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백은 빵 냄새로

3화: 다시 굽는 온도
지유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딸의 장부를 살펴봤다. 오븐 부품 수리비, 폐기된 빵, 시장 납품 취소분. 그는 숫자를 한 줄씩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태준이한테 편지를 남겼어?”
“쪽지만. 주소가 있었는데 철거된 곳이야.”
“그럼 그 아이에게 주려던 건 편지가 아닐 수도 있겠네.”
아버지는 가게 안쪽 창고로 가서 오래된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안에는 어머니의 레시피 노트와 사진, 배달 장부가 있었다. 상자 바닥에 접힌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수신인은 태준이었다. 봉투는 봉해져 있었고, 지유는 어머니의 필체를 알아봤다.
“이걸 왜 지금까지 안 줬어?”
“네 엄마가 네가 직접 건네 주길 바랐어. 그런데 그 아이가 사라졌고, 나는 그 약속을 잊었지.”
지유는 편지를 바로 뜯지 않았다. 태준에게 전달하고, 읽을지 말지는 그가 정하게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딸이 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챘지만 말리지 않았다. 지유는 자신이 궁금한 건 편지 내용인지, 첫 고백의 답인지 구분하려고 했다.
“내 고백을 거절한 게 아니었다고 적혀 있을까?”
“그걸 알면 지금 뭐가 달라지니?”
“모르겠어. 그래도 알고 싶어.”
“알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답이 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는 태준에게 건넬 것이다. 그 다음은 그가 결정한다.
오전에는 미란 회장이 시장 간식 납품 상태를 다시 확인하러 왔다. 새 오븐 부품과 테스트 기록, 위생 장갑 교체 기록을 살폈다. 지유는 오늘 판매한 수량과 반품, 남은 재고를 정확히 공개했다. 미란은 빵 하나를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납품을 다시 시작하자. 대신 첫 주는 수량을 줄이고, 매일 기록을 보내.”
“네. 무리하게 늘리지 않을게요.”
“잘됐다. 시장 사람들은 네 빵을 기다렸어.”
그 말은 지유에게 작은 성취였다. 그녀는 가게 문을 닫지 않고 문제를 수리했고, 손님에게 설명했고, 신뢰를 다시 얻었다. 그러나 매출이 바로 회복된 건 아니었다. 오븐 교체를 미루고 부품만 수리한 만큼, 매달 수리 기금을 따로 모아야 했다. 지유는 메뉴 수를 줄이고, 반죽 기록을 정리해 낭비를 줄이기로 했다.
태준은 점심 무렵 가게로 왔다. 지유는 편지를 건넸다.
“엄마가 네게 주려고 했던 거래. 읽을지는 네가 정해.”
태준은 봉투를 바라봤다. “네가 먼저 읽고 싶지 않아?”
“궁금하지만, 이건 네 편지야.”
“고마워.”
“읽고 나서 나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어.”
태준은 가게 밖으로 나가 시장 골목 끝에 앉았다. 지유는 문 안쪽에서 그가 봉투를 열지 않고 한참 들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는 결국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왔다.
“지금 읽지는 않을래.”
“그래.”
“그리고 네가 고등학교 때 고백했을 때, 나는 널 거절한 게 아니야. 아버지가 집을 떠나기 전날이라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런데 그 이후에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도망쳤어. 미안해.”
지유는 그 말을 오래 기다렸지만, 들어도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때 네가 무슨 상황이었는지 이제 알았어. 그렇다고 그때 내가 혼자 느낀 창피함이 없던 일이 되진 않아.”
“알아.”
“나도 지금 네 마음을 정해 줄 수 없어.”
“그럴 생각 없어.”
그는 편지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지유는 빵 하나를 포장해 건넸다. 태준은 값을 치르려 했고, 그녀는 오늘은 테스트 굽기라며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다음에는 정가를 받겠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주 뒤, 태준은 편지에 답장을 썼다. 어머니에게 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그때 어떤 말을 하지 못했는지 적었다고 했다. 그는 편지를 지유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지유는 요구하지 않았다. 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장 근처 국수집에서, 그다음에는 태준이 만든 새 선반을 구경하러 목공소에서 만났다.
어느 날 저녁, 태준은 가게 문을 닫는 지유에게 물었다.
“다시 고백해도 돼?”
“똑같은 대답을 들을 수도 있어.”
“그럼 이번에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기다릴게.”
지유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은 네가 좋아. 하지만 예전 일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그럼 천천히 만나 보자.”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유의 손을 잡기 전에 먼저 물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온도를 확인했다. 빵은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뜨겁고, 잠시 뒤 먹기 좋은 온도가 된다. 지유는 그 기다림이 사랑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다음 아침, 가게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다. 소금빵은 고르게 부풀었고, 납품 상자는 제시간에 시장 회관에 도착했다. 지유는 장부에 판매량과 수리 기금을 기록했다. 태준은 손님이 나간 뒤 빈 선반의 나사를 한 번 더 조였다.
“그건 이미 고쳤잖아.”
“확인만.”
“그럼 확인비 받아요.”
“다음 빵으로 받을게.”
지유는 새로 구운 빵 하나를 종이봉투에 넣었다. 대가를 정한 농담이 그들 사이에 남았다. 편지는 태준의 가방 안에 있었고, 아직 열리지 않았다. 언젠가 읽을지, 다시 봉인할지는 태준이 고를 일이었다. 지유는 자기 가게의 문을 열고, 다음 날 반죽을 준비했다.
미란 회장이 떠난 뒤 지유는 시장 주문표를 다시 작성했다. 첫 주는 하루 스무 개, 다음 주는 판매량을 확인한 뒤 늘리기로 했다. 생산량을 늘리면 폐기량과 오븐 사용 시간이 함께 늘었다. 그녀는 매출 목표만 적지 않고, 매일 기록해야 할 오븐 온도와 반죽 무게도 표에 넣었다. 태준은 출력한 표를 선반 옆에 붙였다.
“엄마는 이런 표를 쓰셨어?”
“아니. 머릿속으로 기억했지.”
“그게 더 대단한 것 같은데.”
“그런데 난 그 기억을 물려받을 수 없잖아. 내 방식으로 해야 해.”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표가 네 가게 방식이 되겠네.”
지유는 그 말을 듣고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엄마가 하던 방식과 다른 일을 해도 가게를 배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음 달 재료 주문에 필요한 금액을 계산하고, 수리 기금을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첫 납품은 아침 일곱 시에 출발했다. 지유는 주문표와 빵 수량을 대조하고, 상자를 두 겹으로 포장했다. 미란 회장은 시장 회관 앞에서 직접 상자를 열어 하나를 잘라 봤다. 빵 속은 고르게 익었고 표면의 소금도 과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은 주문을 수령 확인서에 적었다.
“다음 주 수량은 오늘 판매 기록 보고 정하자.”
“네. 한 번에 늘리지는 않을게요.”
시장 상인들이 하나씩 빵을 받아 갔다. 누군가는 오븐 고장 소식을 이미 들었다며 괜찮냐고 물었고, 지유는 점검 결과와 수리 내역을 간단히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 설명을 듣고 바로 안심하지는 않았지만, 한 상자씩 주문을 이어 갔다. 지유는 그 반응을 감사 인사로 덮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뢰를 다시 얻는 데 필요한 건 말 한마디보다 다음 납품의 기록이었다.
가게로 돌아오자 태준이 빵 냉각대의 나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은 안 흔들려.”
“그럼 이제 그만 확인해도 돼.”
“다음에 또 확인할게.”
“그땐 확인비 받아.”
“그럼 빵값으로 계산하자.”
지유는 웃으며 빵을 하나 건넸다. 태준은 값을 지불하고 봉투를 받아 들었다.
며칠 후 아버지가 가게에 들렀다. 그는 딸이 만든 새 주문표를 읽고, 어머니의 장부와 달라진 점을 물었다. 지유는 메뉴 수를 줄였고, 예약을 받지 않는 시간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그 선택을 승인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네 방식으로 가게를 굴리는구나”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지유에게는 오래 기다린 허락처럼 들렸다.
그날 저녁 태준은 집에 돌아가 편지를 읽었다. 다음 날 그는 지유에게 내용은 말하지 않고, 자신이 답장을 쓰기로 했다고만 알렸다. 지유는 그 결정을 존중했다. 그녀가 기다리던 답은 더 이상 과거의 문장 안에만 있지 않았다. 태준은 연락을 이어 갔고, 지유는 그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살폈다.
빵집의 문은 다음 날에도 같은 시각에 열렸다. 가게 앞 선반에는 막 구운 빵이 놓였고, 지유는 일일 기록표 첫 줄에 온도와 판매 수를 적었다. 과거에 듣지 못한 대답은 남아 있었지만, 새로 나누는 말은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주말이 되자 지유는 마지막으로 남은 예약을 받았다. 한 손님은 태준과의 사이를 물었지만, 지유는 아직 서로 알아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손님은 더 캐묻지 않고 소금빵 네 개를 주문했다. 지유는 그 대화가 편했다. 관계를 포장해 팔지 않아도 가게는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태준은 빵을 받아 들고 돈을 냈다. 지유는 거스름돈을 건넸고, 두 사람은 다음 주에 다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태준이 식당을 골랐다. 약속은 짧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은 각자의 몫으로 남았다.
그날 가게 문을 닫기 전, 지유는 태준에게 다음 주 예약 주문표를 보여 주었다. 시장 납품량은 스무 개로 제한했고, 새 손님 예약은 오전 열한 시까지만 받기로 했다. 태준은 선반을 고치며 자신이 놓친 나사 하나를 표시했다.
“이건 내일 바꾸면 돼. 오늘은 이미 문 닫을 시간이야.”
“괜찮아?”
“내일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지금 끝내려고 무리하면 내가 또 실수해.”
태준은 공구를 가방에 넣었다. 그는 예전 같으면 혼자 남아 완벽하게 고치려 했을 것이다. 지유는 그가 일을 멈추는 선택을 보았다.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빵 굽기 전에 올게.”
“빵값은 받을 거야.”
“알고 있어.”
지유는 문을 잠그고 장부를 덮었다. 오븐은 정상 작동했고, 다음 납품은 정해진 수량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는 태준의 가방에 있었고, 지유는 그 내용이 궁금해도 열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 날의 작업표에 시장 주문과 수리 확인 시간을 적었다. 태준도 자신의 달력에 같은 시간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어느 쪽도 약속을 추측에 맡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