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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6화

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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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2주 생존표

복도 끝 운송 통로의 나무판이 가라앉은 뒤에도 주방 안의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돌판 위에 놓인 철 상자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문턱을 맴돌았다. 마리엔이 끓여 낸 감자죽 그릇에서만 얇은 김이 피어올랐다.

서현은 수첩을 넘기며 주방 한구석에 쌓인 식량을 바라보았다.

창고에서 건져 낸 훈제육 넷, 밀가루 두 자루, 감자 한 바구니, 그리고 아직 열기가 닿지 않은 콩 자루.

"카엘 씨."

문가에 비스듬히 서 있던 카엘이 고개를 돌렸다.

"저택에 남아 있는 사람이 전부 몇 명입니까."

"아이 셋과 마리엔, 저, 야간 경비 둘 중 하나인 베른, 마구간지기 톰, 청소와 세탁을 맡은 하녀 엘라입니다. 당신을 합치면 아홉 명입니다."

"원래 식단대로 세 끼를 먹는다면 저 식량은 사흘을 넘기지 못합니다."

리아가 식탁 모서리를 잡고 서현을 쏘아보았다.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사용인들이 알면 남은 물건을 훔쳐서 달아날 거예요. 지난달에도 하인 둘이 은식기를 들고 도망쳤다고요."

"숨기면 도망치지 않습니까?"

서현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식량이 사흘 치뿐이라는 사실보다 무서운 것은 내일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통로가 닫히고 창고가 잠기면 사람들은 가장 나쁜 상황을 상상합니다. 그러니 먼저 모아야 합니다."

"모아서 무슨 말을 하게요? 집이 망했다고 공표라도 할 건가요?"

"망하지 않는 일정을 보여줄 겁니다."

서현은 주방 벽에 걸려 있던 빈 흑판을 떼어 들었다. 분필 한 토막을 쥐고 카엘을 향해 돌아섰다.

"사용인 식당으로 전원을 모아 주십시오. 식사를 마친 뒤 오라고 하지 말고 지금 바로요."

카엘은 잠시 서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눈에 망설임이 스쳤으나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5분 뒤에 모으겠습니다."


본관 지하와 이어진 사용인 식당은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긴 나무 탁자 주위로 대여섯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경비원 베른은 창백한 얼굴로 장갑을 매만졌고 마구간지기 톰은 흙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젊은 하녀 엘라는 낡은 앞치마 자락을 쥔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 맞은편에 서현이 흑판을 올려놓았다. 흑판 옆에는 리아와 카엘, 그리고 커다란 국자를 든 마리엔이 나란히 섰다. 노아와 미나는 식당 안쪽 작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현은 분필을 들어 흑판 중앙에 선을 그었다.

"헤르윈 공작가 임시 계약 보호자 윤서현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숨기지 않고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베른이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보호자님. 새벽에 창고에 불이 날 뻔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후견 위원회가 오면 우린 다 쫓겨나는 겁니까?"

"쫓겨나지 않습니다."

서현은 흑판 왼쪽에 숫자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밀가루 2자루(약 40킬로그램).
감자 1바구니(약 25킬로그램).
말린 콩 1자루(약 30킬로그램).
훈제육 4덩이.
장작 잔여량 6일 분량.

"이것이 현재 저택에 남은 실질적인 식량과 연료의 전부입니다. 이전 방식으로 소비하면 사흘이면 바닥납니다."

엘라가 짧은 비명을 삼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톰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이라니…… 그러면 우린 사흘 뒤에 굶어 죽는 겁니까? 지난달 삯도 못 받았는데 식량마저 없다면 여길 지킬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꿉니다."

서현은 흑판 오른쪽에 굵은 글씨로 새 표를 그렸다.

2주 생존표.

"우리의 목표는 30일 뒤 왕실 후견 심사입니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다음 주까지 버텨 낼 14일간의 확정된 식단과 체계입니다. 이 표대로 움직이면 식량은 사흘이 아니라 정확히 14일간 유지됩니다."

서현은 분필로 세부 항목을 짚었다.

"첫째, 아침과 저녁은 감자와 콩을 넉넉히 넣은 곡물죽으로 통일합니다. 점심은 콩 수프와 얇게 구운 빵 한 조각입니다. 훈제육은 썰어 먹지 않고 얇게 저며 육수를 내는 데만 사용합니다."

마리엔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내가 계산해 봤다. 고기를 통째로 굽지 않고 국물에 우려내면 훈제육 네 덩이로 아홉 명이 열나흘 동안 고기 맛을 낼 수 있어. 콩과 감자가 든든하게 받쳐 줄 거다."

"둘째, 아이들의 몫은 줄이지 않습니다."

서현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성인의 배급량은 기존의 70퍼센트로 조정하지만 성장기 아이 셋의 식사량은 정상 기준을 100퍼센트 보장합니다. 이는 계약 보호자 규정 제4조에 따른 의무이며 타협하지 않습니다."

사용인들의 술렁임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구체적인 숫자가 눈앞에 적히자 막연한 공포가 통제 가능한 계획으로 바뀌고 있었다.

"셋째, 난방 집중화입니다. 각자의 방에 난로를 따로 피우지 않습니다. 주방의 조리 잔열이 닿는 동쪽 방 세 개를 숙소로 통합합니다. 남은 장작 6일 치는 이 방식으로 열흘 이상 유지됩니다."

톰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렇게 2주를 버틴다 쳐도 그 뒤엔 어쩝니까? 2주 뒤면 진짜로 아무것도 안 남잖습니까."

"2주 안에 영지 상인과 교역 계약을 맺고 외부 물자를 들여옵니다."

서현의 대답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저택 창고의 남은 양모와 약초를 정리해 영지 상단과 거래를 틀 겁니다. 그 협상은 저와 카엘 씨가 책임집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정해진 배급 규칙을 지키고 집 안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베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굶지 않는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임금은요? 벌써 석 달째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밥만 먹여 준다고 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처자식이 있고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식당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아픈 질문이었다.

리아가 입술을 깨물며 서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공작가의 금고가 비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였다.

서현은 피하지 않고 품 안에서 두껍게 철한 서류 한 권을 꺼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만든 겁니다."

서류 겉면에는 단정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헤르윈 공작가 체불 임금 목록 및 변제 확약서.

서현은 서류를 펼쳐 탁자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베른 씨, 3개월 치 급여 은화 12닢. 톰 씨, 3개월 치 급여 은화 9닢. 엘라 씨, 3개월 치 급여 은화 6닢. 마리엔 씨, 은화 18닢과 사비로 대납한 전임 사용인 퇴직 정산금 은화 2닢 30동전."

마리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신이 남몰래 메웠던 빚까지 정확한 액수로 적혀 있었다.

"총 체불액 은화 47닢 30동전. 한 닢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서현은 만년필을 꺼내 서류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공작가에 돈이 없다고 해서 여러분의 노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부로 이 체불 목록을 공작가의 공적 채무 장부에 정식으로 올립니다."

사용인들이 숨을 죽였다. 서현의 서명 옆으로 푸른색 계약 인장이 은은하게 빛났다.

"계약 보호자 권한으로 선언합니다. 향후 저택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과 자산 처분 대금에서 사용인의 체불 임금을 최우선으로 변제합니다. 외부 채권자나 위원회의 압류보다 여러분의 임금이 법적 1순위입니다."

베른이 떨리는 손으로 장부를 짚었다.

"정말로…… 우리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문서로 확정한 겁니다. 도망치면 이 기록은 효력을 잃지만 남아 있는 한 여러분은 헤르윈 가문의 정당한 채권자이자 노동자입니다. 첫 거래가 성사되는 즉시 체불액의 30퍼센트를 우선 지급하겠습니다."

엘라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톰은 흙 묻은 바지를 털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입바른 위로가 아니었다. 법률과 숫자로 증명된 권리였다.

리아가 장부 아래 적힌 문장을 가만히 읽었다.

노동의 대가는 가문의 명예보다 앞서 지불되어야 한다.

아이는 서현을 올려다보았다. 귀족의 법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 어떤 권위적인 명령보다 사람들의 발을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전 수칙입니다."

서현은 흑판 아래에 굵은 글씨로 세 가지 규칙을 적었다.

  1. 모든 출입과 물품 이동은 2인 1조로 진행한다.
  2. 식량과 연료 이동 시 마리엔과 보호자 서명을 필수로 한다.
  3. 통로 및 창고 근처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보고하되 단독 조사를 금지한다.

"누군가를 의심하기 위한 규칙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무죄를 증명하고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서현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2주입니다. 14일 동안 이 생존표대로 버텨 주십시오. 집을 지탱하는 것은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매일 불을 피우고 솥을 젓는 여러분의 손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리엔이 가장 먼저 국자를 내려놓고 펜을 잡았다.

"난 찬성이다. 주방은 내가 책임지고 지킨다."

그 뒤를 이어 톰과 베른이 차례로 다가와 서명했다. 엘라도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을 서류 끝에 적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용인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자 식당에는 서현과 카엘, 그리고 리아만 남았다.

리아가 흑판에 적힌 '2주 생존표'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서현 씨."

"네."

"정말로 2주 안에 상인을 데려올 수 있어요? 북부 상인들은 공작가에 외상을 주지 않아요."

"그냥 외상을 달라고 하면 거절당하겠죠. 그러니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장부를 들고 갈 겁니다."

서현이 카엘을 바라보았다. 카엘은 품 안에서 가늘게 접힌 양피지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카엘 씨. 창고에 남은 양모 등급표와 약초 보관 목록을 오늘 안으로 정리해 주십시오."

"준비하겠습니다. 다만……."

카엘이 문 쪽을 힐끗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후견 위원회의 감사관 에드윈 세라트가 보낸 공식 서한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영지 상단과의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등의 계약 인장이 미세한 미열을 내며 반응하고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감사관이 막으려 한다는 건 그 거래가 우리가 살아남을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뜻이니까요."

서현은 흑판의 글씨를 덮개로 가리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남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장부 위로 차가운 겨울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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