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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3화

증거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증거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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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빈칸에 남은 번호

태경은 수거 번호가 같은 두 물건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국과수 시스템에서 번호를 조회하자, 오래된 파일에는 하은의 실종 당일 수거된 분홍색 우산이 기록돼 있었다. 우산은 반환 처리됐지만, 반환 확인 서명은見つからなかった. 최신 사건의 인형은 별도의 수거번호를 받아야 했으나, 누군가 오래된 번호를 그대로 썼다.

“실수일 수 있어요.” 주환이 말했다.

“실수라면 왜 인수 시각도 다르죠?” 서진이 물었다.

그녀는 오래된 사건의 봉인 기록을 요청했지만, 파일은 보존 기한 만료로 폐기됐다고 나왔다. 폐기 승인자 이름은 백주환이었다. 주환은 그 서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당시에는 증거물 반환이 확인됐고, 규정대로 보존 기한이 끝나 폐기 처리했다고 했다. 그러나 우산을 받은 사람의 서명은 없었다.

“그때도 아이 웃음이 들렸습니까?” 태경이 물었다.

“그 얘기를 감정실에서 꺼내지 마.”

주환은 태경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8년 전, 어린 태경은 사고 현장의 장난감에서 마지막 소리를 들었다고 신고했지만, 어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주환은 그 아이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서진은 우산이 반환된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철거된 학원 건물 지하 주차장과 같았다. 오래된 CCTV에는 누군가 우산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화면 속 사람은 걸음을 절뚝거렸다. 최근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인형의 먼지에는 같은 방향으로 쓸린 자국이 있었다.

태경은 그가 걸을 때 바닥을 끄는 소리가 났을 거라고 했다. 서진은 그 말이 감각에서 나온 추측인지 분석 결과인지 물었다. 태경은 추측이라고 답했다. 서진은 기록에 넣지 않았다. 대신 영상의 프레임을 보정하고, 구두 밑창 흔적과 대조했다.

인형은 증거 보관함에서 사라졌다.

보관함의 잠금은 깨지지 않았고, 출입 기록에는 접근자가 없었다. 주환은 보관실 문을 닫고 내부 인원을 확인했다. 태경은 자신이 인형의 웃음을 들은 뒤부터 같은 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물체가 사라졌어도 이미 들은 소리가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었다.

서진은 보관실 CCTV를 돌려 봤다. 영상은 새벽 3시 11분부터 19분까지 검은 화면이었다. 장비 오류가 아니라, 카메라 렌즈 앞에 누군가 얇은 종이를 붙였다 떼어 낸 흔적이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의 섬유는 인형 봉투의 종이와 같았다.

주환은 보관실의 모든 봉투를 확인했다. 한 봉투의 봉인 번호만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에는 인형 대신 낡은 우산 손잡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태경은 손을 대지 않았지만, 우산 조각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감각을 참았다.

“지금 만지면 안 됩니다.” 주환이 말했다.

“제가 만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들리는 소리를 말하지 마.”

주환은 우산 조각을 별도 용기에 넣었다. 서진은 국과수 내부에서 증거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고해야 했다. 그러면 주환의 과거 서명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주환은 서진에게 필요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태경은 오래된 파일에서 실종 당시 하은의 학교 기록을 찾았다. 학교 출석부에는 실종 당일 하은이 결석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학원 출입카드 기록은 그날 오후 6시에 건물로 들어갔다고 했다. 집에 있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우산을 반환한 시각은 밤 8시 17분이었다.

“우산이 하은과 함께 이동했을 수 있겠네요.” 서진이 말했다.

“아니면 누군가 아이가 있던 곳을 숨기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학원 건물 관리인은 경찰이 떠난 뒤 창고를 비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진은 안쪽 선반에 먼지가 쌓이지 않은 빈 자리를 발견했다. 곰 인형 하나가 있던 흔적이었다. 관리인은 그 물건을 본 적 없다고 했고, 열쇠도 소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출입문 센서에는 지난밤 2시 9분에 문이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들어왔습니까?”

“기록이 오류일 수 있습니다.”

서진은 센서의 배터리가 최근 교체됐다는 점을 확인했다. 고장이라고 넘길 근거는 없었다. 태경은 창고에 들어서지 않은 채 문턱의 먼지를 촬영했다. 바닥에 남은 두 종류 발자국 중 하나는 구두, 하나는 작은 운동화였다. 작은 발자국은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밖으로 나오는 흔적이 없었다.

주환은 증거번호가 바뀐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감정실에 남아 있었다. 오래된 우산의 반환 서류에는 그의 서명이 있었지만, 서명 시각이 사건 당일보다 이틀 빨랐다. 그는 당시 제출된 문서가 사후 작성됐다고 의심했다. 자신의 서명이 맞더라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결재했을 수 있었다.

서진은 태경에게 감정실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는 창고 밖에서 현장 소리를 기록하겠다고 고집했다. 실종 사건에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섞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와 카메라로 환경음을 따로 남기고, 증거물에는 손대지 않았다.

창고 천장 배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씩,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쳤다. 소리가 세 번 이어질 때마다 지하 환기팬이 멈췄다. 서진은 기계실로 올라가 전원을 차단하려 했지만, 배관은 이미 분리돼 있었다. 누군가 팬의 작동 주기를 바꾼 흔적이 있었다.

주환이 실험실에서 무전으로 연락했다. “인형의 수거번호가 찍힌 사진을 찾았어요. 8년 전 문하은의 집이 아니라 이 학원 지하에서 찍혔습니다.”

“그럼 기록이 바뀐 겁니까?”

“사진 원본은 맞아요. 다만 파일명에 붙은 수거번호가 나중에 덮어쓰기 된 것 같습니다.”

태경은 그 말을 듣고 벽의 작은 창고를 바라봤다. 아이의 발자국이 그쪽에서 멈췄다. 서진은 건물주에게 연락해 안전 점검을 요청했다. 벽을 뜯기 전, 구조 기사와 함께 들어오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관리인은 계속 이곳에 아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럼 왜 아이의 발자국이 있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그건 모릅니다.”

“모르면서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는요?”

관리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사고가 난 뒤 학원 원장이 모든 자료를 가져갔다고 했다. 원장은 해외로 이주했고, 현재 연락이 끊겼다. 실종 신고를 접수한 가족도 이후 주소를 옮겼다. 사건의 모든 사람이 현장을 떠났고, 기록만 남았다.

구조 기사가 도착하자 벽의 판을 안전하게 분리했다. 뒤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웅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안쪽 바닥에는 곰 인형의 단추가 떨어져 있었고, 벽에는 아이가 그린 웃는 얼굴이 남아 있었다. 태경은 그 그림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여기 가뒀습니까?” 서진이 관리인에게 물었다.

“아니요. 나는 그날 이 건물에 없었어요.”

그의 진술은 맞을 수도 있었다. 출입 기록은 누군가가 밤에 들어왔다는 것만 보여 줬다. 태경은 벽 안 공간의 먼지를 촬영했다. 한쪽에는 작은 손자국이, 다른 쪽에는 성인의 구두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숨겨 놓고 다시 데려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손자국 근처를 보는 순간 귀에 웃음이 들렸다. 웃음 뒤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태경아, 문 열어.”

그는 장갑 낀 손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물체를 만지지 않았는데도 소리가 들렸다. 서진은 그의 얼굴을 보고 즉시 그를 현장에서 물러나게 했다. 태경은 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감정실로 돌아온 주환은 오래된 폐기 서류를 꺼냈다. 하은의 실종 증거물 반환 서명 옆에는 ‘보호자 대리’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대리인의 이름은 백주환이었다.

피해자 윤민석의 누나는 학원 건물 앞에서 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동생이 하은을 돌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민석은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고 학원 지하에서 아이를 몇 차례 재워 줬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면 위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누나는 동생이 아이를 납치한 게 아니라, 아이의 어머니가 실종된 뒤 잠시 숨겨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신고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은이 사라졌고, 동생은 그 아이가 돌아오면 자기가 보호하겠다고 했죠.”

서진은 진술을 받아 적되, 누나의 말만으로 민석의 동기를 확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학원 원장과 다른 자원봉사자를 찾아야 했다. 태경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열쇠고리에 남은 웃음이 공포만을 뜻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웃음소리만으로는 아이가 안전했는지 알 수 없었다.

민석의 누나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내놓았다. 사진 속 아이는 곰 인형을 들고 있었고, 뒤편 벽에는 세 번의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은 지하 공간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폐쇄된 학원에 다시 갔다. 지하 주차장 한쪽 벽의 배선은 이미 철거됐지만, 바닥에는 둥근 스피커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옆의 배수구 안에서 인형의 리본이 발견됐다. 리본에는 최근에 묻은 흙이 묻어 있었다.

태경은 리본에 손을 대지 않고, 증거 채취 도구를 준비했다. 서진이 리본을 봉투에 넣자 아주 작은 웃음이 들렸다. 이번에는 태경뿐 아니라 서진도 들었다.

그 웃음 뒤에 아이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저씨, 우산 돌려줘.”

서진은 우산을 가져간 사람을 떠올린 듯 주환을 바라봤다. 주환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손에 든 감정서에는 이미 우산을 반환했다는 서명이 있었다.

그 서명은 주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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