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등대의 식물관리일지

3화: 등대의 새 일지
두 번째 종이 울린 뒤, 마을은 바다 쪽 창문을 닫았다. 세 번째 종은 울리지 않았다. 정례가 종 밧줄에 몸을 매달아 당기지 못하게 버텼기 때문이다.
솔은 온실의 돌받침을 눌러 막고 있었다. 흙탕물이 손목에 부딪힐 때마다 손끝의 감각이 무뎌졌다. 현우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밧줄을 잡았다. 민재가 배수구의 틈에 나무판을 끼우려 했지만, 물의 압력에 판이 튕겨 나왔다.
“나무는 안 돼요!” 민재가 뒤로 물러났다.
“그럼 돌로 눌러야 해.” 정례가 종 밧줄에서 몸을 떼고 뛰어왔다. “해안 계단 아래에 납작한 돌이 있어.”
“파도가 올라오면 못 가요.” 솔이 말했다.
“지금 안 막으면 이 온실이 바다로 쓸려 나가.”
정례는 방수 밧줄을 허리에 감았다. 현우가 반대쪽을 기둥에 묶었다. 솔은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장갑을 바꿔 끼웠다.
“나는 배수구를 잡을게. 민재는 현우 씨 옆에서 밧줄을 당겨. 정례 씨가 돌을 가져오면 셋이 같이 올려.”
“솔 누나는 손 다쳤어요.”
“그래서 손바닥으로 누르지 않고 막대를 받칠 거야.”
민재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솔의 부상을 걱정하면서도, 어젯밤 자신이 지적한 위험이 실제가 된 걸 안다. 솔은 그에게 물러나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역할을 명확히 맡겼다.
정례가 물보라 속으로 나갔다. 난간 너머로 그녀의 등불이 기울었다가 다시 섰다. 솔은 긴 철제 막대를 돌받침 아래로 밀었다. 솟구치는 물살이 막대 끝을 밀어냈다. 현우가 끈을 감아 막대가 빠지지 않게 잡았다.
“기록사님, 손 놓으면 관이 열려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 말고 힘을 줘요!”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밧줄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민재가 그의 팔꿈치를 받쳤다. 둘의 힘이 합쳐지자 막대가 돌받침 아래 고정됐다.
정례는 젖은 돌을 안고 돌아왔다. 돌은 그녀의 품에서 미끄러져 발등을 찍었다. 정례가 숨을 삼켰지만 돌을 놓지 않았다. 솔은 막대에 걸린 고리를 당겼다. 현우와 민재가 밧줄을 당기고, 정례가 돌을 구멍에 밀어 넣었다.
돌이 틈을 막는 순간, 물살이 잠깐 멎었다. 뒤이어 온실 바닥의 흙탕물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네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파도 소리만 유리벽을 때렸다.
“막혔나?” 민재가 물었다.
솔은 막대 끝의 진동을 확인했다. “임시로는. 다음 밀물 때 다시 밀릴 수 있어.”
“그럼 오늘 밤새 지켜야 해요?”
“아니. 바깥쪽 물길을 분리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현우가 카메라를 들었다. “제가 아래쪽으로 가겠습니다. 지도를 그리려면 관의 출구를 확인해야 합니다.”
“혼자 내려가면 안 돼.” 정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 계단은 바닷물이 빠질 때도 미끄러워.”
현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례 씨와 함께 가겠습니다. 카메라는 방수 주머니에 넣고, 표본은 두고 가죠.”
현우가 처음으로 표본보다 사람의 말을 먼저 들었다. 솔은 그 변화를 말로 칭찬하지 않았다. 그가 장비를 가볍게 챙기는 동안, 그녀는 민재와 함께 온실 안의 트레이를 옮겼다.
살아남은 묘목은 스물세 개였다. 어제의 절반보다 적었다. 잎에 소금 자국이 남은 일곱 개는 잎을 닦지 않았다. 물을 더 주면 뿌리의 염분이 오히려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솔은 트레이를 빗물통 옆 그늘로 옮기고, 민재에게 흙의 무게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이건 젖어 있는데 왜 물을 더 안 줘요?”
“잎에 묻은 소금은 닦을 수 있어도 흙이 짜면 뿌리가 먼저 상해. 지금은 빗물로 흙을 조금씩 씻어야 해.”
“빗물도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모두에게 주지 못해. 뿌리 상태를 보고 나눌 거야.”
민재는 여덟 번째 트레이를 만졌다. “이건 뿌리가 물러요. 지금 빗물을 쓰면 다른 묘목이 덜 받아요.”
“맞아. 그건 회복 가능성이 낮아.”
“그럼 버려요?”
“아직은 아니야. 흙에서 씨앗이 남았는지 분리해. 뿌리와 잎은 따로 관찰하자. 살아 있는 씨앗만 다시 심을 수 있어.”
민재는 조심스럽게 트레이를 들어 올렸다. 뿌리가 흙에서 빠져나오며 끊어졌다. 그는 깜짝 놀라 손을 멈췄다.
“괜찮아. 그 뿌리는 이미 물러 있었어.”
“제가 더 천천히 들었으면—”
“그랬을 수도 있어. 다음엔 받침을 아래로 대고 들어 보자.”
민재는 솔의 말을 듣고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는 손상된 뿌리를 작은 접시에 옮겼다. 씨앗 하나가 흙 사이에서 나왔다. 껍질은 검고 납작했지만, 등대 불빛을 받자 가장자리에 희미한 금빛이 돌았다.
솔은 눈을 가까이 대지 않았다. 전날 그 색을 보고도 종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빛의 색을 기록하되, 이름 대신 관찰한 조건을 적었다.
“염수에 닿은 시간 불명, 껍질 가장자리 발광, 뿌리 방향은 북서.” 민재가 일지에 읽어 주었다.
“좋아. 그 다음에는?”
“다른 배지에서 싹이 나는지 확인. 단, 발아실 밖에 두고요.”
“그리고?”
“섬보리 묘목하고 접촉시키지 않기.”
“그걸 지키는 사람이 너야.”
민재는 일지를 받아 적었다. 그가 처음으로 기록을 맡은 뒤, 글씨는 전보다 느려졌지만 줄은 반듯했다.
바깥에서 정례와 현우가 돌아왔다. 정례의 바짓단에는 검은 모래가 묻었고 현우의 방수 주머니에는 젖은 지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배수관은 등대 뒤 바위틈으로 이어져 있었다. 중간에 작은 갈림길이 있었고, 한쪽은 바다로, 다른 쪽은 섬 안쪽의 오래된 우물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우물은 막혔다고 들었어.” 솔이 말했다.
정례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막힌 게 아니야. 어릴 때 어머니가 그 물을 길었어. 지금은 돌로 덮어 놨지.”
“왜 말하지 않았어요?” 민재가 물었다.
“열면 염수가 마을로 들어올까 봐. 오래된 우물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거든.”
현우가 지도를 펼쳤다. “이번 역류가 그 우물에서 시작됐는지, 바다 쪽 관에서 시작됐는지 아직 모릅니다. 두 갈래를 따로 시험해야 합니다.”
“그럼 오늘 확인할 수 있어요?”
“밀물이 빠지고 나면요. 그 전엔 위험합니다.”
정례는 젖은 지도에 손가락을 댔다. “우물은 내가 열어볼게. 솔은 여기 남아 묘목을 봐. 네가 저 물길을 잘못 열어도, 여기 온실만은 지켜야 해.”
솔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정례가 자신을 막으려는 건 배려만은 아니었다. 오래전 자신의 씨앗 실수를 기억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문을 함께 열 사람이 필요했다.
“우물은 정례 씨 혼자 열지 말아요. 제가 같이 가고, 현우 씨는 기록만 하세요. 민재는 남아서 묘목과 물몫표를 지켜줘.”
“왜 난 못 가요?” 민재가 물었다.
“누군가는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해. 그리고 다음번에는 네가 우물에 갈 수도 있어.”
민재는 물몫표를 들고는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남기로 했다. 솔은 그에게 오늘 빗물 사용량과 살아남은 트레이 수를 맡겼다.
정례가 옛 우물터로 가는 길을 앞섰다. 솔은 손에 작은 삽과 빈 병을 들었다. 현우는 지도를 비에 젖지 않도록 안쪽 옷에 넣었다. 길은 등대 뒤 바위와 낮은 풀밭을 따라 내려갔다. 한쪽에서는 파도가 돌을 핥았고 다른 쪽에서는 물을 머금은 흙이 신발 아래서 미끄러졌다.
우물터는 오래된 줄기와 돌판에 덮여 있었다. 정례는 돌판의 둥근 무늬를 보자 숨을 멈췄다. 등대 배수관의 돌과 같은 표식이었다. 솔은 돌판 옆의 좁은 홈에 손전등을 비췄다. 홈 안쪽에서 가느다란 초록 잎 하나가 자라고 있었다.
“이건 섬에 없던 풀인데.” 현우가 다가왔다.
정례가 그의 팔을 가로막았다. “만지지 마.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잖아.”
솔은 잎의 뿌리 쪽을 살폈다. 씨앗 격리 접시에서 본 솜털 씨앗의 잎과 비슷했다. 그러나 잎 모양만으로는 같은 종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잎 끝에는 검은 모래가 붙어 있었고, 그 모래는 우물 안쪽에서 바깥으로 흘러나온 방향으로 쌓여 있었다.
“물이 여기서 발아실 쪽으로 나간 것 같아요.”
“그럼 우물을 열지 말자.” 정례가 말했다.
“열지 않아도 이미 물이 새고 있어요.”
솔은 삽을 내려놓고 돌판의 가장자리를 만졌다. 판을 열면 우물에 고인 물이 바깥으로 쏟아질 수 있었다. 닫아 두면 물은 밑으로 스며들어 배수관으로 계속 흐를지 몰랐다.
그녀는 어릴 때 갯벌 빈터에서 길을 잃은 날을 떠올렸다. 땅이 무너지고, 그녀가 심은 덩굴이 발목에 감겼다. 그때 어른들은 넝쿨을 한꺼번에 뽑아 빈터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 살리려 했던 행동이 다른 손상을 불렀다.
“돌판을 전부 열지 않을게요. 작은 틈만 만들어 물을 한 병 받아요. 염도와 냄새를 확인하고 다시 닫죠.”
“그 틈으로 씨앗이 빠져나오면?” 현우가 물었다.
“망을 대요. 이번엔 물길을 막지 않는 넓은 체로.”
정례는 잠깐 솔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얇은 체를 홈에 걸고 돌판의 한쪽을 삽으로 들어 올렸다. 손가락 한 마디 너비의 틈이 생겼다. 검은 물이 천천히 흘러나와 병에 찼다. 물은 짜지 않았다. 대신 흙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달큰한 향이 났다.
체에는 납작한 씨앗 한 알이 걸려 있었다. 표면의 금빛은 사라졌고, 갈라진 틈에서 새하얀 뿌리가 나왔다. 솔은 그 씨앗을 바로 격리통에 넣었다. 우물을 막거나 활짝 여는 대신, 그날의 유출을 멈출 작은 마개를 끼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정례가 말했다. “내일 주민들하고 다시 오자.”
현우는 병의 표식을 확인했다. “섬 이름과 위치, 채취 시각을 적겠습니다. 외부 반출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문장도 일지에 적어요.” 솔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놓친 솜털 씨앗도.”
돌아오는 길,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다. 등대 불빛이 흐린 구름 사이로 새어나왔다. 마을에서 민재가 종을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경보가 아니었다. 누군가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온실에 돌아온 솔은 새 일지의 첫 장을 펼쳤다. 오늘의 물 사용량, 살아남은 묘목 스물세 개, 놓친 솜털 씨앗, 임시로 막은 우물, 발견한 초록 잎을 적었다. 마지막 칸에는 섬 이름을 크게 썼다. 현우가 그 아래에 서명했고, 정례와 민재도 각자 이름을 보탰다.
“우리가 이 씨앗을 키우기로 한 거예요?” 민재가 물었다.
“아니. 오늘은 퍼지지 않게 지키기로 한 거야.” 솔은 격리통의 작은 뿌리를 보았다. “키울지 말지는 뿌리와 섬을 더 살핀 다음 정하자.”
그때 오래된 일지의 등표가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 안쪽에는 등대가 생기기 전의 날짜와, 섬 이름도 다른 옛 지명이 적혀 있었다. 그 기록에 붙은 식물 그림은 우물 옆의 잎과 똑같았다.
그림 아래, 누군가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남겼다.
‘이 씨앗은 바다에서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다로 보낸 것이다.’
솔은 일지를 닫지 못했다. 발아실 문밖에서 격리통의 뿌리가 유리벽이 아닌 땅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