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택배는 밤 열두 시에

2화: 받지 않는 사람
재하는 다음 밤까지 배송장에 적힌 자기 이름을 접어 두었다. 수령인으로 쓰인 이름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소포는 아직 발송되지 않았다. 미정은 접수번호가 생기기 전까지 배송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다음 주소를 먼저 찾아야겠네요.”
“맞아요. 첫 배송 완료 기록이 들어오면 다음 소포가 나옵니다.”
“제가 받는 물건일 수도 있는데요.”
“수령 확인을 거부할 권리는 있어요. 다만 반송 불가면 소포는 접수처에 남겠죠.”
미정은 장부에서 병수의 주소를 확인했다. 배송 완료 시각은 0시 39분. 수령 확인란에는 이름과 함께 손도장도 찍혀 있었다. 하지만 접수 장부에는 병수의 이름이 오래전부터 지워져 있었다.
“왜 이름이 빠져 있죠?”
“그 주소가 철거된 뒤 주민 기록이 이관되지 않았어요.”
“주소가 없어진 게 아니라 기록이 사라진 거네요.”
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래된 주소카드를 넘기며 병수와 같은 골목에서 살던 사람들을 찾았다. 카드에는 가족 수와 전출 시각이 적혀 있었지만, 이사한 곳은 공란이었다.
재하는 낮에 우리를 찾아갔다. 그녀는 편의점 안쪽 창고에 옛 골목의 우편함을 보관해 두었다. 재개발 전에 주민들이 직접 떼어 온 문패와 우편함이었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잊지 않도록 남겨 둔 것이었다.
“이건 편의점 물건이 아니에요.”
“돌려드릴게요. 누가 가져갔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우편함의 자물쇠를 열었다. 안에는 먼지와 마른 나뭇잎, 접힌 엽서가 들어 있었다. 엽서에는 이름 대신 ‘장병수 씨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발신인은 ‘최정임’. 우편 날짜는 골목이 철거되기 한 달 전이었다.
재하는 엽서를 꺼내지 않았다. 봉투가 밀봉된 것은 아니지만, 발송인이 아닌 사람이 읽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편지 내용은 보지 않고, 우편 날짜와 수신 주소만 촬영했다. 주소는 병수가 살았던 붉은 문과 일치했다.
우리는 편의점 창고에서 옛 골목 주민들이 가져온 물건을 꺼냈다. 우편함에는 문패뿐 아니라 전기 요금 고지서와 오래된 열쇠도 들어 있었다. 재하는 물건을 하나씩 뒤집어 주소와 이름을 확인했지만, 누군가의 편지 내용을 읽지는 않았다. 우편물의 주인이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수의 집과 같은 골목에는 일곱 가구가 살았다고 우 리는 기억했다. 이사 통지서에는 다섯 가구만 기록돼 있었다. 나머지 두 집은 철거 직전 전출 신고를 하지 않았고, 주소가 시스템에서 사라졌다. 누군가가 이사를 간 게 아니라, 기록의 바깥에 남은 셈이었다.
“그럼 그 두 집도 그림자 길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재하가 물었다.
“주소가 남아 있어야 해요. 문패나 우편물이 단서가 될 수 있죠.”
“사람이 기억하지 못해도요?”
“기억이 없다면 물건이 대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물건을 누가 가질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우리는 엽서를 병수에게 보여 주기 전에 보관 기록을 만들었다. 우편함의 위치, 봉투 상태, 날짜, 발신인과 주소를 사진으로 남겼다. 봉투가 열려 있다는 이유로 안을 읽으면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었다. 병수에게 건넬 때도 먼저 수령 의사를 물어야 했다.
병수는 두 번째 밤에도 엽서를 거부했다. 재하는 배송 규칙에 거부란이 없다고 설명했고, 미정은 그가 돌아온 뒤 서식에 새 칸을 만들었다. 재하는 그 사실을 병수에게 알리려고 다시 방문했다. 병수는 자기 뜻이 장부에 기록되는 걸 원하지 않았지만, 재하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다음 기사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고 했다.
“내가 받지 않았다는 것까지 적힌다면, 그 사람 마음을 거절하는 것 같소.”
“그렇지 않아요. 받지 않겠다는 결정도 아저씨의 선택입니다.”
“편지를 읽으면 내가 그때 왜 떠났는지 기억날 것 같소.”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편지는 받은 뒤에도 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병수는 문을 닫지 않았다. 그는 엽서의 발신인 이름을 입술로 소리 내어 읽었다. 자신과 정임이 같은 집을 고치고 살았던 때를 기억했다. 하지만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재하는 편지의 내용을 대신 설명하지 않았다. 병수가 기억을 되찾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 선택은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의도와 다를 수 있었다. 수령인의 선택을 먼저 지키는 것이 배송 규칙의 핵심이었다.
그날 밤 자정 택배 접수처로 돌아온 재하는 엽서의 존재를 미정에게 알렸다. 미정은 우편물의 수령인이 살아 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배송에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재하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수령인에게 먼저 선택을 물어보세요.”
“그가 받지 않으면요?”
“받지 않는 사실도 기록해야죠.”
미정은 배송장에 거부란을 추가했다. 공식 서식에는 없는 칸이었다. 그녀는 직접 자를 대고 빈 공간을 만들었다. 재하는 거부 의사와 완료 확인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병수는 다음 밤에도 벽 뒤에 있었다. 재하는 상자를 가져가지 않았다. 엽서의 날짜와 주소만 설명하고,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병수는 엽서를 누가 가져왔는지 물었다.
“우편함에서 발견했습니다. 받으실지 먼저 묻고 싶어요.”
“정임이가 보낸 거요?”
“발신인 이름은 확인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죽었소.”
“그렇다고 편지를 받을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병수는 화를 내며 문을 닫으려 했다. 재하는 막지 않았다. 그는 거부란에 ‘수령 거부 의사 확인 전’이라고 적고, 새벽까지 골목 입구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뜨거운 음료를 가져와 그에게 건넸다. 병수는 받지 않았지만, 우리는 문 앞에 두었다.
밤이 깊어지자 붉은 문이 사라지고 벽만 남았다. 재하는 종을 울리지 않았다. 길이 막혔다면 미정의 규칙대로 한 번 울려야 했지만, 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길이 끊기지 않았다. 그는 배송장이 번지는지 확인하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새벽 세 시가 되자 벽 안쪽에서 작은 불빛이 켜졌다. 병수는 문을 조금 열었다. 그는 엽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읽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정임이 어떤 말을 남겼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또 사과를 요구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편지를 읽지 않아도 수령으로 기록할 수 있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그럼 이건 받아 두겠소.”
병수는 엽서를 자기 이름으로 받아 서명했다. 그는 봉투를 열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재하는 배송 완료가 아니라 수령 거부 철회로 기록했다. 편지가 도착했지만, 내용은 병수에게 맡겨졌다.
그 순간 벽의 붉은 문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문패에는 두 이름이 나란히 나타났다. 장병수와 최정임. 우편함의 엽서 주소가 오래된 길을 복원한 것이다.
“그 골목에 다른 집도 있었소.” 병수가 말했다. “그중 한 집은 아이가 혼자 살았어. 그 애 주소는…”
그는 말을 멈췄다.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재하는 장부에 주소 공란을 남겼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기록할 수 있었다.
병수는 엽서를 받은 뒤에도 문을 열어 두었다. 그는 정임이 살던 집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 옛 우편함은 골목의 가운데에 있었고, 다른 여섯 집은 좁은 길 양쪽으로 나 있었다. 재하는 표식의 위치를 장부에 옮겼다. 주민 이름을 전부 적을 수는 없었지만, 집의 순서와 문패 색은 기억할 수 있었다.
“이 동네에는 길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소.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도 다시 못 온 사람이 있었지.”
“정임 씨도 그랬나요?”
“그 사람은 돌아오겠다고 말한 적이 없어. 내가 돌아오라고만 했지.”
병수는 엽서를 서랍에 넣고 열쇠를 잠갔다. 편지의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랍 열쇠를 벽의 문고리에 걸어 두겠다고 했다. 누군가 다시 주소를 찾으면 우편함이 아직 여기 있다는 표시가 될 수 있었다.
재하는 병수가 거부에서 수령으로 바꾼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확인란에 ‘수령, 미개봉’이라고 기록했다. 미정은 그 기록을 보고 잠시 생각하다가 장부에 ‘봉인 상태 유지’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배송이 완료되어도 내용물을 열지 않은 사실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우리에게 편의점 창고의 문패를 옛 자리에 다시 걸어도 되는지 물었다. 주민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다. 재하는 병수에게 먼저 확인했고, 병수는 자신의 문패만 걸어 달라고 했다. 나머지 집 이름은 아직 찾지 못했으니 대신 달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붉은 문 근처에 문패를 세웠다. 글씨가 새 벽에 닿자 낮 동안 사라졌던 골목의 흔적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일곱 집 중 여섯 곳의 문턱이 드러났지만, 마지막 집의 자리는 여전히 빈 벽이었다.
“그 아이가 살던 집일까요?” 재하가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직 이름도 주소도 없어요.”
“그럼 찾을 때까지 빈칸으로 두죠.”
미정은 그가 작성한 거부와 수령의 기록을 원본 장부에 옮겼다. 재하는 사본을 받아 배송 가방 안쪽에 넣었다.
재하는 배송장 사본의 수령란을 가렸다. 자기 이름이 적힌 칸을 읽는 것과, 그 이름을 받아들이는 일은 아직 같지 않았다. 미정은 장부를 잠그고 열쇠를 목에 걸었다.
다음 배송이 시작되자 장부의 자기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문재하의 옛 집 주소가 한 줄 더 나타났다. 배송 시각은 그가 집을 나간 밤과 같았다.
재하는 공란을 임의로 채우지 않았다. 다음 배송이 시작되기 전에 병수의 수령 기록이 원본 장부에 반영됐는지도 확인했다. 기록이 반영되지 않았다면 새 주소를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수령인의 이름은 여전히 공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