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택배는 밤 열두 시에

1화: 지도에 없는 주소
문재하의 첫 야간 배송은 반송 불가 소포였다.
자정 택배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배달 앱의 야간 관리자였다. 재하는 평범한 심야 주문인 줄 알고 접수처로 갔다가, 문패 없는 사무실과 미정을 만났다. 보수는 건당 현금이었고, 수령 확인을 받아야만 지급됐다. 지도에 없는 주소라는 설명을 듣고도 그는 일을 거절하지 못했다. 하늘의 마지막 통화가 남긴 배경 소리가 낡은 우편함의 종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첫 배송 전 미정은 규칙을 종이에 적어 보여 줬다. 봉인된 상자를 열지 말 것, 수령인의 이름을 대신 쓰지 말 것, 길을 잃으면 종을 한 번만 울릴 것. 재하는 각 규칙 옆에 확인 표시를 했다. 그는 배송 일을 하면서 주소를 잘못 읽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 주소에는 거리 이름도 번지도 없었다.
“고객의 그림자만 보여도 배달 완료로 칠 수 있습니까?”
“아니요. 본인이 자기 이름을 적어야 해요.”
“서명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요?”
“손도장이나 본인이 정한 표식도 괜찮습니다. 다만 우리가 대신 정해 주지는 않아요.”
재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대리 수령이 불가능하다면, 주소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원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는 상자의 무게와 봉인 상태를 기록했다. 물건이 가벼워도 수령인의 선택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골목을 찾는 동안 재하는 휴대폰의 지도와 배송장을 번갈아 봤다. 지도에는 빨간 문이 표시되지 않았다. 그는 주변 건물 번호를 확인하고, 새벽 청소를 하는 경비원에게 옛 골목을 물었다. 경비원은 재개발 전에 작은 주택들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다만 어느 집이 빨간 문이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재하는 길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두 번씩 멈춰 섰다. 그림자 끝이 건물 벽을 지나가면 그쪽으로 걷지 않았다. 어둠에 들어간 발은 바닥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는 길이 보이지 않으면 서두르지 않고, 직전 모퉁이의 표식을 기억했다.
배달장에는 현관 접근 시각을 적는 칸도 있었다. 그는 첫 길목에 도착한 시각, 문을 발견한 시각, 노인의 첫 응답을 차례로 기록했다. 나중에 누군가 배송이 늦었다고 따져도, 왜 시간이 걸렸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상자는 신발 상자만 했고, 포장지는 빗물에 젖지 않았다. 발송인 이름은 공란. 수령인에는 ‘연희동 옛 빨간 문, 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소는 없었다. 배송 예정 시각은 0시 00분, 수령 완료 기한은 해 뜰 때까지였다.
재하는 배송장의 모서리를 만졌다. 잉크가 손끝에 묻지 않았다. 주소가 틀리면 보통 파란 글씨가 번졌다. 이번에는 검은 글씨가 그대로였다.
“반송은 안 되죠?”
자정 택배의 접수원 고미정은 고개를 저었다. “반송 불가로 접수됐어요. 수령 확인을 못 받으면 소포를 가지고 다음 밤에 다시 가야 해요.”
“그럼 완료될 때까지 제 책임인가요?”
“기사가 봉인을 뜯지 않는 동안은요.”
미정은 배송 가방 안쪽에 작은 종 하나를 넣어 주었다. 그림자 길에서 길을 잃으면 한 번만 울리라고 했다. 두 번 울리면 길이 다른 사람을 따라온다고 했다.
“누가 만든 규칙이에요?”
“사라진 사람들.”
재하는 그 답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낮에는 배달 앱으로 도시를 돌았고, 밤에는 주소 없는 소포를 들고 다녔다. 야간 일을 시작한 이유는 동생 하늘의 마지막 주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열 해 전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자 골목의 가로등이 하나씩 꺼졌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검은 길이 생겼다. 지도에는 막다른 길이라고 나오는 곳이었다. 재하는 헬멧의 작은 손전등을 켰다. 빛은 벽에 닿지 않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림자 주소가 나타난 것이다.
재하는 미정이 준 종을 가방 끈에 달았다. 길의 가장자리를 밟지 않고, 발밑의 그림자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확인했다. 골목은 두 번 꺾였다. 첫 번째 모퉁이에는 낡은 전봇대가 있었고, 두 번째에는 새로 칠한 벽이 있었다. 벽에는 문이 없었다.
배송장에 적힌 ‘빨간 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재하는 골목 입구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배송장 글씨가 번졌다. 수령인 문구의 ‘한 사람’에서 ‘한’ 자가 흐려졌다. 주소가 바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손으로 종이를 덮지 않았다. 배송장은 손대면 안 된다는 규칙을 미정이 강조했다.
“누구 계세요?”
벽 너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왜 가져왔소?”
“배송입니다. 수령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오?”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럼 돌려보내.”
“반송 불가로 접수됐습니다.”
노인은 웃지 않았다. “누가 그런 걸 보냈는지 모르는 물건은 받지 않아.”
재하는 수령 거부를 기록하려 했다. 하지만 배송장에는 수령 확인란만 있었다. 거부란이 없었다. 그가 펜을 들자 그림자가 움직였다. 벽의 검은 면이 사람의 어깨처럼 솟아올랐다.
재하는 펜을 내려놓았다. “받지 않으시면 제가 기다려야 합니다. 아침까지 여기 있을 수 있어요.”
“그럼 기다리시오.”
벽 너머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재하는 골목의 바닥을 살폈다. 오래된 문턱의 자국이 새 페인트 아래에 남아 있었다. 벽이 세워지기 전에는 실제 문이 있었던 자리였다. 문고리 자국은 왼쪽에 있었다.
그는 상자를 열지 않고 문 앞에 내려놓았다. 배송장을 손에 든 채 문고리 자국 가까이로 물러났다. 노인은 상자를 받지 않았다. 대신 벽 안쪽에서 금속 소리가 났다.
“어디서 그 주소를 찾았소?”
“배송장에 적혀 있었습니다.”
“이 골목은 없어졌어.”
“지도에서는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노인은 벽을 통해 물었다. “무슨 물건인지 알아?”
“모릅니다. 봉인을 열 수 없어요.”
“그럼 내가 받아야 할 이유도 없소.”
재하는 상자를 들고 다시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골목의 입구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종을 울릴지 고민했다. 미정은 한 번만 울리라고 했다. 그는 지금이 길을 잃은 상황인지, 수령인이 거부한 상황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편의점 간판의 불빛이 벽 너머에서 깜빡였다. 야간 운영자 천우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재하의 배달 가방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또 그 골목으로 들어갔네요.”
“이쪽을 아세요?”
“낮에는 없는 길이에요.”
우리는 벽의 오래된 문턱을 가리켰다. “저기 살던 사람들은 재개발 때 다 나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한 분은 계속 돌아오죠.”
“왜요?”
“집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주소를 잊어버렸대요.”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이야기는 하지 마.”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가 받지 않으면 계속 찾아올 거잖아요.”
“받으면 그 사람을 잊게 돼.”
재하는 상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수령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받지 않겠다는 의사도 배송 기록에 남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부에는 그 칸이 없었다. 우 리는 낡은 문패에서 붉은 페인트 조각을 가져와 상자 옆에 놓았다. 예전 주소를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노인은 긴 침묵 끝에 벽의 틈을 열었다. 손가락이 나와 상자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수령 확인란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받았다는 기록은 남기지 않겠소.”
“그럼 배송 완료가 아닙니다.”
“그럼 그냥 두고 가.”
재하는 상자를 놓지 않았다. “당신이 받기로 선택해야 제가 놓을 수 있어요.”
벽 너머에서 손이 멈췄다. 노인은 한참 뒤 자기 이름을 말했다. “장병수.”
배송장에 이름이 나타났다. 재하는 확인란을 돌려 주었다. 병수는 떨리는 손으로 서명했다. 그 순간 골목의 벽에 붉은 문이 잠시 되살아났다.
상자는 여전히 봉인되어 있었다. 병수는 그걸 품에 안고 문을 닫았다.
병수는 서명하기 전에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기 이름을 크게 쓰지 않았다. 기록이 남으면 정임에게 다시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하는 확인란에 쓰인 글씨가 본인 필체인지 병수에게 물었다. 병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서명 옆에 자기 손도장을 남겨 두었다.
“이제 배송은 끝났습니까?”
“수령은 확인됐습니다.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어요.”
“그럼 그 사람이 보낸 걸 읽지 않아도 되는 거군.”
“네. 봉투를 받는 것과 안에 든 말을 받아들이는 건 다르니까요.”
병수는 상자를 품에 안고 붉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재하는 배송 완료 시간을 기록하고, 상자가 전달된 상태를 미정에게 보낼 수 있도록 사진을 남겼다. 사진에는 병수의 얼굴이나 집 안쪽을 찍지 않았다. 문턱과 서명 확인만 담았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왔다. 재하는 길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상자를 바라봤다. 병수가 받은 것이 정임의 편지를 대신한 소포인지, 그저 전달을 끝내기 위한 상자인지 알 수 없었다.
“아저씨가 편지를 읽을까요?”
“그건 그분이 정할 일이에요.”
“다시 돌아오실 것 같아요.”
“그럼 다음에 오면 또 물어보죠. 답을 우리가 미리 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는 그림자의 끝을 밟지 않도록 보폭을 줄였다. 배송을 마쳤어도 길은 아직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재하의 그림자가 발뒤꿈치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배송장 뒷면에 새 주소가 나타났다.
‘재하는 배송장의 앞뒤를 촬영하고 접수번호를 미정에게 전송했다. 완료 확인과 다음 배정은 별개의 기록으로 남겼다. 그림자가 늦게 따라오는 현상도 발생 시각과 위치를 적어 두었다.
다음 수령인: 문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