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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말리는 세탁소3화

눈을 말리는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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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남겨 둔 얼룩

축제 당일 아침, 세탁소 앞에는 주민이 줄을 섰다. 깃발의 이름을 보고 싶은 사람, 이름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는 사람, 아직 결정하지 못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단비는 세탁대 위에 서명표를 놓았다.

“각자 자기 이름만 선택해 주세요. 다른 사람 이름을 대신 바꾸지는 못합니다.”

축제 담당자는 왕실 명령서를 들고 서 있었다. “왕실은 깃발 전시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왕실 깃발을 걷고, 마을 주민이 소유한 천만 남기죠.” 미설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깃발의 소유권을 위원회에서 마을 기록단으로 넘기겠다고 서명했다. 축제 담당자는 난감해했다. “그렇게 하면 지원금이 끊길 수 있어요.”

“그럼 지원 없이 열면 됩니다.”

한 사람씩 다가와 이름 앞에 표시했다. 공개를 허락한 이는 이름을 남겼고, 가리고 싶은 이는 탈착 덮개를 달아 달라고 했다. 어떤 이는 깃발에서 이름을 지우는 대신 작은 문양만 남겼다. 단비는 온기 집게를 들지 않고, 우람은 각자의 선택에 맞춰 천 조각을 꿰맸다.

“모두 공개해야 진실을 기억하는 거 아닙니까?” 한 청년이 물었다.

“기억하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건 달라요.” 단비가 답했다.

청년은 자기 어머니 이름을 가려 달라고 했다. 그는 축제에 온 친척들이 어머니가 떠난 일을 다시 말할까 봐 걱정했다. 단비는 이름을 덮고, 어머니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드러낼 수 있도록 가장자리만 약하게 꿰맸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일 수 있어요?”

“그때 어머니가 원하면요.”

“고맙습니다.”

우람은 단비의 손을 바라봤다. 온기 집게를 오래 써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재봉실에서 두툼한 장갑을 가져와 건넸다.

“당신 손도 세탁해야겠어요.”

“이건 옷이 아니잖아요.”

“얼어붙은 기억은 아니어도, 손은 돌봐야죠.”

단비는 장갑을 받아 끼었다. “당신은 늘 흔적을 남기라고 말하네요.”

“남긴 흔적이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해야죠.”

“당신이 태운 외투도요?”

우람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동생에게 사과는 했습니다. 하지만 옷은 돌아오지 않아요. 내 기억 속 외투를 어떻게 보관할지, 지금은 동생과 함께 정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이 늦었다고 해서 아무 의미가 없진 않아요.”

“당신도 어머니 기억을 지운 일을 아직 탓하고 있습니까?”

단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낡은 세탁집게로 향했다. 어머니의 외투를 맡았던 날에도 이 집게를 썼다. 너무 오래 열을 주는 바람에 마지막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때 저는 어머니가 고통스러워 보였어요. 기억을 지워 달라고 했고, 저는 전부 지웠어요.”

“당신은 그때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거예요.”

“그렇다고 결과가 괜찮아지는 건 아니죠.”

“아니요. 하지만 혼자 책임질 일도 아니에요.”

그녀는 그 말에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남긴 외투 안감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요. 그때는 혼자 보지 않을게요.”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당신에게 부탁한다면요.”

우람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은 약속을 강요하지 않는 초대였다. 단비는 그의 손등에 놓인 실타래를 잡았다. 손가락이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오후가 되자 축제가 시작됐다. 왕실 지원 깃발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수선한 천은 광장에 걸렸다. 이름을 공개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덮개를 선택한 사람들은 축제 부스에 머물렀다. 누구도 덮개를 억지로 걷지 않았다.

축제 담당자는 왕실에서 내려온 취소 통지서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결국 축제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지원금이 끊기면 다음 겨울 준비가 어려울 겁니다.”

“그럼 오늘 비용과 부족한 예산을 공개해요.” 미설이 말했다. “다음엔 왕실 도움 없이도 준비할 방법을 찾죠.”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쉽다고 한 사람은 없어요.”

광장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축제 깃발의 얼음이 녹아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름이 번지지 않도록 단비는 깃발 아래에 물받이를 놓았다. 한 아이가 그릇을 들고 뛰어왔다.

“이 물은 어디에 써요?”

“세탁소에서 천을 적실 때 쓸 수 있어. 다만 먼저 깨끗한지 확인해야 해.”

아이는 물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우람은 젖은 깃발을 잡아당기지 않고, 무게가 분산되도록 새 지지줄을 걸었다. 그때 서하가 어머니와 함께 다가왔다. 서하는 자기 이름 위의 덮개를 직접 풀었다.

“엄마, 저는 떠난 사람들 이름을 보고 싶어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도요.”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보자. 내가 기억하는 이름부터 말해 줄게.”

서하는 깃발 앞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이름을 하나씩 읽었다. 그중에는 서하의 외할머니 이름도 있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떠나던 날의 이야기를 짧게 들려줬다. 서하는 질문을 하나만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듣기로 했다.

축제의 종이 울렸다. 깃발에는 공개된 이름과 덮인 이름이 함께 있었다. 얼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쪽 가장자리에는 우람이 꿰맨 붉은 실이 보였고, 그 실은 찢어진 천을 단단히 붙들었다.

“남겨 둔 얼룩이 보이네요.” 단비가 말했다.

“지우지 않은 이름도요.” 우람이 답했다.

“모두 공개하지 않아도 기억은 남을 수 있겠어요.”

“모두 같은 방식으로 남길 필요도 없고요.”

축제가 끝난 뒤 왕실 담당자가 천막과 조명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지원금이 취소돼 다음해 축제를 열 수 없다는 통지도 함께 왔다. 주민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이름 몇 개를 지키려다 마을 축제까지 잃었잖아.”

미설은 깃발을 말아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오늘 이름을 다시 만난 사람도 있어. 그걸 축제 하나로 계산하진 말자.”

“내년에 비용은 누가 대죠?”

“우리가 정해야죠.” 우람은 목재 틀을 가리켰다. “재봉실과 세탁소가 수선 장터를 열고, 필요한 비용과 일손을 공개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모두가 공짜로 일하는 건 아닙니다.”

한 상인은 겨울 장터 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했고, 다른 주민은 축제 음식을 맡겠다고 했다. 서하는 초대장을 보내는 일을 돕기로 했다. 미설은 각자가 맡을 비용과 시간을 종이에 적게 했다. 누구도 기부를 강요받지 않았다.

“이번엔 깃발을 누가 관리할까요?” 단비가 물었다.

“혼자 맡으면 또 숨기고 싶어질 거야.” 미설은 기록실 열쇠를 꺼냈다. “기록단 세 명이 함께 관리하자. 이름이 드러나거나 가려지는 일도 당사자와 같이 확인하고.”

축제 담당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왕실의 허가 없이 기록실을 쓰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신도 관리단에 들어오세요.” 미설이 말했다. “공공 기록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을 맡아 주면 됩니다. 다만 혼자 결정하지는 말고요.”

담당자는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결국 열쇠고리를 받아 들었다. “규칙을 문서로 정합시다. 이름과 연락처를 보관할 기간도 정해야 합니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보관 규칙을 초안으로 만들었다. 공개를 허락하지 않은 이름은 봉투에 넣어 잠금장에 두고, 일정 기간 뒤 당사자에게 확인하기로 했다. 연락처는 초대장 발송에만 사용하고 별도 보관하지 않았다. 깃발은 찢어진 부분을 덧대고, 덮개는 주인이 요청하면 언제든 떼도록 했다.

단비는 보관함 열쇠를 미설과 서하, 담당자가 나눠 가지게 했다. 두 사람의 입회 없이는 열 수 없게 하자, 담당자는 그 규칙도 문서에 넣었다. 주민들은 각자 읽어 본 뒤 한 줄씩 고쳤다.

“이제 축제가 없어도 만날 자리는 남겠네요.” 서하가 말했다.

“축제는 다시 열 수 있어. 하지만 이름을 돌려주는 일은 오늘 해야 했지.” 미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깃발은 주민 기록실에 보관됐다. 공개 동의가 있는 부분만 전시하고, 덮개가 필요한 이름은 해당 당사자가 요청할 때까지 가려 두기로 했다. 단비는 세탁소 문을 닫고 온기 집게를 정리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얼얼했지만, 새 장갑을 벗을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우람은 재봉실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이건 어머니 외투에서 떼어 둔 단추입니다. 동생과 같이 보관하고 있어요.”

“언젠가 외투를 다시 만들 건가요?”

“아니요. 단추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둘이 동의했어요.”

단비는 그 선택을 존중했다. “그럼 그 단추가 이야기를 다 말해 줄 필요는 없겠네요.”

“그렇죠. 우리가 기억하면 되니까.”

그들은 세탁소 불을 끄고 나란히 눈길을 걸었다. 우람이 그녀의 장갑 끝을 잡아당겨 손가락을 따뜻하게 해 줬다. 단비는 이번엔 손을 빼지 않았다.

“손을 잡아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단비는 장갑 낀 손을 그의 손바닥에 올렸다. “오늘은요.”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맞물렸다. 약속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처럼, 걸음도 그녀의 속도에 맞췄다. 세탁소 앞에 도착하자 둘은 손을 놓았지만, 따뜻함은 장갑 안에 남아 있었다.

단비는 그에게 세탁소 문을 잠그는 열쇠 하나를 건넸다. “내일도 깃발을 점검해야 해요.”

우람은 열쇠를 받았다. “제가 먼저 와서 문을 열어 둘게요.”

돌아오는 길, 세탁소 문틈으로 편지 한 장이 들어와 있었다. 오래된 종이에는 어머니의 필체로 단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편지 가장자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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