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길을 그리는 지도사

1화: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
단우의 지도에서 길이 사라졌다.
그는 잉크가 번진 줄 알았다. 사막의 낮은 뜨거웠고, 땀에 젖은 손바닥이 종이 가장자리를 눌렀다. 하지만 지도를 말려 다시 펼쳐도 북쪽 염전 마을로 향하던 푸른 선은 없었다. 잉크가 사라진 자리에는 얇은 흰 가루만 남아 있었다.
“측량을 잘못한 거 아니야?”
수레를 끌던 미라가 그를 돌아봤다. 붉은 스카프를 턱에 묶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막 능선을 바라봤다.
“이 길은 지난달에도 있었어.”
“지난달과 오늘의 모래가 같다는 보장은 없지.”
“길은 모래가 아니라 바위의 틈을 따라 그었어. 바위가 움직일 리는 없잖아.”
“지도술을 쓰면 움직일 수 있어.”
그 말은 단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길드 지도원이었을 때 국경 근처의 구불구불한 길을 짧게 바꿨다. 통행 시간을 줄여 피난민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새 길이 열린 뒤 오래된 계곡길이 무너졌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는 마차가 돌아오지 못했다. 길드 조사단은 그가 허가 없이 길선을 바꿨다는 이유로 면허를 빼앗았다.
단우는 지도를 접었다. “그러면 누가 여길 바꿨어?”
“지도원 사람들은 아니겠지. 그들이었다면 통행세를 먼저 매겼을 테니까.”
미라는 수레의 덮개를 걷어 염수통을 확인했다. 통통한 나무통 안에서 물이 출렁였다. 이 마실 물은 오늘 안에 마을에 도착해야 했다. 사라진 길을 따라가면 반나절이면 닿지만, 북쪽 협곡으로 우회하면 하루를 더 걷는다.
“우회할까?” 미라가 물었다.
“아직. 길이 없어졌는지, 지도만 바뀌었는지 확인해야 해.”
“그 말은 위험한 길로 가겠다는 뜻처럼 들려.”
단우는 대답 대신 나침반을 꺼냈다. 바늘은 북쪽이 아니라 사라진 길이 있던 바위틈을 가리켰다. 그는 나침반을 뒤집고 다시 들어 올렸다. 바늘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뭔가 있어.”
“혹시 용?”
“용은 전설이 아니야. 실제로 있지만, 이 근처에서 본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용이겠네.”
미라는 수레를 세웠다. “누군가에겐 물이 필요해. 용을 만나든 길을 찾든, 오늘은 목적지에 가야 해.”
둘은 사라진 선이 시작되던 바위틈으로 걸어갔다. 좁은 틈 안쪽은 이상하게 서늘했다. 모래 위에는 반짝이는 흰 가루가 이어져 있었다. 단우는 손가락으로 가루를 집었다. 소금이었다.
“염전 마을에서 날아온 걸까요?”
“바람은 반대 방향이야.” 미라가 고개를 들었다. “소금이 바람을 거슬러 오고 있어.”
바위틈 사이에서 날개를 펴는 소리가 났다. 거대한 그림자가 능선을 가로질렀다. 둘은 몸을 낮췄다. 바위에 붙어 있던 소금 가루가 일제히 빛났다. 단우는 지도통을 열어 빈자리의 좌표를 기록했다.
“저기.” 미라가 속삭였다.
협곡 아래로 청록색 비늘의 용이 내려앉았다. 날개 한쪽에는 검은 화살촉이 박혀 있었다. 용은 다친 날개를 접고 몸을 낮췄다. 그 뒤편에는 오래된 돌담과 무너진 염전 집들이 보였다. 지도에 없는 마을이었다.
용의 눈이 두 사람을 향했다. 단우는 지도를 내렸다. 검을 뽑지 않았다. 미라는 수레 손잡이를 움켜쥐었지만, 그도 도망칠 길을 찾고 있었다.
단우는 용의 앞발과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수레를 끌고 협곡을 빠져나가려면 좁은 통로를 지나야 했다. 용이 날개를 다시 펼치면 그 통로는 막힐 것이다. 그는 지도통에서 작은 풍향계를 꺼내 땅에 세웠다. 바람은 용의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불고 있었다. 도망치는 방향과 반대였다.
“천천히 뒤로 가자.” 그가 속삭였다.
“아이가 안에 있어.” 미라가 말했다.
“알아. 먼저 용이 우리를 위협으로 보지 않게 해야 해.”
단우는 지도의 빈 면을 펼쳐 바닥에 놓았다. 선을 그리는 대신 지도 모서리에 자기 이름과 오늘 날짜를 적었다. 길드의 측량 규정에 따르면 새로 발견한 지형을 기록할 때는 지도사와 목격자의 이름을 함께 남겨야 했다. 그는 그 이름을 쓸 때마다 지도원에 쫓기는 흔적이 될 것을 알았다. 그래도 기록하지 않으면 이 마을이 다시 지워질 수 있었다.
용은 소금가루 위에 발을 놓았다. 가루는 발톱을 피해 갈라지며 작은 물길처럼 흘렀다. 단우는 지도를 눈앞에 들어 그 흐름을 따라갔다. 용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협곡의 바위가 미세하게 울렸다. 오래된 돌담과 절벽 사이가 같은 박자로 흔들리고 있었다.
“지형이 용을 따라 움직여.”
미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무너진 집의 창문에 박혀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바람에 실려 짧게 들렸다.
“내가 수레를 끌고 돌아가서 물통을 가져올게. 너는 괜한 주문 쓰지 마.”
“주문이 아니라 측량을 할 거야.”
“그 둘이 어떻게 다른데?”
“주문은 결과를 먼저 정해. 측량은 지금 있는 걸 확인해.”
미라는 잠시 그를 살폈다. “그 말은 길드에서 쫓겨난 사람이 하는 말 같네.”
“그래서 더 잘 알아.”
용이 낮은 숨을 뿜자 소금가루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얀 입자가 하나씩 이어져 협곡의 윤곽을 그렸다. 단우는 그 선을 알아보았다. 누군가 지형을 바꾸기 전의 옛길이었다.
“이 마을은 예전에 여기 있었어.”
“그럼 왜 지도에서 지웠지?”
대답 대신 용이 고개를 돌렸다. 협곡의 벽에는 사람 키 높이의 새 칼자국이 나 있었다. 흰 선은 마을을 지나 동쪽의 좁은 골짜기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단우의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통행로가 있었다.
단우는 그 길을 더 가까이 살폈다. 길선은 바위 표면에서 시작해 허공에서 끊겼다. 거기서부터는 마치 누군가의 손이 지도를 긁어 지운 것처럼 빈 공간뿐이었다.
“길을 그린 자가 아직 여기 있어.”
“어디서 알아?”
단우는 사라진 선 위에 손을 얹었다. 길드에서 배운 감각이 손목으로 올라왔다. 지도에 남은 지형의 기억은 뜨거운 모래처럼 흔들렸다. 선을 되살리려면 측량점을 세 개 더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바로 앞의 길은 이미 붕괴하고 있었다.
그는 지도에 새 선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끊긴 지점과 붕괴각을 표시했다. 한 번 더 확인하기 전에는 지형을 바꾸지 않을 생각이었다.
용이 갑자기 날개를 펼쳤다. 검은 화살촉이 살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용은 고통에 몸을 비틀며 협곡 벽을 할퀴었다. 돌담이 무너지고 숨겨져 있던 집 한 채가 드러났다. 창문 안에서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미라가 수레 쪽으로 달려갔다. “물통을 가져올게. 화살을 뽑아야 해.”
“용한테 가까이 가면 다칠 수 있어.”
“아이를 먼저 꺼내야 해. 네가 용을 붙잡아.”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라며. 우리한테 안전한 길을 그려.”
단우는 협곡을 살폈다. 가장 짧은 길은 무너진 담을 통과해야 했고, 바깥길은 돌아가느라 아이가 버티지 못할 수 있었다. 지형을 바꾸면 안쪽 길을 잠시 열 수 있지만, 그 반작용으로 반대편 둑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는 지도통에서 얇은 동판을 꺼내 바위에 댔다. 금속판에 협곡의 높낮이를 새기고, 실제 지형과 지도 선이 어긋나는 지점을 확인했다. 바위틈 세 곳에서 소금가루가 움직였다. 용의 이동이 지형을 밀어내고 있었다.
“미라, 아이를 서쪽 창문으로 빼. 동쪽 담은 건드리지 마.”
“그 길이 열려 있어?”
“지금은. 내가 표시할게.”
단우는 지도 위에 짧은 선을 그었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자, 바위와 흙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서쪽 벽의 무너진 잔해가 옆으로 밀렸다. 그 틈은 아이 하나가 빠져나올 만큼만 열렸다.
미라는 아이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때 협곡 반대편에서 돌이 굴러 떨어졌다. 단우가 걱정한 둑이 무너지고 있었다. 물길이 마을 쪽으로 돌아들어왔다.
“사람들을 데리고 언덕으로!” 단우가 외쳤다.
용은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다친 날개를 끌며 아이와 미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협곡 안쪽의 돌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단우는 지도에 길을 하나 더 그리려다 손을 멈췄다. 그가 바꾼 길 때문에 물길이 이미 달라졌다. 새 선을 그리면 어디가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동판을 세워 물이 들어오는 각도를 재고, 무너진 둑의 높이를 표시했다. 밀려온 물은 집 두 채를 잠길 수 있었지만, 언덕으로 빠지는 낮은 홈도 있었다. 그 홈을 넓히면 침수는 피할 수 있어도 염전으로 이어지는 길이 끊길 터였다.
“염전 길이 없어지면 이 마을은 어떻게 돼요?” 미라가 물었다.
“오늘은 살아남겠지만, 내일 소금을 팔러 나갈 길이 없어져.”
“그러면 지도에 선을 그을 수 없겠네.”
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우선 아이와 주민을 높은 곳으로 옮기고, 물이 빠진 뒤에야 길을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미라는 수레에서 빈 자루를 내려 임시 표식으로 세웠다. 선택은 늦어졌지만 그 덕분에 길의 대가를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어디로 갔어요?” 미라가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작았다. “할머니가 말했어요. 용이 길을 잃으면 마을도 사라진다고.”
협곡 위에서 낯선 나팔 소리가 울렸다. 말 탄 사람들이 능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의 문장은 지도원 길드의 표식이었다.
단우는 그 문장을 알아보았다. 자신을 추방한 길드가 쓰던 표식이었다. 빗물에 젖은 지도통을 닫으며, 그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보다 그들이 이 마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맨 앞의 기사가 펼친 종이에는 사라진 마을과 용의 흔적이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선은 단우가 방금 열어 준 서쪽 길을 정확히 가리켰다.