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왕의 시신이 증언하는 밤

1화: 손에 남은 검은 얼룩
왕의 손은 옷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서백린은 그것부터 보았다. 장례를 준비하는 방에서는 모든 것이 접히고 덮였는데, 오른손만 비단의 끝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굳은 뒤 억지로 놓게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옷만 보아라.”
임여송이 뒤에서 말했다. 백린은 대답하고 한 발 가까이 갔다. 선왕의 얼굴은 얇은 천 아래에 있었다. 어젯밤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었다. 백린은 직접 진료한 적이 없었다. 왕비의 열을 살피다가 문 밖에서 기침을 들은 적은 있었다.
오늘은 기침이 없었다.
왕비 정하연은 병풍 앞에 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싸던 장식이 없어 얼굴이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그녀는 백린에게 장례 옷이 잘못된 곳을 찾으라고 했다. 왜 의녀를 불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백린은 소매 끝을 살폈다. 바느질이 풀린 곳은 없었다. 금빛 실이 손등에 닿은 자리에 검은 얼룩이 보였다. 옷의 때인지 몸의 변화인지 멀리서는 구분되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도 같은 색이 있었다.
“마지막에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백린이 묻자 여송이 숨을 들이켰다. 왕비는 백린을 보았다.
“왕이 죽었는데, 의녀가 먼저 그 일을 묻는구나.”
“옷에 남은 것이 손에도 있습니다.”
왕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병풍 옆에 서 있던 궁녀가 눈을 내리깔았다. 백린은 그녀의 손을 보았다. 손목 안쪽의 검은 얼룩이 소매에서 잠깐 드러났다. 궁녀는 곧 손을 뒤로 숨겼다.
백린은 궁녀를 불렀다.
“이름이 무엇이냐.”
“윤서임입니다.”
“손을 보자.”
서임은 왕비를 봤다. 왕비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의 얼룩은 선왕의 손보다 넓었다. 손목의 피부가 붉어져 있었다. 백린이 손 가까이 다가가자 서임은 움찔했다.
“아프냐?”
“괜찮습니다.”
“묻는 말은 괜찮은지가 아니다.”
서임의 입이 떨렸다.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궁에 들어와 일한 지는 삼 년이었다. 백린은 서임을 전에 보았다. 의녀방에 다른 궁녀를 데려다 놓고 바로 돌아가려던 아이였다. 자기 몸은 늘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갑습니다.”
서임이 마침내 말했다.
백린은 젖은 천을 가져오게 했다. 얼룩이 쉽게 닦이지 않았다. 그녀는 더 세게 문지르지 않았다. 서임의 손이 이미 떨리고 있었다. 옷에 물든 색일 수도 있었다. 약을 옮기다가 묻은 것일 수도 있었고, 선왕의 병과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었다.
같다는 이유만으로 독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르다고 하지도 못했다.
방 문이 열렸다. 주치의 김도경이 들어왔다. 그는 백린의 천부터 보고 선왕의 손을 봤다. 얼굴이 어두워졌다.
“왕비마마. 장례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왕비는 천천히 일어났다.
“무엇이 늦었느냐. 죽은 사람의 옷을 한 번 더 보는 일이?”
도경은 고개를 숙였다. 백린은 그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무엇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도경은 선왕의 손을 옷 안으로 넣으려 했다. 백린이 손을 뻗자 여송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손이 멎었다.
도경도 멎었다.
왕비는 세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아직 덮지 말아라.”
그 말에 백린은 숨을 내쉬었다. 허락받았다는 안도보다 이미 누군가가 자기 행동을 죄로 기억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먼저 왔다. 여송은 팔을 놓고 백린의 소매를 정리해 주었다.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려는 동작이었다.
“서임에게 무엇을 옮겼는지 묻겠습니다.”
백린이 말했다.
도경이 바로 답했다.
“마지막 약은 내가 확인했다.”
“약을 잘못 쓰셨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린을 노려보았다. 백린은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피하면 자신이 먼저 의심을 인정한 모양이 되었다. 궁에서는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이 어디에 놓일지 골라야 했다.
왕비는 서임을 의녀방으로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 다만 장례 옷은 손대지 말라고 했다. 백린이 다시 묻기 전에 도경이 서임을 자기 쪽으로 불렀다. 약방에서 먼저 물을 것이 있다고 했다.
서임은 백린을 보았다. 괜찮다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여송이 먼저 문 쪽으로 갔다.
“아픈 손은 우리가 보겠습니다. 물을 것은 그 뒤에 물으시지요.”
도경은 왕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왕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허락인지 무관심인지 백린은 몰랐다. 서임이 문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백린은 서임에게 마지막으로 만진 옷이 무엇인지 물었다. 서임은 임금의 옷이라고 답했다. 대답이 너무 넓었다. 겉옷인지 속옷인지 다시 묻자 그녀는 손목을 감쌌다.
“그냥 옷입니다.”
여송이 백린을 봤다. 지금 캐물으면 아이의 입이 닫히겠다는 눈이었다. 백린은 질문을 멈췄다. 대신 서임이 걸을 때 발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계단 한 칸을 내려가다 놓칠 뻔했다.
백린이 받쳤다.
“언제부터 이러냐?”
“잠을 못 자서…….”
서임은 말끝을 흐렸다. 의녀방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이마에 땀이 나 있었다. 백린은 서임을 눕히고 손목의 얼룩을 천으로 덮었다. 다른 궁녀가 물을 가져왔다. 서임은 잔을 잡으려다가 놓쳤다.
잔이 바닥에서 깨졌다.
서임은 벌떡 일어나 조각을 주우려 했다. 백린이 손을 잡고 다시 눕혔다. 손은 점점 힘을 잃고 있는데 몸은 죄를 피하려고 먼저 움직였다.
“잔값은 네게 묻지 않는다.”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서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백린은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잔 하나를 깨뜨렸는데도 이렇게 오래 대답하는 사람이 임금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말할지 생각했다.
여송은 문 밖으로 나가 사람을 돌려보냈다. 방 안에 둘만 남자 서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백린의 손이 멎었다.
“누가?”
“어젯밤에. 아무도 모르는 일을 봤으면 이름도 없어지는 거라고.”
서임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백린은 이번에는 눕히지 않았다. 서임이 하고 싶은 말이 자세를 바꾸어야 나올 수도 있었다. 다만 등을 받쳤다.
“무엇을 봤니?”
“제가 옷을 갈아입혀 드렸어요.”
“그건 아까도 들었다.”
“장례 옷을요. 임금이 살아 계실 때.”
백린은 곧바로 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장례 옷을 준비할 수는 있었다. 오래 아픈 사람이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누가, 왜, 살아 있는 왕에게 입혔는지는 다른 질문이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서임은 말을 삼켰다. 여송이 문을 열어 누군가와 다투었다. 백린은 서임의 등을 놓지 않았다.
잠시 뒤 문에 다른 그림자가 섰다. 의창군 이선하였다. 왕의 둘째 아들. 평소 궁에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인데 오늘은 소매가 구겨져 있었다. 그는 의녀방 문턱을 넘지 않고 백린을 불렀다.
“아버지의 손을 보았다지요.”
백린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서임이 침상에서 눈을 감았다.
“보았습니다.”
“그럼 나도 보고 싶습니다.”
“왕자마마께서 보시는 데 제 허락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선하가 웃으려다 멈췄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보지 말고 장례를 보랍니다. 누구든.”
그는 손을 소매에 넣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백린은 그 떨림을 보고 말없이 의자를 문 쪽으로 옮겼다. 안으로 부른 것은 아니었다. 그가 거기라도 앉으면 넘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선하는 앉지 않았다.
“백린이라는 이름이 맞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마지막 말이 그 이름이었습니다.”
백린은 선하를 봤다. 선왕은 그녀를 직접 부를 이유가 없었다. 왕비의 열을 살피는 의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누군가 잘못 들었거나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어떤 말씀이었습니까?”
선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때 다른 궁녀가 빠르게 걸어와 서임을 불렀다. 주치의가 고백을 받는 자리에 나오라고 했다고 했다. 백린이 무엇의 고백인지 묻자 궁녀는 접힌 종이를 보여 주었다.
서임이 왕의 약에 잘못된 것을 넣었다고 적혀 있었다.
종이에는 서임이 방금 말한 장례 옷이 없었다.
백린은 종이를 돌려주지 않고 손 안에 놓았다. 궁녀가 재촉했다. 여송은 백린의 어깨를 눌렀다. 어깨 아래에서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아직 자기 말도 다 못 한 사람입니다.”
백린이 말했다.
“고백받을 자리가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보다 자리가 먼저 준비되었군요.”
선하가 말을 보탰다. 궁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물러났다. 하지만 명령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임은 침상에서 내려오려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백린이 받쳤다. 선하도 문턱을 넘었다. 두 사람이 서임을 다시 침상에 올렸다. 선하는 그제야 의녀방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로 물러났다.
서임이 백린의 소매를 잡았다.
“말한 대로 외우면 어머니는 죄인이 아니래요.”
백린은 그 손을 빼지 않았다. 어떤 약이 잘못되었는지, 왕의 병이 무엇이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죄의 이름을 외우게 한 사람이 있었다. 죽은 왕의 손과 살아 있는 아이의 손을 덮으려는 속도가 같았다.
문 밖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주치의가 직접 왔다.
백린은 서임 앞에 섰다. 손에 들고 있던 고백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자기 이름이 없는 종이였지만 이 선택 뒤에는 반드시 자기 이름이 붙을 것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이 사람은, 아직 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