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말 없는 검객의 소송 대필2화

말 없는 검객의 소송 대필

말 없는 검객의 소송 대필

AD
스폰서 광고

2화: 검객이 잃은 목소리

남기현은 증거실 문 앞에서 멈췄다. 문 너머에서 칼집이 끌리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붓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안에 있어요.” 소란이 말했다.

판관 문계수는 열쇠를 꺼냈다. “당사자와 기록자 외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럼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피고인은 아직 증거실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기현은 손바닥으로 문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란은 종이에 ‘문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쓰고 그에게 보여 주었다. 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계수는 자물쇠를 열었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증거 선반 위에 놓인 부러진 검집이 조금 움직였다. 종이 봉투 하나가 그 아래 끼워져 있었다.

소란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타다 남은 증언패 조각이 들어 있었다. 가장자리에 그을음이 묻었고, 패의 한쪽에 ‘문을 열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기현은 목을 가리켰다. 소란이 그에게 종이와 붓을 건넸다. 그는 힘겹게 썼다.

‘내가 소리쳤다.’

그는 다음 글자를 쓰려다 붓을 멈췄다. 관절이 굳은 손가락이 떨렸다. 소란은 대신 쓰지 않았다.

“목소리를 잃은 게 그날입니까?”

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구하려고 소리쳤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증언패의 두 번째 줄을 가리켰다. 거기엔 ‘불문’ 두 글자가 남아 있었다.

문계수는 증거 패를 들여다봤다. “그날 북관에서 화재가 있었나?”

“기록에는 없었습니다.” 소란이 말했다.

“그럼 기록이 틀렸겠지.” 기현은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검집을 가리켰다. 그는 검집 끝을 증언패 위에 놓고 좁은 선을 그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뒤, 돌아 나오는 모양이었다.

소란은 그의 손짓을 문장으로 바꾸지 않았다. 대신 글로 물었다. ‘증언패를 만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끝이 패의 타다 남은 부분에 닿았다. 잉크통증이 목 아래로 번졌는지, 흉터가 붉게 부풀었다. 그는 숨을 얕게 쉬었다.

“기록을 중단할까요?” 소란이 물었다.

기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붓을 쥐고 ‘라희’라고 썼다. 어제 증인석에 있던 정라희였다.

“그녀가 증언패를 만들었습니까?”

고개가 반쯤 움직였다가 멈췄다. 기현은 손바닥을 펴고 뒤집었다. 소란은 그 동작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대답을 모르겠다는 뜻일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라희에게 물어보라는 뜻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다음 심리에서 라희는 다시 증인석에 섰다. 그녀는 증언패를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불이 난 뒤 바닥에서 주웠다고 했다. 그녀가 본 것은 문이 열리고 기현이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그가 누군가를 업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검사관이 물었다.

“얼굴을 못 봤습니다.”

“피고가 구하려고 했던 사람인가요?”

“모릅니다.”

“그럼 피고가 그 문 안에서 살해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죠.”

“가능성은 있겠죠.”

라희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목은 증언패를 쥔 채 떨리고 있었다. 소란은 그 떨림이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그에게 경고했습니까?” 소란이 물었다.

라희는 종이를 바라봤다. “늦게 했습니다.”

“왜 늦었죠?”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요.”

“피고가 목소리를 냈을 때 들었습니까?”

라희는 시선을 내렸다.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했죠?”

“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그 말을 하자 기현은 책상에 손을 올렸다. 목 흉터가 잠깐 움찔했다. 검사관이 다가가려 했지만 판관이 멈추게 했다.

“그 말은 누군가를 살리라는 뜻이었습니까?” 소란이 물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안에 있었습니까?”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왜요?”

라희는 증언패를 내려놓았다.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법정의 공기가 바뀌었다. 검사관은 바로 반대 질문을 하려 했지만, 문계수 판관이 손을 들었다.

“증인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장소부터 마련하겠습니다. 재판은 잠시 중지합니다.”

기현은 라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는 붓을 들어 종이에 한 줄을 썼다.

‘목소리를 잃은 건 내 선택이다.’

소란은 글을 읽고 물었다. “그 사람을 구하려고 목소리를 잃은 건가요?”

기현은 붓을 내려놓았다. 그는 목을 짚고, 검집의 부러진 끝을 가리켰다. 칼날의 잔흔이 선명한 한 줄을 남겼다. 그는 그것을 종이에 비스듬히 그었다. 소란은 그 선이 북관 문턱을 가르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을 쓴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현의 문파에는 숨을 실어 칼을 밀어내는 ‘무음검’이 있었다. 목소리를 내는 대신 숨과 목을 함께 써, 좁은 공간에서 상대의 무기를 떨구는 기술. 그날 기현은 문 안에 들어간 뒤, 다른 검객의 칼을 쳐 냈다.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판관은 검술 대련이 진술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흉터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마당에서 동작을 재현하도록 허락했다. 기현은 칼을 뽑지 않고 부러진 검집을 들었다. 검사는 낡은 연습도를 받아 그의 맞은편에 섰다.

“공격은 하지 않겠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문 안에서 한 동작만 보여 주세요.”

기현은 종이에 손가락으로 문틀을 그렸다. 라희가 그 옆에 서서 자신이 기억하는 위치를 표시했다. 그는 두 걸음 안으로 들어가 손바닥을 세웠다. 검사가 연습도를 내리자, 기현의 검집이 칼날의 중심을 밀어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칼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게 무음검입니까?” 판관이 물었다.

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에게 한 번 더 동작을 청했다. 이번에는 몸을 낮춰 칼날을 땅으로 흘렸다. 그의 목에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흉터가 붉게 달아올랐다. 소란은 기록할 말을 찾지 못하고 붓을 멈췄다.

라희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날도 이렇게 칼을 밀어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한 번 더 소리가 났습니다.”

“어떤 소리였습니까?”

“누군가 문 안에서 이름을 불렀어요. 기현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기현은 검집을 내려놓았다. 그는 손으로 자기 목을 짚은 뒤, 마당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빗물 자국만 남아 있었다. 목소리를 잃은 일이 칼을 쳐 낸 순간인지, 누군가의 이름을 듣고 입을 다문 순간인지 누구도 확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종이를 받아 문 안에 있던 사람 수를 그렸다. 두 명, 세 명, 그리고 지워진 원 하나. 소란은 그 빈 원에 글자를 쓰지 않았다.

“그럼 문을 열어 주었다는 문장은 사실입니까?”

기현은 한참 망설였다. 글씨 압력이 종이에 깊게 패였다. 그는 ‘열었다’고 썼다. 그리고 그 옆에 ‘안에 있었다’를 덧붙였다.

소란은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았다. ‘나는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안에 있었다.’

“두 문장은 다르네요.”

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첫 문장을 썼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당신이 쓴 게 아니에요.”

그는 그 문장 아래에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펴서 소란에게 보여 줬다. 붓을 쥘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서명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법정이 다시 열릴 때, 판관은 기현에게 새 진술서를 제출할 기회를 줬다. 그는 ‘나는 문을 열었다’라는 문장에 자기 이름을 쓰고, ‘나는 살해하지 않았다’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검사관이 물었다. “죽이지 않았다는 확신이 없습니까?”

기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종이에 ‘칼을 본 적 있다’고 적었다. 그 문장 옆에 손바닥을 올렸지만 통증은 없었다.

소란은 증언패의 불탄 부분을 따로 봉인했다. 안쪽에서 새로운 글씨가 보였다. ‘목소리는 증거가 아니다.’

그 글씨는 기현의 것이 아니었다. 타다 남은 패의 나뭇결이 반대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심리가 끝난 뒤 소란은 불탄 패와 새 진술문을 나란히 놓았다. 잉크 자국은 없고, 나뭇결을 따라 글자가 솟아 있었다. 누군가 칼끝이나 손톱으로 눌러 쓴 흔적이었다. 그녀는 기록실에서 가져온 오빠의 파문 결정문을 꺼냈다. 거기에도 ‘문을 열어 주었다’는 문장이 있었다.

기현은 그 문장을 보고 손을 뻗었다. 소란은 종이를 주지 않았다. “오빠의 기록이에요. 그가 직접 쓴 것인지도 몰라요.”

기현은 고개를 젓고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그다음 소란의 종이를 두드렸다. ‘이 문장이 당신 목소리를 대신한 건가요?’ 그녀가 묻자 그는 천천히 손바닥을 폈다.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알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대신 문장을 완성하면 편하겠죠. 하지만 그건 당신의 침묵을 제가 채우는 거예요.”

기현은 붓을 들어 새 종이에 한 글자를 썼다. ‘남.’

“남은 사람?”

그는 붓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쓰지 않았다. 소란은 그 글자만 별도의 종이에 옮기고 기록자 도장은 찍지 않았다. 기현은 서명하지 않은 문장을 접지 않고 책상 위에 남겼다.
라희는 기현이 남긴 한 글자를 보고 증언패를 놓쳤다. 나무가 법정 바닥에 떨어지며 세 번 울렸다. 세 번째 소리는 그녀가 처음 법정에서 말하지 못했던 이름과 같은 박자였다. 그녀는 패를 줍지 않고 문계수를 바라봤다.

문계수 판관은 증언패를 들고 소란에게 말했다. “이 문장을 쓴 사람이 아직 재판소 안에 있습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