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화: 소리는 장소를 기억한다
태경은 인형에서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고 보고하지 않았다.
그는 그 목소리가 과거 자신이 들었던 말인지, 증거물에 새로 남은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기록에 쓰면 수사의 방향이 태경의 기억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주환은 봉투를 다시 봉인하고, 인수증에 빠진 수거 번호부터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서진은 실종 아동 문하은의 집에서 인형이 발견됐다고 알렸다. 하은은 8년 전 실종됐고, 사망 추정 처리까지 됐다. 가족은 인형을 기억하지 못했다. 집은 여러 차례 이사했고, 수거한 사람은 이 인형이 어디서 나왔는지 특정하지 못했다.
“그 아이의 웃음이 맞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저는 소리의 주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왜 표정이 굳었죠?”
태경은 대답을 삼켰다. 서진은 그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감정서에 쓰지 않은 말까지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증거물의 표면을 촬영하고, 인형 내부의 녹음 장치 유무를 확인했다. 배터리 칸은 비어 있었다. 인형은 손으로 눌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태경은 인형의 털이 한쪽만 눌린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오래 안고 있었거나, 무거운 물건 아래에 놓였을 수 있었다. 털 사이에는 회색 시멘트 먼지가 박혀 있었다. 실종 아동의 집 바닥은 나무였고, 창고 현장은 콘크리트였다. 먼지가 어디서 묻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주환은 현장 사진의 바닥재 표본을 요청했다. 실험실에서 비교한 결과, 인형의 먼지는 오래된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와 비슷했다. 태경은 웃음소리가 들렸던 열쇠고리에도 같은 먼지가 묻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주환은 그 말을 감정 결과로 사용하지 말고, 실제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하자고 했다.
서진은 수사팀과 함께 오래된 지하 주차장을 찾았다. 그곳은 실종된 아이가 다니던 학원 건물의 지하 공간이었다. 학원은 폐업했지만, 주차장 한쪽 벽에는 아이들의 키를 재던 연필 선이 남아 있었다. 가장 아래 선 옆에는 ‘하은, 8세’라고 적혀 있었다.
태경은 벽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서진에게 그 선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사진에는 연필 자국 아래 작은 스피커 구멍이 보였다. 건물 관리인은 예전에 안내 방송 장치가 있었다고 했다. 전원은 끊겼고, 배선은 벽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아이 웃음이 여기서 녹음됐을 수도 있겠네요.” 서진이 말했다.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알아도 누가 말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을 찾은 거죠.”
주환은 벽 안의 배선 일부를 수거했다. 물체가 어떤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그 소리가 공간에서 반사된 것인지 구분하려면 비교가 필요했다. 그는 같은 건물의 다른 벽에서 표본을 채취하고, 현장 소리를 여러 방향에서 녹음했다.
실험실로 돌아온 태경은 인형 표면의 소리를 다시 듣지 않았다. 대신 그가 들은 웃음의 길이와 높낮이를 기억에 의존해 말로 설명했다. 주환은 그 기억을 파형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태경은 자신이 들은 소리가 1초 남짓했고, 웃음 끝에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 서진은 수거 번호가 비어 있는 인형의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물건은 현장에서 경찰서로, 경찰서에서 임시 보관함으로, 다시 국과수로 옮겨졌다. 그러나 임시 보관함에 넣은 담당자가 기록되지 않았다. 보관함 잠금 로그에는 여는 사람이 두 명으로 찍혔지만, CCTV에는 한 명만 보였다.
태경은 영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의 존재를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서진은 그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답했다. “안 찍힌 사람이 있다면 카메라가 고장 났는지, 사람이 숨었는지, 기록이 잘못됐는지 따로 봐야 해요.”
두 사람은 보관함을 다시 확인했다. 내부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작은 음표 모양이 있었다. 태경은 그것을 보고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세 번 웃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는 곧바로 물러났다.
주환은 태경의 손목을 잡고 감정실에서 내보냈다. 능력 사용으로 인한 과거 기억이 현재 증거에 섞이면 안 됐다. 서진은 그의 과거를 물었지만, 태경은 어릴 적 사고가 있었다고만 답했다.
주환은 인형에서 들린 웃음이 어떤 장소의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감정실에 작은 음향 반사실을 마련했다. 인형을 넣지는 않았다. 같은 재질의 면 인형과 플라스틱 눈, 솜을 준비해 다양한 공간에서 녹음한 웃음을 재생했다. 태경은 소리의 높낮이와 길이를 기억으로 설명하되, 파형 측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주환은 감정실의 벽과 바닥에 각기 다른 재질을 설치했다. 같은 웃음도 콘크리트 벽에서는 끝이 길게 퍼지고, 타일 바닥에서는 금속성 울림이 강조됐다. 태경이 기억한 소리에는 짧은 잔향과 일정한 저음이 있었다. 그것은 지하 주차장의 반향과 비슷했지만, 주차장 안의 모든 위치가 같은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기억이 소리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습니다.” 주환이 말했다.
“그래서 감정 결과로 쓰지 않겠습니다.”
“그럼 왜 계속 추적하죠?”
“같은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주환은 그 대답을 듣고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는 비교를 위해 학원 건물 지하에 있던 안내 방송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장치는 이미 철거됐지만, 배선 구멍과 설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서진은 관리인의 동의를 받아 현장 출입을 허가받았다.
지하 주차장에는 밤새 비가 스며들어 바닥에 얇은 물막이 생겼다. 태경은 구두를 벗고 덧신을 신었다. 기존 발자국을 지우지 않기 위해 가장자리로만 이동했다. 서진은 벽의 키 표시와 아이들 이름을 촬영했다. ‘하은’ 글씨 옆에는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눈은 두 개였지만 입은 세 줄로 그어져 있었다.
“이 그림을 보고 웃음소리를 떠올릴 수 있겠네요.” 서진이 말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 기억과 그림을 연결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벽 안쪽에서 낡은 배선 조각을 발견했다. 전선 끝은 잘려 있었지만, 절연 테이프가 최근에 다시 감긴 흔적이 있었다. 건물 관리인은 아무도 전기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진은 전기 기록을 확인하는 동안 태경이 배선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환기팬이 켜지자 먼지가 흩어졌다. 그 순간 지하 주차장 끝에서 어린아이의 웃음이 들렸다. 서진은 즉시 손전등을 들었고, 태경은 소리가 난 곳을 정확히 가리키지 못했다. 웃음은 한 방향이 아니라 천장과 벽에서 번갈아 울렸다. 누군가 스피커를 켠 것 같았지만, 배선은 전원에 연결되지 않았다.
“거기 누구 있어요?” 서진이 외쳤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자동차 경적이 짧게 울렸다. 주차된 차량의 경보 장치는 모두 꺼져 있었다. 서진이 차 번호를 확인하는 사이, 태경은 바닥의 물이 한 점을 향해 움직이는 걸 봤다. 배수구 쪽이 아니라 벽 안쪽으로 흘러갔다.
그는 손으로 막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주환이 알려 준 대로 주변의 바람과 환기팬 회전을 기록했다. 물길은 벽 아래의 좁은 틈으로 사라졌다. 서진은 그 틈을 넓히지 않고 관리인에게 설비 도면을 요청했다. 벽 안에는 사용하지 않는 작은 창고 공간이 있었다.
관리인은 그 공간이 막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멘트 표면은 주변보다 깨끗했고, 최근에 덧댄 판처럼 보였다. 서진은 임의로 뜯지 않고 건물주의 허가를 받기로 했다. 그 사이 태경은 실종 당시 학원 출입 기록을 조회했다. 하은의 이름은 없었지만, 어린이 수강료가 한 달 더 결제되어 있었다.
결제자는 피해자 윤민석이었다. 그는 학원 강사도, 가족도 아니었다. 서진은 그 사실을 태경에게 보여 줬다. 창고의 피해자와 사라진 아이가 서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날 저녁 감정실 출입문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경찰서 수거 담당자라며 인형의 임시 보관번호를 요구했다. 출입증은 유효했지만, 업무 지시는 조회되지 않았다. 주환은 문을 열지 않고 신분증을 다시 확인했다. 남자는 복도에 둔 상자를 가리키며 안에 인형이 있다고 말했다.
서진은 상자에 손대지 말라고 했다. 보안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모두 한 발씩 물러섰다. 남자는 자기 지문이 이미 출입 기록에 남았다며 소리쳤다. 그는 협박처럼 들리는 말을 던지고 계단으로 달아났다. CCTV에는 그의 얼굴이 찍혔지만, 출입증 사진과 일치하지 않았다.
상자 안에는 인형 대신 어린이용 우산이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는 새 수거 번호가 붙어 있었고, 라벨 아래에서 옛 번호가 비쳤다. 누군가 증거물 이동 경로를 조작하려 했다. 주환은 그 번호가 8년 전 폐기한 우산의 번호와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군가 우리 안에 있는 기록을 알고 있어요.” 태경이 말했다.
서진은 외부 침입 신고를 접수하고 감정실 전체의 접근 권한을 잠갔다. 그 조치로 조사 속도는 늦어졌지만, 또 다른 물건이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다음날, 실종 아동 가족은 인형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인형의 목 안쪽에는 가족이 쓰던 별명이 적혀 있었다. ‘콩이.’ 하은의 엄마는 그 이름을 듣자 눈물을 흘렸다. 태경은 그녀의 기억이 흔들리기 전, 별명이 적힌 부분을 사진으로 남겼다.
서진은 감정실에 돌아와 말했다. “이 인형은 그 집에서 나온 게 아닐 수 있어요. 누군가 다른 곳에 두고, 수거 경로를 바꿨어요.”
주환은 인수증을 다시 보았다. 수거 번호의 빈칸에 지워진 숫자가 있었다. 그 번호는 8년 전 사라진 증거물의 번호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