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장 10분 전의 스키 순찰

3화: 열 분의 선택
정비등은 두 번째 깜박임 뒤로 어둠에 잠겼다. 한예림은 눈 속에 무릎을 박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확인했다. 능선 너머에서 눈가루가 낮게 밀려왔다. 도하는 그녀 옆에서 주황 테이프를 감은 폴을 세워 풍향을 읽었다.
“등이 나갔어요.”
“전원이 끊긴 건지, 눈에 가린 건지 아직 몰라. 박 기사님이 말한 점검로는 저 능선 아래야.”
“민지를 혼자 두고 확인만 하고 돌아오면—”
“혼자 아니야. 박 기사님이 함께 있어. 우리는 길을 확인하고 구조대가 들어올 수 있는 쪽을 열 거야.” 예림이 로프 매듭을 한 번 더 조였다. “네가 먼저 뛰면 내가 멈춰 세울 거고.”
도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발밑 눈이 바람에 단단히 눌린 층과 그 아래 푸석한 층으로 갈라진 걸 느꼈다. 오른쪽 사면을 곧장 가로지르면 가깝지만, 아래쪽 눈이 밀려날 수 있었다. “능선을 타지 말고 정비로를 따라 내려가죠. 돌아가도 바람을 등질 수 있어요.”
“그 길은 폐장 뒤 점검용이라 기문이 없어. 네가 앞에서 발자국을 읽어.”
도하는 선두에 섰다. 첫 턴은 짧게, 두 번째는 더 낮게 눌렀다. 눈 밑에서 스키가 한 번 튕겼다. 그는 즉시 멈춰 뒤를 돌아봤다. 예림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속도를 낮춰 간격을 줄이자 그녀도 출발했다. 지금의 내리막은 기록을 재는 코스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안전하게 지나간 자리를 다음 사람이 확인해야 하는 길이었다.
정비로 아래쪽에서 누군가 고함쳤다. “도하야!” 서강민 코치였다. 그는 정비용 눈차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순찰대원 둘이 스키를 세운 채 기다렸다. 코치 손에는 방수 기록판이 들려 있었다.
“아직 측정할 수 있어. 하단 우회 코스를 열어 둘게. 네가 지금 내려가면 오늘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민지는 산장에 있습니다. 정비등 쪽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예림 대원이 확인하면 돼. 너까지 빠지면 선발 기회가 끝나.” 코치의 말끝이 눈보라에 잘렸다. 그는 기록판 가장자리의 시간을 짚었다. “오늘을 놓치면 다음 측정은 한 달 뒤야. 네가 왜 이걸 원하는지 알잖아.”
도하는 코치가 건넨 펜을 보았다. 선발 기록 옆에 빈칸이 하나 남아 있었다. 지난번 사고 때도 그는 비슷한 빈칸을 본 뒤 자기 기록만 챙겼다. 동료가 넘어졌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코스 밖으로 나가면 기록이 무효가 될까 봐 기다렸다. 결국 구조는 늦었고 그는 그날 기록표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코치님, 지난번에 제가 먼저 내려간 것도 기록 때문이었어요.”
코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얘기는 여기서 하지 말자.”
“계속 여기서 안 하면 다음에도 똑같이 할 겁니다.” 도하는 펜을 돌려주었다. “오늘은 안 탑니다. 제가 본 지형을 설명하고, 구조대가 들어갈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코치의 얼굴에서 화가 먼저 올라왔다가 곧 지쳤다. 그는 기록판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선발위원회에 내가 설명할게. 하지만 선택은 네가 한 거다.”
“네. 제가 쓴 이유도 그대로 제출하겠습니다.”
예림이 두 순찰대원에게 손짓했다. 한 명은 산장 쪽에 남아 민지와 박 기사를 확인하고, 다른 한 명은 코치와 함께 아래쪽 안전 구역을 열기로 했다. 도하는 정비로 위쪽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예림은 고개를 저었다.
“셋이 한 줄로 붙어 가. 강 대원은 앞에서 눈 상태를 보고, 넌 가운데서 흔적을 읽고, 나는 뒤에서 로프를 잡는다. 누구든 시야에서 사라지면 전원 멈춰.”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두르지 마. 구조 시간은 네가 빨리 가서 줄이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돌아와야 끝나는 거야.”
세 사람은 눈차가 만든 얕은 홈을 따라 정비등 쪽으로 올랐다. 도하는 기둥 아래에서 지붕 위로 이어지는 눈자국을 찾았다. 바람이 처마에서 밀어낸 눈이 등 뒤로 흘러내렸고, 그 자국을 따라 산장 옆까지 낮은 둔덕이 이어졌다.
“아까 들린 한 번은 구조대 신호가 아니라 지붕에서 떨어진 금속판 소리일 수 있어요.” 도하가 말했다.
예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인한 걸로 돌아가자. 지금 산장 안에는 민지와 박 기사가 있어. 둘을 꺼내는 길이 먼저야.”
정비등이 다시 잠깐 켜졌다. 그 빛은 산장 뒤 창고의 낮은 창을 비췄다. 도하는 2화에서 본 부츠 자국을 따라가 창고 문을 찾았다. 문 앞 눈은 산장 앞보다 얕았지만, 경사 쪽이 움푹 꺼져 있었다. 강 대원이 로프를 기둥에 묶는 동안 도하는 손전등을 바닥에 비췄다. 그곳에는 무거운 부츠 자국 둘과 가벼운 스키 부츠 한 줄이 뒤엉켜 있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다 되돌아온 흔적이었다.
“민지가 창고로 옮기려 했지만 눈에 막혔어요.”
예림은 창틀을 두드렸다. “민지야, 밖에 우리 세 명이야. 네가 다친 발을 쓰지 않게 박 기사님이 먼저 나와. 손전등 두 번이면 시작할게.”
창 안쪽에서 빛이 두 번 깜박였다. 도하는 로프 끝을 창고 기둥에 고정하고, 반대쪽은 자기 허리에 걸었다. 강 대원이 눈을 걷어 창틀 아래 공간을 열었다. 한꺼번에 당기지 않도록 둘은 박자의 수를 맞췄다. 예림이 하나, 둘, 셋을 세자 박 기사가 팔꿈치부터 창으로 내밀었다. 창틀에 걸린 조끼를 도하가 잡아당기지 않고, 천천히 접어 빼냈다. 박 기사가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눈밭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민지는 발목을 다쳤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제 장비부터 챙기려고 했어요.”
“선생님이 안에서 혼자 못 나올 줄 알았으니까요.” 도하가 창 안에 대고 말했다.
“누가 선생님이야. 너보다 두 살 많아.” 민지가 안쪽에서 쏘아붙였다. “그리고 폴은 찾아야 해.”
예림은 웃을 틈도 없이 창을 더 넓혔다. 위쪽 지붕에서 눈이 또 미끄러졌다. 셋은 산장 문을 열려고 고집하지 않고, 창고 쪽으로 민지를 인계하기로 했다. 강 대원이 먼저 손을 넣어 민지의 부츠를 받쳤다. 도하는 창틀 맞은편에서 팔을 내밀었다. “발은 내 어깨에 걸쳐. 아픈 쪽은 바깥으로 돌리지 마.”
“스키 선수라서 발목 고정도 알아?”
“넘어진 사람 옮기는 법은 순찰대가 알려 줬어.”
민지는 그의 어깨를 짚고 창틀을 빠져나왔다. 부츠가 눈에 닿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예림이 즉시 멈추라고 했다. 그들은 산장 벽에 붙어 바람을 피한 다음, 로프를 짧게 나눠 잡았다. 도하는 자기 스키 한 짝을 길 아래로 밀어 보내지 않으려 발끝을 걸고, 민지의 손을 놓치지 않았다.
민지는 한쪽 스키를 잃어버린 경위를 털어놨다. “폴이 부러지고 준이가 놀랐어. 내가 다시 가지 않으면 겁먹고 혼자 찾으러 올까 봐, 폴 있는 데로 돌아갔지. 그런데 바람이 확 불어서 길이 없어졌어.”
“준이는 하단 대피소에 도착했대.” 도하가 말했다. “네가 돌아간 이유도 그 애를 혼자 두지 않으려는 거였잖아.”
“그렇다고 코스를 닫은 뒤 들어오면 안 되는 건 알았어.” 민지는 시선을 피했다. “다음엔 말하고 같이 찾을게.”
“다음엔 폴을 먼저 던져 두고 오지 마.” 도하는 말한 뒤 스스로도 그 말이 너무 가볍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다음엔 우리가 같이 찾자.”
민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조금 풀었다.
안전 구역으로 돌아왔을 때 코치와 순찰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지는 들것에 눕기 전 준이가 있는 쪽을 물었다. 코치는 무전이 잠깐 살아난 틈에 아이들이 하단 대피소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민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럼 다 내려왔네.”
구급대원이 발목을 살피려 하자 민지는 먼저 도하에게 물었다. “내일 평가에 못 나가면 우리 조에서 빠지는 거야?”
도하는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없어. 지금 네 발이 어떤지 먼저 말해.”
민지는 입을 다물었다가 발목을 움직이지 않고 통증 위치를 짚었다. 구급대원은 부츠를 벗기지 않은 채 고정하고, 병원에서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이에게 자기가 폴을 주우러 돌아왔다고 꼭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겁먹고 혼자 찾으러 나가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말을,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
도하는 그 말을 듣고 코치의 기록판을 바라봤다. “민지가 먼저 폴을 주우러 갔다고 적어 주세요. 제가 그걸 봤는데도 기록을 재러 내려갔다면, 그것도 같이요.”
코치는 잠깐 펜을 쥔 채 그를 바라보다가 기록판을 내밀었다. “네 입으로 써.” 도하는 장갑을 벗고 차가운 판 위에 손을 얹었다. 손끝은 떨렸지만 이번에는 글자를 숨기지 않았다.
“응. 네가 마지막이야.” 도하가 말했다.
“오빠 기록은?”
코치가 대답하기 전에 도하가 말했다. “오늘은 빈칸이야. 내가 그렇게 고른 거야.”
민지는 작게 웃었다. “빈칸이면 다음에 채우면 되잖아.”
구급차가 하단으로 내려간 뒤 코치는 기록판을 도하에게 내밀었다. “선발위원회에 이걸 붙일 거다. 네 기록은 없다. 네 선택을 적어.”
도하는 펜을 들어 ‘주니어 선수 구조 지원으로 측정 중단’이라고 썼다. 한 줄로 끝내려다, 그 아래에 지난 선발전에서 동료가 넘어진 뒤 자신이 코스에 남았다고 적었다. 손이 떨렸지만 글자는 지우지 않았다.
예림은 옆에서 그 종이를 읽지 않았다. 대신 젖은 장갑을 도하에게 건넸다. “다음 순찰 때는 네가 후방을 맡아.”
“선수도요?”
“오늘처럼 판단하면.”
도하는 빈 스타트 게이트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선 아직 누군가 기록을 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펜스에 걸린 파란 실이 먼저 떠올랐다. 다음 날 눈이 그 흔적을 덮기 전에, 그는 민지와 함께 잃어버린 폴을 찾으러 돌아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