의 검은 얼룩을 보여 주었다. 선왕을 붙잡았던 손과 같은 자리였다.
“형님. 이번에는 옷부터 벗으십시오.”
선하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이윤은 동생을 보았다. 평소 같으면 물러나라 했을 얼굴이었다. 그런데 선하가 한 발 앞으로 오다가 무릎을 꿇었다. 꿇으려던 것이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백린과 여송이 그를 받쳤다.
이윤의 오른손도 의자 팔걸이에서 미끄러졌다.
방 안에서 누군가 장례를 준비하던 때와 같은 말투로 소리쳤다.
“문을 닫아라.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백린은 그 목소리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계승띠 끝이 새 왕의 손에서 떨어졌다. 안쪽에 선왕의 소매와 같은 검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제 죽은 사람의 옷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