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백은 빵 냄새로

2화: 식지 않은 편지
다음 날 아침, 오븐 온도계는 수리 전보다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점검 기사는 새 부품을 달고도 최소 한 차례 테스트 굽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유는 반죽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 밀가루 500그램, 버터 120그램, 소금 8그램. 엄마가 써 둔 배합표에서 소금빵 열두 개 분량을 계산했다.
태준은 가게 문이 열리기 전에 선반을 마무리했다. 나무 조각을 맞추고, 나사 머리가 튀어나오지 않게 메웠다. 지유는 그에게 쪽지를 보여 주지 않았다. 먼저 오늘 장사를 안정시키고 싶었다. 그가 남긴 견적서대로 잔금을 치르고, 수리 사진을 찍어 기록했다.
“왜 이사 갔어?”
그녀가 물었을 때 태준의 손이 멈췄다.
“갑자기 묻네.”
“엄마가 네게 줄 게 있다고 적어 뒀어.”
“그 쪽지를 아직 가지고 있어?”
“응. 그러니까 네가 뭘 받았는지부터 말해.”
태준은 사포를 내려놓았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아무것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사 전날, 아버지가 큰 빚을 지고 가족이 급히 집을 떠났다. 지유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아버지가 전화기를 가져갔다. 며칠 뒤에는 주소가 바뀌었고, 다시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 왜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어?”
“내가 겁이 났어. 네가 나를 기다렸는지, 원망하는지 몰랐으니까.”
“알아보면 됐잖아.”
“맞아. 그건 내 잘못이야.”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지유는 그의 사과를 듣고도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쪽지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지만, 그것이 태준의 현재 집 주소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편지가 네 것인지 확인한 뒤에 줄게.”
“고마워.”
“편지 내용은 내가 읽지 않을 거야.”
“그래야지.”
지유는 쪽지를 작업대에 놓았다. 엄마가 태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왜 자신에게 바로 전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태준의 편지를 열어 볼 권리가 되지 않았다.
테스트 굽기는 작은 문제가 연달아 생겼다. 반죽이 발효되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고, 한 판의 빵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지유는 첫 판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태준은 선반에 새로 만든 빵 냉각대를 올려 두었다. 온도계와 반죽 기록지를 나란히 두자 작업대가 한결 정돈됐다.
“모양이 달라도 먹을 수 있어.” 태준이 말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내가 팔 수 있는 건 달라.”
“그럼 직원 간식으로 쓰자.”
“직원은 나 혼자야.”
“그럼 같이 먹어도 되겠네.”
지유는 웃었다. 빵은 고르게 부풀지 않았지만 속은 촉촉했다. 그녀는 다음 판을 굽기 전에 온도와 시간을 조금씩 조정했다. 한 번에 모든 변수를 바꾸지 않았다. 두 번째 판은 모양이 나아졌다. 세 번째 판은 원래의 소금빵과 비슷했다.
정오 무렵, 미란 회장이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테스트 결과표와 수리 진단서를 확인했다. 지유는 첫 판은 판매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온도와 굽기 시간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미란은 시장 간식 납품을 하루 더 미루기로 했다. 대신 다음 날 오전에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다.
“정직하게 기록했다고 바로 거래를 돌려 주는 건 아니야.”
“알아요.”
“사람들이 안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기다릴게요.”
미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빵 두 개를 샀다. 그녀는 가게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하나를 반으로 갈라 속을 확인했다.
“안은 괜찮네. 내일 다시 보자.”
그날 저녁 지유는 어머니의 쪽지를 더 자세히 살폈다. 주소 아래에 아주 작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첫 고백을 거절한 게 아니래. 지유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태준에게 바로 물어보려다, 오늘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 물으면 그가 설명을 빚처럼 느낄 수도 있었다.
태준은 문을 닫기 전까지 선반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는 사용한 자재와 남은 나무 조각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지유는 쪽지를 건넸다.
“엄마가 네게 주려고 했던 것 같아.”
태준은 글씨를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쪽지 뒷면에 적힌 주소는 그의 가족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다세대 주택이었다. 그곳은 재개발로 철거된 지 오래였다.
“이걸 언제 발견했어?”
“어제. 주소를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이미 없어졌더라.”
태준은 쪽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럼 왜 엄마가 나한테 주려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엄마한테 물을 수는 없어. 아빠는 알지도 몰라.”
“괜찮아. 지금은 안 물어봐도 돼.”
그는 쪽지를 돌려주었다. “이건 네가 보관해. 네 어머니가 너한테 맡긴 거니까.”
지유는 쪽지를 받았다. “편지라면 네가 읽을 수 있어.”
“엄마가 나한테 직접 주라고 했을 때만.”
그 말에 지유는 엄마가 편지라고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보았다. “줄 것”이라고만 했다. 내일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전하겠다고 했다.
저녁 손님이 끊겼을 때 태준은 가게 앞 의자에 앉았다. 지유는 갓 구운 빵을 둘로 갈랐다. 빵 사이로 버터 향이 퍼졌다.
“예전에도 이렇게 나눠 먹었지.”
“그때는 네가 늘 큰 쪽을 가져갔어.”
“네가 작은 쪽을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건 거짓말이었어.”
태준은 빵을 든 채 웃었다. 그 웃음은 잠깐 옛날처럼 보였다. 지유는 그가 자신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가족을 떠날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유는 그 사정을 몰랐다. 몰랐다는 이유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시 친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럴 필요 없어. 오늘은 그냥 같이 빵 먹으면 돼.”
그의 말이 가벼워서 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그날 처음으로 과거 얘기를 멈추고, 빵 반죽에 들어간 버터의 가격을 두고 웃었다.
태준은 쪽지를 돌려받은 뒤 목공소로 가지 않았다. 그는 가게 앞 처마 아래서 빗물을 피하며 한참 서 있었다. 지유는 그가 떠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어 두었다. 결국 태준은 안으로 들어왔다. 쪽지를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았지만, 주소를 읽어 내리지 않았다.
“저 집에서 마지막으로 지낸 날을 기억해?” 지유가 물었다.
“응. 아버지가 이삿짐을 싸면서 이 동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돈을 빌린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했지.”
“너는 내게 얘기하려고 했어?”
“전화기를 빼앗기기 전까지는.”
“그 뒤에는?”
“다른 사람 전화로 연락할 수 있었어. 그런데 네가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내가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멈췄어.”
그는 자기 선택을 가족의 빚에만 기대지 않았다. 지유는 그 점이 중요했다. “나는 네가 나를 싫어해서 대답하지 않은 줄 알았어.”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네가 한 번만 연락했으면 알았겠지.”
“맞아.”
지유는 고개를 숙였다. 빵 굽는 냄새가 나지 않는 가게 안은 낯설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태준의 침묵을 혼자 해석해 왔다. 그 해석이 틀렸다고 해서 그 시간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가 자기 마음을 위로해 주길 원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부터는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는 관계를 원했다.
“나중에 또 겁이 나면 말해 줘. 사라지지 말고.”
“말할게.”
“그 약속도 지킬 수 있는 만큼만 해.”
태준은 쪽지를 접어 지갑에 넣었다. “그럼 지금 약속할게. 연락을 피하고 싶어지면, 피하고 싶다고 먼저 말하겠어.”
지유는 그 말을 받아 적지는 않았다. 약속은 종이에 쓰는 것보다 그가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로 확인할 일이었다. 그녀는 테스트 반죽을 작은 조각으로 떼어 오븐 앞에 두었다. 기사가 부품 교체를 끝내기 전까지는 굽지 않기로 했지만, 반죽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태준은 작업대 위에 놓인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왜 시간을 재?”
“발효가 평소보다 느리다며. 온도와 시간 기록을 같이 보면 원인을 찾을 수 있잖아.”
지유는 그에게 기록지를 건넸다. “그건 도와줘도 돼.”
두 사람은 온도계 숫자와 반죽 부피를 적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지유는 그 편안함을 오래된 관계가 원래 돌아온 것처럼 취급하지 않았다. 태준은 떠난 시간 동안 다른 사람으로 살았고, 자신도 빵집을 이어받으며 달라졌다. 다시 알아가는 일에는 새 질문이 필요했다.
점심 무렵 태준은 자신의 목공소로 돌아갔다. 그는 선반 견적을 인쇄해 지유에게 보여 주었다. 재료비, 작업 시간, 이동 비용이 나뉘어 있었다. 지유는 가격을 확인하고 합의했다. 태준이 빚을 갚는 방식으로 무상 노동을 제공하지 않도록, 그녀는 일의 대가를 정확히 지불했다. 태준도 할인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 거래는 두 사람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첫 조건이 됐다.
해가 진 뒤 태준은 선반을 설치할 위치를 다시 쟀다. 문이 열리는 폭과 손님이 줄을 설 때의 동선을 확인한 뒤, 원래 계획보다 선반을 십 센티미터 안쪽으로 옮겼다. 지유는 빵 상자를 직접 들고 걸어 보며 길이 막히지 않는지 확인했다. 두 사람은 한 번 더 위치를 바꾸고 나서 나사를 박았다. 일을 마친 태준은 남은 재료를 챙기고 비용을 계산서에 적었다.
“정확히 받네.” 지유가 말했다.
“일을 맡겼으니까.”
“친구여도?”
“친구면 더 정확해야지.”
그 말에 지유는 어깨에 남은 긴장을 조금 풀었다. 과거의 빚을 갚듯 일하는 대신, 현재의 일을 거래로 나눌 수 있었다. 태준은 문 앞에서 내일 연락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날 밤 테스트 굽기 결과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약속한 대로 연락을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