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의 마지막 손님은 검객이었다

2화: 열차 객실에 탄 옛 표적
터널을 빠져나오자 밤물결호의 불이 다시 켜졌다. 소화는 바닥에 떨어진 금속 단추를 윤 앞에 놓았다.
“사채 상단 창고 표식이라며. 너는 왜 이걸 보고 놀라지?”
“예전에 본 적이 있어.”
“찻집 객차를 담보로 잡은 곳이 그 상단이지?”
윤은 찻주전자를 씻었다. “이 객차는 살수 조직에서 나온 폐차를 고쳐 만든 거야. 상단이 자금을 댔어.”
“왜 말 안 했어?”
“차를 팔아서 갚으면 될 줄 알았어.”
“얼마나 남았는데?”
“계산해 볼게.”
“지금 말해.”
“은자 백 스무 냥.”
소화는 단추를 뒤집었다. 안쪽에 작은 숫자가 찍혀 있었다. 7. 윤의 장부 맨 뒤에도 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자가 붙었어?”
“붙었어.”
“네가 담보로 넣은 건 객차만이야?”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도령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 질문은 다음 역에서 하는 게 좋겠소. 객실에 귀가 많아.”
소화는 윤을 노려보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밤은 손님이 먼저예요. 하지만 빚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열차는 다음 역에 정차하지 않고 지나갔다. 밖의 플랫폼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승객을 찾는 대신, 객차 연결부의 철판을 두드렸다.
“저자들은 승객을 찾는 게 아니오.” 백도령이 말했다. “화물칸을 찾고 있소.”
“그 안에 뭐가 있죠?”
“내가 가져온 증거요.”
“왜 찻집에 말하지 않았어요?”
“말하면 당신이 내리는 걸 막을까 봐.”
“제가 내리라고 할 권리가 있나요?”
백도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없지. 하지만 당신이 나를 살린 뒤로, 당신을 위험에 넣지 않으려고 했소.”
“그건 제 선택이었어요.”
소화는 화물칸으로 가는 잠금쇠를 확인했다. 윤은 열쇠를 꺼내지 않았다.
“이 객차의 짐은 다 내게 말해야 해.”
“그럼 열어야 하지.”
“열쇠가 없어?”
“있어. 그런데 문을 열면 그들이 가져갈 거야.”
“그럼 가져가지 못하게 하면 되잖아.”
백도령이 말했다. “그 안에 검은 장부 일부가 있소. 살수 조직은 표적과 의뢰인을 연결하는 이름을 지웠고, 나는 그 장부를 다시 이어 붙였소. 거기에 당신 이름도 있어.”
“나는 의뢰만 받았지, 장부를 본 적 없어.”
“네가 살려준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소. 그걸 들고 재판소에 가려 하오.”
“그 장부로 뭐가 바뀌죠?”
“조직이 거래를 부인하지 못하게 되겠지. 하지만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약속은 못 하오.”
“그런데 그걸 왜 가지고 다녀요?”
“내가 누군가를 살려 두었으니, 그 사람은 살아 있다는 증거를 가져야 하니까.”
소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밤, 산길에서 백도령을 살려 보냈을 때 그의 손에는 딸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편지를 태우지 않고 품에 넣었다. 소화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때 편지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소화가 물었다.
“딸이 자기 이름으로 살겠다고 했소. 표국의 성도, 아비의 성도 쓰지 않겠다고.”
“그래서 살려 달라고 했나요?”
“아니. 죽여 달라고 했소. 살아 있으면 그 아이를 찾아가 사과해야 하니까.”
“그런데 저는 당신을 살려 줬죠.”
“당신은 내 목에 칼을 댄 뒤 한참을 망설였소. 나는 그 망설임을 자비라고 부르지 않겠소. 당신이 자기 선택을 했을 뿐이지.”
소화는 손목 흉터를 만졌다. “그날 이후로 조직은 당신이 살아 있다는 이유로 제 값을 올렸어요.”
“알고 있소.”
“내가 당신을 살린 걸 후회할 때도 있어요.”
“그럴 수 있소.”
백도령은 변명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차보다 떫었고, 소화는 그 떫은맛을 억지로 삼키지 않았다. 객실을 덮은 증기 냄새가 걷힐 때까지 둘은 잠시 침묵했다.
열차 뒤쪽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났다. 검은 옷의 무인들이 외부 발판을 타고 화물칸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소화는 객실 손님들에게 옆 칸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그중 한 상인이 짐을 놓고 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그 안에 아내 유골이 있어요.”
“그럼 제가 옮길게요.”
“당신이 왜 믿을 만한데요?”
“믿지 않아도 돼요. 같이 들면 됩니다.”
상인은 소화와 윤에게 상자를 맡겼다. 윤은 금속 단추를 주머니에 넣고 한쪽 손으로 상자 밑을 받쳤다. 백도령은 객실 입구에 서서 지팡이를 짚었다.
“여기 남지 마세요.” 소화가 말했다.
“여기가 내가 타고 온 자리요.”
“저 사람들은 증거를 찾으러 왔어요.”
“그러니 내가 보여 줘야지.”
백도령은 지팡이 끝의 쇠막대를 꺼내 들었다. 그는 무인 하나가 발판을 건너오자 손목을 쳐 칼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두 번째 사내가 낮은 자세로 들어오며 그의 무릎을 밀었다. 백도령이 바닥에 쓰러졌다.
소화는 나무 쟁반을 던져 사내의 시야를 가렸다. 윤은 찻주전자를 들어 증기를 뿜었다. 두 사람은 객실의 협탁을 눕혀 통로를 막았다. 무인들은 좁은 공간에서 칼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객실을 부수면 장부도 부서져!” 소화가 외쳤다.
“그럼 문을 열어!” 사내가 말했다.
“원하는 게 장부라면, 누구 이름이 적혔는지 말해.”
“네가 알아서 찾아.”
“내 이름만 지우면 객차가 내 거라고 했잖아.”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소화는 허리춤의 짧은 칼을 뽑았다. 한 번만 찌르면 어깨와 목 사이를 노릴 수 있었다. 손목이 떨렸다. 오래된 흉터가 다시 타는 것 같았다.
백도령이 바닥에서 소화의 소매를 잡았다. “그 칼을 쓰면 그자 이름도 장부에 올라갈 거요.”
“그럼 놓치면 더 많은 사람이 다쳐요.”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오.”
소화는 칼을 거꾸로 쥐었다. 사내가 다시 들어왔을 때 칼자루로 그의 손등을 쳤다. 날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무릎이 찻잔 파편 위에 꺾였다. 윤이 그를 묶으려 했으나, 열차가 급히 흔들리며 무인들은 연결부로 빠져나갔다.
백도령은 다친 다리를 펴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놓아주는구려.”
“아직 누구를 놓아준 게 아니에요.”
“칼을 거두면 그다음 일은 더 어려워져.”
“알아요.”
소화는 화물칸 열쇠를 윤에게 달라고 했다. 윤은 잠시 망설이다 열쇠를 내놓았다. 문 안에는 낡은 찻상과 베개, 빈 상자뿐이었다. 상자 밑판을 들자 종이 조각이 여럿 나왔다. 한 장마다 살수 계약의 대상과 의뢰인 이름 일부가 적혀 있었다.
백도령은 조각을 세어 보았다. “두 장이 없어.”
“누가 가져갔죠?”
“아마 그 사내들이오.”
소화는 남아 있는 조각을 펼쳤다. 자신의 이름 옆에 ‘사채 상단 운송차량 담보’라고 적혀 있었다. 윤의 이름은 의뢰인 칸이 아니라 운송자 칸에 있었다.
“너, 이 조직의 장부를 옮겼어?”
“나는 찻집을 사려고 객차를 고쳤어. 그 안에 장부가 있는 줄 몰랐어.”
“그럼 누가 너한테 돈을 줬어?”
“사채 상단.”
“그 상단은 살수 조직과 연결돼 있어?”
“모르겠어.”
윤의 목소리는 작았다. 소화는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객실 안의 손님들이 듣고 있었다. 그녀는 종이 조각을 접어 백도령에게 건넸다.
“다음 역에서 증거를 나눠서 옮깁니다. 한 사람이 전부 들고 있지 않게.”
“재판소까지 가려는 거요?”
“아니요. 일단 이 열차에서 살아남아야죠.”
열차가 급히 감속했다. 이번에는 정차역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 바깥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신호등이 세 번 붉게 깜박였다. 윤은 창밖을 확인하러 갔다가 돌아왔다.
“정차 허가를 받지 않은 역이야.”
백도령은 창을 바라보았다. “내가 예전에 당신을 살려 준 역이오.”
“그때 저는 당신을 살려 줬어요.”
“맞소. 그런데 오늘은 내가 당신을 살려야 할 차례인가 보군.”
소화는 손바닥에 남은 칼자루 자국을 봤다. “그 말은 빚으로 적지 마세요.”
그때 객실 천장 스피커에서 낡은 안내가 흘러나왔다.
“다음 정차역은 검은 장부 보관소입니다. 내릴 승객은 이름을 확인해 주십시오.”
그 목소리는 죽은 살수 조직의 책임자와 닮아 있었다.
열차는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속도를 줄였다. 운전실에서 비상 제동 신호가 울렸다. 윤이 창가로 뛰어갔다.
“이 노선에 검은 장부 보관소라는 역은 없어.”
백도령은 지팡이를 쥐었다. “폐선 전, 조직이 사람과 화물을 내리던 역 이름이오. 지도에서 지웠지만 선로는 남아 있어.”
“그럼 내리면 장부를 찾을 수 있겠네요.” 소화가 말했다.
“찾을 수는 있소. 하지만 보관소에 들어간 사람 중 돌아온 이는 없었소.”
“이 열차는 왜 우리를 데려가죠?”
“누군가 선로에 신호를 보냈을 거요.”
윤은 회색 얼굴로 객차 출입문을 잠갔다. “기차가 멈추면 상단 사람들이 올라탈 거야.”
“너는 그 역을 알고 있었어?”
“아니. 이 객차의 옛 소유자가 그쪽에서 뭘 실어 왔는지는 알아. 그 계약서가 아직 내 채무에 묶여 있어.”
“그럼 이 객차는 너한테도 담보가 아니라 미끼였네.”
“그럴지도 몰라.”
소화는 문 잠금쇠를 확인했다. “다음 역에서 빚을 전부 말해. 내 이름이 장부에 올라간 이유도.”
“그래.”
열차 창밖에 낡은 플랫폼이 나타났다. 역명판에는 글자가 없었고, 바닥에는 오래된 칼집 자국이 수십 개 남아 있었다. 백도령은 그 자국을 보자 지팡이 끝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내가 처음 죽을 뻔했던 곳이오.”
“그리고 제가 처음 살려 둔 곳이죠.”
“오늘은 둘 다 이 역에서 살아 나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