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8화: 북부 시장의 거래 조건
아침 식탁 위에는 봉투와 양모 자루 네 개가 놓여 있었다.
서현은 봉투의 봉인을 손끝으로 눌렀다. 전날 카엘과 작성한 현물 거래 제안서였다. 양모의 등급과 중량 그리고 약초 상자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대가로 받을 물품은 곡물과 장작이었다.
돈을 빌리는 문서가 아니었다. 시장 상인들이 그 차이를 믿어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수량은 다시 확인했습니다."
카엘이 양모 자루의 끈에 매단 쪽지를 가리켰다. 자루 번호와 중량 아래에 서현과 카엘의 서명이 나란히 들어가 있었다.
"전부 가져갑니까?"
"두 자루만요. 나머지는 창고에 남깁니다. 물품과 문서를 한 번에 움직이지 않는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거래가 깨질 경우도 생각하시는군요."
"에드윈 세라트의 서한이 먼저 도착했으니까요."
리아가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공작가와 거래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서한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서현이 확인한 조항은 달랐다. 보호자의 개인 명의 차용과 무담보 외상은 금지된다. 재고를 현물로 정산하는 거래는 상대와 수량을 기록하고 사흘 안에 보고할 수 있다.
"시장 사람들이 언니를 붙잡으면요?"
"붙잡게 두지 않을 거야. 물품을 먼저 넘기지도 않고."
마리엔이 주방에서 빵 네 조각을 내왔다.
"아이들 몫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늦게 돌아와도 수프는 끓일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서현은 봉투를 품 안에 넣었다. 거래하지 못하면 내일 아침부터 곡물 배급량을 다시 계산해야 했다. 장작이 모자라면 기록실 난로부터 꺼야 했다.
"오늘은 거래하고 돌아옵니다."
카엘이 바로 대답했다.
"두 사람이 함께요."
그들은 수레에 양모 자루 두 개와 약초 상자 두 개를 실었다. 카엘은 봉인 상태를 확인했고 서현은 제안서의 수량을 다시 읽었다. 본관을 나서는 순간 서현의 손등에 계약 인장의 미열이 번졌다.
외부의 긴장을 감지한 반응이었다.
카엘은 그 손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 수레의 끈을 한 번 더 당겨 보았을 뿐이다.
영지 시장 입구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
헤르윈 문장이 달린 수레를 알아본 상인들이 저울추를 치우고 가게 안으로 물러났다. 시장 서기 하나가 수레 앞을 막아섰다.
"공작가 물품은 거래할 수 없습니다."
"근거가 무엇입니까?"
"후견 위원회 감사관의 서한입니다. 임시 보호 기간에 공작가 자산을 외부로 처분할 수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처분이 아니라 현물 정산입니다. 조항을 함께 확인하시죠."
서현이 봉투를 열려 하자 카엘이 먼저 손을 들었다.
"길에서 원본을 펼치지 마십시오. 상대의 이름과 권한부터 기록하겠습니다."
그는 수첩을 펴고 서기의 이름과 직함을 물었다. 서기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카엘은 시간까지 적었다.
"기록한다고 거래가 허용됩니까?"
"허용 여부는 제가 정하지 않습니다. 막으려면 어떤 조항에 근거했는지도 남겨야 합니다."
카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서현은 그가 더 이상 문서를 혼자 감추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테오 라반의 가게는 시장 안쪽에 있었다. 곡물 자루와 말린 약초가 진열된 가게 문에는 거래 중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테오는 양모 자루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십시오. 저는 공작가에 외상을 줄 수 없습니다."
"외상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양모와 약초를 먼저 검수하시고 그만큼의 곡물과 장작을 사흘 안에 넘겨주십시오."
"서한이 먼저 왔습니다. 공작가의 채무를 대신 갚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채무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실제 중량과 등급을 함께 확인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겠습니다."
테오는 봉투보다 양모 자루를 먼저 보았다. 그는 첫 번째 자루의 끈을 풀었다. 안쪽의 부드러운 흰 양모 사이로 거친 섬유가 섞여 있었다.
"최상급으로 적혀 있지만 중급이 섞였습니다."
카엘이 기록지에 줄을 그었다.
"장부에는 최상급입니다."
"그럼 장부를 고쳐서 거래합시다."
서현은 자루 번호 옆의 등급을 지웠다. 테오는 의외라는 듯 그녀를 보았다.
"가격이 내려가도 괜찮습니까?"
"틀린 가격으로 거래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두 번째 자루에서는 하급 양모 사이에 상급 원모가 섞여 나왔다. 낮춰 기록된 자루에서 좋은 원모만 빠져나간 흔적처럼 보였다. 봉인 끈도 한 번 풀었다가 다른 실로 다시 묶은 모양이었다.
테오는 약초 상자의 목록을 펼쳤다. 겨울 운송으로 생길 손실률을 계산한 뒤 일부를 덜어 저울에 올렸다.
"이건 이틀 안에 일부가 상합니다."
"그 손실률도 적어 주세요."
"이 상태로 거래하면 당신들이 손해를 봅니다."
"손해를 모른 척하는 게 더 위험합니다."
테오의 손이 저울추 위에서 멈췄다. 가게 밖의 상인들이 검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시장 서기가 경비 둘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거래를 중지하십시오."
서현은 물품에서 손을 떼고 카엘을 보았다. 카엘은 수레 손잡이를 놓은 뒤 현재 위치와 시각을 기록했다.
"근거를 보여 주십시오."
"공작가 자산의 외부 처분 금지입니다."
서현은 에드윈의 서한 사본을 펼쳤다. 찬바람이 종이 끝을 흔들었다.
"금지된 것은 보호자 개인 명의의 차용과 무담보 외상입니다. 재고를 현물로 교환하고 사흘 안에 상대와 수량을 보고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기가 종이를 가져가려 하자 카엘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열람은 허용하지만 원본은 넘길 수 없습니다. 사본을 만들고 서명하십시오."
"시장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겁니까?"
"명령인지 요청인지 기록부터 하겠습니다."
테오가 저울추를 내려놓았다.
"물품을 묶으려면 공개 검수를 하게 해 주십시오. 외상이라면 받지 않겠습니다. 현물 교환이라면 실제 물량을 확인하겠습니다."
"당신까지 공작가 편을 들겠다는 겁니까?"
"편을 드는 게 아닙니다. 저울의 편을 드는 겁니다."
테오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게 밖의 상인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서현은 그 틈에 거래표를 꺼냈다.
양모 한 자루는 실제 등급으로 계산한다. 약초 두 상자는 손실률을 반영한다. 곡물과 장작은 사흘 안에 인도하며 지연 시 다음 거래에서 차감한다.
테오는 조건을 읽고 고개를 저었다.
"전체 물량은 받을 수 없습니다. 우선 양모 한 자루와 약초 두 상자만 받겠습니다. 곡물 두 포대와 장작 한 묶음을 사흘 안에 넘기죠."
"아이들의 식량으로는 부족합니다."
"첫 거래가 기록에 남고 문제가 없으면 다음 물량을 논의하겠습니다."
서현은 잠깐 침묵했다. 부족하지만 오늘 거래가 끊기면 내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양모 자루 하나와 약초 상자 두 개를 표시하고 카엘에게 문서를 건넸다.
카엘은 두 부의 문서에 같은 조건을 옮겨 적었다. 테오는 실제 등급과 중량을 확인했다는 문장을 읽고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서현과 카엘도 차례로 서명했다.
그 순간 가게 안쪽 서랍에서 종이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테오가 몸을 굽히기 전에 서현이 먼저 주웠다.
분산 보호 시 자산 목록, 별지 2.
서현의 손끝이 굳었다.
"이건 어디서 났습니까?"
테오는 서랍을 닫았다.
"어젯밤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오늘 거래를 받지 말라고 했어요. 제안서 앞부분을 보여 주었지만 마지막 장은 보지 못했습니다. 종이를 접다가 이 조각을 찢었고요."
"그 사람을 알아보셨습니까?"
"시장 상인은 아니었습니다. 공작가 문장이 찍힌 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카엘의 손이 문서 위에서 멈췄다.
서현은 지금 누구를 의심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증언은 거래 기록에 넣되 사람의 이름은 넣지 않았다. 범인을 지목하는 순간 테오가 물품을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테오가 종이 조각을 내밀었다.
"가져가십시오. 저는 거래가 성사됐다는 사실만 남기겠습니다. 문서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서현은 조각을 제안서 봉투 안쪽에 넣고 다시 봉인했다.
"사흘 뒤 곡물과 장작이 도착하지 않으면 지연 사실을 보고하겠습니다."
"그때는 제 쪽 기록도 공개하겠습니다."
양모 자루 하나가 수레에서 내려갔다. 작고 무거운 성과였다.
시장 입구에서 낯선 사람이 시장 서기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고 있었다. 헤르윈 문장이 찍힌 봉투였다. 서기는 서현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몸을 돌렸다.
서현의 손등에서 계약 인장이 다시 미열을 냈다.
카엘이 봉투를 바라보았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니요. 먼저 우리 문서부터 지켜야 합니다."
그녀는 품 안의 봉투를 눌렀다. 안쪽에서 별지 2의 종이 조각이 바스락거렸다.
가게 뒤에서 테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호자님. 다음 거래를 하려면 별지 2의 마지막 장을 찾으십시오. 그 종이를 본 사람은 거래 조건보다 자산 목록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서현은 걸음을 멈췄다.
카엘이 그녀 옆에 섰다.
"돌아갈까요?"
서현은 본관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식량을 위한 첫 거래는 시작됐다. 동시에 누군가 집 안의 문서를 뒤지고 있었다.
"돌아갑니다. 오늘부터 문서 보관 장소를 바꿉니다."
그녀가 수레를 돌리자 겨울바람이 시장의 천막을 세차게 흔들었다. 사흘 뒤 곡물과 장작이 도착할지 확인하기도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별지 2의 마지막 장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