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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건축가의 빈집 수리법1화

옆집 건축가의 빈집 수리법

옆집 건축가의 빈집 수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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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벽 안에서 나온 편지

정이담은 벽지를 벗기다가 손을 멈췄다. 종이가 아니라 얇은 나무판이 손톱에 걸렸다. 오래된 한옥의 안방 북쪽 벽, 장롱이 있던 자리였다. 벽지 아래로 드러난 나무판은 다른 곳보다 색이 밝았다.

“여기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어요.”

유건우가 사다리 위에서 말했다. 그는 천장 들보를 살피느라 한쪽 손에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벽지가 들떠서 보수하려고 했는데요.”

“판이 따로 덧대어졌어요. 안쪽에 구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담은 헤라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집을 정리하러 온 사람이었다. 집주인인 최노을은 요양원으로 옮기기 전, 방 안의 물건과 벽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건우는 리모델링 설계를 맡은 건축가였다. 집을 고치려면 낡은 부분을 걷어내야 했지만, 무엇이 낡았고 무엇이 남겨야 할 흔적인지 판단할 사람은 아직 없었다.

노을은 마루 끝에 앉아 보온병의 차를 따라 마셨다.

“그 판은 예전에 내가 붙였어.”

“왜 붙이셨어요?” 이담이 물었다.

“바람이 들어와서.”

“벽 틈이 없는데요.”

“그땐 있었어. 겨울바람이 세게 들어왔지.”

노을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이담은 판의 가장자리를 살폈다. 못 머리가 두 곳에서 새로 박혀 있었다. 바람막이라기엔 너무 꼼꼼했다. 건우는 구조를 확인하기 전에는 뜯지 않겠다고 했다. 이담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작은 내시경 카메라를 넣을 구멍부터 찾았다.

“내일 구조 기사와 같이 오겠습니다. 벽을 여는 건 그 뒤에 결정하죠.”

“일정이 늦어지면 수리비가 늘어요.” 노을이 말했다.

“안쪽을 모른 채 뜯으면 더 크게 늘 수도 있습니다.”

“저 집을 고치기로 한 건 내가 아니에요. 조카가 팔겠다고 했지.”

노을의 조카는 이담이 알지 못했다. 이담은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이 조카라고 들었지만, 집의 소유권과 수리 동의가 누구에게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녀는 상속과 처분을 다룬 서류를 아직 받지 못했다.

“집주인의 동의를 다시 확인할게요. 오늘은 벽을 열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맞아.” 노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집은 내 것이 아니게 됐거든.”

저녁 무렵 이담은 마루에 남은 종이 상자들을 정리했다. 사진첩, 오래된 공책, 고장 난 라디오. 그중 하나의 바닥이 유난히 무거웠다. 상자를 열자 잡지와 천 조각 사이에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한자로 된 주소와 ‘봄이 오면’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편지는 봉해져 있었지만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랬다.

“이것도 버릴 건가요?” 건우가 물었다.

“물건 목록에 올리고 노을 선생님께 여쭤볼게요.”

“읽어 보면 안 되겠죠?”

“당사자가 원하면요.”

노을은 봉투를 보자 손을 멈췄다. 그녀는 편지의 글씨를 알아보는 듯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보내지 못한 편지야.”

“누구에게 쓴 거예요?”

“주소를 보고도 모르겠니?”

이담은 주소를 다시 보았다. 동네 이름은 지금과 같았지만 번지수가 달랐다. 노을이 오래전에 살았던 집일 수도 있고, 이미 사라진 우체국일 수도 있었다.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보내지 마. 이미 늦었어.”

노을은 편지를 상자에 돌려놓았다. 그런데 이담은 봉투의 뒷면에 연필로 적힌 숫자를 보았다. 1989년 3월 12일. 집이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된 해였다. 그날 누가 벽을 덧댔을까. 편지는 왜 상자 바닥에 숨겨졌을까.

건우가 집의 도면을 펼쳤다. “벽 뒤에 빈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죠. 편지와 연관됐다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그건 알아요.”

“이담 씨는 물건을 보면 이야기를 먼저 만들어요?”

“사람이 남긴 물건을 목록에 넣는 일이 제 일이니까요. 물건은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지만, 결론을 알려 주지는 않아요.”

건우는 그 대답을 듣고 도면의 치수를 다시 쟀다. 외벽 두께가 주변보다 조금 더 두꺼웠다. 벽 안에 작은 공간이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다만 그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열어 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구조 기사가 왔다. 그는 내시경 카메라를 넣을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뚫고 화면을 확인했다. 벽 안에는 먼지와 낡은 단열재만 보였다. 하지만 아래쪽에서 작은 금속 고리가 반짝였다. 기사는 영상만 저장하고 구조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멈췄다.

“작은 상자처럼 보이는데요.”

노을은 마루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화면을 보지 않으려는 듯 창밖을 바라봤다.

“열지 말아요.”

“구조를 확인해야 수리 계획을 정할 수 있어요.” 건우가 말했다.

“그 안에 있는 건 내 것이 아니야.”

“누구 물건인지 아세요?” 이담이 물었다.

“알아도 말할 수 없지.”

노을은 방을 나갔다. 건우는 이담에게 카메라 기록을 보관하겠다고 했다. 소유권 확인과 당사자 동의 없이 벽을 열 수는 없었다. 그날 수리는 중단됐다. 의뢰인인 조카는 전화로 공사 지연에 불만을 표시했다. 집을 매매하기 전에 수리를 끝내야 한다며, 당장 벽을 열라고 요구했다.

“저는 집주인의 동의가 없으면 진행할 수 없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제 이름으로 계약했잖아요.”

“계약은 공사 범위에 대한 것이고, 집 안 물건을 개봉하는 권한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조카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담은 벽 안의 금속 고리를 떠올렸다. 그가 원하는 건 수리 완공일까, 집을 비우는 일일까.

전화를 끊은 건우는 이담에게 조카의 연락처를 전달했다. “내일 소유권 서류와 동의 범위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노을 선생님께도 물어봐야겠어요. 이 물건을 열어도 되는지.”

“기억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지 않겠다는 선택도 그분의 몫이에요.”

그날 밤, 이담은 상자 속 편지 봉투를 다시 확인했다. 연필로 적힌 주소 아래에 작게 한 문장이 더 있었다.

이 집 벽에 넣어 둔 것과 함께 보내 주세요.

그 순간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노년의 남자가 말했다.

“정이담 씨죠? 노을 누님 집에서 편지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강문식이라고 소개했다. 노을의 동생이었다. “그 편지는 절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안에 든 사람 이름이 나와 있어요.”

통화가 끝난 뒤 이담은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아직 편지를 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미 그 안에 적힌 이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담은 편지를 목록에 올릴 때 봉투의 상태, 발견 장소, 발견 시각을 각각 적었다. 발신인과 수신인은 추정하지 않았다. 적힌 주소는 현재 지번 체계와 달랐고, 봉투에 우편 소인은 없었다. 그녀는 집주인에게 확인할 질문을 세 개만 골랐다. 편지를 읽어도 되는지, 보관을 원하는지, 상대에게 연락해도 되는지. 질문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삶은 서류가 요구하는 답으로 밀려날 수 있었다.

노을은 “보관은 하되, 보내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왜 보내지 않으세요?” 이담이 묻자 노을은 잠시 생각했다. “답을 받으려고 쓴 편지가 아니었어. 그냥 그때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지.”

이담은 그 말도 기록했다. 편지를 전하고 싶다는 자신의 호기심은 별도로 적었다. 그 호기심이 상대를 찾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락은 노을이 다시 허락할 때만 진행할 거라고 표시했다. 건우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기록이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고, 사람을 계속 사건 안에 묶어 두기도 하겠네요.”

“그래서 기록을 누가 볼 수 있는지도 같이 정해야 해요.”

그는 도면 여백에 접근 권한을 적었다. 현장 기사, 집주인, 대리인. 이담은 편지 목록을 밀봉 상자에 넣고, 상자 번호를 노을에게 보여 주었다. 노을은 숫자를 확인한 뒤 자기 손으로 보관 장소를 지정했다. 그 작은 선택을 마친 뒤, 그녀는 창문을 열어 방 안에 고인 먼지를 내보냈다.

“봄이 오면 편지를 보내겠다고 써 놨나 봐.” 노을이 말했다. “그런데 봄은 여러 번 왔지.”

이담은 편지의 내용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봄이 몇 번이었는지는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해가 지기 전 건우는 기와 밑의 빗물받이를 살폈다. 이담은 마당에서 수리 전후 사진을 찍고, 노을이 허락한 물건의 목록을 대조했다. 대문 밖을 지나던 이웃이 두 사람을 보고 “그 집도 드디어 팔리나 봐요”라고 말했다. 이담은 집이 누구에게 넘어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웃은 오래전 노을이 한겨울에 벽을 직접 고쳤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곧 자신이 들은 소문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담은 그 이야기를 사실 목록에 넣지 않았다.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말은 소문으로 분류했다. 건우는 작업등을 끄고 공구를 정리했다. 그가 먼저 돌아가자고 하지 않아, 이담은 자신이 확인을 끝낼 때까지 마당에 더 머물렀다. 집 안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남아 있었다. 편지를 찾았다는 사실보다, 그 편지를 지금 누구에게 돌려줄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담은 사진 파일에 촬영 시각과 위치를 적고, 편지 봉투는 다시 상자에 넣었다. 건우가 대문을 닫기 전에 그녀는 노을에게 보관 상자 위치를 문자로 알렸다. 답장은 짧았다. 고맙다. 오늘은 잠이 올 것 같구나. 이담은 그 문장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읽은 뒤 메시지를 지웠다.
그날 밤 비가 왔고, 배수로는 물을 잘 흘려보냈다.
새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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