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7화: 봉인된 장부의 조항
아침 죽에는 훈제육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리엔은 솥 가장자리에 붙은 육수를 콩죽에 한 국자씩 나눠 넣었다. 감자와 콩이 묽게 풀린 죽은 전보다 심심했지만 따뜻했다. 식탁 위에는 사람 수대로 나뉜 빵과 작은 나무패가 놓여 있었다.
패에는 배급량과 시간이 적혀 있었다.
리아가 자기 패를 내려다보았다.
"아이 몫은 정말 그대로네요."
"그대로여야 합니다."
서현은 계산기 대신 만년필 끝으로 흑판의 숫자를 확인했다. 밀가루 잔량, 콩 자루의 무게, 아침에 꺼낸 장작. 마리엔이 적은 수치와 자신의 기록이 모두 맞았다.
노아는 빵을 반으로 찢다가 멈췄다.
"오늘도 안 줄어들어요?"
"네 몫은 줄지 않습니다. 다만 남기면 다음 식사 때 양을 바꾸기 전에 이유를 적어야 해요."
"이유까지요?"
"몸이 아픈 건지 음식이 싫은 건지 알아야 하니까요."
노아는 잠시 생각하다 빵 조각 옆에 작은 선을 그었다. 미나는 그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오늘은 안 울어."
주방의 솥도 사람들의 표정도 전날보다 조용했다. 서현은 그 조용함을 안도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직 열네 날 중 첫날 아침일 뿐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서명표를 들고 카엘 앞으로 갔다.
카엘은 식당 문가에서 사용인들의 이동 기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검은 제복 주머니에는 봉인된 양피지가 들어 있었다.
"양모 등급표는 정리됐습니까?"
"초안은 끝났습니다."
"약초 목록은요?"
"오늘 저녁까지 제출하겠습니다."
"감사관의 서한은요?"
카엘의 손이 멈췄다.
서현은 그 손을 보았다. 문서를 숨기는 사람의 손은 대개 종이보다 먼저 굳었다.
"어제는 영지 상단과의 접촉을 막는 움직임이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움직임이 아니라 조항이라면 원문을 확인해야 합니다."
"보호자님이 보셔야 할 문서는 아닙니다."
"제가 거래를 책임집니다. 거래를 막는 문서를 보지 말라는 건 책임만 지고 근거는 묻지 말라는 뜻입니까?"
카엘은 아이들이 있는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리아가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록실로 가시죠."
카엘이 먼저 몸을 돌렸다.
기록실은 본관 북쪽 끝에 있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낡은 장부의 모서리를 들썩였다. 벽면에는 공작가의 인장이 찍힌 서류함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비어 있었다.
카엘은 세 번째 서류함의 바닥판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는 기름종이로 감싼 문서 묶음이 들어 있었다.
서현의 손등 인장이 미지근해졌다.
"이걸 왜 숨겼습니까?"
"숨긴 게 아니라 보관한 겁니다."
"보관 위치를 저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숨긴 겁니다."
카엘은 기름종이를 풀었다. 맨 위에는 왕실 후견 위원회의 문장과 에드윈 세라트의 서명이 있었다.
임시 보호자 지정 기간 중 공작가 자산의 외부 처분은 위원회 사전 승인 없이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아래 조항은 더 작게 적혀 있었다.
보호자 개인 명의의 차용 및 무담보 외상 거래는 가문 자산의 처분으로 간주한다.
서현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첫 번째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빈틈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건 거래 금지가 아닙니다. 외상과 개인 명의 거래를 막은 겁니다."
"상인들은 그 두 가지 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물 교환은요?"
카엘이 문서의 첨부 목록을 넘겼다.
"재고를 현물로 정산하는 거래는 거래 후 3일 이내 보고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만 첨부된 자산 목록과 일치해야 합니다."
서현은 눈을 좁혔다.
"첨부 목록을 보여 주세요."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엘 씨."
"그 목록이 공개되면 위원회가 우리 창고를 자산 처분 현장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곧바로 사람을 보낼 겁니다."
"지금도 에드윈은 상단에 서한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서를 숨긴다고 그들이 모르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카엘의 얼굴에 처음으로 짜증이 번졌다.
"저는 이 집을 닫아 두고 시간을 벌어 왔습니다. 보호자님은 숫자를 확인하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숫자는 사람을 지켜 주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키려면 무엇이 위험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걸 혼자 쥐고 있다가 틀리면 아이들이 대가를 치릅니다."
문서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문이 조금 열리고 리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저도 봐도 되나요?"
카엘이 즉시 몸을 세웠다.
"리아 아가씨는 나가 계십시오."
"제 이름이 적힌 가문의 문서잖아요. 계약상으로는 제가 열람할 권리가 있습니다."
서현은 리아를 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단정했지만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열람하되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읽은 사람과 시간을 기록합니다."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은 한참 망설이다 문서의 첫 장을 그녀 쪽으로 밀었다.
"이건 복사본입니다. 원본의 마지막 장은 없습니다."
"없어진 건가요?"
"처음부터 제 손에 없었습니다."
서현은 그 말이 더 마음에 걸렸다. 카엘은 문서를 훔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남겨 둔 빈자리를 지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숨김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항 옆에 세 줄을 적었다.
무담보 외상 금지.
보호자 개인 명의 금지.
현물 정산 후 3일 내 보고 가능.
"테오에게 외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양모와 약초의 등급별 목록을 제출하고 필요한 밀가루와 장작을 현물 교환으로 제안합니다. 거래 상대와 수량을 문서에 남긴 뒤 위원회에 보고합니다."
카엘이 낮게 물었다.
"위원회가 거래를 무효라고 하면요?"
"그때는 무효라고 판단한 조항을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서한에 적힌 범위 밖의 금지는 명령이 아니라 압박입니다."
리아가 조항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열람했습니다. 그리고 이 거래가 아이들의 식량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기록해 주세요."
카엘은 그 이름을 오래 바라보았다.
양모 창고의 문은 두 사람이 함께 열었다. 카엘이 열쇠를 돌리고 서현이 이동 기록지에 시간을 적었다. 베른과 톰은 서현이 정한 선을 넘지 않고 맞은편에서 기다렸다.
"최상급이 네 자루라고 적혀 있습니다."
카엘이 원장을 펼쳤다.
서현은 첫 자루의 봉인을 풀었다. 양모 사이로 짚과 검은 섬유가 섞여 나왔다. 손가락 사이에서 비벼 보니 기름기가 적고 길이도 고르지 않았다.
"이건 중급입니다."
"기록에는 최상급입니다."
두 번째 자루도 같았다. 세 번째 자루에서는 반대로 길고 흰 원모가 나왔다. 원장에는 하급이라고 적혀 있었다.
톰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이렇게 적었습니까?"
카엘은 봉인 끈의 매듭을 살폈다.
"기록 담당자는 떠난 사용인입니다. 하지만 매듭은 최근에 다시 묶였습니다."
서현은 원장과 실제 중량을 나란히 적었다. 최상급으로 표시된 네 자루 중 두 자루는 중급으로 내리고 하급 두 자루 중 한 자루는 상급으로 올렸다. 등급을 바꾸자 예상 교환량도 달라졌다.
"최상급 네 자루라고 내놓으면 상인은 첫 검사에서 신용을 잃었다고 판단합니다. 반대로 낮은 등급을 섞어 넘기면 우리가 시세를 속이는 쪽이 됩니다. 실제 등급과 손실률을 함께 공개해야 합니다."
카엘은 자를 꺼내 섬유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서현이 수치를 받아 적고 베른은 자루 번호를 읽었다. 톰은 무게를 달았다.
세 사람의 일이 일정하게 맞물렸다.
카엘이 말했다.
"보호자님. 이 자루는 제가 따로 빼 두겠습니다."
"아닙니다. 별도 표시는 하되 숨기지는 않습니다. 양쪽 기록에 모두 남깁니다."
카엘이 서현을 보았다.
"저를 못 믿으십니까?"
"당신을 믿는 문제와 기록을 남기는 문제는 다릅니다. 기록은 당신이 의심받지 않게도 합니다."
잠시 뒤 카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는 새 종이의 하단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 서현은 그 옆에 서명했다.
창고 밖에서는 마리엔이 저녁 준비를 알렸다. 장작을 아끼기 위해 주방의 불은 끄지 않았고 동쪽 방 세 곳으로 온기가 모이고 있었다.
저녁 식탁에는 얇은 빵과 콩 수프가 올라왔다. 훈제육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프에서 아주 옅은 고기 냄새가 났다.
미나는 숟가락을 한 번 저은 뒤 서현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잉크가 따뜻해."
"오늘은 문서를 많이 확인해서 그렇습니다."
서현은 아이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카엘이 식탁 끝에 문서 한 장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는 복사 문서의 첨부 목록을 가리켰다.
분산 보호 시 자산 목록, 별지 2.
서현은 목록 아래를 확인했다. 별지 2의 제목만 있었고 내용은 없었다.
"이게 사라진 원본 마지막 장입니까?"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본에는 이 별지가 붙어 있었을 겁니다."
리아의 숟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분산 보호를 하면 우리 물건도 나뉘나요?"
카엘이 대답하려 했지만 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배분 내용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누가 언제 이 문서를 열었는지부터 기록합니다."
카엘은 작은 열람 기록지를 꺼냈다.
"이 문서를 제가 혼자 보관한 건 잘못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보호자님과 공동 보관하겠습니다. 원본 마지막 장을 찾을 때까지 문서 이동도 두 사람 서명을 받겠습니다."
서현은 그를 바라보다가 펜을 건넸다.
"공동 보관은 오늘부터입니다. 그리고 내일 시장에 갈 거래 제안서를 지금 작성합니다."
카엘은 펜을 받았다.
"테오에게 보낼 문안은 제가 만들겠습니다. 에드윈에게는 현물 교환 조항을 근거로 질의서를 보내죠."
"좋습니다. 답변 기한도 적습니다."
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할 일은요?"
서현은 아이 앞에 별도의 종이를 놓았다.
"문서를 읽은 사람 명단을 관리해 주세요. 네가 상속자라서 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네 이름이 적힌 집의 기록을 네가 확인할 권리가 있어서 부탁하는 겁니다."
리아는 한 번 숨을 삼킨 뒤 펜을 들었다.
세 장의 종이가 식탁 위에 펼쳐졌다. 테오에게 보낼 거래 제안서, 위원회에 보낼 질의서, 문서 열람 기록지.
마리엔은 빈 그릇을 걷어 가면서도 식탁 한쪽에 남은 빵 조각을 세었다. 오늘의 소비량은 생존표와 맞았다.
서현은 세 문서의 끝에 차례로 서명했다. 카엘도 두 장에 서명하고 마지막 열람 기록지에는 리아와 함께 이름을 남겼다.
그 순간 본관 어딘가에서 아주 얇은 종이 긁는 소리가 났다.
미나가 고개를 들었다.
"누가 문을 만졌어."
서현의 손등 인장이 차갑게 식었다.
카엘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서현은 그를 붙잡았다.
"혼자 가지 않습니다."
카엘은 잠시 멈췄다가 베른을 불렀다. 베른이 합류하는 동안 서현은 테오에게 보낼 봉투를 접어 품 안에 넣었다.
문서의 마지막 장은 사라져 있었다. 이제 그들의 거래 제안서도 누군가에게는 숨겨야 할 장부가 될 수 있었다.
서현은 식지 않은 콩 수프 냄새 속에서 봉투의 봉인을 눌렀다.
내일 아침 그 봉투를 들고 시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