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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아포칼립스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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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냉동실의 손톱

바닥으로 쏟아진 통조림 캔들이 콘크리트 위를 구르며 내는 쇳소리는 귀를 찢을 듯 날카로웠다.

쨍그랑! 땡그랑! 챙!

수십 개의 금속 캔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높은 천장과 4단 철제 랙이 그 굉음을 수없이 반사했다. 어디서 캔이 부딪히고 어디서 멈추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소리의 벽이 한결의 귀를 틀어막아 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굉음의 한가운데로 묵직한 질량이 낙하했다.

쿵!

6미터 허공에서 떨어진 육체가 골판지 상자 더미를 짓뭉갰다. 상자 더미로 충격을 흡수한 녀석은 비틀거리며 곧장 몸을 일으켰다. 척추 마디가 딱딱 꺾이며 일어서는 뼈마찰음이 어둠을 갈랐다.

“으아악!”

박두식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쇠파이프를 사납게 휘둘렀다.

콰앙!

그러나 파이프는 허공을 가르고 강철 랙 기둥을 후려쳤다. 징 하는 거대한 금속 진동이 통로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울림은 눈가리개를 한 박두식의 위치를 알리는 표식이 되었다.

“팀장님, 안 됩니다!”

한결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으르렁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젖은 발바닥이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났다. 김 주임의 육중한 그림자가 박두식을 향해 쇄도했다.

쾅!

두 육체가 뒤엉키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박두식의 입에서 비명과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쇠파이프가 손에서 빠져나가 콘크리트 바닥을 굴렀다.

“서영아…… 물 마셔…… 아빠가…… 가져왔어……!”

김 주임의 목소리는 피 섞인 가래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박두식의 목덜미를 틀어쥔 손가락의 악력은 목뼈를 부러뜨릴 듯 사나웠다. 옷감이 북 찢겨 나갔다.

“커헉…… 큭……!”

박두식이 숨을 쉬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바닥에는 여전히 통조림 캔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르는 쇳소리 때문에 두 사람이 엉켜 있는 위치를 평면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소리가 바닥과 기둥 사이에서 수없이 꺾여 돌아왔다.

그때 지우가 한결의 등 뒤에서 날카롭게 외쳤다.

“두 번째 기둥 아래예요! 팀장님이 깔렸어요!”

지우의 귀는 캔의 반사음 너머로 옷감이 비벼지는 파열음과 박두식의 거친 숨을 정확히 짚어냈다.

한결은 망설이지 않고 소리가 가리킨 지점을 향해 몸을 던졌다.

쿵!

한결의 어깨가 김 주임의 옆구리에 박혔다. 단단하게 뭉친 근육은 돌덩이 같았다. 두 사람이 캔 더미 위로 쓰러지며 찌그러진 캔들이 요란하게 튀었다.

김 주임의 손이 박두식의 목에서 떨어져 나가며 한결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둔탁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크윽!”

한결은 이를 악물고 김 주임의 양 팔을 꺾어 누르려 했다. 녀석의 피부는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땀과 붉은 안개의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붕대를 감아둔 한결의 팔뚝 상처가 거센 압박에 다시 터지며 피가 배어 나왔다.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한결의 온몸을 털어내듯 녀석의 등 근육이 꿈틀거렸다. 턱 밑까지 다가온 김 주임의 입에서 거품 섞인 침이 한결의 뺨에 튀었다.

“서영아…… 어디 갔어…… 다 죽여버릴 거야……!”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살의에 찬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박두식이 기침을 토하며 바닥을 기었다.

“이 괴물 새끼가……!”

“팀장님, 무기 찾지 마세요!”

수아가 외쳤다.

“여기서 싸우면 소리 때문에 밖에서 다 몰려와요!”

한결은 턱관절을 악물며 버텼다. 김 주임의 손톱이 한결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눈을 가린 채 이 거대한 변이자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녀석을 가둘 밀폐된 공간이 필요했다.

“수아 씨! 닫을 수 있는 방이 있습니까?”

한결이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있어요! 랙 끝에 정육 대형 냉동창고가 있어요!”

수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벽 두께가 20센티미터가 넘는 급랭 보관실이에요! 바깥에 수동 안전 래치가 달려 있어요!”

“얼마나 멉니까?”

“열 걸음이에요! 통로 끝 철문이에요!”

하지만 녀석을 힘으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녀석의 무릎이 한결의 복부를 걷어찼다. 쿵 하는 충격과 함께 한결이 옆으로 굴렀다.

김 주임이 바닥을 짚고 네 발로 으르렁거리며 일어섰다.

눈을 가린 세 사람과 한 명의 아이. 녀석이 다시 덮쳐온다면 누구 하나 목이 꺾일 판이었다.

그때 한결의 뇌리에 김 주임이 내뱉던 문장들이 스쳤다.

녀석은 민석처럼 무작정 날뛰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자신의 딸 서영과 그 아이에게 줄 물이었다. 붉은 안개에 뇌가 파괴되었으면서도 생전의 집착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지우 씨.”

한결이 낮게 속삭였다.

“지우 씨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네……?”

“생수병을 흔들면서 서영이처럼 불러요. 아빠라고 불러요.”

지우의 숨이 멎었다. 눈가리개 너머로 흐르는 눈물이 턱 끝으로 떨어졌다.

“제가…… 어떻게…….”

“지우 씨 목소리는 높고 맑아요. 저 사람에겐 딸의 목소리로 들릴 겁니다. 냉동실 문 앞까지 유인해야 합니다.”

수아가 이미 통로 끝으로 달려가 철문을 당기는 묵직한 마찰음이 났다.

끼이익.

두꺼운 고무 개스킷이 떨어져 나가며 서늘한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마트 전력이 불안정해도 대형 냉동창고 안쪽은 여전히 영하의 기온을 품고 있었다. 짙은 냉무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김 주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결 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의 손톱이 에폭시 바닥을 긁었다.

스륵. 스륵.

지우가 떨리는 두 손으로 생수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힘을 주어 흔들었다.

찰랑, 찰랑.

투명한 물결 소리가 적막한 냉기 속에서 울려 퍼졌다.

김 주임의 발걸음이 우뚝 멎었다. 목구멍에서 나던 짐승 같은 그르렁거림이 잦아들었다.

지우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달싹였다. 눈물을 삼킨 채 맑은 목소리를 냈다.

“아빠…….”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빠, 나 목말라…… 물 여기 있어…….”

지우의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창고 안을 울렸다. 어린아이의 애처롭고 맑은 호소였다.

김 주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피로 물들었을 눈동자가 냉동실 문 쪽을 향했다.

“서…… 영아?”

김 주임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것은 짐승의 포효가 아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애끓는 음성이었다.

“서영아…… 거기 있니……? 아빠 물 가져왔어…….”

녀석이 비틀거리며 발을 뗐다. 한결을 지나치고 박두식을 지나쳐 오직 물소리와 딸의 부름만을 쫓아 걸어갔다.

지우는 울음을 참으며 생수병을 다시 흔들었다.

찰랑.

“아빠…… 추워…… 이리 와…….”

지우가 속삭이며 냉동실 문 옆으로 몸을 숨겼다.

김 주임은 홀린 사람처럼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냉동실 문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녀석의 발이 두꺼운 문턱을 넘어 영하의 바닥을 디뎠다.

“서영아…… 아빠 왔다…….”

녀석의 몸이 냉동실 안쪽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들어간 순간이었다.

“지금이에요!”

수아의 날카로운 외침이 떨어졌다.

한결과 박두식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두 남자의 어깨와 손바닥이 거대한 철제 냉동실 문을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쿠우웅!

20센티미터 두께의 육중한 단열 방폭문이 프레임에 부딪히며 거대한 굉음을 냈다. 밀폐 고무가 강하게 압착되었다.

철컹!

수아가 전신의 무게를 실어 바깥쪽의 두꺼운 강철 레버를 내리꽂았다.

래치가 프레임 홈에 깊숙이 물려 들어가며 묵직한 빗장이 걸렸다. 완벽한 봉쇄였다.

물류창고 통로에 거짓말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네 사람은 냉동실 철문 앞에 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박두식은 벽에 기대 주저앉아 목을 움켜쥐었고 지우는 생수병을 안은 채 떨고 있었다.

성공이었다.

한결이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스그적.

문 안쪽에서 기괴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네 사람의 숨이 동시에 멎었다.

스그적. 득. 까드드득.

둔탁한 타격음이 아니었다. 사람의 맨손톱이 얼어붙은 철판 표면을 필사적으로 긁어대는 소리였다. 손톱이 부러지고 손가락 끝의 살점이 짓이겨져 철판에 뭉개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탕! 탕!

문이 안쪽에서 덜컹거렸다. 그러나 두꺼운 단열 도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열재를 뚫고 냉동실 안에서 메마른 절규가 새어 나왔다.

“서영아……! 어디 갔어……! 문 열어 줘……!”

차디찬 어둠 속에 버려진 인간의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아빠 추워……! 여기 너무 어두워……! 붉은 게 또 보여…… 서영아……!”

까드득, 까드득.

손톱이 얼어붙은 철판을 긁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피 묻은 손톱이 미끄러지며 내는 비명 같은 소리가 좁은 통로를 가득 채웠다.

박두식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 새끼…… 미친 괴물이 아니야…….”

박두식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다 기억하고 있어…… 딸년 이름도, 추운 것도, 자기가 갇힌 것도 다 알고 있다고…….”

지우가 귀를 틀어막으며 주저앉았다. 자신이 아버지를 속여 얼어붙은 무덤 속에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에 온몸을 떨었다.

한결은 굳은 얼굴로 냉동실 문에 손을 얹었다. 얼음장 같은 한기와 함께 안쪽에서 문을 긁어대는 손톱의 미세한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붉은 안개는 사람의 육체만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성을 부수면서도 인간으로서 가장 아끼던 기억과 감정만은 남겨두어 영원한 악몽 속에 가두어버리는 재앙이었다. 김 주임은 그 얼어붙은 어둠 속에서 딸을 부르며 서서히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지우 씨 때문이 아닙니다.”

한결이 낮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우리가 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정적을 깼다.

“통조림 캔이 쏟아진 소리가 매장 쪽 셔터 너머까지 닿았을 수도 있어요.”

한결은 감정을 억누르고 통로 바닥을 더듬었다.

근처 파렛트 위에 강철 프레임 대차가 놓여 있었다. 한결과 수아는 서둘러 생수 묶음 스무 개와 찌그러지지 않은 통조림 박스 대여섯 개를 대차 위에 실었다.

박두식은 쇠파이프를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봤지?”

박두식이 한결에게 다가서며 짓눌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저놈은 위에서 보고 뛰어내렸어. 통조림을 던져 소리를 내고 우리가 허둥대는 틈을 타서 날 덮쳤다고.”

“팀장님.”

“저놈들은 눈을 뜨고 우리를 내려다보는데 우리는 눈가리개 뒤에 숨어서 장님 흉내를 내고 있잖아!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천 쪼가리를 두르고 있을 거냐?”

“그 사람은 눈을 떴기 때문에 변이자가 된 겁니다.”

한결이 차갑게 맞받았다.

“눈을 뜨는 순간 저 냉동실 안에서 문을 긁고 있는 사람이 우리가 됩니다.”

“하지만 저놈들은 말을 해! 생각도 하고 사냥도 한다고! 우리가 눈먼 짐승처럼 기어 다니는 동안 저놈들은 마트를 통째로 집어삼킬 거야!”

박두식의 목소리에는 깊은 공황이 깃들어 있었다. 랙 위에서 떨어진 괴물의 손톱 앞에서 그의 오만함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시각을 되찾아야만 살 수 있다는 맹목적인 집착이었다.

“방재실로 갑니다. 대열 정비하세요.”

한결은 대차의 손잡이를 잡았다.

네 사람은 조용히 물류창고를 빠져나왔다. 직원 전용 하역 통로의 차가운 바닥을 지나 방재실 후면 방화문 앞에 도착했다.

한결이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약속된 신호였다.

잠시 후 철문 안쪽에서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방재실 안쪽에서 사람들의 숨소리와 땀 냄새가 훅 풍겼다. 웅크리고 있던 생존자들이 다가왔다.

“물…… 물 가져오셨어요?”

누군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대차에 실린 생수병의 감촉이 전해지자 방재실 안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다투어 물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땄다. 어둠 속에서 꿀꺽거리며 목을 축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물 한 모금이 넘어가자 얼어붙었던 방재실에 비로소 생기가 도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박두식이 방재실 중앙으로 걸어 나와 쇠파이프를 바닥에 쾅 내리찍었다. 둔탁한 금속음이 제어반 벽을 울렸다.

생존자들의 움직임이 굳었다.

“다들 잘 들어.”

박두식의 쉰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창고에 물류 주임 김 서방이 있었다. 완전히 괴물이 됐어.”

방 안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그놈은 짐승이 아니야. 말을 하고 딸 이름을 부르면서 6미터 랙 위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덮쳤어. 내가 그놈 손에 목이 뜯길 뻔했다.”

박두식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저 바깥의 놈들은 눈을 뜨고 우릴 사냥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눈가리개를 하고 앉아 있단 말이다. 언제까지 눈먼 고기 덩어리로 남아 있을 텐가?”

방재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물로 갈증을 달랜 생존자들의 마음에 새로운 공포가 번져 나갔다. 바깥의 괴물들이 시각을 이용해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끔찍한 충격이었다.

“그럼…… 어떡해요, 팀장님?”

구석에 있던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차라리…… 우리도 잠깐씩 눈가리개를 풀고 망을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놈이 어디서 오는지 봐야 피할 거 아닙니까?”

불신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한결이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구석에 있던 통신 랙 안쪽에서 민석이 철망을 천천히 긁기 시작했다.

스륵. 스륵.

그 소리는 조금 전 냉동실 안에서 김 주임이 문을 긁던 소리와 기괴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리고 민석의 입에서 메마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빠 추워…….”

방재실 안의 모든 숨이 얼어붙었다.

“문 열어 줘…… 붉은 게 또 보여…….”

김 주임이 냉동실 안에서 손톱을 뜯기며 내뱉었던 마지막 비명이 민석의 혀를 통해 방재실 한복판에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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