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5화: 잉크가 우는 방향
서현은 끊어진 봉인과 창고 문을 번갈아 보았다.
"카엘 씨. 아이들을 식당으로 데려가세요. 아무도 이 복도로 오지 못하게 하고요."
카엘이 물었다.
"당신은요."
"철 상자를 옮깁니다. 창고 안에 두면 확인할 때마다 식량이 위험해집니다."
서현은 문을 더 열지 않았다. 갈고리 끝을 철 상자의 손잡이에 걸고 천천히 끌어냈다. 상자가 바닥을 긁을 때마다 손등의 인장이 차갑게 식었다.
차가운 감각은 창고 문을 향하지 않았다.
복도 끝이었다.
그곳에는 사용하지 않는 운송 통로가 있었다. 2층 계단 아래에서 꺾여 후문으로 이어지는 낮은 길이었다.
미나가 리아의 손을 놓고 한 걸음 나왔다.
"상자가 울어."
"어디서 더 크게 들립니까?"
리아가 아이를 감싸려 했지만 서현은 손을 들었다.
"정확한 곳을 맞히라는 뜻은 아닙니다. 불편한 방향만 말해 주세요."
미나는 복도 끝과 철 상자를 번갈아 보았다.
"저쪽. 그런데 가까워지면 안 돼."
"그 말이면 충분합니다. 더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멀리 있으면 괜찮아져요?"
"네 손끝은 아까보다 식었습니다. 난로석과 네 반응이 같은 원인이라고 적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창고가 뜨거워졌잖아요."
"그래서 원인을 나눠서 봐야 합니다. 네가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남은 푸른 빛이 희미하게 떨렸다.
"내가 안 들어가도 돼요?"
"오늘은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서현은 철 상자를 주방 옆 돌판 위에 올려놓았다. 상자 밑에는 마른 천을 깔고 바깥에는 빈 종이를 받쳤다. 가루가 새면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 알 수 있게 하려는 조치였다.
카엘이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열어 보지 않습니까."
"지금 열면 안쪽 물질과 바깥 공기가 섞입니다. 먼저 상자 겉면과 위치를 기록하겠습니다."
서현은 수첩을 펼쳤다.
아르벨력 겨울 둘째 달 15일 새벽. 푸른 알갱이 보관 상자 임시 이동.
그 아래에 두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카엘은 서명했지만 리아는 종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이것도 후견 위원회에 보여 줄 겁니까?"
"요청이 오면 목적과 범위를 먼저 확인합니다. 아이들의 안전에 필요한 원문은 숨기지 않지만 감각 기록 전체를 설명 없이 넘기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위험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요?"
"기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다고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원인과 관찰 조건도 함께 적습니다."
리아는 수첩 가장자리를 눌렀다.
"제가 볼 수 있는 기록인지 먼저 쓰세요."
"열람자를 정합시다."
"서현 씨와 카엘 씨와 마리엔 씨. 그리고 저요. 노아와 미나는 원하면 볼 수 있게요."
"좋습니다."
미나는 돌판에서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복도 끝을 계속 보았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마리엔이 주방 안쪽에서 물었다.
"아이들을 계속 세워 둘 겁니까. 감자죽이 식습니다."
"아닙니다. 아이들은 주방에 남습니다. 창고와 운송 통로 사이에는 아무도 세우지 않습니다."
리아가 미나와 노아의 어깨를 잡았다.
"들었지. 여기서 기다려."
노아가 철 상자를 보았다.
"나는 기록을 봐도 돼요?"
"원하면요. 네가 기록을 쓰는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손끝이 안 뜨거웠다고 적을래요."
"조금 있다가 같이 확인합시다."
카엘은 복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새벽 출입자를 확인하겠습니다."
"따로 물으세요. 서로 앞에서 답하게 하지 마십시오."
"범인을 찾자는 겁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누가 언제 어디를 지나갔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카엘이 나간 뒤 서현은 창고 앞 나무판을 보았다. 개봉 시각과 입실자 두 명은 남아 있었지만 이상 유무 칸은 비어 있었다.
그는 거기에 한 줄을 추가했다.
철 상자 이동. 창고 외부 보관. 상자 개봉하지 않음.
잉크가 문장 끝에서 조금 번졌다. 냉기가 다시 복도 끝을 향했다.
미나가 낮게 말했다.
"아직 울어."
"알겠습니다. 이제 네가 더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현은 아이가 볼 수 있게 수첩을 덮지 않았다.
"말해 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확인하는 일은 어른들이 합니다."
카엘이 먼저 데려온 사람은 밤 경비를 선 경비원이었다.
"어젯밤 창고 쪽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까."
"자정 무렵 서쪽 복도를 순찰했습니다. 창고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운송 통로는요."
"보지 않았습니다. 그쪽은 순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서현은 경비원의 신발을 보았다. 밑창은 말라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마른 눈이 붙어 있었다.
"젖은 바닥을 밟은 적은요."
"없습니다. 안뜰도 얼어 있었습니다."
카엘이 벽의 열쇠 고리를 가리켰다.
"운송 통로 열쇠는 어디에 있습니까."
경비원은 잠시 생각했다.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있어야 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지난 겨울부터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경비원이 나간 뒤 카엘은 열쇠 고리를 가져왔다. 열쇠는 다섯 개뿐이었다. 작은 쇠고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모양은 통로 열쇠와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없었는지는 모릅니다."
"사용하지 않는 문일수록 열쇠가 사라진 시점을 기록해야 합니다."
카엘은 반박하지 않고 빈자리를 수첩에 그렸다.
다음은 마구간지기였다. 그는 물통에서 젖은 냄새가 났지만 신발은 말라 있었다.
"새벽에 우물에 다녀왔습니다. 말 한 마리가 물을 엎질러서요. 마구간에서 안뜰로 나갔습니다."
"운송 통로나 창고 복도는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새벽 전에 쇠가 긁히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서현은 쇠 마찰음 추정. 위치 불명이라고 적었다.
마구간지기가 나간 뒤 리아가 주방 문턱에서 물었다.
"젖은 발자국은 그 사람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발이 말라 있고 동선이 다르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아직 고르지 않습니다."
"누가 거짓말하는지 모른 채 두는 거예요?"
"네. 모르는 상태를 모른다고 적는 겁니다."
리아는 수첩을 받아 들고 두 사람의 동선과 신발 상태를 읽었다.
"이 기록은 집 안에만 둡니다."
"법적 요청이 오면 완전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대신 누가 무엇을 요청했는지 남깁니다."
리아는 수첩 아래에 적었다.
외부 열람. 요청자와 목적 확인 후 보호자와 상속자에게 알림.
"이건 지키세요."
"지키겠습니다."
서현과 카엘은 운송 통로 앞으로 갔다. 아이들은 주방에 남았다. 마리엔은 문을 반쯤 열어 두고 그쪽을 지켜보기로 했다.
문은 낮고 두꺼웠다. 바닥 아래에는 굳은 흙이 끼어 있었지만 문턱 한쪽은 젖어 있었다. 서현은 나무판을 놓고 시각과 관찰자를 적었다.
"문을 바로 열지는 않습니다."
카엘이 열쇠 구멍을 살폈다.
"잠금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열쇠가 사라졌습니다."
"다른 열쇠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맞는지 시험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틈을 봅니다."
서현은 등잔을 바닥 가까이 가져갔다. 문 아래 좁은 틈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안쪽에서 밀려 나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 사이에 푸른 점 하나가 있었다.
서현은 손으로 건드리지 않고 접은 종이 끝을 틈에 넣었다. 종이 위에 작은 알갱이 두 개가 걸렸다. 창고에서 주워 철 상자에 넣은 것과 닮았지만 같은 것이라고 적지 않았다.
푸른 알갱이 추정. 통로 문턱 안쪽. 철 상자 물질과 동일성 미확인.
카엘이 숨을 낮췄다.
"안쪽에도 있었다는 뜻입니까."
"있었다는 뜻까지만 적습니다. 누가 옮겼는지와 언제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문 안쪽에서 가벼운 소리가 났다.
톡.
잠시 뒤 다시 한 번.
톡.
카엘의 손이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서현이 그의 손목을 막았다.
"문을 열지 마십시오."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구조가 무너질 수도 있고 물질이 날릴 수도 있습니다."
카엘은 손을 거두었다. 서현은 마찰음이 난 시각을 적었다. 소리는 더 나지 않았다.
"통로는 잠정 폐쇄합니다. 출입자 두 명 원칙을 붙이고 안쪽은 확인 장비를 준비한 뒤 엽니다."
"장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열지 않는 겁니다."
카엘은 나무판에 내부 마찰음 추정. 문 개방 보류라고 적고 서명했다.
주방으로 돌아오자 미나는 서현의 손등을 보았다.
"아파요?"
"조금 차갑습니다."
"내가 말해서요?"
서현은 철 상자를 확인했다. 상자는 그대로였고 밑의 종이에도 새 알갱이는 없었다.
"아니요. 네가 말한 뒤에 경고를 무시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네가 만든 통증이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말해도 돼요?"
"불편하면 말해도 됩니다. 원인을 맞힐 필요는 없습니다."
미나는 주방 종이에 세 개의 짧은 선과 둥근 표시를 그렸다.
"이걸 문에 붙여."
"무슨 뜻입니까."
"가까이 가지 말라는 거."
서현은 그림 아래에 글자를 덧붙이지 않았다. 미나의 표시는 문을 열지 말라는 생활 신호로 쓰기로 했다.
리아가 물었다.
"그 그림도 기록에 넣을 건가요."
"넣습니다. 단 미나가 원해서 만든 표시라고 적습니다. 그림이 가루의 정체나 범인을 말해 준다고 쓰지는 않습니다."
서현은 새 종이를 꺼냈다. 항목은 보관 위치, 접촉 여부, 출입 시각, 관찰자, 외부 열람으로 나눴다. 철 상자는 주방 옆 돌판 위에 두고 식량과 분리했다. 창고에서 옮긴 훈제육과 밀가루도 서로 다른 방에 나눠 두었다.
마리엔이 감자죽 그릇을 가져왔다.
"아이들 접시부터 냈습니다. 노아 것은 식혀 두었고 미나는 감자만 으깼어요."
노아가 그릇 가장자리를 만졌다.
"안 뜨거워요."
서현은 환경 기록에 동그라미를 쳤다. 노아는 그 모습을 보고 직접 한 줄을 적었다.
오늘 감자죽. 손끝 안 뜨거움.
리아는 새 기록의 마지막 줄을 읽었다.
"외부 열람은 요청자와 목적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알린다."
"네."
"이것도 지키세요."
"지키겠습니다."
그때 돌판 위 철 상자 안쪽에서 가느다란 긁힘이 났다.
서현은 펜을 멈췄다.
상자 뚜껑은 닫혀 있었다. 밑에 받친 종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철이 식으며 난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은 것을 그렇게 적을 수는 없었다.
복도 끝에서는 나무판이 아주 조금 들리는 소리가 났다.
카엘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서현은 아이들 앞에 서면서도 철 상자를 열지 않았다.
"창고는 그대로 두세요."
"통로 안에 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이상이 준비해서 확인합니다."
미나가 서현의 옷자락을 잡았다.
"잉크가 또 울어."
이번에는 손등의 냉기가 복도 끝에서 돌판 위 철 상자까지 이어졌다.
서현은 새 기록지 맨 아래에 시간을 적었다.
아침. 통로 내부 소리 재발. 철 상자 내부 마찰음 추정. 원인 미확인.
그리고 카엘에게 말했다.
"문을 열기 전에 안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물질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