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의 마지막 손님은 검객이었다

1화: 자기 이름의 살의 의뢰
밤물결호가 산등성이를 넘을 때마다 찻잔이 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연소화는 찻잔 받침 아래 접은 헝겊을 끼워 수평을 맞췄다. 창밖은 까맣고, 객실 안에는 차를 식히는 손님 셋과 잠든 아이 하나가 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리실 분은 미리 말씀해 주세요.”
곽윤이 계산대 뒤에서 알렸다. “하차벨 고장 난 건 아니지?”
“열차가 흔들려 손님이 잘 못 누르잖아.”
“그럼 내가 다니며 물어볼게.”
“그러다 또 장부 틀리지 마.”
윤은 웃으며 계산표를 접었다. “오늘 마지막 손님이 주문하면 찻집 문을 닫을 거야. 차도 다 떨어졌어.”
“철관음 조금 남았잖아.”
“그건 내 몫으로 숨겨 둔 거야.”
“동업자한테 숨긴 차가 있으면 동업이 아니지.”
그때 객실 문이 열렸다. 회색 도포를 입은 손님이 들어와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의 장갑은 새것이었고, 손톱 밑에는 검은 기름이 묻어 있었다. 허리에는 짧은 칼이 매달려 있었다. 소화는 주전자를 들어 그가 고른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무슨 차를 드릴까요?”
“가장 떫은 것으로.”
“떫은 차는 목이 마릅니다.”
“목이 마른 건 괜찮소.”
소화는 차를 우렸다. 잎이 물속에서 천천히 벌어졌다. 손님의 소매에서 쇠 냄새가 났다. 칼을 오래 갈아 낸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체하는 일을 하는 냄새였다.
“주문표에 질문을 적으시겠어요?”
남자는 빈 카드를 바라봤다. “답을 들으면 더 골치 아픈 질문이 있소.”
“그런 질문이 가장 잘 팔려요.”
“그럼 묻겠소.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오늘 밤 죽을까?”
소화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제가 점쟁이는 아닙니다.”
“살수였다고 들었소.”
윤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소화는 손님의 눈을 봤다. “누가 그랬죠?”
“이 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소. 당신이 예전에 마지막으로 우린 차라고 했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어요.”
“그럼 내가 기억을 잘못했겠군.”
손님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순간 객실 문이 다시 열리고 검은 옷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눈길은 소화의 허리춤에 고정됐다.
“연소화.”
“여기서 그 이름을 말하지 마.”
“장부에 오른 이름은 어디서든 부를 수 있지.”
윤이 계산대에서 나왔다. “손님, 차값은 먼저 내십시오.”
사내가 웃었다. “이 객차가 담보로 잡힌 건 아나?”
“무슨 헛소리야?”
“찻집 차량을 빚 대신 넘기기로 했잖아. 곽윤 씨.”
윤의 안색이 변했다. 소화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손님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 밑에서 얇은 종이가 미끄러져 나왔다. 소화는 그 종이를 보고 손가락이 굳었다.
살해 의뢰서. 검은 장부의 인장과 똑같은 삼각 흉터가 찍혀 있었고, 대상 이름에는 ‘연소화’라고 쓰여 있었다. 보수는 찻집 객차와 함께. 전달자 서명은 빈칸이었다.
“이게 왜 내 잔 밑에 있죠?”
“그건 당신이 묻고 싶은 게 아니오.” 손님이 말했다.
검은 옷 사내가 객실 문을 잠갔다. 그는 짧은 칼을 뽑아 소화의 팔을 노렸다. 객차는 산허리를 돌아 급하게 흔들렸다. 소화는 물주전자를 기울여 뜨거운 물을 사내 손등에 쏟았다.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든 아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부터 선실로 데려가!” 소화가 윤에게 외쳤다.
윤은 아이를 안고 주방 쪽으로 달렸다.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팡이 끝에서 쇠막대가 드러났다. 그는 사내의 두 번째 칼을 막았지만, 손목이 흔들렸다. 오래된 부상이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소화가 말했다.
“이 나이에 도망치는 건 익숙하지 않소.”
사내는 찻잔을 발로 차 소화의 시야를 가렸다. 깨진 도자기 조각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소화는 날이 긴 검 대신 찻집의 나무 집게를 집어 사내 손목을 쳤다. 손님이 휘청이는 순간, 그녀는 그의 지팡이를 끌어당겨 통로를 막았다. 사내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부딪쳤다.
열차가 다시 크게 흔들렸다. 객실 끝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화물칸 쪽에서 바람이 쏟아졌다. 사내는 바닥을 구르며 문으로 향했다. 소화는 그를 뒤쫓지 않았다. 대신 잠금쇠를 걸어 손님들을 지켰다.
“놓아준 거요?” 손님이 물었다.
“열차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문을 닫은 겁니다.”
“그자도 다시 돌아올 텐데.”
“그건 그자가 선택할 일이죠.”
소화는 의뢰서를 들었다. 종이의 향은 차잎이 아니라 기름과 젖은 철 냄새였다. 누군가 찻잔을 만졌다는 뜻이었다. 잔 밑에는 기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가 손님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이걸 넣었나요?”
“아니오.”
“그럼 왜 알고 있었죠?”
“이 인장을 본 적이 있으니까.”
“당신이 그 인장을 가진 조직에 속해 있어요?”
“오래전에 그 조직의 표적이었소.”
손님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소화는 오래전 산길을 떠올렸다. 다친 사내, 피 묻은 표국 인장, 칼을 뽑지 않고 지나온 밤. 그때 사내는 자기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백도령.”
남자가 눈을 들었다.
“그 이름을 아직 기억하오?”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한 날은 잊기 어려워요.”
“그날 나는 살아남았고, 당신은 조직에 쫓기기 시작했지.”
“의뢰서의 전달 인장이 당신 것입니까?”
“아니오. 하지만 이 계약은 내가 이 열차에 오를 걸 알고 만들어졌소.”
소화는 의뢰서를 접지 않았다. “왜 내 이름이 표적이 됐죠?”
“검은 장부가 네 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내 손에는 칼밖에 없어요.”
“그 칼을 만든 사람이 장부를 숨겼을 수도 있지.”
소화는 주전자에 남은 찻물을 보았다. 너무 오래 우려 차가 쓰게 변했다. 그녀는 그 잔을 버리고 새 찻잎을 꺼냈다.
“이번에는 떫지 않은 차를 드릴게요.”
“왜?”
“당신이 질문에 답했잖아요. 대가를 치러야죠.”
백도령은 미소 짓지 않았다.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차값은 받겠습니다.”
윤이 돌아왔다. “사내는 화물칸에서 사라졌어. 옆 객차로 넘어간 것 같아.”
“다친 승객은?”
“아이도 다른 손님들도 괜찮아. 그런데 객차 잠금장치는 부러졌어.”
윤은 바닥의 의뢰서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이건 어디서 났어?”
“잔 밑에서.”
“이 객차를 넘긴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사내는 빚을 알고 있었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그래서 나한테 말 안 했어?”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화는 계약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가장자리의 삼각 인장은 살수 조직이 쓰던 역참 표식과 달랐다. 새로 만든 가짜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명란에 적힌 검은 글씨는 진짜였다.
“이건 누구 손을 거쳐 왔지?”
윤은 장부를 닫았다. “다음 역에서 말할게.”
“지금 말해.”
“손님 앞에서 할 얘기가 아니야.”
“내 이름이 적혀 있는데?”
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숨기는 것이 빚인지 조직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알 수 없었다. 열차 창밖에서 다음 역의 불빛이 나타났다. 소화는 의뢰서를 찻잔 밑에 다시 끼웠다. 이번에는 다른 손님이 만지지 못하도록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마지막 손님은 내가 배웅할게.” 그녀가 말했다.
백도령은 지팡이에 기대 일어났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라고 누가 정했소?”
“오늘 밤에는요.”
그가 객실 문 쪽으로 걸었다. 객차 사이 연결문 너머에서, 사라진 사내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도망친 게 아니었다.
소화는 객실 문을 잠그고 손님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불이 꺼져도 연결문을 열지 마세요. 윤, 아이와 노인을 안쪽 주방으로 옮겨.”
백도령이 지팡이를 세웠다. “그자는 당신을 노렸소.”
“그러니 제가 찾으러 갑니다. 손님들은 지켜 주세요.”
“또 혼자 나서는군.”
“당신은 마지막 표적이 아니에요. 오늘은 손님입니다.”
소화는 깨진 찻잔을 치우며 바닥에 남은 기름 자국을 따라갔다. 객차 연결부에서 자국이 끊겼다. 대신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철 냄새가 났다. 그녀는 찻잎 보관함을 열어 남은 향을 맡았다. 수선 기름에 섞인 산초 냄새가 조금 묻어 있었다.
“화물 객실 쪽이에요.” 윤이 말했다.
“아까는 반대편으로 갔다며?”
“기침 소리가 그렇게 들렸어. 열차가 흔들려 방향을 착각했나 봐.”
소화는 백도령을 보았다. “지팡이는 쓰실 수 있죠?”
“사람을 넘어뜨리기엔 충분하오.”
“죽이지는 마세요.”
“나도 살고 싶소.”
그들은 화물칸으로 이동했다. 좁은 통로에서 사내가 갑자기 튀어나와 소화의 목을 노렸다. 백도령의 지팡이가 그의 팔을 쳤고, 소화는 손목을 비틀어 칼을 떨어뜨렸다. 사내는 바닥에서 구르며 잠금쇠를 발로 찼다. 문틈이 열리자 바람이 빨려 들어갔다.
“누가 의뢰했지?” 소화가 물었다.
“의뢰는 이미 끝났어. 네 이름만 지우면 객차는 내 것이야.”
“이 열차를 넘기기로 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네.”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소화는 그의 소매를 잡았지만, 그는 안쪽 실밥을 뜯고 몸을 빼냈다. 대신 삼각 인장이 찍힌 금속 단추 하나가 바닥에 남았다.
백도령이 그 단추를 주웠다. “이건 검은 장부의 인장이 아니오. 사채 상단의 창고 표식이오.”
소화는 윤을 돌아봤다.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추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역에서 이 얘기를 다시 하죠. 이번엔 세 사람 모두 같이.”
열차가 다음 터널에 들어가자 객실 안의 불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