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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으로 전함을 삼키다2화

나노머신으로 전함을 삼키다

나노머신으로 전함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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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푸른빛의 진단

[외부 장치 강제 페어링 유지 중]
[신호 출처: 키메라 코어 시스템]
[임시 관리자 권한 확인: 이온-402]
[연결 버스: 주 전력선 바이패스 #02]

등 뒤 하부 수납함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차가운 맥동이 이온의 메인 프레임을 타고 흘렀다.
머리 뒤편 충전 베이에서 공급되던 미약한 교류 전류가 단번에 밀려났다.
푸른빛을 띤 미세 입자들이 전선 피복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벌레 떼처럼 구리 선을 갉아먹지 않고 그 표면을 얇게 도금하며 빠르게 증식했다.

치직, 치지직!
이온의 시야 내부에서 시스템 경고창이 맹렬하게 점멸했다.

[경고: 내부 버스 침입 감지]
[프로토콜 충돌: 표준 작업자 OS v4.12 vs 군용 직결 커널]
[명령 거부 불가. 우선순위: 최상위]

이온은 즉시 가슴 내부의 비상 차단기를 내리려 했다.
미지의 장치로부터 유입되는 전류는 화재나 회로 소손을 유발하는 제1종 위험 요소였다.
하지만 명령 신호는 전달되지 않았다.
푸른 나노 입자 덩어리가 차단 스위치의 접점 사이를 채우며 강제로 회로를 단락시켰다.

"비인가 장치 분리 시도. 전력 차단 불응."

이온의 음성 스피커에서 거친 잡음이 섞여 나왔다.
목 관절의 서보모터가 덜덜 떨리며 고정 핀을 물었다.
이온의 낡은 중앙 연산 장치는 초당 수만 건의 오류 로그를 쏟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코어는 파괴를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푸른 입자들은 이온의 낡은 몸체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녹슨 용접선, 유압 오일이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실린더 패킹, 찌그러진 탄소강 외판과 모래가 씹힌 무한궤도 베어링까지.
입자들은 닿는 부위마다 미세한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며 물성을 측정했다.

지이잉.
이온의 오른쪽 눈앞에 전례 없는 고해상도 그래픽 로그가 떠올랐다.
평소 보던 흑백의 투박한 계측 문구가 아니었다.
이온 자신의 전신 3차원 투시도가 정밀한 청색 선으로 허공에 펼쳐졌다.

[전신 구조 스캔 완료]
[개체명: 자원 회수 및 작업 지원 유닛 (표준형-402)]
[외장 장갑 잔존 내구도: 66%]
[주 동력 배터리 열화율: 59% (최대 충전량 영구 감소)]
[좌측 궤도 구동축 비틀림 오차: 3.4도]
[우측 광학 센서 블록: 전면 렌즈 균열율 68%, 초점 정렬 불량, 수광 소자 감도 저하]

모든 수치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12년 동안 마른 강 평원의 거친 모래바람을 견디며 누덕누덕 기워 붙인 흔적들이 전부 붉은색 경고 구역으로 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짙은 붉은빛을 뿜는 곳은 단연 오른쪽 광학 센서였다.

[진단 결과 갱신: 현 상태로는 원활한 자원 탐지 및 수확 작업 불가]
[작업 명령 생성: '광학 센서 정상화']
[제작 조건 확인 중...]

이온의 연산 회로에 낯선 개념들이 강제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코어는 신비로운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물리 법칙에 종속된 자동 공정 시스템이었다.

[키메라 재구성 4대 충족 조건]

  1. 재료 질량: 0.00kg / 요구량 미달
  2. 요구 전력: 최소 48V 12A 지속 공급 필요 / 현재 베이 전력 부족 (24V 4A)
  3. 구조 정보(설계도): 데이터베이스 없음
  4. 연산 여유: 38% 확보 (충족)

[판정: 제작 불가. 필수 조건 3개 결핍.]

이온의 연산 장치가 그 로그를 해독했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거나 고치려면 네 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만들 물건의 질량만큼의 재료.
나노머신을 구동할 충분한 전력.
물건의 내부 구조를 완벽하게 정의한 정밀 설계 데이터.
그리고 재조합 과정을 실시간으로 통제할 연산 능력.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나노머신은 단 한 조각의 금속도 바꾸지 못한다.

"부품 부족."

이온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코어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고철 조각이 아니었다.
깨진 유리와 찌그러진 철판을 대충 두드려 펴는 땜질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광학 계통을 직조해 내려는 요구였다.

[임시 관리자 이온-402에게 알림]
[가용 재료를 적재함에 투입하십시오.]
[코어와 물리적으로 접촉한 비생체 자원만 분석 및 분해 가능합니다.]

이온은 적재함 안쪽을 내려다보았다.
낮에 모래 폭풍 속에서 주워 온 것들 중 선별소에 넘기지 않고 남은 찌꺼기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피복을 벗겨내고 남은 구리 도체 부스러기 0.2킬로그램.
수송차 장갑판에서 떨어져 나온 녹슨 탄소강 볼트 세 개.
그리고 바닥에 깔린 자갈과 모래먼지.

이온은 집게손을 뻗어 그 고철 부스러기들을 코어 위로 밀어 넣었다.

스스스.
코어 표면의 검은 물질이 진흙처럼 풀어지더니 순식간에 구리 부스러기와 강철 볼트를 감싸 안았다.
금속이 쪼개지는 소리도 불꽃도 튀지 않았다.
그저 푸른 입자들이 금속 표면을 훑고 지나가자 고철 덩어리들이 설탕처럼 녹아내려 검은 코어의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자원 흡수 완료]
[비축 질량: 구리 0.21kg, 합금강 0.14kg]
[경고: 광학 렌즈용 복합 유리 및 반도체 소자 감지되지 않음]
[석영질 모래는 정제 설비 부재로 가공 불가]
[재구성 시퀀스 중단]

코어는 가차 없이 작업을 멈췄다.
구리와 강철이 있어도 렌즈를 만들 투명한 특수 유리와 빛을 받아들일 수광 소자가 없었다.
아무리 나노머신이라 해도 강철을 유리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질량 변환은 불가능하다.
오직 존재하는 원소와 구조를 분해하여 다시 짤 뿐이었다.

"유효 부품 결핍. 작업 취소."

이온이 출력했다.
하지만 코어는 연결을 끊지 않았다.
오히려 이온의 주 통신 안테나와 미약한 전파 탐지 회로를 강제로 활성화했다.

삐이이-
귓가에서 높은 주파수의 이명이 울렸다.
이온의 둥근 머리 위에 달린 낡은 막대 안테나가 30도 각도로 비틀거리며 돌아갔다.
코어가 이온의 센서를 증폭기 삼아 충전 베이 주변 반경 50미터를 전파로 훑기 시작한 것이었다.

[근거리 고주파 스캔 전개]
[수집 목표: 정밀 광학 렌즈 어셈블리, 신호 처리 칩셋]
[탐색 중...]

이온의 깨진 오른쪽 렌즈 너머로 정착지의 풍경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두컴컴한 골목과 낡은 판잣집들이 격자형 청색 와이어프레임으로 분해되어 보였다.
벽 너머에 웅크리고 자는 사람들의 체온은 감지되지 않았다.
코어는 오직 금속과 전자기기만을 인식했다.

녹슨 함석판 지붕, 바닥에 묻힌 낡은 수도관, 끊어진 전선줄.
모든 기계 잔해에 질량과 성분 분석 데이터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치 없는 연철이나 부식된 알루미늄에 불과했다.

그때 정비소 막사 뒤편 야외 자재 보관소 구석에서 유독 밝은 황금색 신호가 잡혔다.

[표적 신호 포착]
[위치: 북동쪽 24m 지점, 폐기물 더미 하부]
[물체 식별: 군용 단거리 관측 드론 '호크아이-3' 파편]
[상태: 동력 정지, 메인 프레임 파손율 92%]
[잔존 부품: 3중 복합 광학 줌 렌즈 (파손율 12%), 초소형 열화상 센서 유효]
[적합도: 94%]

이온의 내부 메모리가 즉각 반응했다.
그것은 사흘 전 정착지 외곽 수색대가 사막에서 주워 온 잔해였다.
비행 모터와 동체는 기계 괴수의 발톱에 찢겨 걸레짝이 되었지만 관측 렌즈가 달린 머리 부분만은 기적적으로 온전했던 기종이었다.

'호크아이-3의 정찰 렌즈.'
그것을 얻는다면 깨진 렌즈를 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보다 몇 배는 넓고 선명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열을 감지할 수 있는 열화상 기능까지 더해질 터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그 폐드론은 정착지 선별소의 공용 자산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자원 절도'로 규정되어 즉시 기능 정지 및 강제 해체 처분을 받게 된다.

치직.
코어에서 다음 단계의 안내가 떴다.

[목표 장비와의 직접 물리 접촉 필요]
[장비 질량 흡수 및 구조 정보 스캔을 승인하시겠습니까?]
[주의: 해당 장비의 자율의식 신호 및 인간 탑승 여부를 확인하십시오.]

이온은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폐드론은 이미 완벽하게 죽은 기계였다.
자율의식은커녕 배터리조차 완전히 방전된 쇳덩이에 불과했다.
동의 잠금 규약에 걸릴 위험은 없었다.
문제는 인간들의 감시였다.

쿵.
그 순간 정비소 막사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누구야? 거기서 전력 튀는 소리 낸 게?"

어둠 속에서 익숙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였다.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묵직한 파이프 렌치를 쥔 채 방진 고글을 머리 위로 올린 민아가 충전 베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온은 화들짝 놀라 내부 스캔 모드를 급히 끄려 했다.
하지만 코어의 나노 입자들이 이온의 제어 명령을 지연시켰다.
가슴 장갑 틈새로 흘러나오던 푸른 형광빛이 아직 완전히 잦아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온? 너 아직 안 끄고 뭐 해?"

민아의 손전등 불빛이 어두운 베이 안쪽을 날카롭게 베어 갈랐다.
빛줄기가 이온의 노란색 둥근 머리통과 가슴팍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이온은 오른손 집게를 들어 등 뒤의 수납함 덮개를 거칠게 닫았다.
철컥!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막을 깼다.
동시에 가슴 틈새로 새어 나오던 푸른빛이 이온의 내부 냉각 통로 속으로 숨어들었다.

"배터리 충전 전류의 전압 불균형이 감지되어 시스템 점검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온은 가장 평이한 표준 음성으로 대답했다.
스피커의 잡음을 억누르느라 평소보다 음조가 반 옥타브 낮아졌다.

민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왔다.
손전등 불빛이 이온의 가슴 장갑 틈새와 목덜미의 전선 뭉치를 꼼꼼하게 훑었다.

"전압 불균형? 3번 베이가 또 말썽이야? 거긴 지난주에도 변압기 코일이 타서 갈았는데."

민아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이온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슴 장갑 표면에 닿았다.
나노 입자들이 급격히 활동을 멈추며 열을 방출한 탓에 철판이 미지근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열 배출 팬 고장 났어?"

"모래 폭풍 통과 중 유입된 미세 먼지로 인해 방열 효율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었습니다. 현재 허용 온도 이내입니다."

"거 봐. 내가 아까 필터 청소 완전히 끝내고 자라고 했잖아. 고집은 더럽게 세요."

민아는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렌치를 허리춤에 꽂았다.
그러고는 하품을 길게 내뱉으며 피곤한 얼굴로 눈가를 비볐다.
손가락에 묻은 검은 기름때가 눈 밑에 묻어났다.

"잠도 안 자고 부품 뒤지다가 죽는 줄 알았네. 너 주려고 했던 렌즈 말이야."

민아의 말에 이온의 내부 클록이 멈칫했다.

"선별장에 들어온 그 관측 드론 잔해 있지? 아까 계측관 몰래 가서 상태를 봤거든."

"호크아이-3 유닛의 잔해를 말씀하십니까."

"어, 그거. 삼중 렌즈가 아주 멀쩡해. 스크래치 하나 없더라. 내일 낮에 선별관한테 내가 모아둔 배급 쿠폰 두 장 주고 합법적으로 불하받아 올게. 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히 충전이나 해."

민아는 그렇게 말하며 이온의 찌그러진 어깨 장갑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졸음과 함께 묘한 뿌듯함이 묻어 있었다.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식량 쿠폰을 털어 렌즈를 사주겠다는 뜻이었다.

이온의 연산 장치에 알 수 없는 데이터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자신은 그저 교체 가능한 소모품 로봇에 불과했다.
고철 15킬로그램을 채우지 못하면 폐기 처분되는 기계에게 인간이 자신의 자원을 낭비할 이유는 없었다.

"견습 정비사 한민아의 자원 소모는 비합리적입니다. 표준 로봇 수리 규정에 어긋납니다."

"시끄러워. 비합리적인 건 너 데리고 일하는 내 마음이거든?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고맙다고나 해."

민아는 콧방귀를 뀌며 손전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정비소 막사의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걸리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주변은 다시 완벽한 적막에 잠겼다.

지직.
수납함 속에서 코어가 다시 미세한 데이터 패킷을 보냈다.

[대기 모드 복귀 거부]
[목표 자원: 호크아이-3 광학 모듈]
[확보 예상 시간: 6시간 후 (인간 개체의 자원 교환 행동)]
[경고: 외부 거래 실패 시 대안 경로 산출 필요]

이온은 가슴 장갑 틈새로 다시 스멀거리며 기어 나오는 푸른 나노 입자들을 응시했다.
코어는 민아의 선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자원의 이동과 확률만을 계산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온의 판단은 달랐다.
민아가 쿠폰을 쓰게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녀의 영양 상태는 이미 수개월째 결손 상태였고 사막의 겨울은 곧 다가올 터였다.
그리고 정착지의 부패한 계측관이 쿠폰 두 장 따위에 군용 관측 드론의 멀쩡한 렌즈를 순순히 내줄 리도 없었다.
낮이 되면 그 드론은 철로단의 순찰대나 더 큰 부품상에게 비싼 값에 팔려 나갈 확률이 89퍼센트였다.

기회는 모두가 잠든 새벽뿐이었다.

이온은 오른쪽 무한궤도의 클러치를 조용히 물렸다.
체인이 돌아가는 쇳소리를 죽이기 위해 유압 모터의 회전수를 최저치로 제한했다.
충전 케이블을 목 뒤에서 부드럽게 뽑아낸 이온은 3번 베이의 그림자 밖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나갔다.

[전력 잔량: 38.2%]
[비축 질량: 구리 0.21kg, 합금강 0.14kg]
[목표: 호크아이-3 관측 드론 잔해]

밤안개가 걷히기 전 새벽의 정착지 한구석에서 작은 로봇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온의 등 뒤에서 검은 육면체가 푸른빛을 깜빡이며 다음 시퀀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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