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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건축가의 빈집 수리법2화

옆집 건축가의 빈집 수리법

옆집 건축가의 빈집 수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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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벽을 열기 전의 동의

건우는 오전 일찍 집에 도착했다. 그는 공사 도면과 현장 촬영 사진을 인쇄해 왔다. 벽 안의 빈 공간은 폭이 손바닥 정도였고, 금속 고리가 붙은 상자는 바닥 쪽에 있었다. 구조를 손상하지 않고 꺼내려면 벽판 일부를 절개해야 했다. 보수는 가능하지만, 목재가 오래되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걸 결정하는 사람은 노을 선생님이에요.” 이담이 말했다.

“조카가 계약서에 서명했으니 공사 범위는 조카가 결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벽 안의 물건을 열어 보는 동의는 별개죠.”

“강문식 씨는 열지 말라고 했어요.”

“그분에게 권한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건우는 말투가 차가웠지만, 이담은 그가 편지의 내용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쓴다는 걸 알았다. 그는 도면에서 벽 부분을 표시하고, 조카에게 확인할 서류를 보냈다. 소유권 이전이 완료됐는지, 노을에게 남은 사용권이 있는지, 실내 물건 처리에 관한 위임이 어디까지인지. 답이 오기 전에는 공사를 시작할 수 없었다.

점심 무렵 노을이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상자에 든 편지를 보고 이담에게 말했다.

“네가 읽었니?”

“아니요.”

“그럼 왜 밤새 그걸 지키고 있었어?”

“누군가 열지 말라고 했고, 선생님은 보내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두 말의 뜻을 확인하기 전에는 제가 결정할 수 없어서요.”

노을은 편지를 손에 들었지만 봉인을 뜯지는 않았다. “문식이가 전화했구나.”

“네. 편지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고 했어요.”

“그 애는 늘 자기 이름부터 걱정했어.”

“편지의 수신인은 동생분인가요?”

노을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묻지 마. 지금은 그 사람도 살아 있을 수 있어.”

“그럼 벽 안에 든 물건은요?”

노을은 창문을 열었다. 마당의 목련이 거의 지고 있었다. “그 물건은 문식이가 넣었어. 나는 함께 숨겼고.”

“왜요?”

“그때는 그게 서로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노을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담은 물어야 할 것이 많았지만, 질문을 멈췄다. 벽을 열기 전에 당사자가 말하고 싶은 만큼만 들으면 됐다. 건우도 공사 일정표를 접었다.

“동의를 받지 못하면 수리 범위를 바꾸겠습니다. 벽은 그대로 두고 외부에서 보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 노을이 말했다.

“그건 집을 팔기로 한 사람이 감당할 비용입니다. 물건을 열 권한은 가격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노을은 건우를 바라봤다. “당신은 집을 고치면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어떻게 정하나요?”

“현재 사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과, 구조상 지켜야 하는 것을 나눕니다. 그 다음에는 둘 사이에서 선택지를 설명하고요.”

“그렇게 해서 다 남길 수는 없잖아.”

“맞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남길지는 주인이 정해야 합니다.”

노을은 편지를 손에 쥔 채 한참 앉아 있었다. 오후가 다 되어서야 그녀는 문식에게 전화했다. 이담과 건우에게는 방 안에 남아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스피커폰을 켜자 문식의 목소리가 곧바로 들렸다.

“누님, 편지 열지 말고 돌려보내요.”

“누가 보냈는지 기억하니?”

“그만합시다.”

“난 기억해.”

“기억한다고 해서 지금 일을 뒤집을 수는 없어요.”

문식은 벽 안의 상자를 열지 말라고 반복했다. 그는 노을이 다시 상처받을까 걱정한다고 했다. 노을은 고맙지만 대신 결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그 말에 문식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 사람이 아직 이 동네에 있을지도 몰라요.” 문식이 말했다.

“그럼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지.”

“누님이 직접 연락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부탁하면 이담 씨가 알아봐 줄 수 있어.”

“누님, 그만두세요.”

“나는 이미 오래전에 그만뒀어. 이제 그만두라는 말을 누가 누구에게 하는지부터 생각하자.”

통화가 끊겼다. 노을은 편지를 탁자 위에 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이담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편지의 수신인은 이웃집에 살던 번역가야. 그 사람은 내게 한옥의 기록을 번역해 줬어. 내가 그에게 마음을 전했는데, 답을 받기 전에 집안이 그를 쫓아냈지.”

“문식 씨가 그 일을 막으려 했나요?”

“아니. 문식이는 당시 어린애였어. 내가 부탁해서 편지를 숨겼고, 벽을 덧댔어. 나중엔 편지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이 이사 간 뒤였지.”

노을은 편지를 봉인한 채 이담에게 건넸다. “열어도 좋다. 다만 이름을 찾아내서 공개하지는 말아 줘.”

이담은 그 동의를 서면으로 받아 적었다. 편지 열람은 당사자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가능하고, 기록은 노을의 지정 대리인에게 전달한다. 건우는 벽을 여는 작업의 구조 위험과 복원 계획을 설명했다. 노을은 손실 가능성을 이해하고 동의서에 서명했다.

작업은 다음 날 진행하기로 했다. 그 사이 이담은 편지를 열었다. 내용은 짧았다. 노을은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상대가 떠나기로 결정했다면 답장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마지막에는 “이 집 벽에 넣어 둔 상자 안에는 당신이 두고 간 번역 원고가 있습니다. 원하시면 돌려 드리고, 원치 않으면 태우겠습니다”라고 썼다.

“상자는 그 사람 것이었네요.” 건우가 말했다.

“원고를 돌려줄지 확인해야겠어요.”

“이름은 주소에 있습니까?”

봉투에 적힌 주소에는 이름이 없었다. 우체국 주소록은 바뀌었고, 오래된 명부를 확인하려면 개인정보 절차가 필요했다. 이담은 노을에게 상대에게 연락을 시도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했지만, 상자에 있는 원고의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연락까지 막지는 않았다.

“직접 연락해도 좋다. 대신 내 감정에 대한 답을 요구하지 마.”

“그렇게 하겠습니다.”

문식은 다시 전화해 벽을 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누나가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이담은 그 마음을 들었지만, 노을이 이미 동의했고 복원 위험도 이해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문식은 “그분은 지금 판단이 흐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 판단을 확인할 방법은 의료진이나 법적 대리인의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의를 지울 수는 없어요.”

“집은 조카가 팔 거예요.”

“집의 처분과 편지의 공개는 별개의 일입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이담은 연락 가능한 주소를 찾아 보존 자료 담당자에게 공식 문의를 넣었다. 상대가 원고 반환을 원할지, 연락 자체를 원치 않을지 답은 아직 없었다. 건우는 도면에 벽 복원 방식을 그렸다. 최소한의 목재만 잘라 내고, 새 판을 붙일 때 원래의 흔적을 남겨 두는 방법이었다.

작업 전날 밤, 한 통의 팩스가 집에 도착했다. 강문식이 보낸 법률대리인 통지서였다. 벽 안의 물건은 자신의 소유이며, 동의 없이 개봉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문식은 상자 안의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해 두었다.

노을은 종이를 읽고 말했다.

“그 애가 또 내 대신 결정하려 하는구나.”

이담은 동의서를 탁자 위에 놓았다. “내일 공사는 멈출 수도 있어요. 소유권 확인이 끝날 때까지요.”

“그럼 멈춰. 다만 누구 말을 들을지 내가 고를게.”

그날 오후 건우는 안방의 바닥을 재며 수리 작업의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집은 오래 비어 있었지만, 습기가 심하지 않았고 기둥도 견딜 만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북쪽 벽이 아니라 뒤뜰 배수로였다. 빗물이 마루 밑으로 스며들면 벽 안의 상자와 상관없이 목재가 썩을 수 있었다. 건우는 조카에게 사진과 견적을 보냈다. 벽을 열지 않아도 지금 필요한 보수는 가능하다는 점, 다만 상자에 접근하려면 별도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함께 설명했다.

“집을 팔려는 쪽에서는 벽을 깨끗하게 마감하길 원하겠죠.” 이담이 말했다.

“깨끗하게 보이도록 흔적을 지우는 것과, 안전하게 수리하는 건 다른 일입니다.”

건우는 창틀 아래 물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부터 고치면 재발을 막을 수 있어요. 집을 새것처럼 보이게 덮는 건 쉬워도, 원인을 그대로 두면 다음 사람이 비용을 내야 합니다.”

그의 말은 건축 얘기였지만 이담은 자신이 하는 일과 닮았다고 느꼈다. 물건을 정리할 때도 낡은 흔적을 다 버리면 공간은 깔끔해져도 누가 살았는지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흔적마다 의미를 부여하면 현재의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무엇을 남길지 정할 권리는 집의 주인에게 있어야 했다.

문식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그는 누나가 편지를 열었다는 걸 알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담은 편지를 읽은 사람이 노을이며, 노을의 동의로 기록 범위 안에서 열람했다고 설명했다. 문식은 자신이 가족이니 말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담은 가족 관계와 법적 권한을 구분해 확인하자고 말했다. 그가 누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부정하지 않되, 그 마음만으로 노을의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문식은 한참 침묵했다. “누님이 상처받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그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처받을 가능성을 누님이 감당할지 말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담 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끼어들겠다는 겁니까?”

“저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집주인의 동의 범위와 물건의 권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통화가 끊긴 뒤 이담은 노을에게 문식이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을은 고맙다고 했지만, 그를 대신 용서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이담은 문식의 감정과 노을의 권리를 각자 따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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