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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말리는 세탁소2화

눈을 말리는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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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깃발의 이름

단비의 이름이 축제 깃발에 나타난 아침, 마을 사람들은 세탁소 앞에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깃발을 태우자고 했고, 누군가는 이름이 보인 것 자체를 불길한 징조라고 불렀다. 축제 담당자는 깃발을 돌려 달라고 재촉했다.

“이름이 적힌 사람 모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단비가 말했다.

“그럼 축제 전에 못 끝낼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마음대로 지울 수는 없어요.”

우람은 깃발의 가장자리를 눌러 봤다. “이건 눈 얼룩이 아니라 실에 생긴 서리예요. 누군가 이름을 수놓은 뒤 눈을 덮었어요.”

축제 담당자는 얼굴을 굳혔다. “오래된 깃발입니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요.”

복례가 사람들 사이에서 한 걸음 나왔다. “축제 깃발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설이야. 그때 이주 명단을 함께 수놓았지.”

미설은 깃발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이름을 지우려고 한 게 아니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적었어.”

“그런데 왜 숨겼어요?” 단비가 물었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이 상처받을까 봐. 떠난 사람의 이름을 계속 보이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하잖아.”

우람이 말했다. “그 이름을 보지 않으면, 누가 떠났는지도 잊게 됩니다.”

“그럼 깃발을 공개하면 다 해결됩니까?” 축제 담당자가 반박했다. “떠난 사람들 가족이 무슨 말을 할지 아세요?”

“모르죠.” 단비가 말했다. “그래서 먼저 물을 거예요.”

그녀는 깃발을 접어 세탁소 안쪽으로 옮겼다. 온기 집게를 꺼내지 않고, 이름이 나타난 부분에 천을 덧댔다. 천을 뚫고 서리가 더 번지지 않도록 임시로 막아 두는 작업이었다. 우람은 옆에서 실밥을 잡아당기지 않고 느슨한 매듭으로 고정했다.

“우리가 이름을 숨기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아니요. 이름이 더 번지지 않게 하는 중이에요. 공개 여부는 주인들이 정해야죠.”

미설은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내가 쓴 이름은 스물세 명이야. 그중 열둘은 아직 살아 있어. 나머지는 주소도 모른다.”

“그럼 열둘에게 먼저 연락해요.” 단비가 말했다.

“어떻게요? 우편 주소가 없는 사람도 있어.”

복례가 오래된 마을 기록을 가져왔다. “주소가 없어도 마지막으로 살던 곳은 찾을 수 있어. 편지는 보내지 못하더라도, 연락을 시도할 수 있지.”

서하는 배달 가방을 메고 들어왔다. “제가 산길을 알아요. 북쪽 오두막들은 직접 찾아갈 수 있어요.”

축제 담당자는 난색을 보였다. “개인 이름과 연락처를 공개하면 사생활 침해예요.”

“그래서 허락 없이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단비가 말했다. “각자 깃발을 볼지, 이름을 남길지, 가릴지 선택할 수 있게 할게요.”

미설은 자신의 이름부터 가려 달라고 했다. 단비는 그 부분을 불투명한 천으로 덮었다. “축제 당일에도 가려 두겠습니다.”

“고맙다.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선택을 주고 싶어.”

“그러면 위원회가 초대장을 보내고, 원하는 사람만 오도록 하죠.”

우람은 재봉실에서 색실을 여러 가지 가져왔다. “가리는 것과 지우는 건 달라요. 덮개는 언제든 떼어낼 수 있게 달겠습니다.”

“당신은 왜 모든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죠?” 단비가 물었다.

우람은 실을 꿰다가 손을 멈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입던 외투가 있었어요. 동생은 그 옷에 남은 얼룩을 다 지워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얼룩을 남겨 두자고 했고, 결국 옷을 태웠어요.”

“왜 태웠어요?”

“동생이 그 기억을 볼 때마다 무너졌습니다. 얼룩을 지우면 어머니 목소리도 사라질 것 같아서, 나는 옷을 없애는 쪽을 골랐죠. 그 뒤로 동생은 내게 그 선택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흔적을 남기는 일도, 지우는 일도 주인이 골라야 한다는 걸 늦게 배웠어요.”

단비는 아무 위로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 외투에서 기억을 모두 지운 날을 떠올렸다. 마지막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기억은 사과한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 이 깃발도 내가 결정하면 안 되겠네요.”

“맞아요.”

“당신도요.”

“저도요.”

그날 오후 주민들이 한 명씩 세탁소에 찾아왔다. 어떤 이는 이름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고, 어떤 이는 이름 옆에 지금 사는 마을을 적어 달라고 했다. 한 노인은 떠난 아들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름을 걸어 두고 싶다고 했다. 단비는 각자의 요구를 따로 기록했고, 누구에게도 같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서하는 자신의 이름을 가려 달라고 했다. “엄마가 이 이름을 보면서 이주를 미안해할 거예요.”

“그럼 어머니에게 직접 말해 줄래?”

“제가 먼저 말하면 싸울 것 같아요.”

“편지로 시작할 수도 있어.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서하는 깃발을 바라봤다. “제가 직접 말할게요. 다만 축제 전까지는 이름을 덮어 주세요.”

우람은 탈착식 덮개를 한 땀씩 달았다. 단비는 서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집게의 열이 과해지면 이름이 천을 뚫고 나타났고, 약하면 덮개가 얼음에 붙었다. 둘은 서로의 손을 번갈아 쉬게 했다.

저녁에 깃발을 펼치자 이름들은 가려진 채로 남았다. 그러나 천 아래에서 서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축제 전날, 모든 이름이 한꺼번에 드러나려는 듯했다.

그때 축제 담당자가 들어왔다. 그는 새 명령서를 내밀었다. “왕실에서 깃발을 전부 세탁하라고 합니다. 이름이 보이면 축제 허가를 취소하겠대요.”

“세탁하지 않겠습니다.” 단비가 말했다.

“그럼 당신 세탁소도 폐쇄될 겁니다.”

우람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깃발의 주인은 왕실이 아닙니다.”

단비는 덮개를 단 깃발을 두 손으로 받쳤다. “축제 전까지 주민들이 직접 선택하게 할 겁니다. 허가를 취소하더라도요.”

담당자가 나가자 세탁소 안은 조용해졌다. 서하가 창문을 닫았다. 미설은 깃발 앞에 서서 자기 이름을 가린 천을 손끝으로 만졌다.

“내일 사람들이 다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럼 온 사람들만큼만 결정하죠.” 단비가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우람이 바늘을 정리했다. “오늘 선택한 사람의 이름은 오늘 지킬 수 있습니다.”

마을의 노인 하나가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깃발에 자기 아들의 이름이 있다며 천을 가위로 잘라 내려고 했다. “그 애는 고향을 떠난 뒤 우릴 한 번도 찾지 않았어. 내 이름과 같이 걸릴 이유가 없어.”

단비는 가위를 빼앗지 않았다. “그 이름을 가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깃발을 자르면 다른 사람의 이름도 다칠 수 있어요.”

“내 아들인데 내가 못 자릅니까?”

“당신이 아들의 선택을 알고 계신가요?”

노인은 가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미설이 그 앞으로 다가왔다. “그 이름을 수놓은 건 나야. 그 애가 떠날 때 네가 문을 닫았고, 그 뒤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지. 그걸 깃발에서 지운다고 없던 일이 되진 않아.”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 애는 마지막으로 나한테 네 이름을 물었어. 네가 편지를 받을지 모르겠다고 했지.”

노인의 손이 떨렸다. 가위 끝이 깃발을 찔렀지만 천은 자르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얼굴을 가렸다. 단비는 그에게 따뜻한 물을 내밀고, 누구의 이름도 대신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을 찾을 주소가 있나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옛 우편 주소만 알아.”

복례는 그 주소로 편지를 다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답이 올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받을 의사가 있는지 물어볼 수는 있었다. 노인은 깃발에서 아들 이름을 가리되, 편지를 보내는 일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위를 내려놓았다.

우람은 찔린 자리에 작고 튼튼한 덧댐을 꿰맸다. 바늘 끝이 이름 한 글자를 스치지 않도록 단비가 천을 받쳤다. 노인은 그 작업을 지켜보다가 “그 얼룩은 남겨 두게”라고 말했다. 눈물 자국이 묻었지만, 누구도 닦아 내지 않았다.

그가 떠난 뒤 미설은 깃발을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내가 이름을 적은 사람들 중엔 살아 있는지 모르는 이들도 있어.”

“그럼 확인하려고 연락을 보내죠.” 단비가 말했다.

“모두 답을 원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아니요. 그래서 초대장을 먼저 보내고, 답하지 않는 선택도 남겨 둬야 해요.”

미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축제 초대장에 ‘보고 싶지 않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직접 적었다. 그 문장을 읽은 담당자는 불편한 듯했지만, 초대장을 막지는 않았다.

늦은 밤 서하가 다시 세탁소로 돌아왔다. 그녀는 축제 초대장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누구에게 보낼지 정하지 못했다.

“어머니 이름을 가려 달라고 했는데, 오늘은 드러내고 싶어요.”

“무슨 생각이 달라졌나요?”

“제가 어머니에게 직접 말하기로 했어요. 떠난 사람들 이름이 보인다고 해서 어머니가 떠난 걸 탓하는 건 아니라고요.”

단비는 덮개를 바로 떼지 않았다. “지금 풀면 축제에서 누구나 볼 수 있어요. 그게 괜찮은지 다시 생각해 봐요.”

“그럼 이름 전체 말고, 첫 글자만 보이게 해 주세요. 어머니가 알아보면 제가 설명할게요.”

우람은 덮개의 모서리를 조금만 열어 한 글자만 드러냈다. 서하는 이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각을 자신이 직접 다시 덮을 수 있도록 매듭을 느슨하게 남겼다.

“고마워요. 제 이름은 아직 가려 두세요.”

“그대로 할게요.”

서하는 초대장에 어머니의 이름만 적었다. 축제에 올지 말지는 어머니가 정할 일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봉하고, 배달 가방에 넣었다. 단비는 발신인과 수취인의 동의 범위를 초대장 뒷면에 함께 적었다.

깃발 아래쪽에서 천천히 물방울이 떨어졌다. 얼음이 녹으며 그 밑에 숨은 문장이 떠올랐다. ‘남은 사람도 이름을 적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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