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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들의 종탑지기3화

작은 신들의 종탑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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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문턱이 기억한 아이

궁정 기록소의 인장은 종탑 아래 서랍에 보관됐다. 연우는 원본을 펼치지 않고도 종이 가장자리에서 약한 울림을 들었다. 지워진 이름들은 모두 동쪽 성벽의 빈 골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명단에 적힌 주소는 지금 도시 어디에도 없어.” 단비가 말했다. “기록소가 골목을 지운 게 먼저인지, 사람들의 이름을 가져간 게 먼저인지 모르겠어.”

“둘 다 순서가 아니라 같은 일일 수도 있어.”

아녜는 종탑의 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윤곽은 어제보다 흐렸다. 연우는 아녜의 이름을 장부에 새로 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지켜 온 문과 약속을 기록했다. 이름을 복원하려면 그 이름이 살았던 흔적이 더 필요했다.

“왜 내 이름을 장부에 다시 쓰지 않니?” 아녜가 물었다.

“이름을 아는 것과 그 이름이 지금도 당신 것인지 아는 건 달라요.”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내가 누구였는지 말하지 못하는구나.”

“당신이 원하지 않는 기억을 제가 되돌려 놓으면 안 되니까요.”

아녜는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금 사이에 문틀의 나뭇결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한때 여러 집의 문을 지켰어. 어느 집에서 내 이름을 처음 불렀는지 잊었지. 그래도 약속을 지키며 살았다는 사실은 기억해.”

“그럼 오늘은 그 약속을 기록할게요.”

“그리고 네 이름도 적어 두렴. 기억을 듣는 동안 네가 무엇을 잃었는지, 너 혼자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어.”

연우는 장부의 첫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단비가 그 글자를 읽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남의 입에서 들릴 때 마음이 조금 놓이는 걸 느꼈다.

“빈 골목으로 다시 가야겠어요.”

“그곳에는 궁정 징수관이 있을 거야.” 아녜가 말했다. “그들은 기억을 사는 게 아니라, 기억을 빚으로 묶어.”

단비는 공구 가방에 작은 톱과 못을 넣었다. “그럼 문이 잠겨 있으면 내가 열게. 이번엔 장부를 빼앗기지 않도록.”

빈 골목에 도착했을 때는 낮이었다. 어젯밤 열린 문은 닫혀 있었고, 문턱의 온기도 사라져 있었다. 대신 골목 입구에 검은 외투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가슴의 은색 인장은 궁정 기억청의 표식이었다.

“종탑지기 연우. 기록물을 반환하라.”

“이 명단은 시민의 이름이 적힌 기록입니다.”

“그 이름은 담보 계약으로 이전됐다. 소유권은 기억청에 있다.”

“이름을 팔았다고 사람이 사라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만 거래되었을 뿐이다.”

징수관은 서류를 내밀었다. 명단에 적힌 이들은 모두 기억 거래에 서명했으며, 거래 조건을 위반하면 주소와 이름을 기록에서 삭제하도록 동의했다는 문구가 있었다. 단비는 서류의 날짜를 살폈다.

“이 서명은 같은 날 같은 손으로 썼어요. 사람들이 직접 서명한 게 아니야.”

“대리 서명은 법으로 허용된다.”

“그럼 누가 대신했는지 기록도 있어야죠.”

징수관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손짓으로 호위 둘을 불렀다. 그들이 다가오자 골목의 집들이 하나씩 희미해졌다. 창문과 문틀이 안개에 섞이고, 바닥의 발자국도 지워지기 시작했다.

연우는 장부를 펼쳤다. 이름의 울림이 서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지만, 한 번 더 강하게 종을 울리면 자신의 기억이 흐려질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어머니 얼굴의 일부가 떠오르지 않았다.

단비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네가 울림을 쫓는 동안 내가 문을 열게. 혼자 이름을 찾으려 하지 마.”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빈 종을 한 번만 울렸다. 소리는 낮고 길게 골목을 지나갔다. 장부에 적힌 이름들이 흔들렸고, 집들의 문이 하나씩 모습을 되찾았다.

첫 번째 문에서 노인이 나왔다. 그는 징수관을 보고 물러서려 했지만, 단비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이곳에 살았던 기억이 있나요?”

노인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잠그고 나갈 때, 늘 문턱을 두 번 두드렸어. 아내가 돌아오면 그 소리를 들었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싶으세요?” 연우가 물었다.

“이름은 잊었어도 그 소리는 기억해. 그걸로 충분해.”

노인의 말이 끝나자 문턱 아래에서 작은 신이 나타났다. 아녜와 닮은 노파였지만 더 작고, 한쪽 손이 투명했다. 그녀는 노인의 발을 보고 미소 지었다.

“두 번 두드리는 약속을 기억하는구나.”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누구요?”

“네 집 문을 지킨 신이야. 이름은 아직 모르겠지.”

“이름을 몰라도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신은 대답 대신 문턱을 손으로 쓸었다.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작은 울림이 장부로 이어졌다. 연우는 그 신의 이름을 강제로 묻지 않았다. 노인이 기억하는 약속을 장부에 적고, 신이 직접 이름을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징수관은 호위에게 명단을 빼앗으라고 지시했다. 단비가 앞을 막았다. “이 사람들 중 누구도 지금 기억을 되찾겠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이름을 돌려준다는 이유로 또 뭘 가져가려는 거죠?”

“기억은 계약에 따라 관리된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에게 계약 내용을 다시 읽어 주세요. 지금 이해할 수 있는 말로요.”

징수관은 잠깐 침묵했다. 그의 뒤에서 골목의 문 하나가 열렸다. 안에서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연우의 가슴이 이유 없이 아팠다. 그는 문 안을 들여다봤다.

작은 방에는 낡은 나무 장난감과 손바닥 크기의 종이 놓여 있었다. 종 아래에는 ‘연우’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살았어요?” 단비가 물었다.

연우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어린 시절 집을 떠올리려 했다. 빈자리만 있었다. 장부의 울림이 이름 아래에서 크게 흔들렸다.

아녜의 목소리가 골목 끝에서 들려왔다. “그 문은 네가 처음 걸음마를 배운 집이야.”

연우는 노파를 바라봤다. 아녜가 아니었다. 문턱 신의 흐릿한 몸이 한 걸음 다가왔다.

“너를 지키려던 이들이 이름을 거래했어. 네 가족이 빚을 갚기 위해서였을 수도, 널 기억청에서 숨기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어.”

“왜 제 기억이 비어 있죠?”

“기억을 가져간 사람이 너를 보호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연우는 장부를 내려다봤다. 종소리를 더 크게 울리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찾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기억의 주인은 자신뿐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는 손을 종에서 떼었다.

“지금은 듣지 않겠습니다. 먼저 이 집의 약속을 확인할게요.”

그는 방 안을 살피며 장난감, 종, 문턱의 긁힌 자국을 기록했다. 단비는 창틀 안쪽에서 오래된 주소표를 찾았다. 궁정 인장이 찍힌 기록과 실제 집의 흔적이 같은 날짜에 지워져 있었다.

연우는 문틀의 높이를 장부에 적었다. 어린아이가 자란 흔적처럼 벽에 연필로 그어진 선이 다섯 개 남아 있었다. 마지막 선 옆에는 작은 글씨로 ‘연우가 다시 돌아오면 키를 재자’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문장을 읽고도 이름을 소리 내지 않았다. 그 기억은 자신에게 속한 것 같으면서도, 누군가와 나눈 약속이었다.

“이 집에 살던 사람은 누구죠?” 단비가 노인에게 물었다.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 이름은 지워졌지만, 겨울마다 골목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 줬어.”

“그 아이가 저일까요?” 연우가 물었다.

노인은 그를 한참 바라봤다. “네가 누구인지 대신 말해 줄 수는 없어. 다만 그 아이가 종탑지기를 꿈꿨다는 건 기억해.”

단비는 주소표 뒤에 남은 숫자를 읽었다. 그 집의 주인은 기억청에 가족의 기억을 담보로 맡긴 뒤 다른 구역으로 이주한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이주 날짜는 실제 기록과 맞지 않았다. 계약서가 작성된 날에는 이미 골목의 주민들이 사라져 있었다.

“서명 이전에 주소가 지워졌어요.” 단비가 말했다.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라진 뒤에 문서를 만든 거야.”

연우는 장부의 페이지를 펼쳐 증거를 적었다. 날짜, 주소, 명판의 나사 자국, 주민의 증언을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했다. 기억이 흐릿해도 남은 흔적은 서로 맞물렸다. 징수관이 내민 계약서는 그 증거와 맞지 않았다.

문밖에 있던 주민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이는 자기 집 문턱을 알아봤고, 어떤 이는 오래전 이웃이 남긴 열쇠를 기억했다. 그들은 잃은 이름을 당장 되찾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의 허락으로 주소가 지워졌는지, 아직 살아 있는 가족의 기억까지 거래 대상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연우는 하나씩 질문하고 답을 기록했다. 사람마다 기억하는 내용은 달랐지만, 모두가 같은 겨울에 갑자기 이 골목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주였다.

단비는 주민의 동의를 받고 각자 기억하는 문장에 이름을 붙였다. 기억이 불완전한 사람은 빈칸을 남겼고, 확신할 수 없는 내용에는 물음표를 달았다. 아무도 대신 답을 정하지 않았다. 노인은 첫 장에 자기 이름을 직접 적었다. 글씨가 떨렸지만, 지우지 않았다.

“내가 도운 일도 적어야 해. 기록을 숨기는 걸 거들었으니까.”

연우는 노인의 말과 서명을 그대로 옮겼다. 그 기록은 누구를 구해 주는 변명도, 누구를 심판하는 판결도 아니었다. 다만 골목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남겨 두는 증거였다.

징수관은 문서를 거두려 했지만, 노인이 자기 이름과 증언을 공개 장부에 적었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주민들도 하나씩 기억하는 약속을 말했다. 이름을 되찾겠다는 이는 없었지만, 자신이 누구였는지 누가 결정하는지는 알고 싶다고 했다.

기억청의 징수관은 더 이상 그들을 막지 못했다. 그는 물러나며 연우를 향해 말했다.

“네가 듣는 이름 중 하나는 네 것이 아니다.”

골목의 모든 문이 동시에 울렸다. 종탑 위쪽에서 빈 종의 소리도 함께 퍼졌다. 연우는 장부를 움켜쥐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기억세 징수 대상: 종탑지기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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