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백은 빵 냄새로

1화: 소금빵을 태운 사람
오지유는 오븐 문을 열자마자 연기를 들이마셨다. 타이머는 울리지 않았다. 전날 밤 맞춰 둔 온도가 새벽 정전 뒤에도 초기화되지 않았다고 믿은 게 실수였다. 소금빵 열여섯 개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창문부터 열어요!”
가게 안쪽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지유는 환풍기를 켜고 손님 쪽 출입문을 열었다. 새벽 다섯 시 반, 시장 골목에는 비가 내렸다. 빵집 첫 손님들이 우산을 털며 들어오려다 연기를 보고 멈췄다.
“오늘은 아직 판매 준비가 안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빵집을 연 지 세 달째. 아버지가 쓰러진 뒤 동네 가게를 이어받았지만, 오븐은 오래됐고 거래처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계약한 곳이었다. 매일 새벽 문을 열어도 매출은 임대료와 재료비를 간신히 넘겼다. 오늘 빵을 모두 버리면 손실은 더 커졌다.
“구운 건 태웠다고 바로 버리는 게 아닐 수도 있어.”
문 앞에 서 있던 강태준이 말했다. 지유는 그를 알아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중학교 동창. 첫 고백을 받았고, 바로 거절당한 줄 알았던 사람. 태준은 우산을 접어 문 밖에 두었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지금은 그 말보다 빵을 어떻게 할지 먼저 봐야겠네.”
“손님한테 팔 수는 없어.”
“그럼 직원 간식으로 써도 될까? 바깥이 탄 부분만 잘라 내면 크루통으로 만들 수 있어.”
지유는 타버린 빵을 집어 들었다. 겉은 검었지만 안쪽은 아직 촉촉했다. 태준은 시장 목공소에서 일한다고 했다. 가게 진열장을 고치러 왔다가 연기를 봤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과거는 그 말보다 두꺼웠다.
“내가 어릴 때는 빵을 잘 태우지 않았는데.” 지유가 말했다.
“그땐 네가 굽는 게 아니라 네 어머니가 굽고, 네가 옆에서 온도를 적었지.”
“기억하고 있었네.”
태준은 대답 대신 작업대에 놓인 타이머를 보았다. 그는 오븐 옆의 낡은 전원 스위치를 살펴보고, 전기 연결이 불안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지유는 그에게 수리를 부탁하지 않았다. 먼저 전원을 차단하고 시설 기사를 부르기로 했다. 빵집은 전기 사고가 나면 영업 허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괜히 도와주려다 더 큰일 만들고 싶지 않아.”
“좋은 판단이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다.”
“왜?”
“예전엔 내가 하는 말마다 틀렸다고 했잖아.”
태준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지유는 검게 그을린 빵을 종이봉투에 담았다. 그날 아침 판매량은 평소의 절반도 안 됐다. 손님들은 연기 냄새가 남아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빵을 다시 만들기 위해 반죽을 섞었지만, 버터가 냉장고에서 너무 차가웠다. 반죽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았다.
“오븐 점검이 끝나기 전까지 새 빵을 굽지는 말자.” 태준이 말했다.
“그래서 지금 냉장 쇼케이스에 있는 걸 팔 거야.”
“사람들이 연기 난 걸 봤잖아.”
“사과하고, 상황을 설명할게. 괜찮다고 설득하지는 않을 거야.”
지유는 계산대 옆에 작은 안내문을 썼다. 오븐 이상으로 오늘 아침 일부 빵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점검을 마친 뒤 영업을 재개하겠습니다. 그 아래에는 환불 연락처를 적었다. 태준은 안내문이 잘 보이도록 유리문 안쪽에 붙였다.
“내가 도와도 돼?”
“뭘?”
“가게 앞 선반. 비가 들어와서 나무가 불었어. 오늘 수리 비용은 받지 않을게.”
“그럼 안 돼.”
“왜?”
“공짜로 고치면 나중에 네가 뭘 기대했는지 내가 모르게 돼.”
태준은 고개를 숙였다. “맞아. 그럼 견적을 써 올게. 네가 맡기면 고치고, 아니면 돌아갈게.”
그의 대답에 지유는 잠시 멈췄다. 예전에는 그가 왜 떠났는지 묻지 못했다. 열여덟 살 여름, 지유는 태준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태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다음 주에 가족과 이사했다. 지유는 고백을 거절당했고, 끝내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선반 견적은 받아 볼게.”
“알았어.”
태준은 빵집을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상인회장 박미란이 들어왔다. 그녀는 아침 연기 소문을 들었지만, 빵집의 휴업을 안내받지 못했다고 했다. 지유는 사과하고 오전 장사 취소를 알렸다. 미란은 납품 중인 시장 공용 간식 주문도 오늘은 취소하겠다고 했다.
“신뢰는 한 번에 잃지 않아. 다만 설명이 늦으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만들지.”
“맞아요. 제가 먼저 알렸어야 했어요.”
“그럼 내일은 어떻게 할 건데?”
“점검 결과를 공개하고, 다시 굽기 전에 테스트할 거예요.”
미란은 가게를 둘러보고 낡은 오븐을 봤다. “기계가 고장 난 건 네 탓이 아니지만, 수리 기록은 남겨. 시장 납품도 그 기록 확인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지유는 그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오븐 교체 견적은 가게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태준이 돌아와 목공 수리 견적을 내밀었다. 그는 작업 시간과 재료비를 분리해 적었다. 지유는 견적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었다.
“일을 맡길게.”
“고마워.”
“고맙다고 하기 전에 선반부터 고쳐.”
태준은 웃었다. 그 웃음이 기억보다 어른스러워 보여 지유는 시선을 돌렸다. 선반이 고쳐지는 동안 지유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있는 그는 오븐의 이상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라면 새 오븐을 샀을까?” 지유가 물었다.
“엄마라면 지금 장부부터 확인했겠지.”
“장부는 확인했어.”
“그럼 네가 결정해. 이 가게는 이제 네 거야.”
통화가 끝났다. 지유는 재료비 장부에서 오븐 교체 금액을 계산했다. 새 기계를 들이려면 배달 주문을 늘리거나, 한동안 영업 시간을 늘려야 했다. 어느 쪽도 쉽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잘해 온 소금빵 하나를 지키려고 빚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날 늦은 오후, 오븐 점검 기사가 도착했다. 그는 온도 조절기와 배선을 확인하고, 화재 위험은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온도 편차가 커서 부품을 교체해야 했다. 지유는 진단서를 받아 사진을 찍어 가게 공지 계정에 올렸다. 태준은 그 옆에서 깨진 선반 모서리를 사포로 다듬었다.
“다 고치면 다시 열 수 있겠네.”
“응. 하지만 내일도 손님이 올지는 모르지.”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선반뿐이야.”
“그거면 됐어.”
문 닫기 직전, 지유는 오래된 메뉴판 아래에서 접힌 쪽지를 발견했다. 엄마의 필체였다. 태준이가 오면 그때 못 전한 걸 건네 줘. 쪽지 뒤에는 주소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10년 전, 태준이 이사 간 날이었다.
지유는 고개를 들어 목공소 쪽을 바라봤다. 태준은 수리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가 왜 떠났는지, 왜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는지. 이제는 물을 수 있었다.
오븐 점검을 기다리는 동안 지유는 아침 주문 장부를 펼쳤다. 소금빵은 열두 개, 단팥빵은 여섯 개, 식빵은 세 개였다. 정기 주문을 넣은 손님들에게는 이미 빵을 굽기 시작했다고 메시지를 보낸 뒤였다. 그녀는 사과 문자를 한 명씩 보냈다. ‘오븐 이상으로 오늘 주문을 취소합니다. 결제하신 금액은 전액 돌려드리겠습니다.’ 답장은 짧았다. 괜찮다는 사람도, 환불만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손님은 다음 주까지 기다려도 되냐고 물었다. 지유는 그 약속을 받지 않고, 점검 결과가 나온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답했다.
태준은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다음 주에도 오븐이 안 되면 어떡해?”
“그때는 취소하면 돼. 지금 가능한 일만 약속해야 해.”
“예전에도 그렇게 말했어.”
“내가?”
“학교 축제 때 네가 빵을 팔았잖아. 재료가 모자라서 예약을 받지 않고, 남은 만큼만 판다고 했어.”
지유는 기억이 났다. 당시 태준은 가장 먼저 줄을 서서 빵을 샀다. 그는 자기 몫을 친구들에게 나눠 줬다. 그녀는 그걸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태준은 가족이 곧 이사할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어야 했어.”
짧은 사과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지유는 과거를 설명으로 덮지 않으려 그 말을 그대로 두었다. 오늘은 오븐을 점검하고, 내일 다시 영업할 수 있을지 확인하면 됐다.
손님 한 명이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지유는 문을 열고 상황을 설명했다. 손님은 돌아서면서 ‘연기 난 가게에서 빵을 사도 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지유는 괜찮다고 설득하지 않았다. 점검 결과를 공개하고, 방문 여부는 손님이 정하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 사람이 돌아간 뒤 지유는 안내문에 점검 결과를 게시할 시간도 적었다.
그날 아침 매출은 없었다. 대신 연락처를 남긴 손님들에게 수리 후 다시 알리겠다는 동의를 받았다. 지유는 종이 위에 숫자를 적었다. 손실은 예상보다 컸지만, 누구에게 어떤 설명을 했는지 빠뜨리지 않았다. 태준은 마지막으로 닦은 선반을 바라보았다.
“여기 다음엔 빵이 놓이겠네.”
“오븐이 고쳐지면.”
“고쳐질 거야.”
“그건 점검 기사가 말해야지.”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그날 처음으로 함께 일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가 도울 수 있는 건 견적을 내고 허락받은 수리만, 지유가 해야 할 건 가게와 손님에게 정확히 알리는 일. 낡은 선반의 첫 나사는 그 약속 아래 조여졌다.
그날 점검 결과를 기다리는 손님은 두 명뿐이었다. 지유는 두 사람에게 직접 전화했고, 한 사람은 예약을 취소하고 한 사람은 수리 후 다시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두 응답을 장부에 따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