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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검객의 소송 대필3화

말 없는 검객의 소송 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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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재판관의 개인 의뢰

문계수 판관은 해가 진 뒤에도 재판소에 남아 있었다. 청명정의 법정에는 낮 동안 들린 말들이 아직 걸려 있는 듯했다. 방청객이 밀고 간 의자 다리 자국, 증언패가 바닥에 부딪혀 남긴 긁힘, 기현의 진술을 읽다가 입을 다문 서기의 시선까지. 허소란은 기록대 위의 종이를 걷어 들다가 문 판관이 비어 있는 법정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퇴근한 줄 알았는데요.”

“퇴근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지.”

그는 늘 재판 때 마시던 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잔에는 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문 판관은 오늘도 그 반을 비우지 않았다. 그는 소란이 들고 있는 문서 더미를 보고는 웃는 대신 한숨부터 내쉬었다.

“허 대필사. 공적인 부탁이 아니네.”

“그러면 받지 않겠습니다.”

“내용을 듣기도 전에?”

“내용을 듣기 전에 공적인 부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저는 여기 기록을 맡은 사람입니다. 판관님의 사적인 일은 제가 대필할 이유가 없어요.”

문 판관은 잔을 내려놓았다. 물이 흔들리며 잔 가장자리에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편지 봉투였다. 봉투는 한 번 뜯었다 다시 붙인 자국이 있었고, 모서리에는 검은 불 자국이 남았다. 수신인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보내는 사람 자리에 ‘문도윤’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아들 물건이네. 파문 심리 뒤에 남긴 편지야. 읽을 수는 있었지만, 내게는 끝까지 읽을 수 없었어.”

“왜 저한테 가져오셨죠?”

“읽는 것과 기록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서.”

“저는 판관님 대신 읽어 드릴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내가 읽고, 내가 말할 테니 자네는 문장만 옮겨 주게.”

소란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그 편지가 재판에 올라올 가능성이 있습니까?”

문 판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잔 쪽으로 갔다가 도중에 멈췄다. 손등의 검버섯 아래로 힘줄이 도드라졌다. 소란은 그 망설임을 보았지만 이유를 짐작하지 않았다.

“아드님의 파문 심리는 판관님이 맡으셨죠.”

“그랬지.”

“그때 기록을 다시 열어야 한다면, 이 문서도 증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자네를 찾았네.”

“저를 찾은 이유가 대필 때문인지, 기록을 남기려는 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문 판관은 봉투를 테이블에 놓았다. “그 구분을 자네가 해 주면 좋겠어.”

“그건 판관님 몫입니다.”

그 말에 문 판관은 처음으로 소란을 똑바로 보았다. 법정에서 피고를 향할 때와 달리, 그 눈에는 질문을 던질 준비가 없었다. 그는 오래 닫혀 있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 아들은 파문당한 뒤 청명정을 떠났네. 떠나기 전 내게 편지를 남겼지. 나는 그걸 받지 않았어. 봉투를 책상에 내려놓고, 아들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덮었네. 그때는 판관이 먼저 아버지가 되면 재판을 망친다고 생각했어.”

“지금은요?”

“지금은 내가 아버지인 척하며 판결을 망쳤다고 생각하네.”

그는 한 번에 말을 끝냈다. 문장은 짧았지만, 잔의 물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소란은 그에게 의자를 권하지 않았다. 직접 앉을지 서 있을지도 그가 정해야 했다.

문 판관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반으로 접힌 편지와 손바닥 크기의 목패 하나가 들어 있었다. 목패에는 문도윤의 이름과 백산검문 표식이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칼끝이 스친 듯한 흠집이 길게 나 있었다. 편지는 첫 줄부터 불에 그을려 있었다. 남은 부분에는 ‘아버지께’라는 말과 짧은 문장 하나가 보였다.

“그날 밤, 아들은 불을 지른 죄를 인정했네.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아니었지만 문파의 비급을 태웠다고 했지. 나는 그 진술을 받아 적었어. 그 애가 왜 불을 질렀는지 묻지 않았네.”

“아드님은 뭐라고 썼어요?”

문 판관은 편지의 남은 줄을 들여다보았다.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 뒤는 타서 읽을 수 없었어.”

소란의 손끝이 싸늘해졌다. 기현의 진술 아래 나타난 문장, ‘목소리는 증거가 아니다’, 그리고 오빠 소명의 파문 결정문. 세 기록에 반복되는 건 불탄 문과 열리지 않은 문이었다. 그러나 연결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 연결을 먼저 판관에게 말하지 않았다.

“대필을 원하시면 먼저 판관님이 말해 주세요. 제가 쓰지 않은 문장에는 손대지 않겠습니다. 이름도 판관님이 직접 쓰세요. 그리고 이 기록이 법정에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셔야 해요.”

문 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네.”

“지금 하신 대답은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문장으로 말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는 편지를 내려놓고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그 아이가 문을 열어 달라고 했을 때, 열지 않았다.”

붓을 든 소란의 엄지가 따끔하게 욱신거렸다. 그러나 그 통증은 문 판관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먼저 떠올린 소명과 기현의 문장이 손안에서 겹친 탓이었다. 그녀는 붓을 종이에 댔다가 바로 들었다.

“그건 편지에 쓰지 않으셨습니다. 판관님이 지금 기억하시는 말입니까?”

“그래.”

“아드님이 실제로 그렇게 부탁했는지, 판관님이 뒤늦게 그렇게 들은 것인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문 판관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 애는 문 앞에서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 그 말이 열어 달라는 뜻인 줄 알면서도.”

“그러면 그 문장을 쓰겠습니다. 하지만 ‘열어 달라고 했다’고 옮기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게.”

소란은 문 판관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나는 아들이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획을 내릴 때 판관의 손가락이 떨렸다. 소란은 그 손이 종이 위로 넘어오지 않게 기록대를 조금 돌렸다. 문 판관이 붓을 빼앗기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문 판관은 한참 종이를 바라봤다. “이 문장을 읽으면 내가 나쁜 아버지였다는 사실만 남겠군.”

“그 사실을 제가 바꿔 쓰면, 판관님께서 다시 한 번 아드님의 말을 막는 셈입니다.”

“자네는 참 위로를 못 하는 사람이야.”

“위로하는 문장은 대필하지 않아요.”

그가 짧게 웃었다.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문 판관은 편지의 나머지를 읽으려 했다. 불에 탄 부분은 몇 글자뿐이었지만, 남은 문장도 매끄럽지 않았다. 말끝이 끊겨 있었고, 중간에는 칼집을 끌어내린 듯한 얕은 홈이 있었다. 문 판관은 더듬어 읽다가 한 줄에서 멈췄다.

“아버지가 문을 열지 않으면, 내가 열겠습니다.”

“그다음은요?”

“읽을 수 없어.”

“제가 보충해 쓸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알고 있네.”

그는 편지를 소란 쪽으로 밀지 않았다. 대신 목패를 돌려 놓았다. 흠집의 끝이 표식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단순히 불에 그을린 자국이 아니었다. 얇은 칼날로 표식을 지우려다 멈춘 듯했다.

“도윤이는 문파의 비급을 태운 게 아니었을지도 몰라.” 문 판관이 말했다. “그날 밤 그 아이가 태우려 한 건 파문 기록의 원본이었어. 내가 그걸 알고도 심리에서 묻지 않았다는 말을 지금 하려는 게 아니네. 그건 아직 내 기억뿐이니까.”

소란은 목패를 보았다. “이걸 언제 발견하셨죠?”

“장례를 치른 뒤.”

“그동안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으셨고요?”

“그랬네.”

“그러면 이건 판관님의 소유물이고, 증거로 쓰려면 누구에게서 어떻게 얻었는지부터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판관님은 그 재판을 맡았던 사람이라 이 사건에서 물러나셔야 해요.”

문 판관의 어깨가 굳었다. “그렇게 하면 자네가 맡게 되겠군.”

“제가 결정할 일은 아니에요.”

“내가 부탁했는데도?”

“저는 글을 옮길 수 있어요. 사건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법정 바깥에서 발소리가 났다. 밤 당직 서기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판관님, 감찰관이 내일 첫 심리 전에 이 사건의 주재자를 바꾸겠다고 합니다. 기현 피고의 증언패가 소실됐다는 진정이 들어왔습니다.”

“누가 냈나?”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봉투에 증언패 조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서기가 내민 작은 종이봉투에서는 그을음 냄새가 났다. 문 판관은 받아 들지 않았다. 소란이 장갑을 끼고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나무 조각 하나가 있었다. 불탄 증언패와 같은 결, 같은 검은 홈. 그 뒤편에는 세 글자가 칼끝으로 눌려 있었다. ‘문을 열어.’

서기가 숨을 삼켰다. 문 판관의 손이 잔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물이 넘쳐 그의 소매를 적셨다.

“이것을 누가 보냈는지 조사하겠습니다.” 소란이 말했다. “하지만 내일 심리는 감찰관이 맡아야 합니다. 판관님은 아드님의 기록과 이 재판에서 자신이 한 일을 분리해서 진술하셔야 해요.”

“내가 무죄라고 쓰지 않겠다는 뜻인가?”

“판관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무죄를 제가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젖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럼 내일 나는 증인이 되겠네.”

“그 결정은 판관님이 직접 기록하고 서명하세요.”

문 판관은 종이 끝에 이름을 적었다. 붓을 쥔 손이 여러 번 멈췄지만, 누구도 대신 획을 긋지 않았다. 마지막 글자가 종이에 내려앉자 소란의 엄지에서 통증이 빠져나갔다. 종이에는 판관의 손글씨만 남았다.

그는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아들의 문장을 완성하지 못해도, 내 문장은 남길 수 있겠군.”

“네. 다만 편지의 빈 곳은 빈 채로 두셔야 합니다.”

문 판관은 봉투를 자기 품에 넣었다. 법정을 나가기 전 한 번 멈춰서 소란을 돌아봤다. “허소란. 네 오빠도 그 문 앞에 있었나?”

소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가진 기록으로는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문 판관도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젖은 소매를 감추지 않은 채 복도를 걸어 나갔다.

당직 서기가 문을 닫고 나서야 소란은 증언패 조각을 다시 살폈다. 새겨진 글씨는 기현의 손글씨와 달랐다. 칼끝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오빠 소명의 파문 문서에 새겨진 수정표식과 같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그 표식이 소명이 남긴 것인지, 소명을 흉내 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조각을 봉인 봉투에 넣고, 목패와 편지의 위치를 각각 기록했다. 사적인 편지는 문 판관에게 돌려보냈다. 증언패 조각은 감찰관 앞으로 보낼 봉투에 따로 넣었다. 두 문서를 한 줄에 묶지 않았다. 기록대에는 문 판관이 직접 서명한 진술문만 남았다.

소란은 그 진술의 사본을 만들다 문득 멈췄다. ‘나는 아들이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 문장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런데 종이 뒷면에 먹물이 묻지 않은 움푹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앞면에는 없는 문장이, 누군가 눌러 쓴 압력으로만 뒤에 새겨져 있었다.

‘그 문을 연 사람은 판관이 아니었다.’

소란은 손을 뗐다. 법정의 문은 잠겨 있었고 당직 서기는 복도 끝에 있었다. 그녀는 누구의 이름도 덧붙이지 않은 채 그 종이를 어둠 속에 세워 두었다. 새벽이 오면, 기현에게 먼저 보여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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