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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들의 종탑지기2화

작은 신들의 종탑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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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시계탑에 남은 이름

“장부의 울림이 시장 쪽으로 이어져요.”

연우는 종탑에서 가져온 작은 종을 손에 들고 동쪽 성벽을 따라 걸었다. 어젯밤 빈 골목에서 들은 종소리는 끊겼지만, 장부의 한 페이지는 계속 미세하게 떨렸다. 울림은 도시의 시계탑을 향했다.

단비는 공구 가방을 메고 그의 옆을 걸었다. “시계탑에는 이름이 없어.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는 신이 아니라고들 하니까.”

“시계에도 약속이 있잖아요. 시장이 열릴 때, 문을 닫을 때, 사람들이 만나기로 한 시간.”

“그 약속이 누구 이름인지 알면 좋겠네.”

시계탑은 시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네 면의 문자판 중 동쪽 것만 시간이 멈춰 있었다. 바늘은 새벽과 정오 사이를 가리켰고, 아래쪽의 작은 종은 줄이 끊어진 채 흔들렸다. 시장 사람들은 시계탑 아래를 지나면서도 올려다보지 않았다.

“여기서 장사를 시작한 지 삼십 년인데, 시계가 멈춘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 상인이 말했다.

“지난주예요.” 단비가 답했다. “제가 수리 의뢰를 받았어요. 그런데 작업장에 부품이 없어서 아직 못 왔죠.”

“그럼 네가 고치면 되겠구나.” 연우가 말했다.

“이 장치는 내가 배운 규격이 아니야. 축이 서로 반대로 물려 있어. 누가 일부러 구조를 바꾼 것 같아.”

단비는 사다리를 세워 탑의 안쪽으로 올라갔다. 연우는 아래에서 장부와 종의 떨림을 비교했다. 종은 일정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바늘이 멈춘 순간에 맞춰 아주 약하게 울렸다. 누군가 시계를 멈추는 동시에 이름을 장부에서 지운 것 같았다.

“단비, 축을 바로 맞추면 종도 울리게 될까요?”

“그건 몰라. 지금 구조를 먼저 그려야 해.”

단비는 기어의 위치를 종이에 옮겼다. 그녀는 어느 축이 먼저 멈췄는지 표시하고, 금속 톱니에 남은 긁힘을 살폈다. 연우는 종을 만지지 않고 그 소리를 들었다. 울림이 사라진 이름과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시계탑 안쪽 벽에는 작은 명판이 붙어 있었다.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만 네모나게 깨끗했다. 단비는 나사 두 개를 풀어 명판을 떼었다. 뒤에는 마른 잉크 자국이 여러 겹으로 남아 있었다. 가장 아래쪽의 글자는 긁혀 있었지만, 모서리에는 ‘마레…’라는 두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사람 이름인가?”

“모르겠어요. 신의 이름일 수도 있어요.”

“이름을 팔면 기억을 일부 내놓는다던데, 이렇게 명판까지 지우는 이유가 뭐지?”

“거래가 끝났다는 표시일 거예요.”

그때 시장의 종이 한 번 울렸다.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상인들이 물건을 덮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단비는 시계 바늘을 봤다. 바늘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

“누가 종을 울린 거지?”

장부가 연우의 손에서 떨렸다. 그는 종탑에서 배운 대로 숨을 고르고, 종의 울림이 지나간 방향을 따라갔다. 탑 뒤쪽의 좁은 창고 문 앞에서 떨림이 멈췄다.

창고 안에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시계탑 관리인이었고, 무릎 위에는 낡은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연우가 들어서자 노인은 그를 알아본 듯 눈을 좁혔다.

“종탑지기구나. 이름을 찾으러 왔나?”

“시계탑에서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궁정 기록소가 명판을 가져갔지. 시장 사람 하나가 기억세를 내지 못했거든.”

“기억세를 내지 못하면 이름까지 가져가나요?”

“빚을 갚으려면 기억을 팔아야 했어. 이름은 기억을 찾는 열쇠였고.”

노인은 종이 뭉치를 펼쳤다. 날짜마다 시민의 이름과 주소, 거래한 기억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쪽은 정식 징수표였지만, 다른 쪽은 지워진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궁정은 이름을 지우고 주소를 바꿔, 기억을 되사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단비는 명단의 빈칸을 훑었다. “여기 내 어머니 이름이 있어요.”

연우가 그녀를 보았다. 단비는 종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몇 년 전 궁정 기록소에서 일했어. 돈이 급해서 가족 기억 하나를 팔았다고 했지. 난 그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어.”

“기억을 팔면 이름이 사라지는 건가요?”

“항상 그렇진 않아. 이름을 담보로 맡기면 기억에 접근할 권리를 넘기는 거야. 기억을 산 쪽이 이름까지 가져가면 그 사람과 연결된 신들도 약해져.”

연우는 장부의 울림을 확인했다. 노인의 서류철에서만 떨림이 강해졌다. 그는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면 신의 흔적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거래 당사자의 동의 없이 기억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찾아야 해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찾아도 그들이 기억을 돌려받고 싶어 할지 모르지. 어떤 사람은 아픈 일을 잊고 싶어 했어.”

단비는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줄을 오래 바라봤다. “내가 먼저 물어볼게요.”

시계탑의 멈춘 바늘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단비는 탑으로 돌아가 기어를 다시 살폈다. 기어 하나가 정방향과 역방향을 동시에 물고 있었다. 누군가 시간을 멈추려 한 게 아니라 특정 시각을 기록에서 빼려 한 것 같았다.

“이 축을 풀면 시계가 돌아가. 하지만 이름을 새긴 명판은 아직 복원할 수 없어.”

“종도 울릴 수 있나요?”

“추를 고치면 가능해. 다만 어떤 이름을 부를지는 우리가 정하면 안 돼.”

단비는 끊어진 줄을 새 밧줄로 잇고, 멈춘 기어를 제자리에 맞췄다. 연우는 장부를 펼쳐 명단에 적힌 사람들의 현재 주소를 기록했다. 그때까지는 어디에도 종을 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기억의 주인을 찾고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단비의 어머니 마레나는 시장 끝에서 작은 수선점을 운영했다. 두 사람은 시계탑 관리인이 알려 준 주소로 찾아갔다. 가게 앞에는 낡은 앞치마가 걸려 있었고, 창문에는 손님이 맡긴 옷들이 줄지어 있었다. 단비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가 그 기억을 팔았다고 말한 건 내가 열네 살 때였어요. 나는 기억이 뭔지 묻지 않았어. 집안이 어려웠고, 어머니가 결정한 일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연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기억을 돌려주고 싶은지부터 물어볼 거예요.”

그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레나는 단비를 알아보고 웃었지만, 연우를 보자 눈을 가늘게 떴다. 단비는 궁정 명단을 꺼내지 않고 먼저 물었다.

“엄마, 기억세로 넘긴 게 뭔지 아직 기억해?”

마레나는 옷을 접던 손을 멈췄다. “너를 처음 안았던 날. 그런데 그 기억은 내가 넘겼어. 다시 사려면 값을 내야 해.”

“그 기억을 돌려받고 싶어?”

“좋은 기억인지 아픈 기억인지 모르겠어. 태어난 날을 알고 싶지만, 모르는 채 살아온 시간도 내 삶이야.”

단비는 명단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엄마가 원할 때 다시 물어볼게. 내가 대신 선택하지 않을게.”

마레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네가 어릴 때 시계탑 종이 울리면 네가 잠들었지. 그 종을 고치는 사람이 된다니.”

단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레나는 옛 기억을 되찾지 않았지만, 둘은 지금 함께 있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우는 가게 문턱 옆에 작은 종이 매달린 것을 발견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종은 흔들렸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종 안쪽의 이름은 긁혀 있었다.

“이 종을 누가 걸었어요?”

“전 주인이요. 수선점을 처음 열 때 문턱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죠. 그 사람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약속은 남아 있어요.”

연우는 종을 장부에 기록했다. 그는 이름을 강제로 되돌리지는 않았다. 대신 마레나가 기억하는 약속을 적었다. 이름의 일부가 비어 있어도, 누군가 그 역할을 기억하면 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노인은 낡은 서류철을 연우에게 건넸다. “이 목록은 궁정 기록소로 옮기기 전에 복사해 둔 거다. 나도 그때 이름을 지우는 걸 도왔어. 이제는 숨길 수가 없구나.”

“이 명단을 공개하면 당신도 조사를 받을 거예요.” 단비가 말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숨기면 그 사람들은 다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하겠지.” 노인은 서류철에 자기 이름도 적었다. “내가 한 일까지 함께 남겨라.”

연우는 그의 서명을 확인하고, 기록에 증언자의 동의를 표시했다. 기억을 훔친 일을 밝혀내는 것과 기억을 돌려주는 일은 달랐다. 그들은 먼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의사를 물어야 했다.

그 순간 시계탑의 바늘이 움직였다.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시장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가리켰다.

종소리 끝에 아주 작은 목소리가 섞였다.

“마레나.”

단비는 숨을 삼켰다. “그건 우리 엄마 이름이야.”

연우는 장부의 새 페이지에 그 이름을 옮겼다. 종탑 아래의 작은 신 하나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흐려졌다. 그러나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더 많은 이름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이름 옆에는 궁정 기록소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연우는 그 인장을 뜯지 않았다. 인장을 건드리면 서류의 출처가 훼손될 수 있었다. 그는 종이와 잉크의 상태를 기록하고, 시계탑 관리인과 단비에게 각각 사본을 맡겼다. 종소리는 이제 멈추지 않았지만, 이름 장부의 빈 페이지는 더 넓어지고 있었다.

단비는 어머니의 가게에 돌아가 다시 종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종을 울려 이름을 찾으려 하지 않고, 문을 지키는 약속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

종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우는 마주친 상인들에게 시계가 다시 움직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종이 사람의 기억을 강제로 돌려놓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시장 사람들은 아녜의 이름이 지워졌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이제는 자기들이 지켜 온 약속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연우는 한 사람씩 이름과 약속을 묻고 작은 쪽지에 기록했다. 어떤 이는 가게를 열 때 첫 빵을 이웃에게 건넸고, 어떤 이는 매일 해 질 무렵 골목등을 켰다. 그 기록을 장부에 옮기자 흐려졌던 작은 신들의 윤곽이 조금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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